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자력 자강”…北 ‘국산화 강조’ 의도는?

입력 2017.01.21 (08:08) 수정 2017.01.2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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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 들어 김정은이 유난히 강조하는 구호, 바로 ‘자력자강’입니다.

쉽게 말해 북한의 기술과 자원으로 국산품을 잘 만들어 쓰잔 얘긴데요.

대북 제재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고육책이라지만, 간부고 주민들이고 수입품 좋다는 걸 다들 알만큼 아는 상황에서 이게 과연 잘 될까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 국산화 정책의 속사정과 성공 가능성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평양의 한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 로션과 크림 등 각종 화장품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여성들이 삼삼오오 화장품을 구경하는 가운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녹취> 조선중앙TV ‘애국의 마음은 하나의 경공업제품에도’(지난 7일) :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 서로들 속삭이는 여성들의 말 속에 ‘저 머리물감도 좀 봅시다.’ 하는 웅그른(움츠러든)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북한에서 ‘머리물감’이라 부르는 염색약을 사러 온 남성들의 모습.

이어 미용실에서 이 ‘머리물감’으로 염색을 한 남성이 거울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머리물감을 생산하는 공장의 모습과 함께, 마치 광고를 연상케 하는 염색 전후 비교사진까지 보여준다.

<녹취> 조선중앙TV ‘애국의 마음은 하나의 경공업제품에도’(지난 7일) : “새로 단장한 저 모습들은 금세 젊어 보이고 밝고 얼마나 활력에 넘쳐 보입니까.”

여러 화장품과 그 생산 과정을 소개하는 북한 TV의 한 프로그램.

방송은 특히 이 제품들이 ‘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 ‘애국의 마음은 하나의 경공업제품에도’(지난 7일) :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우리의 화장품으로...”

최근 북한 매체들은 자체 기술로 생산했다는 제품들을 잇따라 선전하고 있다.

현대적 설비를 갖춘 공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국산품 애용 운동'을 부쩍 독려하는 분위기다.

김정은의 새해 첫 공개 활동은 가방공장 방문이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설비의 국산화를 강조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5일) : “설비의 국산화 비중을 95%이상 보장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이불 공장과 김치 공장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국산품의 양적·질적 향상을 언급한 김정은.

이 같은 행보는 새해 첫날 발표한 신년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녹취> 김정은 (2017년 신년사) :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전진을 다그치자!', 이것이 새해의 행군길에서 우리가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 구호입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우선순위를 두던 군 시찰도 잠시 미룬 채 새해 초부터 경제 행보를 이어가며 자력자강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자강력 제일’을 경제정책, 정치경제적인 정책으로 보면 수입 대체 산업화 전략입니다. 중국이나 미국과의 거리를 두면서 자체의 소비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노동력이거든요. 자원 수출을 줄이더라도 노동력과 노동력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면서 자체산업 개발을 조성하겠다 라는 그런 경제정책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은이 국산화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집권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김정은이 북한산 휴대전화인 ‘아리랑 손전화’ 공장을 방문해 생산을 독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8월)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손전화기를 우리기술로척척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고 하시면서 우리 상표를 단 제품들을 많이 생산해야 인민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집권 초부터 ‘국산화’를 강조하던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에선 수입품을 선호하는 세태를 ‘수입병’이라며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녹취> 김정은(2015년 신년사) :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며...”

김정은은 특히 화장품이나 가공식품 같은 경공업 제품의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라고 요구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5년 3월) : “은하수 화장품이 세계 시장에서도 소문나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내외적인 선전도 활발해졌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의 ‘명품 소개’ 코너.

<녹취> 北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2015년 7월) :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최상의 선물인 인삼!”

TV 광고가 따로 없는 북한에서 판매 촉진을 위해 이례적으로 만든 광고 형태의 영상이다.

<녹취> ‘대동강맥주’ TV 광고(2009년) : “평양의 자랑 대동강맥주!”

북한 최초의 TV 광고로 꼽히는 ‘대동강맥주’ 광고.

너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수년간 자취를 감췄던 이 광고도 비슷한 내용의 영상으로 선전 매체에 다시 등장했다.

<녹취> 北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지난해 8월) : “우리 인민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가 대단한 청량음료 대동강맥주!”

지난해는 김정은이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시대적 구호를 내세운 시기였다.

<녹취> 김정은(2016년 신년사) :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합니다.”

<녹취> 김정은(노동당 제7차대회 사업총화보고) : “자강력 제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방식은 자력갱생, 간고분투입니다.”

이 같은 정책은 핵실험 등 잇단 도발로 대북제재를 초래해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한 김정은 정권의 자구책이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일시적으로는 경기 침체의 탈출구 효과가 있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움직이고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면 각종 건설이나 도로 닦기라도 하다 보면 이에 필요한 각종 소비 물품들, 그다음에 자재,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데가 있고 그걸 유통하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소비 시장들, 내부의 소비 시장들이 지금 진척이 되고 과학기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작은 원료라도 만들 수 있는 기술들, 이런 기술들을 조금씩은 쌓는 효과가 있죠.”

올해 신년사에서 뚜렷한 경제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서도 김정은은 자강력과 자력갱생만은 유독 강조했다.

특히 주민들의 필수품과 연관되는 화학공업과 경공업 발전을 거듭 강조했고.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화학공업은 공업의 기초이며 경제의 자립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석탄과 철도 부문의 분발도 촉구했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화학공업을 통해서 원료자재를 자체로 국산으로 생산을 해서 경공업 제품을 생산을 하자. 그런데 전력이 그런 받침이 되느냐... 수출 못하는 석탄을 최우선으로 공급해서 화력발전을 돌려서 전력을 공급하자. 그러면 석탄도 최우선으로 공급하려면 운송이 돼야 되겠죠. 철도 운수에서는 그걸 무조건 맡아라, 이렇게 돼있고... 그다음에 화력발전소는 석탄을 받아들이려면 너희가 자체로 수리 보강을 해야지... 그런 강조를 하고 있어요.”

대북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석탄으로 화력발전소를 가동시키고, 그 전력으로 화학공업공장에서 원자재를 만들어내 경공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

점점 강화되고 있는 대북제재에 대한 이 같은 대응 전략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무엇보다 기술력과 생산 능력 부족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전자제품 분야는 생산 능력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김정은의 대관식, 노동당 대회를 한 달 앞둔 지난 해 4월.

중국 단둥 세관에서 ‘아리랑’이란 북한 상표가 붙은 LED TV가 무더기로 북한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KBS 카메라에 포착됐다.

<녹취> 영상 촬영자(음성변조) : “세관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신고된 (TV) 댓수가 5만 대라고... 오늘 들어갈 숫자가 5만 대다...”

LED TV를 생산할 능력이 없는 북한이 중국 기업이 만든 TV에 북한 상표만 붙여 당대회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선물용으로 수입한 것이다.

‘아리랑 손전화’와 ‘평양 터치’와 같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다고 선전하는 휴대전화 역시 중국이나 동남아산 수입품을 재조립하거나 상표만 붙이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인터뷰> 박현숙(2015년 탈북) : “핸드폰도 평양에서 생산한다는데 핸드폰도 동남아에서 들여오거든요. 전자제품은 북한이 아직 너무 나도 떨어졌어, 후졌어요. 그건 우리가 따라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TV같은 것도 대동강 텔레비 공장에서 생산을 한다는데, 그것이 한 1년만 보면 전혀 나오지 않는대요. 그러니까 아직 안 돼요. 선전할 뿐이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수십년 째 고질적인 전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공장들은 전력난 등으로 대다수 가동을 멈췄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아직까지도 거의 80%가 중국산이고 거기에 지금 국내산은 아직은 10%에도 못 미치죠. 북한이 국산을 계속 떠들지만, 수요를 맞추기는 상당히 어렵죠. 수십 년이 가야되지 않을까, 지금 현재 상황으로 간다면... 지금 공장·기업소가 가동률이 20에서 30% 밖에 안 되기 때문에 100% 가동을 해야지만이 주민들의 수요를 보장할까 말까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죠.”

더욱이 북한 주민들은 이미 수입품에 길들여져 있다.

각종 생필품에서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중국산 등 수입품이 범람하면서 주민들은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산품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

북한에서 수년간 밀수업을 했다는 탈북민은 특히 수입품 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것은 한국 제품이라고 말한다.

<인터뷰> 박현숙(2015년 탈북) : “가장 돈을 내가 좀 근사하게 많이 번 것은 한국 중고 옷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개 뻘이라고 하는데, 그 뻘에 100kg씩 나와요. 딱 압축을 하면 옷이 100kg를. kg를 딱 떠서 100kg씩 들여오는데, 그걸 팔면 한 10배의 수익을 얻는다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해외 스포츠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북한 정권이 아디다스와 퓨마와 견주어도 손색없다고 자랑하며 선보인 토종 스포츠 브랜드 ‘내고향’.

평양 대동강변의 번화가 문수 지구에 3층 짜리 매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북한주민들이 관심이 있는 건 해외 브랜드라고 한다.

게다가 정작 김정은과 고위 간부들은 해외 사치품을 중독된 듯 즐겨쓰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4년간 사치품 수입에 쓴 외화만 약 27억 달러에 이른다.

<인터뷰> 박현숙(2015년 탈북) : “이설주가 옷차림을 하고 나서는 걸 보고, 야 이 뭐야. 김정은이가 그렇게 진짜 김정일처럼 (검소하게) 제기밥(주먹밥)을 먹고 살진 않네? 여자가, 색시가 저런 옷을 입는 걸 보니까. 이건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간부들 같은 거는 그들의 자녀들이 정말 생활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로 산다는 건 다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국산품은 전혀 쓰지 않아요.”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줄이 차단되고 수출길도 막히고 있는 상황에서 자력자강과 국산화는 김정은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정책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한계가 있고, 이거는 자충수죠. 말하자면 이거는 북한이 국산화를 강조하는 것은 대북제재 속에서 무역이라든가 외자유치라든가 이게 다 막혀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죠. 그러나 핵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고 대외무역이 활성화되고 이러면 북한이 국산화를 그렇게까지 강조를 할까... 국산화는 대북제재를 고려한 지금 당분간의 정책적으로 제시하는 목표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독자적 힘으로 난관을 헤쳐나가자며 북한이 내세웠던 ‘자력갱생’의 구호.

김정은은 지난해 이를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구호로 다시 등장시킨 뒤 잇단 도발을 감행했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상황에서 김정은의 자립경제 추구는 김일성·김정일 시대 때 실패한 정책의 반복에 불과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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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1 08:37:15
    • 수정2017-01-21 14:57:58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올 들어 김정은이 유난히 강조하는 구호, 바로 ‘자력자강’입니다.

쉽게 말해 북한의 기술과 자원으로 국산품을 잘 만들어 쓰잔 얘긴데요.

대북 제재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고육책이라지만, 간부고 주민들이고 수입품 좋다는 걸 다들 알만큼 아는 상황에서 이게 과연 잘 될까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 국산화 정책의 속사정과 성공 가능성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평양의 한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 로션과 크림 등 각종 화장품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여성들이 삼삼오오 화장품을 구경하는 가운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녹취> 조선중앙TV ‘애국의 마음은 하나의 경공업제품에도’(지난 7일) :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 서로들 속삭이는 여성들의 말 속에 ‘저 머리물감도 좀 봅시다.’ 하는 웅그른(움츠러든)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북한에서 ‘머리물감’이라 부르는 염색약을 사러 온 남성들의 모습.

이어 미용실에서 이 ‘머리물감’으로 염색을 한 남성이 거울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머리물감을 생산하는 공장의 모습과 함께, 마치 광고를 연상케 하는 염색 전후 비교사진까지 보여준다.

<녹취> 조선중앙TV ‘애국의 마음은 하나의 경공업제품에도’(지난 7일) : “새로 단장한 저 모습들은 금세 젊어 보이고 밝고 얼마나 활력에 넘쳐 보입니까.”

여러 화장품과 그 생산 과정을 소개하는 북한 TV의 한 프로그램.

방송은 특히 이 제품들이 ‘국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 ‘애국의 마음은 하나의 경공업제품에도’(지난 7일) :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우리의 화장품으로...”

최근 북한 매체들은 자체 기술로 생산했다는 제품들을 잇따라 선전하고 있다.

현대적 설비를 갖춘 공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국산품 애용 운동'을 부쩍 독려하는 분위기다.

김정은의 새해 첫 공개 활동은 가방공장 방문이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설비의 국산화를 강조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5일) : “설비의 국산화 비중을 95%이상 보장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이불 공장과 김치 공장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국산품의 양적·질적 향상을 언급한 김정은.

이 같은 행보는 새해 첫날 발표한 신년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녹취> 김정은 (2017년 신년사) :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전진을 다그치자!', 이것이 새해의 행군길에서 우리가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 구호입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우선순위를 두던 군 시찰도 잠시 미룬 채 새해 초부터 경제 행보를 이어가며 자력자강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자강력 제일’을 경제정책, 정치경제적인 정책으로 보면 수입 대체 산업화 전략입니다. 중국이나 미국과의 거리를 두면서 자체의 소비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노동력이거든요. 자원 수출을 줄이더라도 노동력과 노동력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면서 자체산업 개발을 조성하겠다 라는 그런 경제정책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은이 국산화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집권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김정은이 북한산 휴대전화인 ‘아리랑 손전화’ 공장을 방문해 생산을 독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8월)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손전화기를 우리기술로척척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고 하시면서 우리 상표를 단 제품들을 많이 생산해야 인민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집권 초부터 ‘국산화’를 강조하던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에선 수입품을 선호하는 세태를 ‘수입병’이라며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녹취> 김정은(2015년 신년사) :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며...”

김정은은 특히 화장품이나 가공식품 같은 경공업 제품의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라고 요구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5년 3월) : “은하수 화장품이 세계 시장에서도 소문나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내외적인 선전도 활발해졌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의 ‘명품 소개’ 코너.

<녹취> 北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2015년 7월) :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최상의 선물인 인삼!”

TV 광고가 따로 없는 북한에서 판매 촉진을 위해 이례적으로 만든 광고 형태의 영상이다.

<녹취> ‘대동강맥주’ TV 광고(2009년) : “평양의 자랑 대동강맥주!”

북한 최초의 TV 광고로 꼽히는 ‘대동강맥주’ 광고.

너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수년간 자취를 감췄던 이 광고도 비슷한 내용의 영상으로 선전 매체에 다시 등장했다.

<녹취> 北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지난해 8월) : “우리 인민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가 대단한 청량음료 대동강맥주!”

지난해는 김정은이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시대적 구호를 내세운 시기였다.

<녹취> 김정은(2016년 신년사) :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합니다.”

<녹취> 김정은(노동당 제7차대회 사업총화보고) : “자강력 제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방식은 자력갱생, 간고분투입니다.”

이 같은 정책은 핵실험 등 잇단 도발로 대북제재를 초래해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한 김정은 정권의 자구책이다.

<인터뷰> 박영자(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일시적으로는 경기 침체의 탈출구 효과가 있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움직이고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면 각종 건설이나 도로 닦기라도 하다 보면 이에 필요한 각종 소비 물품들, 그다음에 자재,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데가 있고 그걸 유통하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소비 시장들, 내부의 소비 시장들이 지금 진척이 되고 과학기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작은 원료라도 만들 수 있는 기술들, 이런 기술들을 조금씩은 쌓는 효과가 있죠.”

올해 신년사에서 뚜렷한 경제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서도 김정은은 자강력과 자력갱생만은 유독 강조했다.

특히 주민들의 필수품과 연관되는 화학공업과 경공업 발전을 거듭 강조했고.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화학공업은 공업의 기초이며 경제의 자립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석탄과 철도 부문의 분발도 촉구했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화학공업을 통해서 원료자재를 자체로 국산으로 생산을 해서 경공업 제품을 생산을 하자. 그런데 전력이 그런 받침이 되느냐... 수출 못하는 석탄을 최우선으로 공급해서 화력발전을 돌려서 전력을 공급하자. 그러면 석탄도 최우선으로 공급하려면 운송이 돼야 되겠죠. 철도 운수에서는 그걸 무조건 맡아라, 이렇게 돼있고... 그다음에 화력발전소는 석탄을 받아들이려면 너희가 자체로 수리 보강을 해야지... 그런 강조를 하고 있어요.”

대북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석탄으로 화력발전소를 가동시키고, 그 전력으로 화학공업공장에서 원자재를 만들어내 경공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

점점 강화되고 있는 대북제재에 대한 이 같은 대응 전략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무엇보다 기술력과 생산 능력 부족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전자제품 분야는 생산 능력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김정은의 대관식, 노동당 대회를 한 달 앞둔 지난 해 4월.

중국 단둥 세관에서 ‘아리랑’이란 북한 상표가 붙은 LED TV가 무더기로 북한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KBS 카메라에 포착됐다.

<녹취> 영상 촬영자(음성변조) : “세관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신고된 (TV) 댓수가 5만 대라고... 오늘 들어갈 숫자가 5만 대다...”

LED TV를 생산할 능력이 없는 북한이 중국 기업이 만든 TV에 북한 상표만 붙여 당대회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선물용으로 수입한 것이다.

‘아리랑 손전화’와 ‘평양 터치’와 같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다고 선전하는 휴대전화 역시 중국이나 동남아산 수입품을 재조립하거나 상표만 붙이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인터뷰> 박현숙(2015년 탈북) : “핸드폰도 평양에서 생산한다는데 핸드폰도 동남아에서 들여오거든요. 전자제품은 북한이 아직 너무 나도 떨어졌어, 후졌어요. 그건 우리가 따라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TV같은 것도 대동강 텔레비 공장에서 생산을 한다는데, 그것이 한 1년만 보면 전혀 나오지 않는대요. 그러니까 아직 안 돼요. 선전할 뿐이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수십년 째 고질적인 전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공장들은 전력난 등으로 대다수 가동을 멈췄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아직까지도 거의 80%가 중국산이고 거기에 지금 국내산은 아직은 10%에도 못 미치죠. 북한이 국산을 계속 떠들지만, 수요를 맞추기는 상당히 어렵죠. 수십 년이 가야되지 않을까, 지금 현재 상황으로 간다면... 지금 공장·기업소가 가동률이 20에서 30% 밖에 안 되기 때문에 100% 가동을 해야지만이 주민들의 수요를 보장할까 말까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죠.”

더욱이 북한 주민들은 이미 수입품에 길들여져 있다.

각종 생필품에서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중국산 등 수입품이 범람하면서 주민들은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산품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

북한에서 수년간 밀수업을 했다는 탈북민은 특히 수입품 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것은 한국 제품이라고 말한다.

<인터뷰> 박현숙(2015년 탈북) : “가장 돈을 내가 좀 근사하게 많이 번 것은 한국 중고 옷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개 뻘이라고 하는데, 그 뻘에 100kg씩 나와요. 딱 압축을 하면 옷이 100kg를. kg를 딱 떠서 100kg씩 들여오는데, 그걸 팔면 한 10배의 수익을 얻는다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해외 스포츠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북한 정권이 아디다스와 퓨마와 견주어도 손색없다고 자랑하며 선보인 토종 스포츠 브랜드 ‘내고향’.

평양 대동강변의 번화가 문수 지구에 3층 짜리 매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북한주민들이 관심이 있는 건 해외 브랜드라고 한다.

게다가 정작 김정은과 고위 간부들은 해외 사치품을 중독된 듯 즐겨쓰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4년간 사치품 수입에 쓴 외화만 약 27억 달러에 이른다.

<인터뷰> 박현숙(2015년 탈북) : “이설주가 옷차림을 하고 나서는 걸 보고, 야 이 뭐야. 김정은이가 그렇게 진짜 김정일처럼 (검소하게) 제기밥(주먹밥)을 먹고 살진 않네? 여자가, 색시가 저런 옷을 입는 걸 보니까. 이건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간부들 같은 거는 그들의 자녀들이 정말 생활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로 산다는 건 다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국산품은 전혀 쓰지 않아요.”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줄이 차단되고 수출길도 막히고 있는 상황에서 자력자강과 국산화는 김정은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정책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한계가 있고, 이거는 자충수죠. 말하자면 이거는 북한이 국산화를 강조하는 것은 대북제재 속에서 무역이라든가 외자유치라든가 이게 다 막혀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죠. 그러나 핵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고 대외무역이 활성화되고 이러면 북한이 국산화를 그렇게까지 강조를 할까... 국산화는 대북제재를 고려한 지금 당분간의 정책적으로 제시하는 목표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독자적 힘으로 난관을 헤쳐나가자며 북한이 내세웠던 ‘자력갱생’의 구호.

김정은은 지난해 이를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구호로 다시 등장시킨 뒤 잇단 도발을 감행했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상황에서 김정은의 자립경제 추구는 김일성·김정일 시대 때 실패한 정책의 반복에 불과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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