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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입력 2016.06.10 (15:24) 수정 2016.07.01 (09:46)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폐광 소식에 술렁이는 강원도 탄광촌

요즘 강원도 탄광지역이 또다시 술렁이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탄광마저 모두 폐광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기획재정부는 해마다 천억원씩 적자가 쌓여가는 대한석탄공사 산하의 탄광을 순차적으로 문닫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화순탄광은 2017년, 장성탄광은 2019년, 도계탄광은 2021년 이후 문을 닫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가정을 따뜻하게 지켜주고 산업 근대화에 한 몫 단단히 했던 석탄이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6.25가 나던 해인 1950년 설립된 석탄공사는 검게 빛났던 70년 역사를 석탄처럼 역사 속에 다시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1989년 많은 탄광들이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문을 닫으면서 광부들이 대거 잃자리를 잃고 지역사회가 붕괴되는 비극을 겪었던 탄광촌은 30년 만에 다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석탄공사가 문을 닫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석탄소비가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석탄을 원료로 하는 연탄의 수요가 거의 없어졌습니다.1986년 2천425만톤까지 올라갔던 석탄소비량은 1993년에는 774만톤, 2005년에는 201만톤으로 줄더니, 2015년에는 148만톤까지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30년 만에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연탄의 수요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연탄은 여전히 살기 버거운 서민들의 든든한 겨울 반려자입니다. 아직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전국에 15만 가구나 되고, 화원이나 음식점 등에서도 기름값이나 전기값에 비해 저렴한 연탄을 적잖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연말이 되면 달동네에 연탄을 배달했다는 소식들이 추운 세밑을 연탄을 땐 구들장처럼 훈훈하게 달구곤 합니다.여전히 메마른 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온기와 온정의 상징인 것이지요. 실재로 배고픈 어린 시절을 견뎌야 했던 중장년층 서민들에게 연탄은 단순히 땔감이 아닙니다.눈물과 웃음이 오버랩되는 추억이 서려있는 묵직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광경이 연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부릉부릉 굉음을 내며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이라고 했나봅니다. 어릴 적 학교 다녀와서 비어있던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연탄을 보면 괜히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달동네에 살았던 저도 때로는 연탄을 서너장씩 날랐습니다. 겨울철 눈이 내려 연탄장수 아저씨가 지게로 연탄배달을 할 수 없을 때는 형님들과 새끼줄에 매단 연탄을 낑낑대며 나르곤 했습니다. 시인은 연탄이 활활 제 몸을 불살라 차가운 방을 덥히고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까지 덥히는 걸 고마와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매일 몸을 던지는 연탄의 희생으로 따뜻한 밥과 국을 먹으면서 정작 자신은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본 적이 없다는 값진 성찰을 합니다. 눈 쌓인 길을 쓸어 다른 이들이 걸어가게 할 줄도 몰랐던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자성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탄의 일생에서 이타적인 삶의 모델을 끄집어내는 시인의 사유는 커녕, 연탄에 대한 고마움도 제대로 갖기 어렵지 않을까요? 또 연탄에 대한 추억이 시인처럼 감사와 반성으로만 엮여있지는 않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아무런 기색도 없이 스며드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삶을 마감했습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중반만 해도 겨울철만 되면 연탄가스 중독 사고 기사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연탄은 또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갈지 않으면 꺼져버리기 때문에 졸린 눈을 부벼뜨고 연탄을 갈러 나왔다가 뼛속까지 스미는 겨울바람에 진저리 치던 기억, 꺼진 불을 살리기 위해 매캐한 연기를 온몸으로 뒤집어쓰면서 숯이나 착화탄, 신문지를 태우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 연탄같은 아버지의 사랑

세상에 안쓰런 직업이 많습니다만 얼굴에 팔다리에 연탄 검댕이 묻은 채로 무거운 연탄을 져나르는 연탄장수야말로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김영승 시인은 그의 연작시 '반성'에서 이런 아버지를 돕는 갸륵한 딸과, 자신을 돕는 딸들이 안쓰러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연탄불 같은 사랑을 시로 썼습니다.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면서 얘기했다.

- 김영승 시인 / 반성 100

이런 딸이 있다면 정말 아무리 고된 연탄일이라도 거뜬히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은 넉 장씩 나르면서 행여 딸들이 힘들까봐 두장씩만 나르라고 말해주는 아버지의 속은 또 얼마나 깊은지요? 세상에 모든 아버지들은 자식들의 입에 하나라도 더 맛난 것을 넣어주고 싶고, 좋은 옷 입혀주고 싶고, 번듯한 집에서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일하고 또 하는 일개미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정록 시인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연탄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 이정록 시인 / 연탄



■ 검은 눈물로 캐내는 붉은 희망

서민들의 든든한 벗이 돼주었던 연탄은 광부들이 캐는 석탄을 원료로 합니다. 연탄을 나르는 고달픔은 비교도 안되는 일이 석탄을 캐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불륜과 패륜으로 얼룩진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욕할 때 '막장드라마'니, '막장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막장은 지하 탄광에서 갱도가 닿는 마지막 채탄장을 이르는 말인데 어느 새 이 말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갈 수 있는 극한,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극한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그만큼 탄을 캐는 일이란 고된 육체 노동이면서 죽음과 부상의 공포를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갱도가 무너지거나 갱내에서 불이 나는 등 각종 안전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광부가 부지기수였습니다. 1950년 대한 석탄공사가 생긴 이래 2015년까지 사망한 광부만 1,562명, 부상자는 6만명이 넘었습니다. 석탄산업이 아직 전성기였던 1987년 우리나라 산업 재해율은 1.5%였는데, 탄광 재해율은 14%였으니, 다른 노동자보다 광부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확율이 무려 10배나 높았다는 얘깁니다. 평균 기온 30도, 습도 83%,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는 탄광의 작업환경은 그야말로 살인적입니다. 그동안 개발한 탄광의 실핏줄 같은 갱도를 다 잇는다면 그 길이는 무려 544km, 서울 부산간 거리보다 100km나 깁니다. 현재 남아 있는 태백 장성과 삼척 도계, 전남 화순 탄광의 평균 갱도 깊이는 833미터, 이 가운데 최고 깊은 곳은 무려 1,125미터나 됩니다. 이 아득한 어둠의 터널 속에서 광부들은 온 몸을 도구로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내, 가난한 나라가 일어서는 밑거름이 돼주었습니다. 이들이 캐낸 석탄을 1950년부터 2015년까지 합하면 무려 1억5천184만톤이나 됩니다. 우리들은 아무 생각없이 '막장'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막장은 탄가루 흩날리고 화약 냄새 코를 찌르는 위험한 곳임에도 광부들이 한 어깨에는 가족의 생계를, 다른 어깨에는 나라의 생존을 짊어지고 수억년 전 묻혔던 생명체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곳입니다.광부들의 눈물어린 삶은 자연 소설이나 시의 영화와 그림의 소재가 됐습니다. 수백편의 시들이 시인들의 하얀 손에서, 혹은 직접 체험한 광부들의 검은 손에서 쏟아져나왔습니다.

절망의 밑바닥, / 거기 살아서 번쩍이는 잎잎들
지주로 받쳐진 저 속에서 / 빠개지는 아픔을 견디면서
쏟아져 나오는 저 것들은 / 어느 세기의 햇살들인가

붕락된 갱 속에 / 죽은 광부의 눈빛이
깊이 잠든 지층을 일깨워 / 비로소 퍼득이는 무리들
저마다 새로 살아서 열리는 빛

- 정일남 시인 / 채탄막장 부분

수억년 전 땅 속에 묻혀 석탄이 된 나무와 나뭇잎들은 제 몸을 던져 탄을 캐는 광부들의 눈빛에 의해 비로소 환한 빛이 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광부들의 눈물과 땀도 애닲았지만 숱한 사고와 재해에 노출된 광부 남편이나 아버지를 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괴기 일쑵니다. 탄광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쳤던 임길택 선생님이 탄광촌 아이들의 시를 엮어서 펴낸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에는 티없어야 할 어린이들이 느끼는 탄광촌의 우울과 음산함,탄부 아버지에 대한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이모부가 일하고 오는 걸 보았다
얼굴은 검은 얼굴 / 옷도 검은 옷
내가 인사를 하니 / 대답도 검은 대답 같았다

- 사북초교 5학년 윤중원 / 광부

비도 검은 비가 내리고 눈도 검은 눈이 내리고, 하늘도 검고 나무도 검은 탄광촌, 이모부의 대답마저 검은 대답이었다니, 귀여운 조카의 인사가 반가와야 마땅할 이모부지만 지금 온몸이 녹초가 됐을테니 어떻게 노란 대답, 초록빛깔 인사가 나올지요?

아버지가 / 집에 오실 때는
시커먼 탄가루로 / 화장을 하고 오신다
그러면 우리는 장난말로 / 아버지 얼굴 예쁘네요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이 / 그럼 예쁘다 말다
우리는 그런 말을 듣고 / 한바탕 웃는다 "

- 사북초교 5학년 하대원 /아버지가 오실 때

눈물 같은 웃음이 나는 시 아닌지요? 아니면 웃음 같은 눈물이 나오는 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라고 왜 아버지가 자신들을 위해 컴컴한 죽음의 땅에서 희미한 램프 하나에 의지해 온몸이 부서져라 곡괭이질을 하는 줄 모를까요? 그러니 장난말이 아니라 어쩌면 그 아이의 맑은 눈에 비친 아버지는 비록 석탄검댕을 칠한 초췌한 얼굴이지만 정말 예뻐보이지 않았을까요?

■ 우리 곁을 떠나는 영원한 희망

이제 우리 곁을 떠나는 석탄과 연탄,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눈총도 받고, 더 이상 찾는 이도 없어 검은 입을 다물고 퇴장해야 하는 석탄과 연탄에게 진심을 담아 손을 흔들어주고 싶습니다. 이들이 있어, 가난하고 추웠던 어린 시절 그런대로 견딜만 했고, 시인들의 노래처럼 활활 타오르고 싶은 야무진 꿈도 꿀 수 있었으니까요. 경제논리가 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시대, 해마다 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천덕꾸러기를 방치할 수야 없겠지만, 당장 땔감을 걱정해야 하는 영세 가구 15만에 대한 대책과, 일자리를 잃게 되는 광부들의 일자리 대책, 무너지는 지역경제에 대한 세심한 대안을 마련해야겠습니다. 한때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곤두박질쳤던 유가가 다시 50달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언제 또다시 지난 1970년대와 같은 석유파동이 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폐광하더라도 에너지 수급의 최후의 보루로서 언제라도 재가동할 수 있는 조치도 강구해야 합니다. 사방의 추위가 옥죄어 오던 겨울 후끈한 연탄 한장은 우리 몸의 희망이었습니다. 지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검은 다이아몬드는 이 나라의 가난을 몰아내준 등불이었습니다. 지금은 유랑곡마단처럼 쓸쓸히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언제 다시 연탄과 석탄이 퍼주고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삶의 희망으로 되돌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시인의 노래처럼,

그렇게 많이 캐냈는데도
우리나라 땅속에 아직 무진장 묻혀 있는 석탄처럼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 희망을 다 써버린 때는 없었다

그 불이 / 오랫동안 세상의 밤을 밝히고
나라의 등을 따뜻하게 해 주었는데
이제 사는 게 좀 번지르르해졌다고
아무도 불캐던 사람들의 어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섭섭해서 / 우리는 폐석더미에 모여 앉아 / 머리를 깎았다
한 번 깎인 머리털이 그렇듯 / 더 숱 많고 억세게 자라라고
실은 서로의 희망을 깎아 주었다
우리가 아무리 퍼 써도 / 희망이 모자란 세상은 없었다

- 이상국 시인 / 희망에 대하여 (사북에 가서)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④ 연탄, 검은 눈물로 빚은 붉은 희망
    • 입력 2016-06-10 15:24:51
    • 수정2016-07-01 09:46:32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폐광 소식에 술렁이는 강원도 탄광촌

요즘 강원도 탄광지역이 또다시 술렁이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탄광마저 모두 폐광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기획재정부는 해마다 천억원씩 적자가 쌓여가는 대한석탄공사 산하의 탄광을 순차적으로 문닫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화순탄광은 2017년, 장성탄광은 2019년, 도계탄광은 2021년 이후 문을 닫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가정을 따뜻하게 지켜주고 산업 근대화에 한 몫 단단히 했던 석탄이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6.25가 나던 해인 1950년 설립된 석탄공사는 검게 빛났던 70년 역사를 석탄처럼 역사 속에 다시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1989년 많은 탄광들이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문을 닫으면서 광부들이 대거 잃자리를 잃고 지역사회가 붕괴되는 비극을 겪었던 탄광촌은 30년 만에 다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석탄공사가 문을 닫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석탄소비가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석탄을 원료로 하는 연탄의 수요가 거의 없어졌습니다.1986년 2천425만톤까지 올라갔던 석탄소비량은 1993년에는 774만톤, 2005년에는 201만톤으로 줄더니, 2015년에는 148만톤까지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30년 만에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연탄의 수요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연탄은 여전히 살기 버거운 서민들의 든든한 겨울 반려자입니다. 아직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전국에 15만 가구나 되고, 화원이나 음식점 등에서도 기름값이나 전기값에 비해 저렴한 연탄을 적잖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연말이 되면 달동네에 연탄을 배달했다는 소식들이 추운 세밑을 연탄을 땐 구들장처럼 훈훈하게 달구곤 합니다.여전히 메마른 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온기와 온정의 상징인 것이지요. 실재로 배고픈 어린 시절을 견뎌야 했던 중장년층 서민들에게 연탄은 단순히 땔감이 아닙니다.눈물과 웃음이 오버랩되는 추억이 서려있는 묵직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광경이 연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부릉부릉 굉음을 내며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이라고 했나봅니다. 어릴 적 학교 다녀와서 비어있던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연탄을 보면 괜히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달동네에 살았던 저도 때로는 연탄을 서너장씩 날랐습니다. 겨울철 눈이 내려 연탄장수 아저씨가 지게로 연탄배달을 할 수 없을 때는 형님들과 새끼줄에 매단 연탄을 낑낑대며 나르곤 했습니다. 시인은 연탄이 활활 제 몸을 불살라 차가운 방을 덥히고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까지 덥히는 걸 고마와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매일 몸을 던지는 연탄의 희생으로 따뜻한 밥과 국을 먹으면서 정작 자신은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본 적이 없다는 값진 성찰을 합니다. 눈 쌓인 길을 쓸어 다른 이들이 걸어가게 할 줄도 몰랐던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자성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탄의 일생에서 이타적인 삶의 모델을 끄집어내는 시인의 사유는 커녕, 연탄에 대한 고마움도 제대로 갖기 어렵지 않을까요? 또 연탄에 대한 추억이 시인처럼 감사와 반성으로만 엮여있지는 않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아무런 기색도 없이 스며드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삶을 마감했습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중반만 해도 겨울철만 되면 연탄가스 중독 사고 기사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연탄은 또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갈지 않으면 꺼져버리기 때문에 졸린 눈을 부벼뜨고 연탄을 갈러 나왔다가 뼛속까지 스미는 겨울바람에 진저리 치던 기억, 꺼진 불을 살리기 위해 매캐한 연기를 온몸으로 뒤집어쓰면서 숯이나 착화탄, 신문지를 태우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 연탄같은 아버지의 사랑

세상에 안쓰런 직업이 많습니다만 얼굴에 팔다리에 연탄 검댕이 묻은 채로 무거운 연탄을 져나르는 연탄장수야말로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김영승 시인은 그의 연작시 '반성'에서 이런 아버지를 돕는 갸륵한 딸과, 자신을 돕는 딸들이 안쓰러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연탄불 같은 사랑을 시로 썼습니다.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면서 얘기했다.

- 김영승 시인 / 반성 100

이런 딸이 있다면 정말 아무리 고된 연탄일이라도 거뜬히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은 넉 장씩 나르면서 행여 딸들이 힘들까봐 두장씩만 나르라고 말해주는 아버지의 속은 또 얼마나 깊은지요? 세상에 모든 아버지들은 자식들의 입에 하나라도 더 맛난 것을 넣어주고 싶고, 좋은 옷 입혀주고 싶고, 번듯한 집에서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일하고 또 하는 일개미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정록 시인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연탄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 이정록 시인 / 연탄



■ 검은 눈물로 캐내는 붉은 희망

서민들의 든든한 벗이 돼주었던 연탄은 광부들이 캐는 석탄을 원료로 합니다. 연탄을 나르는 고달픔은 비교도 안되는 일이 석탄을 캐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불륜과 패륜으로 얼룩진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욕할 때 '막장드라마'니, '막장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막장은 지하 탄광에서 갱도가 닿는 마지막 채탄장을 이르는 말인데 어느 새 이 말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갈 수 있는 극한,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의 극한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그만큼 탄을 캐는 일이란 고된 육체 노동이면서 죽음과 부상의 공포를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갱도가 무너지거나 갱내에서 불이 나는 등 각종 안전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광부가 부지기수였습니다. 1950년 대한 석탄공사가 생긴 이래 2015년까지 사망한 광부만 1,562명, 부상자는 6만명이 넘었습니다. 석탄산업이 아직 전성기였던 1987년 우리나라 산업 재해율은 1.5%였는데, 탄광 재해율은 14%였으니, 다른 노동자보다 광부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확율이 무려 10배나 높았다는 얘깁니다. 평균 기온 30도, 습도 83%,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는 탄광의 작업환경은 그야말로 살인적입니다. 그동안 개발한 탄광의 실핏줄 같은 갱도를 다 잇는다면 그 길이는 무려 544km, 서울 부산간 거리보다 100km나 깁니다. 현재 남아 있는 태백 장성과 삼척 도계, 전남 화순 탄광의 평균 갱도 깊이는 833미터, 이 가운데 최고 깊은 곳은 무려 1,125미터나 됩니다. 이 아득한 어둠의 터널 속에서 광부들은 온 몸을 도구로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내, 가난한 나라가 일어서는 밑거름이 돼주었습니다. 이들이 캐낸 석탄을 1950년부터 2015년까지 합하면 무려 1억5천184만톤이나 됩니다. 우리들은 아무 생각없이 '막장'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막장은 탄가루 흩날리고 화약 냄새 코를 찌르는 위험한 곳임에도 광부들이 한 어깨에는 가족의 생계를, 다른 어깨에는 나라의 생존을 짊어지고 수억년 전 묻혔던 생명체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곳입니다.광부들의 눈물어린 삶은 자연 소설이나 시의 영화와 그림의 소재가 됐습니다. 수백편의 시들이 시인들의 하얀 손에서, 혹은 직접 체험한 광부들의 검은 손에서 쏟아져나왔습니다.

절망의 밑바닥, / 거기 살아서 번쩍이는 잎잎들
지주로 받쳐진 저 속에서 / 빠개지는 아픔을 견디면서
쏟아져 나오는 저 것들은 / 어느 세기의 햇살들인가

붕락된 갱 속에 / 죽은 광부의 눈빛이
깊이 잠든 지층을 일깨워 / 비로소 퍼득이는 무리들
저마다 새로 살아서 열리는 빛

- 정일남 시인 / 채탄막장 부분

수억년 전 땅 속에 묻혀 석탄이 된 나무와 나뭇잎들은 제 몸을 던져 탄을 캐는 광부들의 눈빛에 의해 비로소 환한 빛이 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광부들의 눈물과 땀도 애닲았지만 숱한 사고와 재해에 노출된 광부 남편이나 아버지를 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눈물이 괴기 일쑵니다. 탄광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쳤던 임길택 선생님이 탄광촌 아이들의 시를 엮어서 펴낸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에는 티없어야 할 어린이들이 느끼는 탄광촌의 우울과 음산함,탄부 아버지에 대한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이모부가 일하고 오는 걸 보았다
얼굴은 검은 얼굴 / 옷도 검은 옷
내가 인사를 하니 / 대답도 검은 대답 같았다

- 사북초교 5학년 윤중원 / 광부

비도 검은 비가 내리고 눈도 검은 눈이 내리고, 하늘도 검고 나무도 검은 탄광촌, 이모부의 대답마저 검은 대답이었다니, 귀여운 조카의 인사가 반가와야 마땅할 이모부지만 지금 온몸이 녹초가 됐을테니 어떻게 노란 대답, 초록빛깔 인사가 나올지요?

아버지가 / 집에 오실 때는
시커먼 탄가루로 / 화장을 하고 오신다
그러면 우리는 장난말로 / 아버지 얼굴 예쁘네요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이 / 그럼 예쁘다 말다
우리는 그런 말을 듣고 / 한바탕 웃는다 "

- 사북초교 5학년 하대원 /아버지가 오실 때

눈물 같은 웃음이 나는 시 아닌지요? 아니면 웃음 같은 눈물이 나오는 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라고 왜 아버지가 자신들을 위해 컴컴한 죽음의 땅에서 희미한 램프 하나에 의지해 온몸이 부서져라 곡괭이질을 하는 줄 모를까요? 그러니 장난말이 아니라 어쩌면 그 아이의 맑은 눈에 비친 아버지는 비록 석탄검댕을 칠한 초췌한 얼굴이지만 정말 예뻐보이지 않았을까요?

■ 우리 곁을 떠나는 영원한 희망

이제 우리 곁을 떠나는 석탄과 연탄,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눈총도 받고, 더 이상 찾는 이도 없어 검은 입을 다물고 퇴장해야 하는 석탄과 연탄에게 진심을 담아 손을 흔들어주고 싶습니다. 이들이 있어, 가난하고 추웠던 어린 시절 그런대로 견딜만 했고, 시인들의 노래처럼 활활 타오르고 싶은 야무진 꿈도 꿀 수 있었으니까요. 경제논리가 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시대, 해마다 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천덕꾸러기를 방치할 수야 없겠지만, 당장 땔감을 걱정해야 하는 영세 가구 15만에 대한 대책과, 일자리를 잃게 되는 광부들의 일자리 대책, 무너지는 지역경제에 대한 세심한 대안을 마련해야겠습니다. 한때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곤두박질쳤던 유가가 다시 50달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언제 또다시 지난 1970년대와 같은 석유파동이 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폐광하더라도 에너지 수급의 최후의 보루로서 언제라도 재가동할 수 있는 조치도 강구해야 합니다. 사방의 추위가 옥죄어 오던 겨울 후끈한 연탄 한장은 우리 몸의 희망이었습니다. 지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검은 다이아몬드는 이 나라의 가난을 몰아내준 등불이었습니다. 지금은 유랑곡마단처럼 쓸쓸히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언제 다시 연탄과 석탄이 퍼주고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삶의 희망으로 되돌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시인의 노래처럼,

그렇게 많이 캐냈는데도
우리나라 땅속에 아직 무진장 묻혀 있는 석탄처럼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 희망을 다 써버린 때는 없었다

그 불이 / 오랫동안 세상의 밤을 밝히고
나라의 등을 따뜻하게 해 주었는데
이제 사는 게 좀 번지르르해졌다고
아무도 불캐던 사람들의 어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섭섭해서 / 우리는 폐석더미에 모여 앉아 / 머리를 깎았다
한 번 깎인 머리털이 그렇듯 / 더 숱 많고 억세게 자라라고
실은 서로의 희망을 깎아 주었다
우리가 아무리 퍼 써도 / 희망이 모자란 세상은 없었다

- 이상국 시인 / 희망에 대하여 (사북에 가서)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
①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②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③ 밥벌이, 그 숭고한 비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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