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In] ③ 아코디언 전설이 된 ‘대통령의 악사’

입력 2016.06.23 (13:34) 수정 2016.06.2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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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풍금을 좋아했다. 건반을 두드리며 나는 소리가 좋았다. 어느 날 풍금을 쳐 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소년은 가슴이 뛰었다. 정신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자신의 모습에 소년도, 친구들도 놀라고 신기해했다.

# 고등학생이 된 소년은 부산의 한 악기점에서 아코디언을 접한다. 그 뒤 머릿속은 온통 아코디언 생각 뿐이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연주했던 풍금처럼 아코디언도 처음에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든 아코디언은 필연이 되었다.



이 소년이 아코디언의 살아있는 전설, 심성락(80) 씨이다.

심성락의 악사(樂士) 인생은 1950년대 초반 부산에서 시작된다. 악기점 주인의 추천으로 부산KBS 경음악단의 아코디언 주자가 됐다. 이후 아코디언 연주가 직업이 됐다.

심임섭이라는 본명 대신 심성락이라는 예명을 갖게 된 것도 이때 즈음이다. 성락, 소리 성(聲)에 즐거울 락(樂), 즉 소리로 세상을 즐겁게 해주라는 뜻이다. 그는 이름대로 반세기 넘게 살았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있는 심성락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있는 심성락


한국 대중음악을 수놓은 명반 가운데 심성락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음반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자, 조용필, 이승철, 신승훈 등 국내 유명 가수들과 작업을 했고 영화 '봄날은 간다', '효자동 이발사'의 O.S.T.에도 참여했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등록된 연주곡만 7,000여 곡, 음반은 1,000여 장에 달한다. 아코디언 가락에 취해 산 심성락의 여든 인생은 그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사이다.

[연관 기사] ☞ 아코디언 거장 ‘심성락’…헌정 공연 받는다(2011.06.05)

심성락은 '대통령의 악사'로도 불린다.

1970년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연회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노래 반주를 맡게 된 게 발단이었다. 몇 달 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박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경음악들을 녹음해 보냈고 이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인연을 맺었다.

불에 탄 그의 이탈리아산 아코디언불에 탄 그의 이탈리아산 아코디언


지난 4월 자택 화재로 그는 분신과도 같은 아코디언을 잃었다. 30년 가까이 함께 한 악기였다.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싶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그에게 새 아코디언을 마련해 주자며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크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진행된 이 모금 운동은 지난 21일, 목표액인 3,000만 원을 돌파했다. 시민들은 SNS에 후원 인증 글을 올리는 등 큰 호응을 보였다.

소식을 접한 심 씨는 울먹이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후원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모금 중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모금 중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


모금 운동을 진행한 최성철 페이퍼레코드 대표는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카드와 음반 등을 선물하고 이들의 이름을 아코디언의 벨트에 새겨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자를 위한 공연도 7월 14일 열기로 했다.



6~7년 전,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아코디언이 무거워질 무렵 그는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나이 들어 건망증이 심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며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대는, 음악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2011년에는 후배들이 그만을 위한 헌정 무대를 꾸몄다.

최근에는 현대음악축제인 '라잇 나우 뮤직 2016' 무대에 가야금 명인 황병기,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를 비롯해 박경소, 만트라 퍼커션 등 국내외 음악인들과 나란히 섰다.

[연관 기사] ☞ ‘바람의 협연’…신·구 두 거장이 만나다(2016.04.27)

"선생님의 아코디언 소리가 누군가의 가슴에 아련히 남아 추억하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사랑하게 해주신다는 것에 너무나 부럽고 감사하다." 작곡가 김형석의 말이다.

시대를 노래한 영원한 현역,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심성락은 오늘도 주름상자의 가락에 취해 바람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문화人·In]
☞ ② 신명나게 ‘현실’을 비판한 작가, 오윤
☞ ① “서화에 생명 불어넣은 50년,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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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人·In] ③ 아코디언 전설이 된 ‘대통령의 악사’
    • 입력 2016-06-23 13:34:02
    • 수정2016-06-23 13:56:43
    취재K
# 소년은 풍금을 좋아했다. 건반을 두드리며 나는 소리가 좋았다. 어느 날 풍금을 쳐 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소년은 가슴이 뛰었다. 정신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자신의 모습에 소년도, 친구들도 놀라고 신기해했다.

# 고등학생이 된 소년은 부산의 한 악기점에서 아코디언을 접한다. 그 뒤 머릿속은 온통 아코디언 생각 뿐이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연주했던 풍금처럼 아코디언도 처음에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든 아코디언은 필연이 되었다.



이 소년이 아코디언의 살아있는 전설, 심성락(80) 씨이다.

심성락의 악사(樂士) 인생은 1950년대 초반 부산에서 시작된다. 악기점 주인의 추천으로 부산KBS 경음악단의 아코디언 주자가 됐다. 이후 아코디언 연주가 직업이 됐다.

심임섭이라는 본명 대신 심성락이라는 예명을 갖게 된 것도 이때 즈음이다. 성락, 소리 성(聲)에 즐거울 락(樂), 즉 소리로 세상을 즐겁게 해주라는 뜻이다. 그는 이름대로 반세기 넘게 살았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있는 심성락

한국 대중음악을 수놓은 명반 가운데 심성락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음반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자, 조용필, 이승철, 신승훈 등 국내 유명 가수들과 작업을 했고 영화 '봄날은 간다', '효자동 이발사'의 O.S.T.에도 참여했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등록된 연주곡만 7,000여 곡, 음반은 1,000여 장에 달한다. 아코디언 가락에 취해 산 심성락의 여든 인생은 그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사이다.

[연관 기사] ☞ 아코디언 거장 ‘심성락’…헌정 공연 받는다(2011.06.05)

심성락은 '대통령의 악사'로도 불린다.

1970년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연회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노래 반주를 맡게 된 게 발단이었다. 몇 달 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박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경음악들을 녹음해 보냈고 이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인연을 맺었다.

불에 탄 그의 이탈리아산 아코디언

지난 4월 자택 화재로 그는 분신과도 같은 아코디언을 잃었다. 30년 가까이 함께 한 악기였다.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싶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그에게 새 아코디언을 마련해 주자며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크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진행된 이 모금 운동은 지난 21일, 목표액인 3,000만 원을 돌파했다. 시민들은 SNS에 후원 인증 글을 올리는 등 큰 호응을 보였다.

소식을 접한 심 씨는 울먹이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후원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모금 중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

모금 운동을 진행한 최성철 페이퍼레코드 대표는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카드와 음반 등을 선물하고 이들의 이름을 아코디언의 벨트에 새겨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자를 위한 공연도 7월 14일 열기로 했다.



6~7년 전,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아코디언이 무거워질 무렵 그는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나이 들어 건망증이 심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며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대는, 음악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2011년에는 후배들이 그만을 위한 헌정 무대를 꾸몄다.

최근에는 현대음악축제인 '라잇 나우 뮤직 2016' 무대에 가야금 명인 황병기,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를 비롯해 박경소, 만트라 퍼커션 등 국내외 음악인들과 나란히 섰다.

[연관 기사] ☞ ‘바람의 협연’…신·구 두 거장이 만나다(2016.04.27)

"선생님의 아코디언 소리가 누군가의 가슴에 아련히 남아 추억하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사랑하게 해주신다는 것에 너무나 부럽고 감사하다." 작곡가 김형석의 말이다.

시대를 노래한 영원한 현역,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심성락은 오늘도 주름상자의 가락에 취해 바람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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