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교실 가보셨습니까]⑤ 국가대표 꿈꾸는 ‘2년 차 한국인’, 체조소녀 이서정

입력 2018.12.14 (06:05) 수정 2018.12.1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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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를 꿈꾸는 체조소녀

"다음에 우리도 피부를 검게 칠하고 나오면 우승할 수 있겠네" 미국의 체육선수 시몬 바일스가 흑인 최초로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을 거머쥐자 '백인' 이탈리아 선수가 비꼬면서 한 말입니다.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휩쓸며 세계를 놀라게 한 미국 기계체조의 여왕. 백인 독무대로 여겨졌던 체조 종목에서 힘든 훈련뿐 아니라 흑인 여성이란 차별과 편견에도 맞서야 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선수로 사람들 기억에 남고 싶다"고 말했던 시몬 바일스를 꿈꾸는 소녀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서울 대동초등학교 체조선수 이서정(13)양 입니다.

교실에서 처음 만난 서정이는 인기 많은 보통 학생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엔 늘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뛰어놀기를 좋아합니다. 친구들 연애상담을 했다며 성숙한 농담(?)도 하는 서정이는 밝고 평범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입니다.


이 천진난만한 소녀가 체조장에 들어서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여섯 살 때 우연히 시작했다는 체조는 소녀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특유의 유연성과 기술 습득력 그리고 강한 정신력으로 힘든 훈련도 척척 소화해냅니다. 지난 5월엔 전국 소년체육대회에서 2단 평행봉 1위, 개인 종합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이서정'이란 이름을 대면 모르는 체조 지도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가 됐습니다.

딸 위해 국적 바꾼 부모 마음

한국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서정이는 다문화 가정 자녀입니다. 서정이의 부모님은 중국 동포입니다. 서울에서 굉장히 유명한 양꼬치 식당을 운영 중입니다. 아마 가보신 분도 계실걸요?


아버지 이림빈씨는 중국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1997년에 한국에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사흘 만에 공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절단됐습니다.

한국 생활을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대림동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강남까지 진출한 나름 성공한 사업가가 됐지만, 오늘의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까지 한국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했기 때문에 첫째 딸(서정이의 언니) 교육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10살 터울인 언니는 학교에서 중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기도 하며 상처를 받았습니다.

막내딸 서정이 만은 한국에서 상처받지 않고 키우려 했습니다. 서정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당시 전국 소년체전 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선수만 출전 가능한 대회 규칙상 출전이 좌절됐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아이의 꿈을 도와주지 못하고 방해만 되는 거 같아 속상했던 부모님은 한국으로 귀화를 결심합니다. 국적을 바꾼다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학교의 지원과 지역 사회의 관심으로 서정이와 부모님 모두 한국 국적을 얻게 됐습니다. 서정이는 이제 한국인으로 전국대회를 출전합니다.

절대로 울지 않는다는 '강한 아이'

유치원생 때부터 서정양을 지켜봤던 체조코치 박미라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서정이는 아무리 힘든 훈련을 해도 운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운동하면서 힘든 적은 없는지, 바쁜 부모님 때문에 홀로 밥을 차려 먹기도 또 집을 떠나 전지훈련도 다녀와야 하는데 외롭지 않으냐는 질문에 서정양은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며 자신은 '멋있는' 체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서정양이 생각하는 멋있는 선수란 "힘들어도 안 울고 끝까지 참아낸 다음에 성공하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이제는 식당일을 돕기도 하는데 주말이면 운동을 일찍 마치고 나와 식당에서 테이블 청소를 하고 밑반찬을 놓고 손님맞이 준비를 합니다. 한국에 정착해 살아남기 위해 바쁜 부모님… 그래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소녀는 그 사이 더 강해져야 했고 이렇게 훌쩍 커버렸습니다.

대한민국 위한 국가대표… '금메달 길'을 꿈꾼다

서정이는 2006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물어보면 자기는 중국사람이 아니고 한국사람이라고 알고 있더라고요" 서정이 어머니 박송월씨는 어린 서정이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서정양은 본인 국적이 중국이란 사실도 4학년 때 전국소년체육대회 출전이 막히면서 그때 처음 알게 됐다고 합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중국 국적을 가졌던 것일 뿐 다른 게 없는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서정양의 목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어 '금메달 길'만 걷겠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이서정 선수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이 소녀의 눈엔 친구들은 다르지 않고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든지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정양이 생각하는 다문화는 뭘까요? 그건 '여러 나라 사람이 한 공간에서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성/제작 : 유성주, 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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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문화 교실 가보셨습니까]⑤ 국가대표 꿈꾸는 ‘2년 차 한국인’, 체조소녀 이서정
    • 입력 2018-12-14 06:05:19
    • 수정2018-12-14 20:51:57
    취재K
'시몬 바일스'를 꿈꾸는 체조소녀

"다음에 우리도 피부를 검게 칠하고 나오면 우승할 수 있겠네" 미국의 체육선수 시몬 바일스가 흑인 최초로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을 거머쥐자 '백인' 이탈리아 선수가 비꼬면서 한 말입니다.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휩쓸며 세계를 놀라게 한 미국 기계체조의 여왕. 백인 독무대로 여겨졌던 체조 종목에서 힘든 훈련뿐 아니라 흑인 여성이란 차별과 편견에도 맞서야 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선수로 사람들 기억에 남고 싶다"고 말했던 시몬 바일스를 꿈꾸는 소녀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서울 대동초등학교 체조선수 이서정(13)양 입니다.

교실에서 처음 만난 서정이는 인기 많은 보통 학생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엔 늘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뛰어놀기를 좋아합니다. 친구들 연애상담을 했다며 성숙한 농담(?)도 하는 서정이는 밝고 평범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입니다.


이 천진난만한 소녀가 체조장에 들어서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여섯 살 때 우연히 시작했다는 체조는 소녀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특유의 유연성과 기술 습득력 그리고 강한 정신력으로 힘든 훈련도 척척 소화해냅니다. 지난 5월엔 전국 소년체육대회에서 2단 평행봉 1위, 개인 종합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이서정'이란 이름을 대면 모르는 체조 지도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가 됐습니다.

딸 위해 국적 바꾼 부모 마음

한국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서정이는 다문화 가정 자녀입니다. 서정이의 부모님은 중국 동포입니다. 서울에서 굉장히 유명한 양꼬치 식당을 운영 중입니다. 아마 가보신 분도 계실걸요?


아버지 이림빈씨는 중국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1997년에 한국에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사흘 만에 공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절단됐습니다.

한국 생활을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대림동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강남까지 진출한 나름 성공한 사업가가 됐지만, 오늘의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까지 한국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했기 때문에 첫째 딸(서정이의 언니) 교육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10살 터울인 언니는 학교에서 중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기도 하며 상처를 받았습니다.

막내딸 서정이 만은 한국에서 상처받지 않고 키우려 했습니다. 서정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당시 전국 소년체전 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선수만 출전 가능한 대회 규칙상 출전이 좌절됐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아이의 꿈을 도와주지 못하고 방해만 되는 거 같아 속상했던 부모님은 한국으로 귀화를 결심합니다. 국적을 바꾼다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학교의 지원과 지역 사회의 관심으로 서정이와 부모님 모두 한국 국적을 얻게 됐습니다. 서정이는 이제 한국인으로 전국대회를 출전합니다.

절대로 울지 않는다는 '강한 아이'

유치원생 때부터 서정양을 지켜봤던 체조코치 박미라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서정이는 아무리 힘든 훈련을 해도 운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운동하면서 힘든 적은 없는지, 바쁜 부모님 때문에 홀로 밥을 차려 먹기도 또 집을 떠나 전지훈련도 다녀와야 하는데 외롭지 않으냐는 질문에 서정양은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며 자신은 '멋있는' 체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서정양이 생각하는 멋있는 선수란 "힘들어도 안 울고 끝까지 참아낸 다음에 성공하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이제는 식당일을 돕기도 하는데 주말이면 운동을 일찍 마치고 나와 식당에서 테이블 청소를 하고 밑반찬을 놓고 손님맞이 준비를 합니다. 한국에 정착해 살아남기 위해 바쁜 부모님… 그래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소녀는 그 사이 더 강해져야 했고 이렇게 훌쩍 커버렸습니다.

대한민국 위한 국가대표… '금메달 길'을 꿈꾼다

서정이는 2006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물어보면 자기는 중국사람이 아니고 한국사람이라고 알고 있더라고요" 서정이 어머니 박송월씨는 어린 서정이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서정양은 본인 국적이 중국이란 사실도 4학년 때 전국소년체육대회 출전이 막히면서 그때 처음 알게 됐다고 합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중국 국적을 가졌던 것일 뿐 다른 게 없는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서정양의 목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어 '금메달 길'만 걷겠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이서정 선수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이 소녀의 눈엔 친구들은 다르지 않고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든지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정양이 생각하는 다문화는 뭘까요? 그건 '여러 나라 사람이 한 공간에서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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