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증인2179명] ② 국감 때면 해외 가는 회장님, 불러도 반도 안 나와

입력 2018.10.29 (16:12) 수정 2018.11.2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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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정용진, 정유경, 정지선

2012년 가을 국회가 대기업 총수일가 4명을 불러들였다. 당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회 정무위원회가 국정감사에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유통재벌 4명이 한곳에 모이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회장 등 4명이 마치 짠 듯 일제히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감장에 출석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연관기사] [생생경제] ‘국감 증인’ 총수들, 줄줄이 해외 출장

국회 정무위는 이들의 불출석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 4명을 벌금 400만~7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들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결국, 법원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고, 신동빈 롯데 부회장 등 3명의 유통재벌도 각각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모두 검찰 구형보다 2배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법원의 이례적인 움직임에도, 당시 이들의 재산에 비해 벌금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관기사] 재벌 벌금 ‘천만 원’…형평성 논란

2009년 이후 증인 출석률 80.5%

80.5%. KBS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국감장에 불려 나온 일반증인 2,478명(중복포함 2,633건)의 출석률을 전수조사해 나온 숫자다. 2,633건 중 514건의 불출석이 발생했다. 사장 대신 회사 임원이 나오는 등 대리 출석한 경우도 불출석으로 봤다.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2조에 따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 요구를 받은 때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따라야 한다. 하지만 불출석률은 19.5%나 된다.

불출석률 높은 직업…역시 회장님?


전체 출석률은 80%지만, 출석률이 낮은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출석률이 제일 낮은 건 회장님이다. 국정감사 증인 2,600여 명 중 직책에 ‘회장’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사람은 92명이었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등 이익단체의 회장도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 기업 회장이다. 이렇게 추린 '회장'의 출석률은 48.9%에 불과했다. 회장님은 국감에 불러도 절반 이상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재벌총수로는 처음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화제가 됐다. 물론 그전에도 재벌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아울러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최근 국감 단골손님이 되고 있는 외국계 기업 대표의 출석률도 68.6%로 평균보다 낮았다. 구글 대표의 경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번 국감에 증인으로 불렸는데, 딱 절반인 3번만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애플 대표는 5번 불렸는데, 2번만 출석했다.

불출석 사유 10건 중 3건이 해외출장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았음에도 국감장에 나갈 수 없다면 불출석 사유를 적은 불출석 사유서를 국감일 3일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국감에 나가지 않은 증인들의 불출석 사유를 확인해보니 가장 많은 건 해외출장이었다.


전체 불출석 514명 중 18명이 2건 이상의 사유를 제출했고, 중복을 허용해 집계하니 534건의 불출석 사유가 집계됐다. 이 중 29%(155건)가 해외출장이었다. 해외체류 3%(16건)를 더하면 10건 중 3건 이상이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국감에 나오지 않은 셈이다.

19%(103건)는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수감·재판 중이거나 검찰수사 등 사법처리 중이라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사례도 68건(13%)이었다.

소재파악 안 됨, 연락불가, 잠적 등 연락 두절을 이유로 국감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도 21명(4%)이나 됐다. 수차례 전화는 물론이고, 사무실이나 집 등을 국회에서 직접 찾아갔지만, 출석통보조차 할 수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상천외한 불출석 사유도 많았다. 2013년에는 전영조 제주항공 운항본부장이 국감장 오출석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10월 15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회의실에서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는데, 전 본부장이 국회로 가는 바람에 시간 내 국감 출석이 불가능했다. 국감장 오출석은 이 건이 유일했다. 이밖에 경찰에 수배 중이라는 이유로 국감장에 출석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해외에서 진행되는 딸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국감에 출석할 수 없다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증인도 있었다.

불출석으로 고발당한 증인 9년간 총 58명

무단으로 불출석하거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더라도 국정감사 위원들이 불출석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면 법에 따라 불출석한 증인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지난 2009년부터 9년간 불출석한 증인 514명 중 불출석을 이유로 검찰고발 조치된 증인은 총 58명이다.


2012년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회장 등 무려 16명의 증인이 불출석을 이유로 검찰 고발됐다. 이 16명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300만~1,500만 원의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11명이 검찰고발 조치됐다.

이렇게 불출석을 이유로 검찰에 고발되면 어떻게 처리될까?


이와 관련해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10일 최근 5년간 국회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에서 74명이 불출석을 이유로 고발당했다고 밝혔다.

검찰 처분결과 이중 41명이 기소됐고, 30명이 기각되거나 무혐의 처분됐다. 7명은 기소유예됐다. 검찰기소로 법원 재판까지 간 경우 24명이 벌금형을, 2명이 징역형 처벌을 받았다. 징역형 2건은 모두 다른 사건과 병합해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벌금 수백만 원이 많게는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진 재벌 총수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해 "기업총수가 매년 국감 때를 맞춰 일부러 해외 출장을 잡고 안 나온다면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겠냐"며 "올해도 불출석 증인에 대한 고발과 처벌이 논의되겠지만, 고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기업총수 입장에서는 국회에 불출석하고 벌금 몇백 내는 게 이득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러도 나오지 않는 회장님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개선책 없이 해마다 재벌총수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국회.
TV 등으로 중계되는 국정감사에서 재벌총수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국정감사를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연관기사] [국감증인2179명] ① 말 못하는 증인들…이럴거면 왜 불렀나요?

데이터 수집·분석 장슬기 seu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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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감증인2179명] ② 국감 때면 해외 가는 회장님, 불러도 반도 안 나와
    • 입력 2018-10-29 16:12:53
    • 수정2018-11-20 15: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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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정용진, 정유경, 정지선 2012년 가을 국회가 대기업 총수일가 4명을 불러들였다. 당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회 정무위원회가 국정감사에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유통재벌 4명이 한곳에 모이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회장 등 4명이 마치 짠 듯 일제히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감장에 출석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연관기사] [생생경제] ‘국감 증인’ 총수들, 줄줄이 해외 출장 국회 정무위는 이들의 불출석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 4명을 벌금 400만~7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들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결국, 법원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고, 신동빈 롯데 부회장 등 3명의 유통재벌도 각각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모두 검찰 구형보다 2배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법원의 이례적인 움직임에도, 당시 이들의 재산에 비해 벌금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관기사] 재벌 벌금 ‘천만 원’…형평성 논란 2009년 이후 증인 출석률 80.5% 80.5%. KBS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국감장에 불려 나온 일반증인 2,478명(중복포함 2,633건)의 출석률을 전수조사해 나온 숫자다. 2,633건 중 514건의 불출석이 발생했다. 사장 대신 회사 임원이 나오는 등 대리 출석한 경우도 불출석으로 봤다.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2조에 따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 요구를 받은 때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따라야 한다. 하지만 불출석률은 19.5%나 된다. 불출석률 높은 직업…역시 회장님? 전체 출석률은 80%지만, 출석률이 낮은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출석률이 제일 낮은 건 회장님이다. 국정감사 증인 2,600여 명 중 직책에 ‘회장’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사람은 92명이었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등 이익단체의 회장도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 기업 회장이다. 이렇게 추린 '회장'의 출석률은 48.9%에 불과했다. 회장님은 국감에 불러도 절반 이상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재벌총수로는 처음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화제가 됐다. 물론 그전에도 재벌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아울러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최근 국감 단골손님이 되고 있는 외국계 기업 대표의 출석률도 68.6%로 평균보다 낮았다. 구글 대표의 경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번 국감에 증인으로 불렸는데, 딱 절반인 3번만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애플 대표는 5번 불렸는데, 2번만 출석했다. 불출석 사유 10건 중 3건이 해외출장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았음에도 국감장에 나갈 수 없다면 불출석 사유를 적은 불출석 사유서를 국감일 3일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국감에 나가지 않은 증인들의 불출석 사유를 확인해보니 가장 많은 건 해외출장이었다. 전체 불출석 514명 중 18명이 2건 이상의 사유를 제출했고, 중복을 허용해 집계하니 534건의 불출석 사유가 집계됐다. 이 중 29%(155건)가 해외출장이었다. 해외체류 3%(16건)를 더하면 10건 중 3건 이상이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국감에 나오지 않은 셈이다. 19%(103건)는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수감·재판 중이거나 검찰수사 등 사법처리 중이라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사례도 68건(13%)이었다. 소재파악 안 됨, 연락불가, 잠적 등 연락 두절을 이유로 국감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도 21명(4%)이나 됐다. 수차례 전화는 물론이고, 사무실이나 집 등을 국회에서 직접 찾아갔지만, 출석통보조차 할 수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상천외한 불출석 사유도 많았다. 2013년에는 전영조 제주항공 운항본부장이 국감장 오출석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10월 15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회의실에서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는데, 전 본부장이 국회로 가는 바람에 시간 내 국감 출석이 불가능했다. 국감장 오출석은 이 건이 유일했다. 이밖에 경찰에 수배 중이라는 이유로 국감장에 출석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해외에서 진행되는 딸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국감에 출석할 수 없다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증인도 있었다. 불출석으로 고발당한 증인 9년간 총 58명 무단으로 불출석하거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더라도 국정감사 위원들이 불출석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면 법에 따라 불출석한 증인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지난 2009년부터 9년간 불출석한 증인 514명 중 불출석을 이유로 검찰고발 조치된 증인은 총 58명이다. 2012년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회장 등 무려 16명의 증인이 불출석을 이유로 검찰 고발됐다. 이 16명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300만~1,500만 원의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11명이 검찰고발 조치됐다. 이렇게 불출석을 이유로 검찰에 고발되면 어떻게 처리될까? 이와 관련해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10일 최근 5년간 국회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에서 74명이 불출석을 이유로 고발당했다고 밝혔다. 검찰 처분결과 이중 41명이 기소됐고, 30명이 기각되거나 무혐의 처분됐다. 7명은 기소유예됐다. 검찰기소로 법원 재판까지 간 경우 24명이 벌금형을, 2명이 징역형 처벌을 받았다. 징역형 2건은 모두 다른 사건과 병합해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벌금 수백만 원이 많게는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진 재벌 총수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해 "기업총수가 매년 국감 때를 맞춰 일부러 해외 출장을 잡고 안 나온다면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겠냐"며 "올해도 불출석 증인에 대한 고발과 처벌이 논의되겠지만, 고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기업총수 입장에서는 국회에 불출석하고 벌금 몇백 내는 게 이득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러도 나오지 않는 회장님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개선책 없이 해마다 재벌총수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국회. TV 등으로 중계되는 국정감사에서 재벌총수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국정감사를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연관기사] [국감증인2179명] ① 말 못하는 증인들…이럴거면 왜 불렀나요? 데이터 수집·분석 장슬기 seu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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