독립선언 33인에 여성이 없었던 이유 [광복80주년④]
입력 2025.08.13 (07:01)
수정 2025.08.13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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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 전역에 울려 퍼진 독립선언. 그 유명한 '민족 대표 33인'이 주도한 기미독립선언입니다. 손병희, 한용운, 이승훈 등 역사적인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민족 대표 33인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들의 결단은 전국적인 만세 시위와 독립운동으로 번졌고, 임시정부 수립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33인 명단'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국가에서 인정한 독립유공자(포상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3%대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보면 여성들은 정말로 독립운동의 변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3.6%라는 숫자의 의미와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
■ 광복 80년… 여전히 역사 속에 묻힌 이름들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충북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여전히 역사 속에 묻혀있습니다.
공훈전사자료관의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 자료를 보면,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전국 독립유공자는 1만 8,253명입니다.
이 가운데 여성은 664명으로 남성 대비 압도적으로 적은 3.6%에 불과합니다.
충북의 경우, 최근 5년 동안 새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64명입니다.
하지만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과 독립 정신 계승 방안: 충북을 중심으로> 논문을 작성한 서원대학교 라미경 교수는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덜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한계 속에 그들의 공적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 전시실 속 ‘낯선 얼굴’… 기록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사
충북여성독립운동가전시실에는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당당히 맞섰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돌본 오건해 선생, 목숨을 걸고 독립군의 비밀문서를 전달하고 군자금을 모은 임수명 선생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모두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충북 출신 여성 독립유공자는 이들을 포함해도 고작 10명에 불과합니다.
충북의 남성 독립유공자는 58배 많은 581명입니다.
독립운동 시기, 여성들은 대체로 무장투쟁이나 공개적 시위보다 연락망 구축, 군자금 전달, 은신처 제공 등 은밀하고 비공식적인 임무를 맡았습니다.
라 교수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주어진 전략적 역할이었지만, 기록이 남기 어려운 은밀한 임무의 특성상, 후대에 남길 기록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상당수가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부양자였다는 점도 유공 인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상당수는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부양자였습니다.
독립운동에 나선 배우자를 대신해 가사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기록은 더욱 가려지게 됐다는 겁니다.
또, 당시의 사회 구조상 여성의 정치·사회 활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던 점도 기록 부재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 여성 독립운동가 심사 기준 완화했지만… "여전히 벽 높아"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2018년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여성의 유공 심사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일기나 회고록, 수기 등 간접 자료만으로도 공적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이전에는 최소 3개월 이상 수형(옥고)이나 독립운동 활동 6개월 이상이어야만 유공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북 여성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형무소 수형 기록이 남아있는 충북의 여성 독립운동가 7명은, 심사 기준 완화에도 여전히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북 음성군 출신으로 민족 교육을 선도하다 불경과 보안법,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고강순, 충북 청주 출신으로 조선인 노동자 차별에 대항한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수감된 박소순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모두 이 같은 활동을 입증할 판결문이나 추가 자료 기록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충북 일부 여성단체가 공적 확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언은 사라지고, 기록은 더욱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정종국 광복회 법률 개정 추진위원장은 "6·25 전쟁을 거치며 수많은 기록이 소실됐다"면서 "정부의 독립유공자 심사는 신청주의 방식이라, 후손이나 관련 단체가 신청하지 않으면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굴 작업은 유족과 민간 단체의 역할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 자치단체 주도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 필요
전라북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정부와 학계, 시민단체가 연계한 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후손 증언을 확보하고, 이를 학술적으로 검증해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북을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이 같은 발굴 작업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 인력과 예산도 제한적이어서, 개별 연구자나 시민단체의 노력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여성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체계적인 조사와 예산 투입을 통해 기록화 작업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구술사와 문헌조사, 판결문, 행형기록 확인 등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 광복 80주년… 잊힌 이름을 불러야 할 시간
광복은 왔지만, 모든 독립운동가가 그날에 함께 기록된 건 아닙니다.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이름 없이, 기록 없이, 역사의 뒤편에 서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단순한 과거사 복원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에 온전한 광복의 역사를 전하는 일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더 늦기 전에, 그들의 불꽃같던 삶과 투쟁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연관 기사]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여성 독립운동가의 그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23655
촬영기자 강사완·김장헌 / 그래픽 권세라·조은수·오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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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 33인에 여성이 없었던 이유 [광복80주년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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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13 07:01:46
- 수정2025-08-13 07:08:41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 전역에 울려 퍼진 독립선언. 그 유명한 '민족 대표 33인'이 주도한 기미독립선언입니다. 손병희, 한용운, 이승훈 등 역사적인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민족 대표 33인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들의 결단은 전국적인 만세 시위와 독립운동으로 번졌고, 임시정부 수립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33인 명단'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국가에서 인정한 독립유공자(포상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3%대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보면 여성들은 정말로 독립운동의 변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3.6%라는 숫자의 의미와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
■ 광복 80년… 여전히 역사 속에 묻힌 이름들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충북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여전히 역사 속에 묻혀있습니다.
공훈전사자료관의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 자료를 보면,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전국 독립유공자는 1만 8,253명입니다.
이 가운데 여성은 664명으로 남성 대비 압도적으로 적은 3.6%에 불과합니다.
충북의 경우, 최근 5년 동안 새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64명입니다.
하지만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과 독립 정신 계승 방안: 충북을 중심으로> 논문을 작성한 서원대학교 라미경 교수는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덜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한계 속에 그들의 공적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 전시실 속 ‘낯선 얼굴’… 기록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사
충북여성독립운동가전시실에는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당당히 맞섰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돌본 오건해 선생, 목숨을 걸고 독립군의 비밀문서를 전달하고 군자금을 모은 임수명 선생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모두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충북 출신 여성 독립유공자는 이들을 포함해도 고작 10명에 불과합니다.
충북의 남성 독립유공자는 58배 많은 581명입니다.
독립운동 시기, 여성들은 대체로 무장투쟁이나 공개적 시위보다 연락망 구축, 군자금 전달, 은신처 제공 등 은밀하고 비공식적인 임무를 맡았습니다.
라 교수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주어진 전략적 역할이었지만, 기록이 남기 어려운 은밀한 임무의 특성상, 후대에 남길 기록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상당수가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부양자였다는 점도 유공 인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상당수는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부양자였습니다.
독립운동에 나선 배우자를 대신해 가사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기록은 더욱 가려지게 됐다는 겁니다.
또, 당시의 사회 구조상 여성의 정치·사회 활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던 점도 기록 부재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 여성 독립운동가 심사 기준 완화했지만… "여전히 벽 높아"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2018년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여성의 유공 심사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일기나 회고록, 수기 등 간접 자료만으로도 공적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이전에는 최소 3개월 이상 수형(옥고)이나 독립운동 활동 6개월 이상이어야만 유공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북 여성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형무소 수형 기록이 남아있는 충북의 여성 독립운동가 7명은, 심사 기준 완화에도 여전히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북 음성군 출신으로 민족 교육을 선도하다 불경과 보안법,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고강순, 충북 청주 출신으로 조선인 노동자 차별에 대항한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수감된 박소순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모두 이 같은 활동을 입증할 판결문이나 추가 자료 기록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충북 일부 여성단체가 공적 확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언은 사라지고, 기록은 더욱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정종국 광복회 법률 개정 추진위원장은 "6·25 전쟁을 거치며 수많은 기록이 소실됐다"면서 "정부의 독립유공자 심사는 신청주의 방식이라, 후손이나 관련 단체가 신청하지 않으면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굴 작업은 유족과 민간 단체의 역할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 자치단체 주도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 필요
전라북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정부와 학계, 시민단체가 연계한 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후손 증언을 확보하고, 이를 학술적으로 검증해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북을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이 같은 발굴 작업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 인력과 예산도 제한적이어서, 개별 연구자나 시민단체의 노력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여성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체계적인 조사와 예산 투입을 통해 기록화 작업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구술사와 문헌조사, 판결문, 행형기록 확인 등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 광복 80주년… 잊힌 이름을 불러야 할 시간
광복은 왔지만, 모든 독립운동가가 그날에 함께 기록된 건 아닙니다.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이름 없이, 기록 없이, 역사의 뒤편에 서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단순한 과거사 복원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에 온전한 광복의 역사를 전하는 일입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더 늦기 전에, 그들의 불꽃같던 삶과 투쟁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연관 기사]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여성 독립운동가의 그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23655
촬영기자 강사완·김장헌 / 그래픽 권세라·조은수·오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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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기자 jin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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