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② 입양 권유만…“자립 방해”

입력 2018.04.18 (17:35) 수정 2018.04.1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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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② 낳기도 전에…“자립 방해”

[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② 낳기도 전에…“자립 방해”

한 가정의 일이었던 임신과 출산이 이제 국가적 과제가 됐다. 아이가 귀한 시대, 둘째를 낳으면 고맙다며 나라에서 축하금을 줄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그 소중한 아이 중 누군가는 버려지고, 보호 시설에 머물거나 어딘가로 입양된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해외 입양 1위, 아동 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지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입양 아동의 90% 이상은 미혼모의 아이들이다.

[연관 기사] [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① “나는 엄마입니다”


"모두들 말했어요. 아이를 버려야 나도 살고 아이도 산다고..."

취재진이 만난 미혼모들에겐 갖가지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연에 공통적인 한가지가 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축하해'가 아닌 아이를 지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이 아빠가 병원을 가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병원에 가란 얘기가... 낙태에 관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황인 거에요." (6개월 아기 엄마)

아이를 낳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 엄마에게는 예외 없이 '입양' 권유가 시작됐다.

"인생이 더 중요하지 않으냐 새 출발 하는 게 어떻겠냐 애를 보내는 게 어떻겠냐...계속해요. 출산 전에도 그렇고 출산 후에도 그렇고 입양 숙려기간에도 보내면 어떻겠냐고... 심지어는 기존에 입양 부모분들 브리핑 하면서 아기 보내라고 해요." (5살 아이 엄마)

혼자서 출산과 양육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가진 것 없는 나와 함께 살아도 될까. 미혼모의 아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보다 입양돼 더 좋은 곳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어쩌면 흔히 하는 생각들, 그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떠밀리듯 아이를 포기하게 된다고 엄마들은 털어놨다.


■"입양, 시설 위주 정부 지원, 양육 포기하게 해"

어느 오후, 한 공원에서 만난 4살 아이의 엄마는 급식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한다고 했다. 일당제라 불규칙하긴 하지만 월 80만 원 정도를 벌고 정부에선 한 달에 13만 원을 양육비로 지원받는다.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비는 엄마의 나이에 따라 18만 원까지 나온다. (자녀가 어린이면 13만 원, 청소년인 경우에는 5만 원이 추가된다). 나랏돈을 지원받기는 만만찮다. 가족과 단절된 관계를 공식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아이를 둘러업고 수많은 서류를 내러 다녀야 해 지원을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기저귀랑 분유 지원 제도가 있었는데 안된다는 거에요. 아버지 재산이 있다고. 나는 형편이 이런데 할아버지가 돈이 있으니까…. 지금 현재 지침상 조례 법상 그렇대요. 못 해주겠대요."

"서류를 몇백 장을 뗀 것 같아요. 아기 태어나고 지원받으려고 여기저기 제출한 서류만……."

아이를 입양 보내기 위해 보호 시설에 맡기면 의료비 등 각종 수당을 포함해 시설에 월 평균 128만 원이 지원된다. 입양한 가정에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월 15만 원, 입양 기관에는 입양 알선 수수료가 최고 270만 원까지 지급된다. 아이가 파양돼 돌아올 경우 입양 철회 비용도 나라에서 70여만 원까지 지원한다.

원 가정이 아닌 시설과 입양 위주의 정부 지원책에 대해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졌지만 오랜 세월 단단해져 온 지원 체계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가능하면 원 가정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사회건강을 위해서나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훨씬 더 좋은 바람직한 방법이죠. 근데 우리는 그 돕는 것보다는 쉽게 포기해서, 대신 키워주는 데 더 많은 돈을 들이고 그걸 너무 쉽게 하는 거예요." (노혜련/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자립하고 싶은데... 돈 더 벌면 안 된대요."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두 아들에 애교쟁이 4살 딸까지, 홀로 세 아이를 키우는 오 선씨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가계부를 쓰며 한숨을 내쉰다. 매일 8시간씩 계약직으로 일해 받는 100여만 원의 돈으로는 네 식구 살림이 너무 빠듯하다. 일을 좀 늘려볼까 하다가도 망설이게 된다. 4인 가족 생계 급여 기준인 134만 원을 넘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벌면 애들 교육비가 끊기고 또 얼마 벌면 의료지원이 끊기고, 한마디로 박탈시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무서워서 일을 못 나가겠다는 거예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 엄마는 하다못해 집에서 20만 원짜리 부업이라도 하려 했지만, 구청의 전화를 받고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소득이 찍히면 득달같이 전화가 와요. 수입 잡혔다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3개월 이상 소득이 찍히면 탈수급이 되는 거예요."

출산 전 애를 낳기 위해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는 조건은 '무직'이다. 일을 그만둬야 출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취재 과정 중 만난 많은 엄마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돈을 벌면 이번엔 그나마 받던 정부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진다. 전문가들은 수급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지원하는 체계가 제대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미혼모들은 일하는 걸 포기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남을지, 근로 빈곤층으로 들어갈지 고민하게 된다.

"근데 수급자로 어떻게 살아요. 2인 가구 기준으로 40몇 만 원 들어오거든요. 생계비가 근데, 그 돈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잖아요. 어떻게든 소득을 조금 더 발생을 시켜 보려고 하는데 그런 게 찍히면 또 가만히 놔두질 않아요. 그러니까 엄마들한테 약간의 어느 정도의 소득은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10년 동안 직접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의 비율은 50% 이상 늘었다. 하지만 2016년 입양 아동 880명 가운데 813명이 미혼모의 아이들이었다. 입양 아동의 수는 줄어도 미혼모 아이의 비율은 여전히 90% 이상이다. 취재진에게 미혼모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조금만 더 현실을 반영한 지원과 약간의 시간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그러면 내 아이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연속 기획]
[미혼모] ① 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미혼모] ② “다른 곳에 알아보세요”…견디기 힘든 무관심
[미혼모] ③ 낳으려 해도 키우려 해도…‘포기’ 유도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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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② 입양 권유만…“자립 방해”
    • 입력 2018-04-18 17:35:40
    • 수정2018-04-18 22:24:12
    취재K
한 가정의 일이었던 임신과 출산이 이제 국가적 과제가 됐다. 아이가 귀한 시대, 둘째를 낳으면 고맙다며 나라에서 축하금을 줄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그 소중한 아이 중 누군가는 버려지고, 보호 시설에 머물거나 어딘가로 입양된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해외 입양 1위, 아동 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지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입양 아동의 90% 이상은 미혼모의 아이들이다.

[연관 기사] [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① “나는 엄마입니다”


"모두들 말했어요. 아이를 버려야 나도 살고 아이도 산다고..."

취재진이 만난 미혼모들에겐 갖가지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연에 공통적인 한가지가 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축하해'가 아닌 아이를 지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이 아빠가 병원을 가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병원에 가란 얘기가... 낙태에 관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황인 거에요." (6개월 아기 엄마)

아이를 낳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 엄마에게는 예외 없이 '입양' 권유가 시작됐다.

"인생이 더 중요하지 않으냐 새 출발 하는 게 어떻겠냐 애를 보내는 게 어떻겠냐...계속해요. 출산 전에도 그렇고 출산 후에도 그렇고 입양 숙려기간에도 보내면 어떻겠냐고... 심지어는 기존에 입양 부모분들 브리핑 하면서 아기 보내라고 해요." (5살 아이 엄마)

혼자서 출산과 양육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가진 것 없는 나와 함께 살아도 될까. 미혼모의 아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보다 입양돼 더 좋은 곳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어쩌면 흔히 하는 생각들, 그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떠밀리듯 아이를 포기하게 된다고 엄마들은 털어놨다.


■"입양, 시설 위주 정부 지원, 양육 포기하게 해"

어느 오후, 한 공원에서 만난 4살 아이의 엄마는 급식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한다고 했다. 일당제라 불규칙하긴 하지만 월 80만 원 정도를 벌고 정부에선 한 달에 13만 원을 양육비로 지원받는다.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비는 엄마의 나이에 따라 18만 원까지 나온다. (자녀가 어린이면 13만 원, 청소년인 경우에는 5만 원이 추가된다). 나랏돈을 지원받기는 만만찮다. 가족과 단절된 관계를 공식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아이를 둘러업고 수많은 서류를 내러 다녀야 해 지원을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기저귀랑 분유 지원 제도가 있었는데 안된다는 거에요. 아버지 재산이 있다고. 나는 형편이 이런데 할아버지가 돈이 있으니까…. 지금 현재 지침상 조례 법상 그렇대요. 못 해주겠대요."

"서류를 몇백 장을 뗀 것 같아요. 아기 태어나고 지원받으려고 여기저기 제출한 서류만……."

아이를 입양 보내기 위해 보호 시설에 맡기면 의료비 등 각종 수당을 포함해 시설에 월 평균 128만 원이 지원된다. 입양한 가정에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월 15만 원, 입양 기관에는 입양 알선 수수료가 최고 270만 원까지 지급된다. 아이가 파양돼 돌아올 경우 입양 철회 비용도 나라에서 70여만 원까지 지원한다.

원 가정이 아닌 시설과 입양 위주의 정부 지원책에 대해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졌지만 오랜 세월 단단해져 온 지원 체계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가능하면 원 가정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사회건강을 위해서나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훨씬 더 좋은 바람직한 방법이죠. 근데 우리는 그 돕는 것보다는 쉽게 포기해서, 대신 키워주는 데 더 많은 돈을 들이고 그걸 너무 쉽게 하는 거예요." (노혜련/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자립하고 싶은데... 돈 더 벌면 안 된대요."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두 아들에 애교쟁이 4살 딸까지, 홀로 세 아이를 키우는 오 선씨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가계부를 쓰며 한숨을 내쉰다. 매일 8시간씩 계약직으로 일해 받는 100여만 원의 돈으로는 네 식구 살림이 너무 빠듯하다. 일을 좀 늘려볼까 하다가도 망설이게 된다. 4인 가족 생계 급여 기준인 134만 원을 넘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벌면 애들 교육비가 끊기고 또 얼마 벌면 의료지원이 끊기고, 한마디로 박탈시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무서워서 일을 못 나가겠다는 거예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 엄마는 하다못해 집에서 20만 원짜리 부업이라도 하려 했지만, 구청의 전화를 받고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소득이 찍히면 득달같이 전화가 와요. 수입 잡혔다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3개월 이상 소득이 찍히면 탈수급이 되는 거예요."

출산 전 애를 낳기 위해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는 조건은 '무직'이다. 일을 그만둬야 출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취재 과정 중 만난 많은 엄마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돈을 벌면 이번엔 그나마 받던 정부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진다. 전문가들은 수급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지원하는 체계가 제대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미혼모들은 일하는 걸 포기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남을지, 근로 빈곤층으로 들어갈지 고민하게 된다.

"근데 수급자로 어떻게 살아요. 2인 가구 기준으로 40몇 만 원 들어오거든요. 생계비가 근데, 그 돈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잖아요. 어떻게든 소득을 조금 더 발생을 시켜 보려고 하는데 그런 게 찍히면 또 가만히 놔두질 않아요. 그러니까 엄마들한테 약간의 어느 정도의 소득은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지난 10년 동안 직접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의 비율은 50% 이상 늘었다. 하지만 2016년 입양 아동 880명 가운데 813명이 미혼모의 아이들이었다. 입양 아동의 수는 줄어도 미혼모 아이의 비율은 여전히 90% 이상이다. 취재진에게 미혼모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조금만 더 현실을 반영한 지원과 약간의 시간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그러면 내 아이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연속 기획]
[미혼모] ① 나는 대한민국 미혼모입니다
[미혼모] ② “다른 곳에 알아보세요”…견디기 힘든 무관심
[미혼모] ③ 낳으려 해도 키우려 해도…‘포기’ 유도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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