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모계사회 ‘여인국’ …“아버지 묻는 것은 금기”

입력 2015.11.28 (08:33) 수정 2015.11.28 (22:3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드넓은 중국, 민족도 참 다양합니다.

중국 남부의 윈난성은 이렇게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그래서일까요, 25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수 민족 가운데 중국에서 마지막 남은 모계 사회가 있습니다.

가장이 여성인 말하자면 '여인국'인데요,

안타깝게도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모계 사회 전통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김명주 특파원이 '여인국'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해발 3천 미터를 넘나드는 중국 윈난성 고산 지대.

굽이굽이 산길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쓰촨성 접경 근처까지 다다르자 여의도 면적의 20배인 루구호가 장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맑디 맑은 호수는 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아내고...

산들은 구름에 휘감겨 신비로운 풍광을 자아냅니다.

호숫가엔 소수 민족 '모수오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이 있습니다.

모계사회 전통 때문에 중국에서 '여인국'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아마단스마 할머니는 3대가 함께 사는 모계 대가정의 제일 큰 어른 '주모'입니다.

여든 살이 넘은 고령에도 가축을 돌보는 등 집안 일을 직접 챙깁니다.

9명 대가족을 이끌고 평생을 살아오면서 얼굴 가득 주름만 남았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가족들과 차를 나눠 마실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녹취> 아마단스마(모계 대가정 주모) : "집안의 모든 살림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어요. 경제적인 면도 그렇고 자녀들 문제나 음식 장만 이외에 많은 일들을 챙겨야 됩니다."

이 가정은 모수오족 전통 혼인 풍습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해 한 집에 살지 않고 그냥 애인 관계만 유지하는 '주혼'입니다.

가장은 여성인데, 자손들은 모두 어머니의 성을 따릅니다.

<녹취> 다스마(주모 딸) : "아기가 태어나면 모계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아닌 외삼촌이 의무적으로 조카를 교육시키고 부양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주로 집안 일을 담당합니다."

모수오족 전통에 따라 아버지는 함께 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묻는 것조차 모수오족 모계 사회에선 금기시 됩니다.

같은 형제 자매들끼리 아버지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계사회 전통이 남아있는 민족은 모수오족이 유일합니다.

현지 지방정부는 이런 모계 가정들을 중점보호대상으로 지정해 해마다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모수오족 청년이 애인 집 담장을 타고 올라갑니다.

창문 밖에 모자를 걸어놓고 애인 방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남성들에게 방 안에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징표인 셈입니다.

남성은 채 날이 밝기 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혼'이라는 말은 애인 집에 드나드려면 이처럼 잰걸음을 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주혼'을 재연한 모수오족의 이 전통 공연은 여인국 관광의 필수 코스입니다.

<녹취> 뚜리(공연 관람객) : "이 곳은 유일한 모계사회이고 중국 정부도 간섭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전통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모계 사회의 전통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루구호 주변은 고립된 지형 때문에 2천 년 가까이 모계 사회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로 여건이 좋아지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루구호를 찾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몰려오자 모수오족의 생활 모습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을은 10년 전부터 관광지로 집중 개발되면서 지금은 객잔이라 불리는 숙박업소의 90% 이상을 외지인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수오족 전통 문화와 관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한 달 숙박객이 천 명이 넘는다는 호숫가 객잔에 들어가 봤습니다.

객잔 주인인 28살 아마루뤄 씨는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모숴족 청년입니다.

2년 전 개업 때부터 타이완 투자자와 합작해 객잔을 공동 운영하고 있습니다.

돈을 좀 더 벌고나면 지금 애인과 주혼이 아닌 결혼을 할 계획입니다.

주혼을 하면, 혼인증을 발급받기도 자식을 호적에 올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취> 아마루뤄(모수오족 객잔 주인) : "요즘은 모수오족의 절반이 주혼을 택하고 나머지 절반은 결혼을 하는 추세입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직장 생활을 할수록 결혼하기를 원하고, 외지에 나가지 않고 교육 수준이 낮은 경우 주혼을 선택합니다."

모수오족 청춘 남녀의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는 날..

마당 한 가운데 흥겨운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사람 모두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입니다.

전통 혼인 풍습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신랑 신부는 6년 전부터 연애를 시작해 양가 부모의 결혼 승낙을 받았습니다.

<녹취> 토딩 (모수오족 신랑) : "주혼이 전통 풍습이었지만, 지금 젊은 모수오족들은 생각이 개방적이라서 결혼을 선호합니다. 결혼증명서가 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모수오족 중장년층에서도 전통 풍습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50대 모수오족 부부는 30여 년 전부터 주혼을 이어오다가 10년 전부턴 부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경제권도 남편이 갖고 있습니다.

아내는 방직 일을 하고,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함께 책임집니다.

<녹취> 아치두즈마(가정주부/주혼 후 동거) : "우리 집은 누가 권력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서로 잘 하는 일을 책임집니다.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오래되고 낙후된 것들을 꼭 보존해 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광 수요가 급증하면서 루구호 인근엔 최근 공항까지 개통됐습니다.

문명 사회의 변화 압력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2천 년 가까이 지켜 온 모계사회 전통 풍습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닌 지,,

우려의 목소리가 여인국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유일한 모계사회 ‘여인국’ …“아버지 묻는 것은 금기”
    • 입력 2015-11-28 09:39:19
    • 수정2015-11-28 22:37:2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드넓은 중국, 민족도 참 다양합니다.

중국 남부의 윈난성은 이렇게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그래서일까요, 25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수 민족 가운데 중국에서 마지막 남은 모계 사회가 있습니다.

가장이 여성인 말하자면 '여인국'인데요,

안타깝게도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모계 사회 전통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김명주 특파원이 '여인국'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해발 3천 미터를 넘나드는 중국 윈난성 고산 지대.

굽이굽이 산길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쓰촨성 접경 근처까지 다다르자 여의도 면적의 20배인 루구호가 장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맑디 맑은 호수는 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아내고...

산들은 구름에 휘감겨 신비로운 풍광을 자아냅니다.

호숫가엔 소수 민족 '모수오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이 있습니다.

모계사회 전통 때문에 중국에서 '여인국'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아마단스마 할머니는 3대가 함께 사는 모계 대가정의 제일 큰 어른 '주모'입니다.

여든 살이 넘은 고령에도 가축을 돌보는 등 집안 일을 직접 챙깁니다.

9명 대가족을 이끌고 평생을 살아오면서 얼굴 가득 주름만 남았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가족들과 차를 나눠 마실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녹취> 아마단스마(모계 대가정 주모) : "집안의 모든 살림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어요. 경제적인 면도 그렇고 자녀들 문제나 음식 장만 이외에 많은 일들을 챙겨야 됩니다."

이 가정은 모수오족 전통 혼인 풍습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해 한 집에 살지 않고 그냥 애인 관계만 유지하는 '주혼'입니다.

가장은 여성인데, 자손들은 모두 어머니의 성을 따릅니다.

<녹취> 다스마(주모 딸) : "아기가 태어나면 모계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아닌 외삼촌이 의무적으로 조카를 교육시키고 부양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주로 집안 일을 담당합니다."

모수오족 전통에 따라 아버지는 함께 살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묻는 것조차 모수오족 모계 사회에선 금기시 됩니다.

같은 형제 자매들끼리 아버지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계사회 전통이 남아있는 민족은 모수오족이 유일합니다.

현지 지방정부는 이런 모계 가정들을 중점보호대상으로 지정해 해마다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모수오족 청년이 애인 집 담장을 타고 올라갑니다.

창문 밖에 모자를 걸어놓고 애인 방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남성들에게 방 안에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징표인 셈입니다.

남성은 채 날이 밝기 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혼'이라는 말은 애인 집에 드나드려면 이처럼 잰걸음을 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주혼'을 재연한 모수오족의 이 전통 공연은 여인국 관광의 필수 코스입니다.

<녹취> 뚜리(공연 관람객) : "이 곳은 유일한 모계사회이고 중국 정부도 간섭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전통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모계 사회의 전통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루구호 주변은 고립된 지형 때문에 2천 년 가까이 모계 사회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로 여건이 좋아지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루구호를 찾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몰려오자 모수오족의 생활 모습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을은 10년 전부터 관광지로 집중 개발되면서 지금은 객잔이라 불리는 숙박업소의 90% 이상을 외지인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수오족 전통 문화와 관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한 달 숙박객이 천 명이 넘는다는 호숫가 객잔에 들어가 봤습니다.

객잔 주인인 28살 아마루뤄 씨는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모숴족 청년입니다.

2년 전 개업 때부터 타이완 투자자와 합작해 객잔을 공동 운영하고 있습니다.

돈을 좀 더 벌고나면 지금 애인과 주혼이 아닌 결혼을 할 계획입니다.

주혼을 하면, 혼인증을 발급받기도 자식을 호적에 올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취> 아마루뤄(모수오족 객잔 주인) : "요즘은 모수오족의 절반이 주혼을 택하고 나머지 절반은 결혼을 하는 추세입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직장 생활을 할수록 결혼하기를 원하고, 외지에 나가지 않고 교육 수준이 낮은 경우 주혼을 선택합니다."

모수오족 청춘 남녀의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는 날..

마당 한 가운데 흥겨운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사람 모두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입니다.

전통 혼인 풍습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신랑 신부는 6년 전부터 연애를 시작해 양가 부모의 결혼 승낙을 받았습니다.

<녹취> 토딩 (모수오족 신랑) : "주혼이 전통 풍습이었지만, 지금 젊은 모수오족들은 생각이 개방적이라서 결혼을 선호합니다. 결혼증명서가 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모수오족 중장년층에서도 전통 풍습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50대 모수오족 부부는 30여 년 전부터 주혼을 이어오다가 10년 전부턴 부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경제권도 남편이 갖고 있습니다.

아내는 방직 일을 하고,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함께 책임집니다.

<녹취> 아치두즈마(가정주부/주혼 후 동거) : "우리 집은 누가 권력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서로 잘 하는 일을 책임집니다.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오래되고 낙후된 것들을 꼭 보존해 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광 수요가 급증하면서 루구호 인근엔 최근 공항까지 개통됐습니다.

문명 사회의 변화 압력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2천 년 가까이 지켜 온 모계사회 전통 풍습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닌 지,,

우려의 목소리가 여인국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