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장마당 20년…북한 시장 변화 어디까지?

입력 2015.03.28 (07:58) 수정 2015.03.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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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장마당이란 이름의 시장이 등장한지 20년이 흐른 지금 북한 전역에서 400개가 넘는 시장이 북한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속도를 내고 있는 북한의 시장화 움직임과 북한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평양에 문을 연 북한의 새로운 시장, 황금벌 상점의 모습이다.

이른 시간에도, 금세 손님들로 가득 찬 매장 안.

진열대마다 상품이 가득하고, 점원이 판촉활동을 하거나 물건을 포장해주는 모습이 우리의 대형마트와 유사하다.

<녹취> 최은희(능라지도국 부국장) : "당과류, 그리고 과일과 남새(채소) 그 다음에 수산물, 치약과 칫솔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품들을 다 판매하는, 다 해서 1,500여 가지가 됩니다. 매장 곳곳에는 우리의 점원 격인 ‘봉사원’이 배치돼 손님들의 편의를 돕는 등 서비스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녹취> 림분옥(북한 주민) : "남새(채소)가 가득하고 질 좋은 상품들이 많이 있고 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시장이나 상점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北 시장의 시대별 변천과 의미

북한 시장의 역사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 부족 및 배급제 붕괴와 함께 시작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자발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농민시장’이라 불리는 이 시기의 시장은 주민들이 사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물물 교환하는 초보적인 형태였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은 그 전에는 국가가 배급제라든지 국영상점을 통해서 물건을 공급하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경제가 워낙 어렵고,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 생활을 챙길 수 없는 그런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이 굶어죽는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까/ 개인이 텃밭에서 생산한 채소라든지 농작물 그 다음에 축산물 같은 것을 장마당 시장을 통해서 거래하고 여기서 수입을 얻어감으로써 주민들 스스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형태가 되면서 시장이 형성됐습니다."

시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의존도가 높아지자, 농민시장은 기존의 농토산물 판매에서 식량과 생필품 등으로 품목이 늘어난 ‘장마당’으로 확장,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 북한 당국은 마침내 시장의 존재를 공식 인정한다.

규모가 큰 장마당 격인 ‘종합시장’을 건설해, 시장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 "농민시장에서는 농사를 하고 남은 거 있잖아요. 각종 개인들의 텃밭을 통해서 그걸 물물거래하거나 아니면 이제 그 농산품에 한해 제한 됐습니다. 그런데 종합시장은 각종 공업품 그 다음에 인민생활품을 포함한 모든 인민생활품과 농수산물까지 모든 말 그대로 종합이라는 거죠. 모든 걸 다 파는 시장.."

당국이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2000년대 초반 북한의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공산품에서부터 생활 잡화, 식료품까지 판매 품목도 한층 다양해졌다.

북한 시장에서 판매되는 물품의 대다수는 중국산이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제품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남한 화장품은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품목이라고 한다.

<인터뷰> 김영순(장마당 시장 반장/2011년 탈북) : "기능이 좋고, 써보면 여성들은 다 (알잖아요). 북한에도 여성들이 몸을 가꾸려고 하는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남한 화장품을 최우선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한 여성이라면 장사를 안 해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장마당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2013년 진행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서는, 탈북자의 70% 이상이 북한에서 장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질서도 생겨났다.

<인터뷰> 김영순(장마당 시장 반장/2011년 탈북) : "각 매대마다 (시장)반장이 있습니다. 그 반장들의 역할이라는 건 매대가 겨울을 나고 여름나고 이렇게 하면 비가 새고, 겨울 지나면 또 위에다 비닐 이렇게 나무 지붕 위에다 비닐 깔아서 비가 세지 않게 했는데. 겨울나고 나면 얼어 터져서 또 비가 새거든요. 그거 관리하는 거 각 매대 반장들이 다 관리하는데, 돈 걷어서 사람들을 불러다가 다시 보수하고 하는 거, 매대 반장들이 다 하거든요. 그러니까 총적으로 책임진다는..."

또한 종합시장에서 고급전자제품 등 사치품을 공급해 큰돈을 버는 상인, 이른바 ‘돈주’가 등장하는 등 시장은 북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시장이 발달하면서 주민 통제가 점차 어려워지고, 나아가 체제의 안정까지 위협한다고 판단한 북한 당국은 시장에 대한 고삐를 조이기 시작한다.

2009년 화폐개혁 단행을 기점으로 시장을 폐쇄, 축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층민들의 생계 위기가 발발하고, 화폐개혁과 외화조치 등 시장억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결국 북한 당국은 1년여 만에 시장의 존재를 다시 인정하게 된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 "가장 크게는 이 중,하층민들... 특히 중층이죠. 이 중류층 북한 주민들이/국가정책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낮아지는 계기가 되었던 게 그 때가 가장 큰 원인이었고 그 때 정권에 대한 불만이 극대로 쌓인 것이 이 김정일 정권이 그걸 판단하고 나서/오히려 시장제도를 통해서 국가권력을 좀 더 강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시장의 발달과 북 산업의 연관관계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4월) : "농산과 축산, 수산을 3대 축으로 하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집권 4년 차-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비롯한 대외 연설에서 끊임없이 강조한 것은 바로 경제발전이다.

경제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은 현지지도에서도 드러난다.

연초부터 원산 구두공장과 화장품 공장 등 경공업 분야를 잇달아 시찰하며, 제품의 질을 높일 것을 독려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7월) :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들을 보시며 몸소 신발의 무게도 가늠해 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계절과 영도에 따라 신기에도 편리하고 보기에도 맵시 있으며, 가볍고 든든한 신발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난달 조선신보는, 김정은이 ‘외국 화장품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그대로인데 북한산은 하품만 해도 너구리 눈이 된다’며 북한 화장품의 낮은 품질을 지적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이토록 북한산 제품의 품질 제고를 독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결국은 시장이 확산이 되면 북한의 경공업 제품이 (시장으로) 많이 유통이 되고 그렇게 되면 경공업을 생산하는 공장의 생산성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에서는 시장화를 급속도로 확산을 시키고 있습니다 즉 시장화 확산을 통해서 경공업을 육성하고 또 경공업이 육성되면 자연스럽게 시장을 통해서 판매하는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에서는 시장을 확산시키고 그 다음에 경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시켜 나가려고 하는 전략을 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시장을 대하는 김정은 정권의 자세

개방과 견제 북한의 시장화는 더욱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5월에는 새로운 경제개혁조치인 ‘5.30조치’를 시행했다.

기업소나 상점의 생산권과 분배권을 개별기업과 개인에게 맡기는 이번 조치로 인해, 북한의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시장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시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지난해 말 평양에 문을 연 ‘황금벌 상점’이 그 대표적인 예다.

북한 당국은 국영상점인 황금벌 상점이 기존시장 보다 저렴하고, 새벽 6시에서 밤 12시까지 운영해 편리하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주민들의 이용을 독려하고 있다.

<녹취> 량승진(황금벌 상점 총괄) :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들을 팔아주면서 다른 상점들보다 봉사 시간(근무 시간)을 연장하고 가격을 합리적으로 정해주면서 품질을 담보해주면 인민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보고..."

기존의 시장에 쏠린 관심을 국영상점 쪽으로 유도하고, 주민들의 소비를 국가 차원에서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분석된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당국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체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다소 우려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장마당 자체를 인위적으로 통제하게 되면 북한 주민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국영상점의 성격을 띠고 있는 황금벌 상점이라는 일종의 기업형 상점을 내세움으로써, 이 상점을 통해서 값싼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시장을 일부 통제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당국은 올해 황금벌 상점을 20개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장화’가 북한의 변화에 미칠 영향 전망 / 분석

배급제가 크게 약화된 북한에서 시장은 지난 20년 간,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왔다.

하지만 급속한 빈부격차와 자본주의 사조의 유입, 팽배해진 물질만능주의는 북한 당국에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 "시장경제를 통해서 북한 사람들이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중요성,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라는 이런 의식의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을 한 거죠/무엇보다 북한에서는 이미 2000년대부터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못할게 없다 이런 물신주의적이고 화폐주의적인 그런 경향이 상당히 확산 됐죠."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시장화를 통제는 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에서도 이런 확산이 되고 있는 시장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용하는 측면으로 제도나 정책을 만들어 갈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시장은 이미 당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장 경제와의 공존은 불가피해진 것이다.

시장을 이용한 경제회복의 길목에서 집권 4년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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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장마당 20년…북한 시장 변화 어디까지?
    • 입력 2015-03-28 08:32:19
    • 수정2015-03-28 09:13:38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장마당이란 이름의 시장이 등장한지 20년이 흐른 지금 북한 전역에서 400개가 넘는 시장이 북한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속도를 내고 있는 북한의 시장화 움직임과 북한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평양에 문을 연 북한의 새로운 시장, 황금벌 상점의 모습이다.

이른 시간에도, 금세 손님들로 가득 찬 매장 안.

진열대마다 상품이 가득하고, 점원이 판촉활동을 하거나 물건을 포장해주는 모습이 우리의 대형마트와 유사하다.

<녹취> 최은희(능라지도국 부국장) : "당과류, 그리고 과일과 남새(채소) 그 다음에 수산물, 치약과 칫솔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품들을 다 판매하는, 다 해서 1,500여 가지가 됩니다. 매장 곳곳에는 우리의 점원 격인 ‘봉사원’이 배치돼 손님들의 편의를 돕는 등 서비스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녹취> 림분옥(북한 주민) : "남새(채소)가 가득하고 질 좋은 상품들이 많이 있고 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시장이나 상점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北 시장의 시대별 변천과 의미

북한 시장의 역사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 부족 및 배급제 붕괴와 함께 시작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자발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농민시장’이라 불리는 이 시기의 시장은 주민들이 사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물물 교환하는 초보적인 형태였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은 그 전에는 국가가 배급제라든지 국영상점을 통해서 물건을 공급하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경제가 워낙 어렵고,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 생활을 챙길 수 없는 그런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이 굶어죽는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까/ 개인이 텃밭에서 생산한 채소라든지 농작물 그 다음에 축산물 같은 것을 장마당 시장을 통해서 거래하고 여기서 수입을 얻어감으로써 주민들 스스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형태가 되면서 시장이 형성됐습니다."

시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의존도가 높아지자, 농민시장은 기존의 농토산물 판매에서 식량과 생필품 등으로 품목이 늘어난 ‘장마당’으로 확장,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 북한 당국은 마침내 시장의 존재를 공식 인정한다.

규모가 큰 장마당 격인 ‘종합시장’을 건설해, 시장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 "농민시장에서는 농사를 하고 남은 거 있잖아요. 각종 개인들의 텃밭을 통해서 그걸 물물거래하거나 아니면 이제 그 농산품에 한해 제한 됐습니다. 그런데 종합시장은 각종 공업품 그 다음에 인민생활품을 포함한 모든 인민생활품과 농수산물까지 모든 말 그대로 종합이라는 거죠. 모든 걸 다 파는 시장.."

당국이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2000년대 초반 북한의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공산품에서부터 생활 잡화, 식료품까지 판매 품목도 한층 다양해졌다.

북한 시장에서 판매되는 물품의 대다수는 중국산이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제품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남한 화장품은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품목이라고 한다.

<인터뷰> 김영순(장마당 시장 반장/2011년 탈북) : "기능이 좋고, 써보면 여성들은 다 (알잖아요). 북한에도 여성들이 몸을 가꾸려고 하는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남한 화장품을 최우선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한 여성이라면 장사를 안 해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장마당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2013년 진행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서는, 탈북자의 70% 이상이 북한에서 장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질서도 생겨났다.

<인터뷰> 김영순(장마당 시장 반장/2011년 탈북) : "각 매대마다 (시장)반장이 있습니다. 그 반장들의 역할이라는 건 매대가 겨울을 나고 여름나고 이렇게 하면 비가 새고, 겨울 지나면 또 위에다 비닐 이렇게 나무 지붕 위에다 비닐 깔아서 비가 세지 않게 했는데. 겨울나고 나면 얼어 터져서 또 비가 새거든요. 그거 관리하는 거 각 매대 반장들이 다 관리하는데, 돈 걷어서 사람들을 불러다가 다시 보수하고 하는 거, 매대 반장들이 다 하거든요. 그러니까 총적으로 책임진다는..."

또한 종합시장에서 고급전자제품 등 사치품을 공급해 큰돈을 버는 상인, 이른바 ‘돈주’가 등장하는 등 시장은 북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시장이 발달하면서 주민 통제가 점차 어려워지고, 나아가 체제의 안정까지 위협한다고 판단한 북한 당국은 시장에 대한 고삐를 조이기 시작한다.

2009년 화폐개혁 단행을 기점으로 시장을 폐쇄, 축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층민들의 생계 위기가 발발하고, 화폐개혁과 외화조치 등 시장억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결국 북한 당국은 1년여 만에 시장의 존재를 다시 인정하게 된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 "가장 크게는 이 중,하층민들... 특히 중층이죠. 이 중류층 북한 주민들이/국가정책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낮아지는 계기가 되었던 게 그 때가 가장 큰 원인이었고 그 때 정권에 대한 불만이 극대로 쌓인 것이 이 김정일 정권이 그걸 판단하고 나서/오히려 시장제도를 통해서 국가권력을 좀 더 강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시장의 발달과 북 산업의 연관관계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4월) : "농산과 축산, 수산을 3대 축으로 하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집권 4년 차-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비롯한 대외 연설에서 끊임없이 강조한 것은 바로 경제발전이다.

경제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은 현지지도에서도 드러난다.

연초부터 원산 구두공장과 화장품 공장 등 경공업 분야를 잇달아 시찰하며, 제품의 질을 높일 것을 독려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7월) :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들을 보시며 몸소 신발의 무게도 가늠해 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계절과 영도에 따라 신기에도 편리하고 보기에도 맵시 있으며, 가볍고 든든한 신발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난달 조선신보는, 김정은이 ‘외국 화장품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그대로인데 북한산은 하품만 해도 너구리 눈이 된다’며 북한 화장품의 낮은 품질을 지적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이토록 북한산 제품의 품질 제고를 독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결국은 시장이 확산이 되면 북한의 경공업 제품이 (시장으로) 많이 유통이 되고 그렇게 되면 경공업을 생산하는 공장의 생산성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에서는 시장화를 급속도로 확산을 시키고 있습니다 즉 시장화 확산을 통해서 경공업을 육성하고 또 경공업이 육성되면 자연스럽게 시장을 통해서 판매하는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에서는 시장을 확산시키고 그 다음에 경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시켜 나가려고 하는 전략을 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시장을 대하는 김정은 정권의 자세

개방과 견제 북한의 시장화는 더욱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5월에는 새로운 경제개혁조치인 ‘5.30조치’를 시행했다.

기업소나 상점의 생산권과 분배권을 개별기업과 개인에게 맡기는 이번 조치로 인해, 북한의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시장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시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지난해 말 평양에 문을 연 ‘황금벌 상점’이 그 대표적인 예다.

북한 당국은 국영상점인 황금벌 상점이 기존시장 보다 저렴하고, 새벽 6시에서 밤 12시까지 운영해 편리하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주민들의 이용을 독려하고 있다.

<녹취> 량승진(황금벌 상점 총괄) :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들을 팔아주면서 다른 상점들보다 봉사 시간(근무 시간)을 연장하고 가격을 합리적으로 정해주면서 품질을 담보해주면 인민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보고..."

기존의 시장에 쏠린 관심을 국영상점 쪽으로 유도하고, 주민들의 소비를 국가 차원에서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분석된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당국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체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다소 우려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장마당 자체를 인위적으로 통제하게 되면 북한 주민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국영상점의 성격을 띠고 있는 황금벌 상점이라는 일종의 기업형 상점을 내세움으로써, 이 상점을 통해서 값싼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시장을 일부 통제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당국은 올해 황금벌 상점을 20개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장화’가 북한의 변화에 미칠 영향 전망 / 분석

배급제가 크게 약화된 북한에서 시장은 지난 20년 간,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왔다.

하지만 급속한 빈부격차와 자본주의 사조의 유입, 팽배해진 물질만능주의는 북한 당국에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 "시장경제를 통해서 북한 사람들이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중요성,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라는 이런 의식의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을 한 거죠/무엇보다 북한에서는 이미 2000년대부터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못할게 없다 이런 물신주의적이고 화폐주의적인 그런 경향이 상당히 확산 됐죠."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시장화를 통제는 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에서도 이런 확산이 되고 있는 시장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용하는 측면으로 제도나 정책을 만들어 갈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시장은 이미 당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장 경제와의 공존은 불가피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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