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놓고 동상이몽

입력 2016.02.22 (18:37) 수정 2016.02.2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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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지난해 말 평화협정과 관련한 비공식적인 의견 교환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온라인판 기사에서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 며칠 전 북한과 평화협정 논의에 은밀하게 합의했다"면서, "하지만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조치를 논의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이를 거부한 뒤 핵실험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과 논의가 있었음은 인정했지만, 내용은 다르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평화협정 논의는 북한이 먼저 제안했다"면서 "미국은 제안을 검토한 뒤 비핵화가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고 북한은 우리(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북미 간 논의는 직접 대화가 아닌 비공식 경로인 뉴욕채널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된 '평화협정' 카드...논의는 결렬

커비 대변인은 "북한의 제안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비핵화를 강조해 온 미국 정부의 오랜 입장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평화협정'에 대해 북한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서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의 평화협정 언급은 몇 달 사이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당창건일을 앞두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미국에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직후인 10월 18일에도 외무성 성명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미국이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라면서 "미국이 평화협정문제를 외면하거나 조건부를 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일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0일 열린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성김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이 비핵화에 맞춰지지 않는 한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달 여 전인 9월 중순, 김 대표 스스로가 "북한과 진정으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 평양이든 아니든 장소는 중요치 않다"며 접촉 의사를 내비친 뒤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선(先)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평화협정'이라는 카드까지 나왔지만 핵보유를 헌법에까지 명시한 북한과 '선(先) 비핵화'의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북미 간 논의는 결렬됐다. 북한은 올 1월 1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다시 한 번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한 뒤, 닷새 만에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은 4차 핵실험 당일을 포함해 이후 일주일 동안 매체를 통해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평화협정' 향한 동상이몽

전문가들은 북미 간 논의 뒤 곧바로 4차 핵실험이 실시됐다는 점에서 '평화협정' 논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가 당분간 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도 "미국 측의 평화협정과 관련한 기존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북미 간 논의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6자회담 당사국들이 양자나 다자 차원에서 벌이려 했던 '탐색적 대화'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닷새 전 나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평화협정'에 관한 언급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때문이다. 왕 외교부장은 지난 17일 베이징에서 열린 호주 외교장관과의 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협상 방식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는 조속히 대화 복귀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미국이 동참을 요구하는 고강도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박이라는 분석과, 중국이 그간 주장해온 '대화' 중심의 해결방안을 시간을 두고 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온다.



정부, "평화협정도 우리가 주체 돼야"

정부는 북미 간의 평화협정 논의와 관련해 북한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이미 밝힌 대로 비핵화 논의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평화협정도 미국 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한국이 주도적으로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평화협정이란?

1953년 7월27일, 조인식장인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1953년 7월27일, 조인식장인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만 3년 1개월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북한과 유엔군, 중국이 참여한 가운데 정전 협정이 체결됐다. 1951년 휴전 논의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남한은 북진 통일을 주장해 정전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시작된 휴전 상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북미 간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1974년부터다. 하지만 한국, 미국은 북한이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아왔다. 지난 2005년 북한이 핵 포기를 약속하면서 체결된 9.19 공동성명은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규정해 평화체제 논의를 언급하고 있다. 이후에도 북한은 평화 협정을 종종 주장해왔지만, 한국과 미국은 평화체제 논의는 6자회담 등 비핵화 논의조차 중단된 상황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연관기사] ☞ [앵커&리포트] ‘평화협정’ 체결 주장…北 숨은 속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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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협정’ 놓고 동상이몽
    • 입력 2016-02-22 18:37:09
    • 수정2016-02-22 22:59:58
    취재K
북한과 미국이 지난해 말 평화협정과 관련한 비공식적인 의견 교환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온라인판 기사에서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 며칠 전 북한과 평화협정 논의에 은밀하게 합의했다"면서, "하지만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조치를 논의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이를 거부한 뒤 핵실험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과 논의가 있었음은 인정했지만, 내용은 다르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평화협정 논의는 북한이 먼저 제안했다"면서 "미국은 제안을 검토한 뒤 비핵화가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고 북한은 우리(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북미 간 논의는 직접 대화가 아닌 비공식 경로인 뉴욕채널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된 '평화협정' 카드...논의는 결렬

커비 대변인은 "북한의 제안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비핵화를 강조해 온 미국 정부의 오랜 입장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평화협정'에 대해 북한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서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의 평화협정 언급은 몇 달 사이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당창건일을 앞두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미국에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직후인 10월 18일에도 외무성 성명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미국이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라면서 "미국이 평화협정문제를 외면하거나 조건부를 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일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0일 열린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성김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이 비핵화에 맞춰지지 않는 한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달 여 전인 9월 중순, 김 대표 스스로가 "북한과 진정으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 평양이든 아니든 장소는 중요치 않다"며 접촉 의사를 내비친 뒤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선(先)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평화협정'이라는 카드까지 나왔지만 핵보유를 헌법에까지 명시한 북한과 '선(先) 비핵화'의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북미 간 논의는 결렬됐다. 북한은 올 1월 1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다시 한 번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한 뒤, 닷새 만에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은 4차 핵실험 당일을 포함해 이후 일주일 동안 매체를 통해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평화협정' 향한 동상이몽

전문가들은 북미 간 논의 뒤 곧바로 4차 핵실험이 실시됐다는 점에서 '평화협정' 논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가 당분간 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도 "미국 측의 평화협정과 관련한 기존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북미 간 논의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6자회담 당사국들이 양자나 다자 차원에서 벌이려 했던 '탐색적 대화'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닷새 전 나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평화협정'에 관한 언급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때문이다. 왕 외교부장은 지난 17일 베이징에서 열린 호주 외교장관과의 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협상 방식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는 조속히 대화 복귀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미국이 동참을 요구하는 고강도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박이라는 분석과, 중국이 그간 주장해온 '대화' 중심의 해결방안을 시간을 두고 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나온다.



정부, "평화협정도 우리가 주체 돼야"

정부는 북미 간의 평화협정 논의와 관련해 북한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이미 밝힌 대로 비핵화 논의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평화협정도 미국 만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한국이 주도적으로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평화협정이란?

1953년 7월27일, 조인식장인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만 3년 1개월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북한과 유엔군, 중국이 참여한 가운데 정전 협정이 체결됐다. 1951년 휴전 논의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남한은 북진 통일을 주장해 정전 협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시작된 휴전 상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북미 간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1974년부터다. 하지만 한국, 미국은 북한이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아왔다. 지난 2005년 북한이 핵 포기를 약속하면서 체결된 9.19 공동성명은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규정해 평화체제 논의를 언급하고 있다. 이후에도 북한은 평화 협정을 종종 주장해왔지만, 한국과 미국은 평화체제 논의는 6자회담 등 비핵화 논의조차 중단된 상황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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