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훈민정음 국보1호 교체?…‘공’은 국회로

입력 2016.05.31 (17:12) 수정 2016.05.3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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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교체하자는 논의가 국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주무부처인 문화재청 등에 교체를 요구했던 시민단체들이 이번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통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했기 때문이다.

◆“국보1호(숭례문) 국보70호(훈민정음), 서로 바꾸자”

문화재제자리찾기, 우리문화지킴이, 국어문화실천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노회찬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을 위한 입법 청원을 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보1호인 숭례문을 훈민정음(국보70호)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이다.

노 의원은 회견에서 "한글 창제의 의미와 해설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나라 국보 1호로 손색없는 문화유산"이라며 "1996년 이후 20년째 진행되고 있는 국보 1호 재지정 논의를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 가져와야 한다"고 전했다.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국보1호 변경에 관한 논란은 1996년 이후 20년째 지속되고있다"며 "폭넓은 여론 수렴과 의견 청취를 통해서 (변경이) 이뤄질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년 전부터 되풀이된 국보1호 교체 주장

혜문 대표의 말처럼 국보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은 지난 1996년부터 되풀이됐던 주장이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문화재 지정번호제가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국보1호 교체가 추진됐다. 지난 2005년에는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도 국보1호 교체를 추진했지만, 문화재위원회 등의 반대로 교체가 무산된 바 있다.

[연관 기사]
☞ 국보 1호 바뀌나? (2005.11.8)
☞ “국보 1호 변경 안 한다” (2005.11.14)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훈민정음 국보1호 지정을 위한 10만 서명운동을 진행해 지난 1월 문화재청에 국보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교체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왜 숭례문은 안되고 훈민정음은 될까

숭례문은 애초에 문화재 중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로 '국보1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 지난 1933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을 발표하면서 일괄적으로 우리 문화재에 지정번호를 부여했다. 지금처럼 국보, 보물로 구분하지 않고 보물로만 지정했는데 당시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보물1호가 숭례문(당시 남대문)이었다.

해방 후 1955년 정부는 일제 강점기 지정된 보물을 모두 국보로 승격시켰다. 1962년에는 문화재보호법을 만들어 국보와 보물을 지정했는데, 명확한 기준 없이 원래 국보1호였던 숭례문을 그대로 국보1호로 지정했다.





숭례문은 지난 2008년 방화 사건으로 옛 모습을 크게 잃었고, 복구 과정에서 부실 공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과학적인 문자 창제의 원리가 기록돼 있어 세계적으로도 문화재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처음부터 훈민정음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96년 문민정부 때 설문조사를 해보니 전문가 가운데 59%, 일반인 가운데 68%가 국보 1호를 바꾸는 데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훈민정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라는 여론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문화재제자리찾기 등이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19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64.2%가 "숭례문과 훈민정음 중 훈민정음이 국보 1호가 돼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에서 훈민정음 대신 숭례문을 꼽은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문화재청은 반대? "지정번호제 근본틀 바꾼다"

문화재청은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지난 12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국보1호와 국보70호의 지정번호를 서로 바꾸자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지정번호는 문화재의 서열이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며 "문화재 지정과 분류에 대한 체계를 기본부터 다시 검토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에 붙어 있는 지정번호가 문화재의 중요도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번호를 바꾸기보다는 문화재 지정번호제도 자체를 큰 틀에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 이미 지정번호 관련 연구용역(지정번호 제도 개선 연구)을 실시했는데도, 여기에 더해 다시금 문화재정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공청회도 실시한다는 생각이다.

문화재에 지정번호를 붙여 관리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와 북한뿐이다. 우리가 제도를 물려받은 일본도 관리번호만 있을 뿐 우리처럼 문화재 표지판에 번호를 적어 두지는 않는다.

[연관 기사]
☞ 국보 1호 당분간 유지, 문화재 번호 폐지 추진 (2005.11.15)
☞ ‘서열 논란’ 국보 지정번호 없어지나 (2015.11.7)

문제는 지정번호 제도 폐지 작업이 최대 451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정도로 간단치 않은 작업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국보1호(숭례문)와 국보70호(훈민정음) 서로 간의 교체가 별개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30일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20대 국회에서 20년이 넘은 국보1호 교체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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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례문→훈민정음 국보1호 교체?…‘공’은 국회로
    • 입력 2016-05-31 17:12:51
    • 수정2016-05-31 17:25:02
    사회
대한민국 국보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교체하자는 논의가 국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주무부처인 문화재청 등에 교체를 요구했던 시민단체들이 이번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통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했기 때문이다.

◆“국보1호(숭례문) 국보70호(훈민정음), 서로 바꾸자”

문화재제자리찾기, 우리문화지킴이, 국어문화실천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노회찬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을 위한 입법 청원을 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보1호인 숭례문을 훈민정음(국보70호)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이다.

노 의원은 회견에서 "한글 창제의 의미와 해설을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나라 국보 1호로 손색없는 문화유산"이라며 "1996년 이후 20년째 진행되고 있는 국보 1호 재지정 논의를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 가져와야 한다"고 전했다.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국보1호 변경에 관한 논란은 1996년 이후 20년째 지속되고있다"며 "폭넓은 여론 수렴과 의견 청취를 통해서 (변경이) 이뤄질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년 전부터 되풀이된 국보1호 교체 주장

혜문 대표의 말처럼 국보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은 지난 1996년부터 되풀이됐던 주장이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문화재 지정번호제가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국보1호 교체가 추진됐다. 지난 2005년에는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도 국보1호 교체를 추진했지만, 문화재위원회 등의 반대로 교체가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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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1호 바뀌나? (2005.11.8)
☞ “국보 1호 변경 안 한다” (2005.11.14)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훈민정음 국보1호 지정을 위한 10만 서명운동을 진행해 지난 1월 문화재청에 국보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교체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왜 숭례문은 안되고 훈민정음은 될까

숭례문은 애초에 문화재 중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로 '국보1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 지난 1933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을 발표하면서 일괄적으로 우리 문화재에 지정번호를 부여했다. 지금처럼 국보, 보물로 구분하지 않고 보물로만 지정했는데 당시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보물1호가 숭례문(당시 남대문)이었다.

해방 후 1955년 정부는 일제 강점기 지정된 보물을 모두 국보로 승격시켰다. 1962년에는 문화재보호법을 만들어 국보와 보물을 지정했는데, 명확한 기준 없이 원래 국보1호였던 숭례문을 그대로 국보1호로 지정했다.





숭례문은 지난 2008년 방화 사건으로 옛 모습을 크게 잃었고, 복구 과정에서 부실 공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과학적인 문자 창제의 원리가 기록돼 있어 세계적으로도 문화재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처음부터 훈민정음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96년 문민정부 때 설문조사를 해보니 전문가 가운데 59%, 일반인 가운데 68%가 국보 1호를 바꾸는 데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훈민정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라는 여론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문화재제자리찾기 등이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19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64.2%가 "숭례문과 훈민정음 중 훈민정음이 국보 1호가 돼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에서 훈민정음 대신 숭례문을 꼽은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문화재청은 반대? "지정번호제 근본틀 바꾼다"

문화재청은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지난 12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국보1호와 국보70호의 지정번호를 서로 바꾸자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지정번호는 문화재의 서열이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며 "문화재 지정과 분류에 대한 체계를 기본부터 다시 검토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에 붙어 있는 지정번호가 문화재의 중요도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번호를 바꾸기보다는 문화재 지정번호제도 자체를 큰 틀에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 이미 지정번호 관련 연구용역(지정번호 제도 개선 연구)을 실시했는데도, 여기에 더해 다시금 문화재정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공청회도 실시한다는 생각이다.

문화재에 지정번호를 붙여 관리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와 북한뿐이다. 우리가 제도를 물려받은 일본도 관리번호만 있을 뿐 우리처럼 문화재 표지판에 번호를 적어 두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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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열 논란’ 국보 지정번호 없어지나 (2015.11.7)

문제는 지정번호 제도 폐지 작업이 최대 451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정도로 간단치 않은 작업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국보1호(숭례문)와 국보70호(훈민정음) 서로 간의 교체가 별개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30일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20대 국회에서 20년이 넘은 국보1호 교체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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