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대책이 반쪽이라는 이유…“CCTV 쏙 빠져”

입력 2018.07.24 (19:51) 수정 2018.08.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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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서구와 경기 동두천에서 어린이가 숨지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부가 오늘(24일)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해마다 늘어나는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고를 뿌리 뽑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발표된 '어린이집 통학차량 안전사고 및 아동학대 근절 대책' 가운데 아동학대와 관련된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올 연말까지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잠든 아이 확인 장치'를 설치토록 하겠다는 등 안전사고 관련 대책들입니다.


특히 어린이집 CCTV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CCTV 관련 내용은 언급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2015년 전국 어린이집에 CCTV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카메라에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아이를 학대하거나 학부모 요청에도 영상 열람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열람 거부나 영상 삭제, 관리 부실 등 CCTV 운영 문제로 적발된 어린이집은 지난해에만 1,470곳에 이릅니다. 전체 점검 대상 10곳 가운데 1곳꼴입니다.

[연관 기사] [뉴스9] 있어도 못 보는 CCTV…실시간 모니터링 청원 봇물

CCTV 상시 열람이 근본적으로 아동 학대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당한 일을 정확하게 진술하지 못하는 영유아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CCTV는 학대가 의심될 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부모들을 초청해 원하는 날짜의 자녀 생활을 볼 수 있도록 공개했더니 오히려 학부모와 교사 모두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서울의 한 지자체도 있습니다. CCTV 공개를 정례화한 뒤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서 CCTV를 보여달라는 부모들의 요구가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연관 기사] 어린이집 CCTV 공개…부모·교사 ‘만족’(2016.12.13)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CCTV 상시 공개를 꺼립니다. 보육 교사의 인권 문제도 있지만, 제한된 각도에서 음성 정보 없이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CCTV가 학부모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부모의 요청으로 CCTV를 공개했다가, 제공한 영상 속에서 다른 아이의 피해 사실도 함께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은' 어린이집이라면 학부모의 공개 요청을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연관 기사] ‘원아 학대’ 부천 어린이집 학부모 항의 시위…피해 아동 더 늘어

따라서 일부 어린이집은 '전원이 빠져 있었다', '고장이 났다', '경찰을 대동해야 보여줄 수 있다'는 말로 CCTV 열람을 피하곤 합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상 CCTV를 설치하지 않은 어린이집은 적발 횟수에 따라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냅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녹화한 영상을 보관하지 않거나, 부모의 열람 요청을 거부해도 물어야 하는 과태료는 최대 150만 원입니다. 문제는 일부러 전원을 빼놨든, 고장을 냈든 과태료는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일부러 CCTV 자료를 삭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생후 7개월 된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어린이집 원장은 CCTV 영상이 실수로 지워졌다며 발을 뺐고, 결국 아동 학대 대신 '영상정보 삭제 및 보관기간 위반' 죄만 인정돼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그친 사례가 소개됩니다.

[연관 기사] 어린이집 CCTV 꺼놔도…처벌은 솜방망이

[참고자료] [김순례 의원실 국감 보도자료] 있으나 마나 한 어린이집 CCTV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된 지 2년 8개월이 흘렀지만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CCTV 상시 열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학부모와 어린이집 측 양쪽에게 CCTV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CCTV 관련 정책이 이번 대책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정부가 오늘 내놓은 아동학대 근절 방안은 학대 사건이 일어난 어린이집 원장은 5년간 다른 시설에 취업할 수 없도록 제재를 강화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이어지는 내용도 담당하는 어린이집에 문제가 생기면 지방자치단체에 불리한 평가를 주겠다거나,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내용 등입니다. 지난 2015년 정부가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처럼 보육교사 자격 취득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보육교사 검증은 학부모 몫?…“CCTV로는 부족”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는 보육교사의 근무환경 개선 방안도 구체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서류 간소화와 행정 업무 자동화, 8시간 근무 보장 등을 통해 보육에 전념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내용만 담겼을 뿐입니다. 이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여성·영유아 보육단체와 함께 이번 대책에 관한 긴급 좌담회를 준비 중인 참여연대 김남희 복지 조세 팀장은 정부가 감시와 처벌 위주로 꾸려진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보육교사의 업무 환경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집중하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대체 교사를 얼마나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팀장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적지 않다며, 보육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좀 더 충실히 반영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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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4 19:51:14
    • 수정2018-08-17 13:49:39
    취재K
최근 서울 강서구와 경기 동두천에서 어린이가 숨지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부가 오늘(24일)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해마다 늘어나는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고를 뿌리 뽑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발표된 '어린이집 통학차량 안전사고 및 아동학대 근절 대책' 가운데 아동학대와 관련된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올 연말까지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잠든 아이 확인 장치'를 설치토록 하겠다는 등 안전사고 관련 대책들입니다.


특히 어린이집 CCTV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CCTV 관련 내용은 언급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2015년 전국 어린이집에 CCTV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카메라에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아이를 학대하거나 학부모 요청에도 영상 열람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열람 거부나 영상 삭제, 관리 부실 등 CCTV 운영 문제로 적발된 어린이집은 지난해에만 1,470곳에 이릅니다. 전체 점검 대상 10곳 가운데 1곳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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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상시 열람이 근본적으로 아동 학대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당한 일을 정확하게 진술하지 못하는 영유아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CCTV는 학대가 의심될 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부모들을 초청해 원하는 날짜의 자녀 생활을 볼 수 있도록 공개했더니 오히려 학부모와 교사 모두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서울의 한 지자체도 있습니다. CCTV 공개를 정례화한 뒤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서 CCTV를 보여달라는 부모들의 요구가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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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CCTV 상시 공개를 꺼립니다. 보육 교사의 인권 문제도 있지만, 제한된 각도에서 음성 정보 없이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CCTV가 학부모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부모의 요청으로 CCTV를 공개했다가, 제공한 영상 속에서 다른 아이의 피해 사실도 함께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은' 어린이집이라면 학부모의 공개 요청을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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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일부 어린이집은 '전원이 빠져 있었다', '고장이 났다', '경찰을 대동해야 보여줄 수 있다'는 말로 CCTV 열람을 피하곤 합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상 CCTV를 설치하지 않은 어린이집은 적발 횟수에 따라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냅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녹화한 영상을 보관하지 않거나, 부모의 열람 요청을 거부해도 물어야 하는 과태료는 최대 150만 원입니다. 문제는 일부러 전원을 빼놨든, 고장을 냈든 과태료는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일부러 CCTV 자료를 삭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생후 7개월 된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어린이집 원장은 CCTV 영상이 실수로 지워졌다며 발을 뺐고, 결국 아동 학대 대신 '영상정보 삭제 및 보관기간 위반' 죄만 인정돼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그친 사례가 소개됩니다.

[연관 기사] 어린이집 CCTV 꺼놔도…처벌은 솜방망이

[참고자료] [김순례 의원실 국감 보도자료] 있으나 마나 한 어린이집 CCTV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된 지 2년 8개월이 흘렀지만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CCTV 상시 열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학부모와 어린이집 측 양쪽에게 CCTV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CCTV 관련 정책이 이번 대책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정부가 오늘 내놓은 아동학대 근절 방안은 학대 사건이 일어난 어린이집 원장은 5년간 다른 시설에 취업할 수 없도록 제재를 강화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이어지는 내용도 담당하는 어린이집에 문제가 생기면 지방자치단체에 불리한 평가를 주겠다거나,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내용 등입니다. 지난 2015년 정부가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처럼 보육교사 자격 취득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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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는 보육교사의 근무환경 개선 방안도 구체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서류 간소화와 행정 업무 자동화, 8시간 근무 보장 등을 통해 보육에 전념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내용만 담겼을 뿐입니다. 이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여성·영유아 보육단체와 함께 이번 대책에 관한 긴급 좌담회를 준비 중인 참여연대 김남희 복지 조세 팀장은 정부가 감시와 처벌 위주로 꾸려진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보육교사의 업무 환경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집중하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대체 교사를 얼마나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팀장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적지 않다며, 보육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좀 더 충실히 반영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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