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혁의 슬픈 금메달과 구조화된 폭력

입력 2016.01.04 (15:50) 수정 2016.01.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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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혁사재혁

▲ 2008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사재혁

베이징 올림픽 역도 영웅 사재혁이 후배를 폭행했다. 그것도 한 번 폭행했던 후배를 술집으로 불러내 다시 때렸다고 한다. 광대뼈 함몰로 전치 6주 진단이 나올 만큼 심각한 폭행이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범죄 행위다. 자세한 사연은 향후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깡패처럼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용납될 수 없다.


▲사재혁에게 폭행당한 후배 선수가 병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구조적 폭력, 이번에도 눈 감나?'

사재혁 폭행 파문에 대한 시민들의 첫번째 반응은 경악과 분노다. 강력한 처벌을 동반한 대안을 주문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스포츠계 폭행사건에 대한 실망감도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스포츠계 인사들의 구차한 변명을 접하면서 '이래서 한국 스포츠는 안 돼"라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좌절감이 누적되면 사람들은 눈을 감아 버리게 되고 스포츠계의 폭행은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최종삼 태릉 선수촌장은 선수들의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젊은 혈기로 벌어진 사소한 폭행'이라든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라는 등의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다. 스포츠계와 일반 시민 사회의 현실 인식은 여전히 큰 간극을 보이고 있다.


▲ 최종삼 태릉 선수촌장 인터뷰

승리를 위해서는 폭력도 용인해야 했다. 지도자는 선수를, 선배는 후배를 때려서라도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자리를 잡았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 병역 면제를 위해서,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과 평생 연금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생존할 수 있다는 '승리 지상주의'라는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폭력은 단순 폭력을 넘어 스포츠 선수의 인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악화됐다. 특히 지난 2008년 스포츠계의 성폭력 파문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직도 근본적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사재혁 파문은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치부를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1]

근본적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반복되는 구조화된 폭력, 사재혁의 금메달이 슬픈 이유다. 사재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어깨뼈가 탈골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바벨을 놓지 않는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선수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비웃듯 현역으로 복귀해 리우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역도밖에 모르고 역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사재혁은 그 자신이 성장해 왔던 폭력의 구조 속에서 이제 폭력의 가해자로 전락해 버렸다. 올림픽 출전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중징계도 피할 수 없다.


▲사재혁 런던 올림픽 부상 투혼

'사재혁의 슬픈 금메달, 스포츠 시스템 개혁 계기 삼아야'

기자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현장에서 '슬픈 금메달'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금메달연금과 대학진학특혜 그리고 병역특례를 바탕으로 길러진 올림픽 전사들의 은퇴 후 삶을 조명해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최고 영웅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조차도 오직 경기력만을 강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은퇴 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도자 자리를 얻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반 사회로 돌아가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 시사기획 쌈 [슬픈 금메달]

한국 스포츠는 이제 올림픽 영웅 사재혁의 슬픈 금메달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번에도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눈을 감아 버린다면, 당장 눈 앞에 다가온 리우 올림픽 성적을 위해 사재혁 파문을 조용히 덮어 버리려 한다면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없다.

[연관 기사]
☞ 폐쇄적 집단문화가 체육계 폭력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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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재혁의 슬픈 금메달과 구조화된 폭력
    • 입력 2016-01-04 15:50:32
    • 수정2016-01-06 17:34:48
    취재K
 사재혁 ▲ 2008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사재혁 베이징 올림픽 역도 영웅 사재혁이 후배를 폭행했다. 그것도 한 번 폭행했던 후배를 술집으로 불러내 다시 때렸다고 한다. 광대뼈 함몰로 전치 6주 진단이 나올 만큼 심각한 폭행이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범죄 행위다. 자세한 사연은 향후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깡패처럼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용납될 수 없다. ▲사재혁에게 폭행당한 후배 선수가 병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구조적 폭력, 이번에도 눈 감나?' 사재혁 폭행 파문에 대한 시민들의 첫번째 반응은 경악과 분노다. 강력한 처벌을 동반한 대안을 주문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스포츠계 폭행사건에 대한 실망감도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스포츠계 인사들의 구차한 변명을 접하면서 '이래서 한국 스포츠는 안 돼"라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좌절감이 누적되면 사람들은 눈을 감아 버리게 되고 스포츠계의 폭행은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최종삼 태릉 선수촌장은 선수들의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젊은 혈기로 벌어진 사소한 폭행'이라든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라는 등의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다. 스포츠계와 일반 시민 사회의 현실 인식은 여전히 큰 간극을 보이고 있다. ▲ 최종삼 태릉 선수촌장 인터뷰 승리를 위해서는 폭력도 용인해야 했다. 지도자는 선수를, 선배는 후배를 때려서라도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자리를 잡았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 병역 면제를 위해서,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과 평생 연금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생존할 수 있다는 '승리 지상주의'라는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폭력은 단순 폭력을 넘어 스포츠 선수의 인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악화됐다. 특히 지난 2008년 스포츠계의 성폭력 파문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직도 근본적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사재혁 파문은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치부를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시사기획 쌈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1] 근본적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반복되는 구조화된 폭력, 사재혁의 금메달이 슬픈 이유다. 사재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어깨뼈가 탈골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바벨을 놓지 않는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선수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비웃듯 현역으로 복귀해 리우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역도밖에 모르고 역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사재혁은 그 자신이 성장해 왔던 폭력의 구조 속에서 이제 폭력의 가해자로 전락해 버렸다. 올림픽 출전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중징계도 피할 수 없다. ▲사재혁 런던 올림픽 부상 투혼 '사재혁의 슬픈 금메달, 스포츠 시스템 개혁 계기 삼아야' 기자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현장에서 '슬픈 금메달'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금메달연금과 대학진학특혜 그리고 병역특례를 바탕으로 길러진 올림픽 전사들의 은퇴 후 삶을 조명해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최고 영웅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조차도 오직 경기력만을 강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은퇴 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도자 자리를 얻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반 사회로 돌아가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 시사기획 쌈 [슬픈 금메달] 한국 스포츠는 이제 올림픽 영웅 사재혁의 슬픈 금메달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번에도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눈을 감아 버린다면, 당장 눈 앞에 다가온 리우 올림픽 성적을 위해 사재혁 파문을 조용히 덮어 버리려 한다면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없다. [연관 기사] ☞ 폐쇄적 집단문화가 체육계 폭력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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