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교비로 명품 쇼핑까지…줄줄 샌 ‘2조 원’ 예산

입력 2018.10.15 (08:31) 수정 2018.10.15 (09:2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

명품가방과 성인용품은 물론 해외여행 항공권까지, 어린이들 교비로 써야 할 돈이 이런 걸 사는데 쓰였습니다.

사립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유치원비만 한달에 3~50만원에 해마다 2조 원의 예산이 지원되는데, 정작 어린이들은 생일날 케이크 한 조각 먹지 못한 곳도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요,

지금부터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경기도의 한 유치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이른 아침부터 엄마들이 유치원에 모였습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이거 완전 뿌리 뽑아야 해요. 진짜 화가 나서…."]

하지만 정작 유치원 원장은 자리에 없었습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원장이 안 나왔어요. 입원했대요."]

이 유치원은 3백 명이 넘는 원아가 있을 정도로 지역에선 알려진 유치원, 그만큼 입학하기조차 어려운 곳인데요.

[학부모/음성변조 :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휴가 내서라도 입학설명회를 와야 한다니까요. 안 가면 추첨권을 안 줘요. (할머니, 할아버지 다 동원해야 해요.) (추첨권 받으려고) 아르바이트도 써요."]

감사가 끝난 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1월 이 유치원 원장을 파면했는데요.

교육 당국이 사립 유치원 원장을 파면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적발된 비리 종류만 13가지로 6억 8천 여 만원 회수 조치를 받았는데요.

하지만, 파면 조치 이후에도 원장은 그대로였고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상담하러 왔을 때 자기는 원장이라고 소개를 하더라고요. (원감도 몰랐다는데….)"]

도대체 어떤 비리를 저질렀던 걸까?

이 유치원의 카드 사용 내역입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썼다기엔 이상한 내역들이 수두룩한데요.

명품가방과 노래방, 숙박업소에다가 미용실과 화장품, 백화점 등에 사용된 게 무려 천 여 건, 총 5천만 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인용품을 사거나 아파트 관리비나 외제차의 유지비,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과 학원비도 교비에서 사용됐습니다.

유치원은 운영자가 월급 외엔 수익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원장은 월급 명목으로 2년간 4억 원을 받았고, 두 아들 역시 직원으로 채용해 월급과 수당을 지급했는데요.

학부모들은 이제야 그동안 부실했던 급식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엄마 케이크는 생일 잔치할 때 초만 부는 거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학부모/음성변조 : "(떡을) 더 달라고 하면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떡은 3개가 최대한이야.'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이 유치원은 2년간 정부에서 누리과정비로 25억 원을 지원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저희는 힘들게 벌어서 유치원 보내고 하는데 얼토당토 안 되는 데다 썼다는 자체가 더 배신감이 드는 거죠. 원장 믿고 보냈는데 그러니까 더…."]

전국의 17개 교육청이 2014년부터 5년 간 감사를 벌인 결과, 전국 1800여 개의 유치원 가운데 1100여 곳에서 무려 6천 건에 가까운 비리가 적발됐는데요.

이 가운데 국공립 유치원은 60여 곳, 나머지는 사립유치원입니다.

경기도의 또 다른 유치원, 이곳은 설립자가 사무실장과 영양사로 등록한 뒤 두 번의 월급을 받아갔습니다.

막상 급식비에서 인건비를 보태느라 1주일에 한 번만 식재료를 산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학부모/음성변조 : "아이들 식비에 들어갈 돈이 원장 월급에 쓰였다길래 그게 제일 엄마들이 격분했죠. 믿고 했는데…."]

인천의 한 유치원 원장은 교비를 건물 구입대금과 공사비, 자동차세 등에 사용해 적발됐는데 모두 아이들을 위해 쓴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천 OO유치원 원장/음성변조 : "(구입한 건물은) 자주 특별실로 쓰고 있거든요. 아래층은 다 아이들이 쓰는 거예요. 원장들이 다 그런 의미로 그랬을 거예요. 내 자가용인데 사실 유치원 업무하면서 많이 쓰지…."]

그렇다면, 왜 이제야 이같은 비리 의혹 유치원 명단이 공개된 걸까.

[송병춘/전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 : "막무가내로 이 사람들이 감사를 거부한 거예요. 감사는 사법기관에서 수사하듯이 압수 수색하고 이렇게 할 수는 없어요."]

이 과정에서 일부 유치원 원장들은 감사관이나 교육감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감사를 피하기 위해 감사관에게 금품을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순영/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 : "골든바를 보냈다거나 10억을 주겠다든가, 차를 바꿔주겠다든가 그렇게 회유책을 썼다고 해요. 현장실사를 나갔는데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정말 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비위 사실이 적발됐지만 유치원에 내려진 처분은 95%가 주의와 경고 조치였습니다

막상 적발되더라도 돈을 회수하거나 규제할 법이 없다는데요.

[송병춘/전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 : "사립 유치원은 그 사람, 개인이 운영하는 거예요. 개인 사업처럼. (국가) 보조금은 자기 소유의 돈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돈을 아이들을 위해서, 유치원 운영을 위해서 쓰지 않아도 그건 횡령죄가 되지 않아요."]

이런 상황인데도, 엄마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리 유치원 명단에 오른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부들부들 떨리죠. (아이들을) 볼모로 잡혀있기 때문에…."]

[학부모/음성변조 : "유치원만 보낼 수 있으면 감사한 거예요. 선택권이 없어요. 공립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많이 뽑지도 않고…."]

무엇보다 유치원에 국가회계시스템을 도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비리 유치원 감사 내용을 지속적으로 학부모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시민단체는 지적합니다.

[장하나/정치하는 엄마들 공동 대표 : "부모들이 계속 모르니까 그런 유치원을 기피하거나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이런 일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학부모의 알 권리가 중요하고 여기에는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과 건강이 달려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엔 비리 유치원을 강력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제기됐고, 동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비리 유치원 명단이 추가 공개될 것이라고 예고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교비로 명품 쇼핑까지…줄줄 샌 ‘2조 원’ 예산
    • 입력 2018-10-15 08:38:34
    • 수정2018-10-15 09:25:39
    아침뉴스타임
[기자]

명품가방과 성인용품은 물론 해외여행 항공권까지, 어린이들 교비로 써야 할 돈이 이런 걸 사는데 쓰였습니다.

사립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유치원비만 한달에 3~50만원에 해마다 2조 원의 예산이 지원되는데, 정작 어린이들은 생일날 케이크 한 조각 먹지 못한 곳도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요,

지금부터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경기도의 한 유치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이른 아침부터 엄마들이 유치원에 모였습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이거 완전 뿌리 뽑아야 해요. 진짜 화가 나서…."]

하지만 정작 유치원 원장은 자리에 없었습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원장이 안 나왔어요. 입원했대요."]

이 유치원은 3백 명이 넘는 원아가 있을 정도로 지역에선 알려진 유치원, 그만큼 입학하기조차 어려운 곳인데요.

[학부모/음성변조 :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휴가 내서라도 입학설명회를 와야 한다니까요. 안 가면 추첨권을 안 줘요. (할머니, 할아버지 다 동원해야 해요.) (추첨권 받으려고) 아르바이트도 써요."]

감사가 끝난 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1월 이 유치원 원장을 파면했는데요.

교육 당국이 사립 유치원 원장을 파면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적발된 비리 종류만 13가지로 6억 8천 여 만원 회수 조치를 받았는데요.

하지만, 파면 조치 이후에도 원장은 그대로였고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상담하러 왔을 때 자기는 원장이라고 소개를 하더라고요. (원감도 몰랐다는데….)"]

도대체 어떤 비리를 저질렀던 걸까?

이 유치원의 카드 사용 내역입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썼다기엔 이상한 내역들이 수두룩한데요.

명품가방과 노래방, 숙박업소에다가 미용실과 화장품, 백화점 등에 사용된 게 무려 천 여 건, 총 5천만 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인용품을 사거나 아파트 관리비나 외제차의 유지비,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과 학원비도 교비에서 사용됐습니다.

유치원은 운영자가 월급 외엔 수익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원장은 월급 명목으로 2년간 4억 원을 받았고, 두 아들 역시 직원으로 채용해 월급과 수당을 지급했는데요.

학부모들은 이제야 그동안 부실했던 급식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엄마 케이크는 생일 잔치할 때 초만 부는 거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학부모/음성변조 : "(떡을) 더 달라고 하면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떡은 3개가 최대한이야.'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이 유치원은 2년간 정부에서 누리과정비로 25억 원을 지원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저희는 힘들게 벌어서 유치원 보내고 하는데 얼토당토 안 되는 데다 썼다는 자체가 더 배신감이 드는 거죠. 원장 믿고 보냈는데 그러니까 더…."]

전국의 17개 교육청이 2014년부터 5년 간 감사를 벌인 결과, 전국 1800여 개의 유치원 가운데 1100여 곳에서 무려 6천 건에 가까운 비리가 적발됐는데요.

이 가운데 국공립 유치원은 60여 곳, 나머지는 사립유치원입니다.

경기도의 또 다른 유치원, 이곳은 설립자가 사무실장과 영양사로 등록한 뒤 두 번의 월급을 받아갔습니다.

막상 급식비에서 인건비를 보태느라 1주일에 한 번만 식재료를 산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학부모/음성변조 : "아이들 식비에 들어갈 돈이 원장 월급에 쓰였다길래 그게 제일 엄마들이 격분했죠. 믿고 했는데…."]

인천의 한 유치원 원장은 교비를 건물 구입대금과 공사비, 자동차세 등에 사용해 적발됐는데 모두 아이들을 위해 쓴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천 OO유치원 원장/음성변조 : "(구입한 건물은) 자주 특별실로 쓰고 있거든요. 아래층은 다 아이들이 쓰는 거예요. 원장들이 다 그런 의미로 그랬을 거예요. 내 자가용인데 사실 유치원 업무하면서 많이 쓰지…."]

그렇다면, 왜 이제야 이같은 비리 의혹 유치원 명단이 공개된 걸까.

[송병춘/전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 : "막무가내로 이 사람들이 감사를 거부한 거예요. 감사는 사법기관에서 수사하듯이 압수 수색하고 이렇게 할 수는 없어요."]

이 과정에서 일부 유치원 원장들은 감사관이나 교육감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감사를 피하기 위해 감사관에게 금품을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순영/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 : "골든바를 보냈다거나 10억을 주겠다든가, 차를 바꿔주겠다든가 그렇게 회유책을 썼다고 해요. 현장실사를 나갔는데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정말 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비위 사실이 적발됐지만 유치원에 내려진 처분은 95%가 주의와 경고 조치였습니다

막상 적발되더라도 돈을 회수하거나 규제할 법이 없다는데요.

[송병춘/전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 : "사립 유치원은 그 사람, 개인이 운영하는 거예요. 개인 사업처럼. (국가) 보조금은 자기 소유의 돈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돈을 아이들을 위해서, 유치원 운영을 위해서 쓰지 않아도 그건 횡령죄가 되지 않아요."]

이런 상황인데도, 엄마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리 유치원 명단에 오른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학부모/음성변조 : "부들부들 떨리죠. (아이들을) 볼모로 잡혀있기 때문에…."]

[학부모/음성변조 : "유치원만 보낼 수 있으면 감사한 거예요. 선택권이 없어요. 공립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많이 뽑지도 않고…."]

무엇보다 유치원에 국가회계시스템을 도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비리 유치원 감사 내용을 지속적으로 학부모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시민단체는 지적합니다.

[장하나/정치하는 엄마들 공동 대표 : "부모들이 계속 모르니까 그런 유치원을 기피하거나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이런 일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학부모의 알 권리가 중요하고 여기에는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과 건강이 달려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엔 비리 유치원을 강력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제기됐고, 동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비리 유치원 명단이 추가 공개될 것이라고 예고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