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고리대금업?…“나랏돈도 필요없어요”

입력 2016.07.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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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치러진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대회에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중요하게 언급됐다. 신설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박봉주 내각 총리는 식량과 전기 문제 해결, 천연 자원 증산 등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실질적 목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월 29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지난 5월 당 대회에 이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이행방안을 제시했다. (사진=노동신문) 지난 6월 29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지난 5월 당 대회에 이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이행방안을 제시했다. (사진=노동신문)


김정은 시대 들어 국가주도 경제 대신 북한 경제를 지탱한 것은 확대된 시장 경제다. 대표적 농업개혁 조치인 가족중심의 영농제 '포전담당제'나 공장·기업소 지배인의 권한을 강화하는 '지배인 책임경영제' 등의 개혁이 도입됐다. '내 것'을 챙기고 일부만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자본주의 방식이 공식화된 것이다. 여기에 공공 금융기관이 돈 부족으로 지원하지 못하던 각종 산업에 신흥 '돈주'(자본가)들이 돈을 대면서 북한 경제 회복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송금·결제대행까지...북한도 사금융이 점령

공식적인 금융시장이 없는 북한에서 사적 금융은 80년대만 해도 환전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수요공급 구조가 완전히 갖춰졌다. 현재는 주민들의 예금, 대출은 물론 물자대금 결제까지 사금융 시장이 점령하는 추세다.



지난달 28일 열린 수출입은행 주최 '북한의 금융: 실태와 과제' 세미나에서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식 금융기관의 만성적인 자금 부족과 경직된 거래 관행 등으로 사금융 시장이 공금융 시장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이 제조업 위주로만 자금 지원을 하고 있어 돈이 부족한 서비스업이나 건설업 등에서 신흥 자본가인 '돈주'들이 돈을 대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박지연 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은 "국가기관의 외화벌이나 관료들의 부패행위로 모은 돈을 배경으로 한 권력형 '돈주'나 권력층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자생형 '돈주', 혹은 해외일꾼이나 재일교포, 화교, 탈북민 가족 등 상대적으로 운신이 자유로운 신분의 '돈주' 등 다양한 자본가 유형이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연관 기사]☞ [클로즈업북한] 北 신흥 부유층…‘그들이 사는 세상’

특히 도시의 경우에는 1990년대만 해도 소규모 사채시장에 불과한 수준이었던 금융 시장이 최근에는 전문화된 사채 시장으로 발전했다. 개인 간 송금은 평양에서 전화만 받고 청진에서 담당자가 돈을 전달하는 식으로 전화 송금도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신용도·금액 따라 이자율도 천차만별

박 연구원은 "2000년대만 해도 월 13~15%였던 대출 이자율이 사금융 체계가 갖춰진 2010년대 들어서는 5~10%수준으로 다소 안정화됐다"고 분석했다. 신용도에 따라 이자율은 천차만별이다. 보통 월 5~10% 수준이지만 고위층은 월 3%의 낮은 이자율을 매기는 반면 중규모 상인은 월 10%, 밀수꾼은 월 20-30%의 고리를 받는다.

대부자금에 따라서도 이자율이 달라진다. 김영희 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대부 자금이 많을 수록 이자는 낮게 책정된다"며 "2000달러 미만은 월 10%, 그 이상은 4~7%에서 이자가 매겨지며, 3만 달러까지도 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남한의 은행간 초단기 거래인 '콜 거래'와 유사한 거래도 생겨났다. 김 팀장은 "당장 현금이 필요한 돈주가 다른 돈주에게 다소 싼 이자로 급전을 빌리는 남한의 콜과 유사한 거래도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 정부가 발행한 전자카드 ‘전성’(좌측)과 외화직불카드 ‘나래’(우측)북한 정부가 발행한 전자카드 ‘전성’(좌측)과 외화직불카드 ‘나래’(우측)


사금융 시장의 확대는 이제 북한의 정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 화폐나 외화로 거래할 수 있는 플라스틱 카드 2종이 생겨났다. 사금융에서 거래되는 외화를 거둬들여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이다. 형법에는 고리대죄가 신설됐다. 고리대금을 통해 이익을 얻을 경우 2~5년의 노동교화형을 받도록 규정했다.

'북한 돈'보단 '남의 돈'

사금융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급증한 외화 거래다. 1990년대 경제난을 겪고난 뒤 북한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을 외화로 보유하려는 경향이 생겼으며, 특히 2009년 화폐 개혁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한 뒤 외화 선호도가 더 높아졌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택 같은 거액의 거래에서만 사용던 외화가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거쳐 최근에는 종합시장에서 생필품 등 소액거래에서까지 쓰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달러화보다 중국 위안화가 폭넓게 쓰인다. 2011~2013년 사이 탈북한 820여 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3년 사이 위안화 사용 비중이 5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당에서는 오히려 북한 원화보다 위안화가 더 많이 쓰이게 됐다. 2008년부터 북중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가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된 데다, 외화와 관련해 처벌받을 확률도 달러보다는 위안화가 훨씬 적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주민들에게 익숙해진 금융거래가 머지 않아 북한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 정부가 외화예금, 외화카드, 외화상점 이용 확대, 전자상거래 도입 등을 추진하는 등 제한적으로 사금융을 공적금융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시장경제에 대한 은행 통제를 강화하고 자금을 확보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주민들 사이에서는 독과점이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관 기사]☞ [클로즈업 북한] 장마당 20년…북한 시장 변화 어디까지?’ (2015.3.28)

문성민 한국은행 북한경제연구실장은 "그간 북한의 경제 변화는 북한 당국의 단속 없이 암묵적 묵인 하에 이뤄지고 있었다"면서 "만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력한 대북 제재가 오래 지속된다면 돈주들의 투자가 줄어들고, 북한 당국도 통제를 강력히 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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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에도 고리대금업?…“나랏돈도 필요없어요”
    • 입력 2016-07-03 10:02:00
    취재K
지난달 29일 치러진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대회에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중요하게 언급됐다. 신설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박봉주 내각 총리는 식량과 전기 문제 해결, 천연 자원 증산 등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실질적 목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월 29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지난 5월 당 대회에 이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이행방안을 제시했다. (사진=노동신문)

김정은 시대 들어 국가주도 경제 대신 북한 경제를 지탱한 것은 확대된 시장 경제다. 대표적 농업개혁 조치인 가족중심의 영농제 '포전담당제'나 공장·기업소 지배인의 권한을 강화하는 '지배인 책임경영제' 등의 개혁이 도입됐다. '내 것'을 챙기고 일부만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자본주의 방식이 공식화된 것이다. 여기에 공공 금융기관이 돈 부족으로 지원하지 못하던 각종 산업에 신흥 '돈주'(자본가)들이 돈을 대면서 북한 경제 회복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송금·결제대행까지...북한도 사금융이 점령

공식적인 금융시장이 없는 북한에서 사적 금융은 80년대만 해도 환전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수요공급 구조가 완전히 갖춰졌다. 현재는 주민들의 예금, 대출은 물론 물자대금 결제까지 사금융 시장이 점령하는 추세다.



지난달 28일 열린 수출입은행 주최 '북한의 금융: 실태와 과제' 세미나에서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식 금융기관의 만성적인 자금 부족과 경직된 거래 관행 등으로 사금융 시장이 공금융 시장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이 제조업 위주로만 자금 지원을 하고 있어 돈이 부족한 서비스업이나 건설업 등에서 신흥 자본가인 '돈주'들이 돈을 대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박지연 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은 "국가기관의 외화벌이나 관료들의 부패행위로 모은 돈을 배경으로 한 권력형 '돈주'나 권력층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자생형 '돈주', 혹은 해외일꾼이나 재일교포, 화교, 탈북민 가족 등 상대적으로 운신이 자유로운 신분의 '돈주' 등 다양한 자본가 유형이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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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도시의 경우에는 1990년대만 해도 소규모 사채시장에 불과한 수준이었던 금융 시장이 최근에는 전문화된 사채 시장으로 발전했다. 개인 간 송금은 평양에서 전화만 받고 청진에서 담당자가 돈을 전달하는 식으로 전화 송금도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신용도·금액 따라 이자율도 천차만별

박 연구원은 "2000년대만 해도 월 13~15%였던 대출 이자율이 사금융 체계가 갖춰진 2010년대 들어서는 5~10%수준으로 다소 안정화됐다"고 분석했다. 신용도에 따라 이자율은 천차만별이다. 보통 월 5~10% 수준이지만 고위층은 월 3%의 낮은 이자율을 매기는 반면 중규모 상인은 월 10%, 밀수꾼은 월 20-30%의 고리를 받는다.

대부자금에 따라서도 이자율이 달라진다. 김영희 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대부 자금이 많을 수록 이자는 낮게 책정된다"며 "2000달러 미만은 월 10%, 그 이상은 4~7%에서 이자가 매겨지며, 3만 달러까지도 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남한의 은행간 초단기 거래인 '콜 거래'와 유사한 거래도 생겨났다. 김 팀장은 "당장 현금이 필요한 돈주가 다른 돈주에게 다소 싼 이자로 급전을 빌리는 남한의 콜과 유사한 거래도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 정부가 발행한 전자카드 ‘전성’(좌측)과 외화직불카드 ‘나래’(우측)

사금융 시장의 확대는 이제 북한의 정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 화폐나 외화로 거래할 수 있는 플라스틱 카드 2종이 생겨났다. 사금융에서 거래되는 외화를 거둬들여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이다. 형법에는 고리대죄가 신설됐다. 고리대금을 통해 이익을 얻을 경우 2~5년의 노동교화형을 받도록 규정했다.

'북한 돈'보단 '남의 돈'

사금융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급증한 외화 거래다. 1990년대 경제난을 겪고난 뒤 북한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을 외화로 보유하려는 경향이 생겼으며, 특히 2009년 화폐 개혁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한 뒤 외화 선호도가 더 높아졌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택 같은 거액의 거래에서만 사용던 외화가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거쳐 최근에는 종합시장에서 생필품 등 소액거래에서까지 쓰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달러화보다 중국 위안화가 폭넓게 쓰인다. 2011~2013년 사이 탈북한 820여 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3년 사이 위안화 사용 비중이 5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당에서는 오히려 북한 원화보다 위안화가 더 많이 쓰이게 됐다. 2008년부터 북중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가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된 데다, 외화와 관련해 처벌받을 확률도 달러보다는 위안화가 훨씬 적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주민들에게 익숙해진 금융거래가 머지 않아 북한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 정부가 외화예금, 외화카드, 외화상점 이용 확대, 전자상거래 도입 등을 추진하는 등 제한적으로 사금융을 공적금융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시장경제에 대한 은행 통제를 강화하고 자금을 확보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주민들 사이에서는 독과점이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관 기사]☞ [클로즈업 북한] 장마당 20년…북한 시장 변화 어디까지?’ (2015.3.28)

문성민 한국은행 북한경제연구실장은 "그간 북한의 경제 변화는 북한 당국의 단속 없이 암묵적 묵인 하에 이뤄지고 있었다"면서 "만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력한 대북 제재가 오래 지속된다면 돈주들의 투자가 줄어들고, 북한 당국도 통제를 강력히 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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