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2만 원만 빌려줘”…백발 할머니의 정체는?

입력 2017.01.09 (08:33) 수정 2017.01.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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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지난주 이른바 백발 할머니를 조심하라는 글이 인터넷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할머니는 학원가를 돌며 자신의 손주를 등록시키고 싶다며 한참을 상담받았는데요.

자신은 평창동에 살고 자식 내외는 카이스트 연구원이라며 은글슬쩍 자신의 부를 자랑했습니다.

그리고선 대뜸 지갑을 놓고 왔다며 택시비를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학원 원장들은 어렵지 않게 돈을 빌려줬는데, 결국, 사기였습니다.

인터넷에 피해 경험담이 올라오자 여기저기서 같은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결국, 할머니가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사건의 전말을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동양화 화실 안으로 한 백발의 할머니가 들어옵니다.

<녹취> "(여기 앉으세요. 멀리서 오신 거예요?) 평창동."

여유롭게 그림 구경을 하더니 쌍둥이 손자들이 동양화를 배우고 싶어 한다며 상담을 받기 시작합니다.

<녹취> "(손자들이) 외국에서 왔어요. 이 동양화를 꼭 하고 싶다고 그래. 쌍둥이인데 둘이 똑같이 미술을 좋아해요."

<녹취> 화실 운영자(음성변조) : "캐나다 오타와에서 왔고, 뭐 자기 아들 내외가 카이스트 연구원으로 계약했고, 자기는 평창동 살고 사람들이 들으면 다 ‘아 이 사람이 돈이 좀 있구나.’"

1시간 남짓 개인적인 얘기까지 늘어놓은 할머니.

학원비를 내겠다며 가방을 뒤적이더니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녹취 > "아유~. 지갑을 (안 가져왔어요.) (괜찮아요. 아니면 내일 오실 때 갖다 주세요.)"

계좌번호를 적어달라며 먼저 학원비를 이체해 준다는 할머니. 대뜸 지갑이 없으니 차비를 빌려달라고 합니다.

<녹취> "돈 십 원도 없어. 빌려주면 갈 수 있는데. (네네. 5천 원 정도만 드리면 가실 수 있겠죠?) 만 얼마 나오는데, (아 택시 타고 가시는 거예요?) 아예 그거(->이체)하기 좋게 2만 원 넣어줘요. 그러면 (학원비까지) 122만 원을 (보내면) 맞죠? 여유 있게 가져가야지 불안해서."

2만 원을 받아 들고 서둘러 자리를 뜬 할머니, 하지만 그 이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화실 운영자는 할머니가 장황하게 얘기를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을 안 드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녹취> 화실 운영자(음성변조) : "사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문전박대할 수 없잖아요. 제 지갑 보면서 계속 더 달라고. 여기에 저밖에 없었고 요즘에 뭐 범죄도 잦잖아요. 그분 심기 건드렸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냥 드렸죠."

혹시나 다른 학원에서도 같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경찰에 신고하고, 인터넷 카페에도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CCTV에 찍힌 백발 할머니 모습을 보고 너도나도 유사한 피해를 봤다는 글이 빗발쳤습니다.

할머니의 독특한 인상착의가 한눈에 기억이 난다는 겁니다.

<녹취> 수학 논술 학원 운영자(음성변조) : "머리가 굉장히 하얀 분이셨어요. 화장 굉장히 하얗게 하셨어요. 입술은 좀 빨갰던 것 같아요. 그분 이미지 떠올리면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학원 상담을 받고, 돈을 빌리는 상황 등 수법까지 똑같다고 입을 모읍니다.

<녹취> 초등생 공부방 운영자(음성변조) : "상담까지 다 하셨거든요. 가시는데 교통비가 없어서 미안하지만 돈 좀 차비 좀 달라고. 회원 한 명 한 명이 아쉬운데 두 명이라고 하고 야박하게 안 드릴 순 없잖아요. 정말 이분이 그런 상황일 수도 있고."

때마침 수중에 있는 돈이 없어 일부러 현금인출기까지 가서 돈을 뽑아 드렸다는 공부방 원장.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돈도 돈이지만, 선의를 베푸는 마음을 이용했다는 것에 기분이 언짢았다고 합니다.

<녹취> 초등생 공부방 운영자(음성변조) : "처음에는 엄청 괘씸했죠.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속인 거잖아요. 교묘하게 우리 마음을 진짜로 이용하시는 거잖아요."

문제는 이 할머니가 범행을 저지르고 다닌 게 한, 두 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2008년, 대구에서 이 할머니에게 똑같이 당했었다는 공예학원 원장.

<녹취> 공예 학원 운영자(음성변조) : "여기가 대구거든요. 이 할머니가 아직 이러고 다니나 더 실망하는 것이죠."

강산도 변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진을 한번 보고 할머니를 알아봤다고 합니다.

<녹취> 공예 학원 운영자(음성변조) : "딱 봐도 그 할머니 같던데요. 할머니들 특유의 쪽 머리처럼 이렇게 단정하게 해가지고 강렬한 빨간 외투를 입고, 립스틱을 빨간색으로 발랐는데, 좀 부유한 할머니인 척했어요."

<인터뷰> 황호림(커피 학원장) : "네. 이분 맞아요. 100% 맞네요. 오죽하면 모자이크 처리를 했는데도 딱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번번이 백발할머니에게 돈을 뜯긴 학원들.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할머니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 현란한 말솜씨에 깜박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황호림(커피 학원장) : "한 시간 동안 말을 하는데, 모든 말이 거침없이 술술술 나와요 스토리가. 그리고 사람을 이렇게 안심시키고 다른 대화 유도하고 이런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에요. 아 진짜 대단한 고수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녹취> 수학 논술 학원장(음성변조) : "저는 (할머니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거든요. 아예 의심조차 안 했죠."

뒤늦게 “사기”란 걸 깨달아도 피해금액이 적어 경찰에 신고조차 못 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피해자들이 늘어나면서 경찰은 할머니에 대한 수배를 내렸고, 지난 5일 언론 보도를 본 시민의 신고로 할머니는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인터뷰> 윤현상(경사/성북경찰서 정릉2파출소) : "동네 주민이 (파출소에) 달려오셔서 엊그제 TV에 나왔던 사기 백발 할머니 닮으신 분이 방금 지나갔다. 그래서 저희가 현장으로 출동하게 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백발 할머니는 71살 성 모 씨로 밝혀졌는데요,

2011년 거주지 불명을 사유로 주민등록조차 말소된 상태.

가족도 없이 오랜 세월 떠돌이 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자기 말로는 83년도인가 이혼한 다음부터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시는 데는 없고, 찜질방에서 잤다, 노숙도 했다. (왜 (학원 가서) 이런 일을 하신 거예요?) 자기는 생활비가 부족하니까 먹고살려고 했다고 하죠.)"

지난 9년 동안 전국의 학원을 돌며 교통비 등을 빙자해 돈을 뜯어온 백발의 할머니.

경찰은 14건의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주거지가 불명확한 사유로 할머니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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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2만 원만 빌려줘”…백발 할머니의 정체는?
    • 입력 2017-01-09 08:34:06
    • 수정2017-01-09 09: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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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른바 백발 할머니를 조심하라는 글이 인터넷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할머니는 학원가를 돌며 자신의 손주를 등록시키고 싶다며 한참을 상담받았는데요.

자신은 평창동에 살고 자식 내외는 카이스트 연구원이라며 은글슬쩍 자신의 부를 자랑했습니다.

그리고선 대뜸 지갑을 놓고 왔다며 택시비를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학원 원장들은 어렵지 않게 돈을 빌려줬는데, 결국, 사기였습니다.

인터넷에 피해 경험담이 올라오자 여기저기서 같은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결국, 할머니가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사건의 전말을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동양화 화실 안으로 한 백발의 할머니가 들어옵니다.

<녹취> "(여기 앉으세요. 멀리서 오신 거예요?) 평창동."

여유롭게 그림 구경을 하더니 쌍둥이 손자들이 동양화를 배우고 싶어 한다며 상담을 받기 시작합니다.

<녹취> "(손자들이) 외국에서 왔어요. 이 동양화를 꼭 하고 싶다고 그래. 쌍둥이인데 둘이 똑같이 미술을 좋아해요."

<녹취> 화실 운영자(음성변조) : "캐나다 오타와에서 왔고, 뭐 자기 아들 내외가 카이스트 연구원으로 계약했고, 자기는 평창동 살고 사람들이 들으면 다 ‘아 이 사람이 돈이 좀 있구나.’"

1시간 남짓 개인적인 얘기까지 늘어놓은 할머니.

학원비를 내겠다며 가방을 뒤적이더니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녹취 > "아유~. 지갑을 (안 가져왔어요.) (괜찮아요. 아니면 내일 오실 때 갖다 주세요.)"

계좌번호를 적어달라며 먼저 학원비를 이체해 준다는 할머니. 대뜸 지갑이 없으니 차비를 빌려달라고 합니다.

<녹취> "돈 십 원도 없어. 빌려주면 갈 수 있는데. (네네. 5천 원 정도만 드리면 가실 수 있겠죠?) 만 얼마 나오는데, (아 택시 타고 가시는 거예요?) 아예 그거(->이체)하기 좋게 2만 원 넣어줘요. 그러면 (학원비까지) 122만 원을 (보내면) 맞죠? 여유 있게 가져가야지 불안해서."

2만 원을 받아 들고 서둘러 자리를 뜬 할머니, 하지만 그 이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화실 운영자는 할머니가 장황하게 얘기를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을 안 드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녹취> 화실 운영자(음성변조) : "사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문전박대할 수 없잖아요. 제 지갑 보면서 계속 더 달라고. 여기에 저밖에 없었고 요즘에 뭐 범죄도 잦잖아요. 그분 심기 건드렸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냥 드렸죠."

혹시나 다른 학원에서도 같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경찰에 신고하고, 인터넷 카페에도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CCTV에 찍힌 백발 할머니 모습을 보고 너도나도 유사한 피해를 봤다는 글이 빗발쳤습니다.

할머니의 독특한 인상착의가 한눈에 기억이 난다는 겁니다.

<녹취> 수학 논술 학원 운영자(음성변조) : "머리가 굉장히 하얀 분이셨어요. 화장 굉장히 하얗게 하셨어요. 입술은 좀 빨갰던 것 같아요. 그분 이미지 떠올리면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학원 상담을 받고, 돈을 빌리는 상황 등 수법까지 똑같다고 입을 모읍니다.

<녹취> 초등생 공부방 운영자(음성변조) : "상담까지 다 하셨거든요. 가시는데 교통비가 없어서 미안하지만 돈 좀 차비 좀 달라고. 회원 한 명 한 명이 아쉬운데 두 명이라고 하고 야박하게 안 드릴 순 없잖아요. 정말 이분이 그런 상황일 수도 있고."

때마침 수중에 있는 돈이 없어 일부러 현금인출기까지 가서 돈을 뽑아 드렸다는 공부방 원장.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돈도 돈이지만, 선의를 베푸는 마음을 이용했다는 것에 기분이 언짢았다고 합니다.

<녹취> 초등생 공부방 운영자(음성변조) : "처음에는 엄청 괘씸했죠.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속인 거잖아요. 교묘하게 우리 마음을 진짜로 이용하시는 거잖아요."

문제는 이 할머니가 범행을 저지르고 다닌 게 한, 두 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2008년, 대구에서 이 할머니에게 똑같이 당했었다는 공예학원 원장.

<녹취> 공예 학원 운영자(음성변조) : "여기가 대구거든요. 이 할머니가 아직 이러고 다니나 더 실망하는 것이죠."

강산도 변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진을 한번 보고 할머니를 알아봤다고 합니다.

<녹취> 공예 학원 운영자(음성변조) : "딱 봐도 그 할머니 같던데요. 할머니들 특유의 쪽 머리처럼 이렇게 단정하게 해가지고 강렬한 빨간 외투를 입고, 립스틱을 빨간색으로 발랐는데, 좀 부유한 할머니인 척했어요."

<인터뷰> 황호림(커피 학원장) : "네. 이분 맞아요. 100% 맞네요. 오죽하면 모자이크 처리를 했는데도 딱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번번이 백발할머니에게 돈을 뜯긴 학원들.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할머니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 현란한 말솜씨에 깜박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황호림(커피 학원장) : "한 시간 동안 말을 하는데, 모든 말이 거침없이 술술술 나와요 스토리가. 그리고 사람을 이렇게 안심시키고 다른 대화 유도하고 이런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에요. 아 진짜 대단한 고수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녹취> 수학 논술 학원장(음성변조) : "저는 (할머니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거든요. 아예 의심조차 안 했죠."

뒤늦게 “사기”란 걸 깨달아도 피해금액이 적어 경찰에 신고조차 못 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피해자들이 늘어나면서 경찰은 할머니에 대한 수배를 내렸고, 지난 5일 언론 보도를 본 시민의 신고로 할머니는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인터뷰> 윤현상(경사/성북경찰서 정릉2파출소) : "동네 주민이 (파출소에) 달려오셔서 엊그제 TV에 나왔던 사기 백발 할머니 닮으신 분이 방금 지나갔다. 그래서 저희가 현장으로 출동하게 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백발 할머니는 71살 성 모 씨로 밝혀졌는데요,

2011년 거주지 불명을 사유로 주민등록조차 말소된 상태.

가족도 없이 오랜 세월 떠돌이 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자기 말로는 83년도인가 이혼한 다음부터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시는 데는 없고, 찜질방에서 잤다, 노숙도 했다. (왜 (학원 가서) 이런 일을 하신 거예요?) 자기는 생활비가 부족하니까 먹고살려고 했다고 하죠.)"

지난 9년 동안 전국의 학원을 돌며 교통비 등을 빙자해 돈을 뜯어온 백발의 할머니.

경찰은 14건의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주거지가 불명확한 사유로 할머니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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