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야 조심해”…전깃줄에 표식 설치

입력 2016.03.10 (12:03) 수정 2016.03.10 (23: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두루미 충돌 방지용 표식이 전깃줄에 설치됐다. 한국전력공사 강원지사는 어제(9일) 철원 양지리 민간인통제구역 내 전봇대 고압선에 철새 충돌방지용 표식으로 전선 '방호관'을 설치했다. 한전은 이날 전봇대 5경간(1경간:전봇대 두 개 사이) 250m 구간에 표식 50개를 설치했다. 국내 전깃줄에 철새 충돌 방지용 표식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깃줄에 설치된 철새 충돌 방지 표식. 전선 훼손과 감전 방지용인 '방호관'을 충돌 방지 표식으로 응용했다.전깃줄에 설치된 철새 충돌 방지 표식. 전선 훼손과 감전 방지용인 '방호관'을 충돌 방지 표식으로 응용했다.


충돌 방지 표식인 '방호관'은 식별이 쉬운 노란색에 절연물질인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졌다. 건설 현장 등에서 전선의 훼손과 감전 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방호관을 철새 충돌 방지용으로 응용한 것이다. 한전은 일본 홋카이도에 설치된 전깃줄 표식 장치도 전깃줄 보호용인 방호관이라고 밝혔다.

한전 직원이 표식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전봇대 1경간에 평균 43만 원이 소요된다.한전 직원이 표식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전봇대 1경간에 평균 43만 원이 소요된다.


한전은 방호관 자재와 설치 비용이 전봇대 1경 구간에 평균 43만 원가량으로 재정적 부담이 있지만, 두루미 보호를 위해 순차적으로 설치 구간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민간인 통제구역 내 전봇대 100경간, 5km 구간에 먼저 설치한 뒤 차례로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전의 이번 표식 설치는 최근 두루미의 전깃줄 충돌 사고가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유승화 국립생태원 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철원 지역에서 보고된 전체 두루미류 사고 56마리 가운데 16마리가 전깃줄 충돌이었다. 전체 사고의 29%로 사고 유형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연관 기사]☞ 전깃줄에 걸리고 독극물에 죽고…철원 두루미의 비극

두루미는 키가 140cm, 몸무게 10kg에 이르는 대형 조류다. 덩치가 큰 만큼 날아오를 때와 내릴 때도 다른 조류에 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착륙할 때 글라이더처럼 활강해서 앉는 과정에서 날개나 다리가 전깃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 새들이 부모 뒤를 따라 내려오다가 전깃줄을 보지 못하고 충돌하게 된다. 안개가 낀 날이나 어두울 때는 위험성이 더욱 커진다. 전 깃줄에 부딪힐 경우 날개나 다리의 근육이 찢기거나 뼈가 부러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일본 홋카이도의 경우 전깃줄 표식을 설치한 뒤 두루미 개체 수가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유승화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두루미류 국내 최대 월동지인 철원의 경우도 전깃줄 표식 장치 설치가 개체 수 증가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표식 설치는 철원 지역의 두루미 보호 노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다른 보호 대책을 견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점도 많다. 두루미에게 가장 위험한 '가공지선'에는 표식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봇대 사이에는 통상 세 가닥의 줄이 있다. 좌우 양옆의 두 가닥은 전기가 흐르는 전선이고 가운데 위쪽의 철선은 낙뢰 피해를 막기 위한 '가공지선'이다. '가공지선'은 전기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절연 피복이 없어 전선보다 더 가늘다. 또 전선으로부터 위쪽으로 75cm가량 올라가 설치돼 있다. 결국 '가공지선'은 전선과 비교하면 가늘어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더 위에 있어 두루미에게 훨씬 더 위협적이다.

전깃줄에 부딪혀 다리가 부러진 두루미 유조. 목발을 달고 있다.전깃줄에 부딪혀 다리가 부러진 두루미 유조. 목발을 달고 있다.


한전은 '가공지선'의 경우 선을 지탱하는 애자가 방호관의 하중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설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방호관을 설치할 경우 자칫 '가공지선'이 끊어져 아래쪽 전선이 훼손되거나 인명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의 경우는 '가공지선'이 전봇대에 설치돼 있지 않아 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전은 전력연구원 전문가들의 기술적 검토를 거쳐 '가공지선'에 적합한 표식 장치를 개발해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표식 설치가 끝난 전깃줄표식 설치가 끝난 전깃줄


순천시는 지난 2009년 4월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핵심 서식지인 대대들의 전봇대 280여 개를 제거했다. 철원에서는 7년 뒤인 지금,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한전이 나서서 전깃줄 표식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연관 기사]☞ 전봇대 뽑고 먹이 주고…순천만의 정성

두루미는 전 세계에 3천 마리 가량만 남은 멸종위기종이다. 철원은 국내 두루미의 80%가 머무는 최대 월동지이다.두루미는 전 세계에 3천 마리 가량만 남은 멸종위기종이다. 철원은 국내 두루미의 80%가 머무는 최대 월동지이다.


철원은 두루미의 국내 최대 서식지이자 마지막 피난처이기도 하다. 김포와 파주의 두루미류 서식지는 각종 개발로 두루미 월동 개체 수가 격감했다. 같은 민통선 지역인 연천도 지난해 군남댐에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개체 수가 기존의 절반 수준인 200여 마리로 격감했다. 표식 설치를 계기로 철원군과 주민 그리고 유관단체의 두루미 보호 정책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관 기사]

☞ 두루미 보호한다더니…수자원공사의 거짓

☞ 철새와 철원…불안한 공존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두루미야 조심해”…전깃줄에 표식 설치
    • 입력 2016-03-10 12:03:47
    • 수정2016-03-10 23:04:34
    취재K
국내에 처음으로 두루미 충돌 방지용 표식이 전깃줄에 설치됐다. 한국전력공사 강원지사는 어제(9일) 철원 양지리 민간인통제구역 내 전봇대 고압선에 철새 충돌방지용 표식으로 전선 '방호관'을 설치했다. 한전은 이날 전봇대 5경간(1경간:전봇대 두 개 사이) 250m 구간에 표식 50개를 설치했다. 국내 전깃줄에 철새 충돌 방지용 표식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깃줄에 설치된 철새 충돌 방지 표식. 전선 훼손과 감전 방지용인 '방호관'을 충돌 방지 표식으로 응용했다.
충돌 방지 표식인 '방호관'은 식별이 쉬운 노란색에 절연물질인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졌다. 건설 현장 등에서 전선의 훼손과 감전 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방호관을 철새 충돌 방지용으로 응용한 것이다. 한전은 일본 홋카이도에 설치된 전깃줄 표식 장치도 전깃줄 보호용인 방호관이라고 밝혔다.
한전 직원이 표식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전봇대 1경간에 평균 43만 원이 소요된다.
한전은 방호관 자재와 설치 비용이 전봇대 1경 구간에 평균 43만 원가량으로 재정적 부담이 있지만, 두루미 보호를 위해 순차적으로 설치 구간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민간인 통제구역 내 전봇대 100경간, 5km 구간에 먼저 설치한 뒤 차례로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전의 이번 표식 설치는 최근 두루미의 전깃줄 충돌 사고가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유승화 국립생태원 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철원 지역에서 보고된 전체 두루미류 사고 56마리 가운데 16마리가 전깃줄 충돌이었다. 전체 사고의 29%로 사고 유형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연관 기사]☞ 전깃줄에 걸리고 독극물에 죽고…철원 두루미의 비극 두루미는 키가 140cm, 몸무게 10kg에 이르는 대형 조류다. 덩치가 큰 만큼 날아오를 때와 내릴 때도 다른 조류에 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착륙할 때 글라이더처럼 활강해서 앉는 과정에서 날개나 다리가 전깃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 새들이 부모 뒤를 따라 내려오다가 전깃줄을 보지 못하고 충돌하게 된다. 안개가 낀 날이나 어두울 때는 위험성이 더욱 커진다. 전 깃줄에 부딪힐 경우 날개나 다리의 근육이 찢기거나 뼈가 부러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일본 홋카이도의 경우 전깃줄 표식을 설치한 뒤 두루미 개체 수가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유승화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두루미류 국내 최대 월동지인 철원의 경우도 전깃줄 표식 장치 설치가 개체 수 증가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표식 설치는 철원 지역의 두루미 보호 노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다른 보호 대책을 견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점도 많다. 두루미에게 가장 위험한 '가공지선'에는 표식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봇대 사이에는 통상 세 가닥의 줄이 있다. 좌우 양옆의 두 가닥은 전기가 흐르는 전선이고 가운데 위쪽의 철선은 낙뢰 피해를 막기 위한 '가공지선'이다. '가공지선'은 전기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절연 피복이 없어 전선보다 더 가늘다. 또 전선으로부터 위쪽으로 75cm가량 올라가 설치돼 있다. 결국 '가공지선'은 전선과 비교하면 가늘어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더 위에 있어 두루미에게 훨씬 더 위협적이다.
전깃줄에 부딪혀 다리가 부러진 두루미 유조. 목발을 달고 있다.
한전은 '가공지선'의 경우 선을 지탱하는 애자가 방호관의 하중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설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방호관을 설치할 경우 자칫 '가공지선'이 끊어져 아래쪽 전선이 훼손되거나 인명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의 경우는 '가공지선'이 전봇대에 설치돼 있지 않아 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전은 전력연구원 전문가들의 기술적 검토를 거쳐 '가공지선'에 적합한 표식 장치를 개발해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표식 설치가 끝난 전깃줄
순천시는 지난 2009년 4월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핵심 서식지인 대대들의 전봇대 280여 개를 제거했다. 철원에서는 7년 뒤인 지금,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한전이 나서서 전깃줄 표식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연관 기사]☞ 전봇대 뽑고 먹이 주고…순천만의 정성
두루미는 전 세계에 3천 마리 가량만 남은 멸종위기종이다. 철원은 국내 두루미의 80%가 머무는 최대 월동지이다.
철원은 두루미의 국내 최대 서식지이자 마지막 피난처이기도 하다. 김포와 파주의 두루미류 서식지는 각종 개발로 두루미 월동 개체 수가 격감했다. 같은 민통선 지역인 연천도 지난해 군남댐에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개체 수가 기존의 절반 수준인 200여 마리로 격감했다. 표식 설치를 계기로 철원군과 주민 그리고 유관단체의 두루미 보호 정책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관 기사] ☞ 두루미 보호한다더니…수자원공사의 거짓 ☞ 철새와 철원…불안한 공존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