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인민군의 꽃?…북한 여군 실태

입력 2017.02.04 (08:08) 수정 2017.02.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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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여군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인데요.

여군을 ‘인민군의 꽃’이라고 선전하고 한때 출세길로 가는 수단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 여군의 실체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고 합니다.

이번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김정은 정권 들어 여군을 강조하는 속내와 함께 인권 사각지대인 북한 여군의 실태를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전투 태세를 갖춘 여군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장비의 덮개를 벗긴다.

작은 체구로 커다란 방사포 장비를 힘겹게 밀고 끌며 옮기고는, 일사불란하게 발사 준비를 마친다.

곧바로 이어지는 포사격,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김정은이 환하게 웃는다.

지난해 11월, 북한군 여성방사포병부대들의 사격 경기 현장.

한미 해병대 상륙침투훈련이 있던 시기에 김정은이 여군들을 찾아가 격려하는 모습을 담은 선전물이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11월) : “그 어떤 정황 속에서도 남조선 괴뢰들의 정수리에 명중탄만을 박는 백발백중의 명포수들로 키울 데 대한 문제 등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셨습니다.”

마치 슈퍼스타를 만난 듯, 펄쩍펄쩍 뛰고 울먹이며 김정은을 향해 열광하는 여군들.

김정은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며 여군들의 충성심을 추켜세웠다.

<녹취> 北 기록영화(지난해 12월) : “김정은 동지께서는 정말 용타고, 육체적 한계에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있지만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 대한 우리 여성 군인들의 충정심은 남성 군인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집권 이후 잇따라 여군 부대를 시찰해 온 김정은.

선전 영상들은 김정은의 이러한 행보에 여군들이 충성을 다짐하는 모습을 잇따라 보여준다.

<녹취> 북한 여군 : “저는 이제 이 탄창에 혁명선열들의 넋을 이은 신념의 총탄, 어제의 총탄, 복수의 총탄을 채웠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여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64년 여군만으로 편성된 최초의 여군고사총 여단이 창설됐고, 1971년 이후 전투부대에까지 여군을 확대 배치했다.

김정일도 여군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방문했던 여군부대에 ‘감나무 중대’, ‘들꽃중대’등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지금도 TV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할 정도다.

<녹취> 北 TV 실화극(붉은 감) : “감이 익는 철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우리 중대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 우리들의 친아버지이시고 우리 병사들은 그이의 친자식들이라고 소리 높이 자랑하겠습니다.”

북한 김씨 일가가 이렇게 여군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김진무(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사실은 어느 사회나 여자는 약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김일성도 그렇고 김정일도 그렇고 여성이 군에 와서 복무를 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데, 거기에다가 많은 관심을 보여준다는 거는 내가 최고 지도자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만큼 배려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자기의 자애로움, 애민정신, 이런 것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거죠. 지금 김정은이가 하고 있는 것도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여군부대 시찰에 종종 동행하며 손수 여군 병사의 머리를 매만져주기도 했던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여군들의 숙소, 식당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리설주의 이런 모습도 ‘인민의 어머니’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 행보라는 분석이다.

북한에서 여군은 ‘인민군의 꽃’이라 불릴 만큼 한때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영화에도 여군들의 이런 모습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녹취> 北 영화(리 정치지도원) : “야, 정말 정치지도원 동지가 없다보니까 어머니 없는 집안처럼 썰렁했댔습니다.”

주인공인 여군은 여성 특유의 희생과 헌신으로 군의 단결을 이끌어 낸다.

<녹취>北 영화(우리 정치지도원) : “차별 없는 그 사랑의 품에 내가 살고 네가 사네....”

열병식과 같은 공식 행사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모습도 여군에 대한 인기를 높이는 데 한 몫을 했다.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점도 많은 여성들을 군으로 끌어들인 요인이었다.

지난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

간부들 사이로 군복을 입은 한 여성이 눈에 띈다.

어깨에 별 하나가 달린 우리의 준장에 해당하는 소장 계급.

여성으로는 오르기 힘든 고위급 자리다.

오랫동안 선군정치를 해 온 북한에서는 당원이 되거나 주요 고위직에 오르려면 군 복무 경력이 필수적이다.

지난 2010년,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여성으론 처음으로 별 4개, 인민군 대장 계급을 달았다.

후계자 시절과 집권 초기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김씨 일가의 혈통에만 주어진 특별한 혜택이긴 했지만, 북한에서 고위직과 군경력이 그만큼 밀접한 관계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터뷰>이소연(前 북한군 상사/2008년 탈북) : “80년대 같은 경우는. 그때는 6년 동안의 군사복무가 끝나면 거의 100%가 당에 입당을 하고 제대를 했죠. 그러면 이렇게 당에 입당을 하고 온 여군들 대상으로 북한에서는 또 두 번째 대학 공부를 시킵니다. 그러면 군대 갔다 왔죠, 당원이 됐죠, 대학교까지 나왔다라고 하면 간부가 될 수 있는 징표 세 가지를 다 갖췄기 때문에 뭐 여군의 위상이 그때는 대단했다라고 볼 수도 있고요. 그만큼 또 군대 가기도 힘들었고 또는 사회에서 간부의 표식 또는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세력에 그 골간에는 여군 출신들이 꽤 많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여군의 위상은 1990년대 들어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 식량 보급이 절반 수준으로 줄면서 군인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징집 대상인 남성들이 기근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병력 부족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그 자리를 여군들이 채워야 했던 것이다.

<인터뷰> 김진무(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과거에는 일부 통신, 교환, 간호, 일반행정, 이 정도에서 여군들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하급 부대에는 별로 많지 않고 주로 군단 사령부나 여단 사령부나 큰 부대에 여군들이 많이 배치 됐는데, 이때 병사들이, 남자 병사들이 줄어들다보니까 이제 여군들로 보충을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여군이 지금 뭐 일부지만 적어도 30%는 되지 않겠나...”

그러나 식량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서 여군들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더 컸다.

<인터뷰> 채설향(前 북한 해군/2015년 탈북) : “물이 보장 안 되니까 세면 같은 거, 중대에서 보면 소량을 대야 같은 데다 하나 떠가지고 분대장이 세면을 하고 그 물에도 부분대장이 하고 내리 내리 그니까 이제 5명, 6명 정도가 한 개 분대인데 소량의 하나 가지고 그 물을 이제 세면을 하는 상황도 있었고... ”

<인터뷰> 김진무(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남자 병사들은 인근 마을이 있으면 나가서 훔쳐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여자 병사들은 특히 17살, 18살 되는 병사들은 사실 그렇게 할 수가 없단 말이죠. 먹을 게 없으니까 그냥 앉아가지고 굶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남자 병사들보다 여자 병사들의 어떤 영양 상태가 이게 더 열악하다, 이렇게도 볼 수가 있습니다. ”

신체적 차이를 무시한 훈련도 이뤄졌다.

<인터뷰> 채설향(前 북한 해군/2015년 탈북) : “산악훈련, 뭐 그다음에 이제 100리 강행군 같은 것도 하고, 10리, 10km 강행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이제 뭐 20kg 중량물을 들고 뛰는 훈련도 있거든요. 그때가 이제 남자들하고 똑같이 해야 되니까 똑같은 시간에 이제 출발해서 똑같은 시간에 들어와야 되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때는 처음에 그거 할 때는 저는 막 죽을 것만큼 힘들더라고요.”

고된 훈련과 영양실조의 결과 신체적‧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인터뷰> 이소연(前 북한군 상사/2008년 탈북) : “여군들이 영양실조 하면서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것이 생리현상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뭐 군사복무 하는 도중에 3년, 4년 정도 있다가 돌아오는 여성들도 있는데, 거의 안 돌아오는 여성도 꽤 많고요. 이러다 보니까 오히려 북한에서는 뭐냐하면 군대 갔다 온 여자하고는 절대 결혼을 안 하겠다라는 이런 기피 현상도 나오고요. 이런 속에서 10년, 거의 10년 가까운 군 생활을 하다보니까 여성으로서의 모든 것은 다 다 망쳐버리고 오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도 거의 왕따를 당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힘없는 여군 부하들을 상대로 한 간부들의 성범죄다.

지난해 4월,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

여군들에 대한 일상적인 성폭행 등 끔찍한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녹취> 최수향(前 북한 간호군인/2014년 탈북) : “나중에 임신까지 하게 됐는데, (성폭행 당한) 간호장이 그걸 밝히려고 당 조직에 제기를 했지만, 그걸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장은) 결국은 불명예스럽게 귀가(제대)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이소연(前 북한군 상사/2008년 탈북) : “2소대 30여명의 모든 군인들이 심지어 소대장까지.. 소대장까지 중대장, 부중대장한테 매일 밤 불려나가서 성폭행 당하고 강간당하고 성추행 당한 거죠. 실질적으로 뭐 이런... 제가 있던 우리 군단 지휘 보직 속에 거의 많은 중대에서 성추행은 일도 아니고요. 거의 일들이 1년에 한두 번씩 계속 있었습니다. ”

2014년, 김정은은 프로펠러 항공기만 조종했던 여군에게 전투기 조종 지시를 내리고 초음속 전투기 조종사까지 배출하라고 명령했다.

국가에 충성하는 모범적인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써 극적인 선전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였다.

<녹취> 조선중앙TV(2014년 11월) : “남성들도 타기 힘든 추격기를 나이어린 소녀들이 단독으로 탄다는 것은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높이 치하하셨습니다.”

여군의 노동력 동원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극심한 수해를 입은 함경북도, 이곳에도 여성군인들이 대거 투입됐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해 10월) : “남자들 못지않게 미장작업 진행하는 여자 군인들도 철근 조립과 기틀 조립을 하는 모든 군인들의 얼굴마다에는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군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채설향(前 북한해군/2015년 탈북) : “병이 없는 것도 있다고 병역서를 막 만들어가지고 오고 이런 사람들도 많댔어요. 남자나, 여자나 오줌 싸는 병이 있으면 그거는 신체검사에서 나타 안 나는 병이기 때문에 만들 수가 있잖아요. 부모들이 그런 수법을 많이 쓰더라고요. 오줌을 눈다, 밤에 이유 없이 오줌을 눈다, 이렇게 해가지고.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입당해서 간부를 이제 바라 안 보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다 이제 안 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

이런 상황일수록 김정은이 여군에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김진무(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120만 대군을 유지해야 되는 이유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병력 규모는 줄이지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결국 대안은 여군을, 여자 병사들을 더 많이 충원해서 120만 대군을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 추세가 지속되고, 특히 인구통계학적으로 인구가 획기적으로 출산율이 높아지거나 건강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한은 북한의 여군 숫자는 앞으로도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봅니다. ”

앳된 얼굴로 김정은을 향해 충성을 다짐하는 북한 여군들.

그러나 사회적으로 출세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일곱 어린 나이에 입대한 북한 여군들의 현실은 고단함과 위험의 연속이다.

여군들에 대한 끔찍한 인권 유린에는 눈감은 채 그들을 체제 강화와 선전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 북한 정권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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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인민군의 꽃?…북한 여군 실태
    • 입력 2017-02-04 08:35:58
    • 수정2017-02-04 09:05:38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여군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인데요.

여군을 ‘인민군의 꽃’이라고 선전하고 한때 출세길로 가는 수단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 여군의 실체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고 합니다.

이번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김정은 정권 들어 여군을 강조하는 속내와 함께 인권 사각지대인 북한 여군의 실태를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전투 태세를 갖춘 여군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장비의 덮개를 벗긴다.

작은 체구로 커다란 방사포 장비를 힘겹게 밀고 끌며 옮기고는, 일사불란하게 발사 준비를 마친다.

곧바로 이어지는 포사격,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김정은이 환하게 웃는다.

지난해 11월, 북한군 여성방사포병부대들의 사격 경기 현장.

한미 해병대 상륙침투훈련이 있던 시기에 김정은이 여군들을 찾아가 격려하는 모습을 담은 선전물이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11월) : “그 어떤 정황 속에서도 남조선 괴뢰들의 정수리에 명중탄만을 박는 백발백중의 명포수들로 키울 데 대한 문제 등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셨습니다.”

마치 슈퍼스타를 만난 듯, 펄쩍펄쩍 뛰고 울먹이며 김정은을 향해 열광하는 여군들.

김정은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며 여군들의 충성심을 추켜세웠다.

<녹취> 北 기록영화(지난해 12월) : “김정은 동지께서는 정말 용타고, 육체적 한계에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있지만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 대한 우리 여성 군인들의 충정심은 남성 군인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집권 이후 잇따라 여군 부대를 시찰해 온 김정은.

선전 영상들은 김정은의 이러한 행보에 여군들이 충성을 다짐하는 모습을 잇따라 보여준다.

<녹취> 북한 여군 : “저는 이제 이 탄창에 혁명선열들의 넋을 이은 신념의 총탄, 어제의 총탄, 복수의 총탄을 채웠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여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64년 여군만으로 편성된 최초의 여군고사총 여단이 창설됐고, 1971년 이후 전투부대에까지 여군을 확대 배치했다.

김정일도 여군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방문했던 여군부대에 ‘감나무 중대’, ‘들꽃중대’등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지금도 TV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할 정도다.

<녹취> 北 TV 실화극(붉은 감) : “감이 익는 철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우리 중대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 우리들의 친아버지이시고 우리 병사들은 그이의 친자식들이라고 소리 높이 자랑하겠습니다.”

북한 김씨 일가가 이렇게 여군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김진무(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사실은 어느 사회나 여자는 약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김일성도 그렇고 김정일도 그렇고 여성이 군에 와서 복무를 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데, 거기에다가 많은 관심을 보여준다는 거는 내가 최고 지도자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만큼 배려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자기의 자애로움, 애민정신, 이런 것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거죠. 지금 김정은이가 하고 있는 것도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여군부대 시찰에 종종 동행하며 손수 여군 병사의 머리를 매만져주기도 했던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여군들의 숙소, 식당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리설주의 이런 모습도 ‘인민의 어머니’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 행보라는 분석이다.

북한에서 여군은 ‘인민군의 꽃’이라 불릴 만큼 한때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영화에도 여군들의 이런 모습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녹취> 北 영화(리 정치지도원) : “야, 정말 정치지도원 동지가 없다보니까 어머니 없는 집안처럼 썰렁했댔습니다.”

주인공인 여군은 여성 특유의 희생과 헌신으로 군의 단결을 이끌어 낸다.

<녹취>北 영화(우리 정치지도원) : “차별 없는 그 사랑의 품에 내가 살고 네가 사네....”

열병식과 같은 공식 행사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모습도 여군에 대한 인기를 높이는 데 한 몫을 했다.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점도 많은 여성들을 군으로 끌어들인 요인이었다.

지난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

간부들 사이로 군복을 입은 한 여성이 눈에 띈다.

어깨에 별 하나가 달린 우리의 준장에 해당하는 소장 계급.

여성으로는 오르기 힘든 고위급 자리다.

오랫동안 선군정치를 해 온 북한에서는 당원이 되거나 주요 고위직에 오르려면 군 복무 경력이 필수적이다.

지난 2010년,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여성으론 처음으로 별 4개, 인민군 대장 계급을 달았다.

후계자 시절과 집권 초기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김씨 일가의 혈통에만 주어진 특별한 혜택이긴 했지만, 북한에서 고위직과 군경력이 그만큼 밀접한 관계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인터뷰>이소연(前 북한군 상사/2008년 탈북) : “80년대 같은 경우는. 그때는 6년 동안의 군사복무가 끝나면 거의 100%가 당에 입당을 하고 제대를 했죠. 그러면 이렇게 당에 입당을 하고 온 여군들 대상으로 북한에서는 또 두 번째 대학 공부를 시킵니다. 그러면 군대 갔다 왔죠, 당원이 됐죠, 대학교까지 나왔다라고 하면 간부가 될 수 있는 징표 세 가지를 다 갖췄기 때문에 뭐 여군의 위상이 그때는 대단했다라고 볼 수도 있고요. 그만큼 또 군대 가기도 힘들었고 또는 사회에서 간부의 표식 또는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세력에 그 골간에는 여군 출신들이 꽤 많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여군의 위상은 1990년대 들어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 식량 보급이 절반 수준으로 줄면서 군인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징집 대상인 남성들이 기근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병력 부족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그 자리를 여군들이 채워야 했던 것이다.

<인터뷰> 김진무(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과거에는 일부 통신, 교환, 간호, 일반행정, 이 정도에서 여군들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하급 부대에는 별로 많지 않고 주로 군단 사령부나 여단 사령부나 큰 부대에 여군들이 많이 배치 됐는데, 이때 병사들이, 남자 병사들이 줄어들다보니까 이제 여군들로 보충을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여군이 지금 뭐 일부지만 적어도 30%는 되지 않겠나...”

그러나 식량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서 여군들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더 컸다.

<인터뷰> 채설향(前 북한 해군/2015년 탈북) : “물이 보장 안 되니까 세면 같은 거, 중대에서 보면 소량을 대야 같은 데다 하나 떠가지고 분대장이 세면을 하고 그 물에도 부분대장이 하고 내리 내리 그니까 이제 5명, 6명 정도가 한 개 분대인데 소량의 하나 가지고 그 물을 이제 세면을 하는 상황도 있었고... ”

<인터뷰> 김진무(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남자 병사들은 인근 마을이 있으면 나가서 훔쳐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여자 병사들은 특히 17살, 18살 되는 병사들은 사실 그렇게 할 수가 없단 말이죠. 먹을 게 없으니까 그냥 앉아가지고 굶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남자 병사들보다 여자 병사들의 어떤 영양 상태가 이게 더 열악하다, 이렇게도 볼 수가 있습니다. ”

신체적 차이를 무시한 훈련도 이뤄졌다.

<인터뷰> 채설향(前 북한 해군/2015년 탈북) : “산악훈련, 뭐 그다음에 이제 100리 강행군 같은 것도 하고, 10리, 10km 강행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이제 뭐 20kg 중량물을 들고 뛰는 훈련도 있거든요. 그때가 이제 남자들하고 똑같이 해야 되니까 똑같은 시간에 이제 출발해서 똑같은 시간에 들어와야 되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때는 처음에 그거 할 때는 저는 막 죽을 것만큼 힘들더라고요.”

고된 훈련과 영양실조의 결과 신체적‧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인터뷰> 이소연(前 북한군 상사/2008년 탈북) : “여군들이 영양실조 하면서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것이 생리현상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뭐 군사복무 하는 도중에 3년, 4년 정도 있다가 돌아오는 여성들도 있는데, 거의 안 돌아오는 여성도 꽤 많고요. 이러다 보니까 오히려 북한에서는 뭐냐하면 군대 갔다 온 여자하고는 절대 결혼을 안 하겠다라는 이런 기피 현상도 나오고요. 이런 속에서 10년, 거의 10년 가까운 군 생활을 하다보니까 여성으로서의 모든 것은 다 다 망쳐버리고 오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도 거의 왕따를 당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힘없는 여군 부하들을 상대로 한 간부들의 성범죄다.

지난해 4월,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

여군들에 대한 일상적인 성폭행 등 끔찍한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녹취> 최수향(前 북한 간호군인/2014년 탈북) : “나중에 임신까지 하게 됐는데, (성폭행 당한) 간호장이 그걸 밝히려고 당 조직에 제기를 했지만, 그걸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장은) 결국은 불명예스럽게 귀가(제대)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이소연(前 북한군 상사/2008년 탈북) : “2소대 30여명의 모든 군인들이 심지어 소대장까지.. 소대장까지 중대장, 부중대장한테 매일 밤 불려나가서 성폭행 당하고 강간당하고 성추행 당한 거죠. 실질적으로 뭐 이런... 제가 있던 우리 군단 지휘 보직 속에 거의 많은 중대에서 성추행은 일도 아니고요. 거의 일들이 1년에 한두 번씩 계속 있었습니다. ”

2014년, 김정은은 프로펠러 항공기만 조종했던 여군에게 전투기 조종 지시를 내리고 초음속 전투기 조종사까지 배출하라고 명령했다.

국가에 충성하는 모범적인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써 극적인 선전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였다.

<녹취> 조선중앙TV(2014년 11월) : “남성들도 타기 힘든 추격기를 나이어린 소녀들이 단독으로 탄다는 것은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높이 치하하셨습니다.”

여군의 노동력 동원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극심한 수해를 입은 함경북도, 이곳에도 여성군인들이 대거 투입됐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해 10월) : “남자들 못지않게 미장작업 진행하는 여자 군인들도 철근 조립과 기틀 조립을 하는 모든 군인들의 얼굴마다에는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군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채설향(前 북한해군/2015년 탈북) : “병이 없는 것도 있다고 병역서를 막 만들어가지고 오고 이런 사람들도 많댔어요. 남자나, 여자나 오줌 싸는 병이 있으면 그거는 신체검사에서 나타 안 나는 병이기 때문에 만들 수가 있잖아요. 부모들이 그런 수법을 많이 쓰더라고요. 오줌을 눈다, 밤에 이유 없이 오줌을 눈다, 이렇게 해가지고.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입당해서 간부를 이제 바라 안 보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다 이제 안 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

이런 상황일수록 김정은이 여군에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김진무(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 : “120만 대군을 유지해야 되는 이유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병력 규모는 줄이지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결국 대안은 여군을, 여자 병사들을 더 많이 충원해서 120만 대군을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 추세가 지속되고, 특히 인구통계학적으로 인구가 획기적으로 출산율이 높아지거나 건강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한은 북한의 여군 숫자는 앞으로도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봅니다. ”

앳된 얼굴로 김정은을 향해 충성을 다짐하는 북한 여군들.

그러나 사회적으로 출세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일곱 어린 나이에 입대한 북한 여군들의 현실은 고단함과 위험의 연속이다.

여군들에 대한 끔찍한 인권 유린에는 눈감은 채 그들을 체제 강화와 선전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 북한 정권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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