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화성]① [단독] B형인가 O형인가 당시에도 의문…목격자 “왼손 하트 문신”

입력 2019.09.26 (16:12) 수정 2019.09.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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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끝나지 않은 화성①]
화성연쇄살인 관련 국정감사 자료 입수
10차 사건에 용의자 혈액형 ‘B형 또는 O형’ 기록
목격자 “용의자 왼손 하트 문신”
기록·기억 대조 쉽지 않을 듯

'B형인가, O형인가.'
화성연쇄살인의 유력 용의자가 이 모 씨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가장 논란이 됐던 건 혈액형이다.

30여 년 동안 용의자의 혈액형은 B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씨의 '처제 살인사건' 판결문에 나온 이 씨 혈액형은 O형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연쇄살인 증거물에서 최근 나온 DNA의 혈액형은 O형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경찰이 B형 남성을 중심으로 수사하면서 O형인 이 씨를 놓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15만 장에 달한다는 당시 수사기록을 찾아봐야 한다. 이 자료는 경찰만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KBS는 국회에 남아있는 당시 국정감사 제출 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들은 당시 수사팀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라 공식 문서라고 볼 수 있다. 국정감사가 부활한 1988년부터 화성연쇄살인과 관련해 남아 있는 자료를 찾았다.


"범인의 정액(B 또는 O형)"

용의자 혈액형 언급은 1993년 국정감사 제출자료에 남아 있었다. 경찰은 검거대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혈액형을 거론했다.

기록을 그대로 옮겨보면 '나머지 사건(9건)을 검거하기 위해 91.4.3 발생한 10차 권OO(69) 여인 사건 현장에서 수거한 모발, 족적, 범인의 정액(B 또는 O형) 등 유류물에 대한 감식수사와…(중략) 9차, 10차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정액과 발굴된 용의자 DNA 감정을 적극 실시해 사건 해결토록 하겠음'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10차례 사건 가운데 모방 범죄로 드러난 8차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차례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정액 등 용의자의 흔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9차와 10차 사건 수사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10차 사건 범인의 혈액형이 B형 또는 O형일 거라는 사실이 언급된 것이다. 경찰이 O형도 용의 선상에 올렸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수사팀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특정 혈액형을 정해놓고 수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수사팀장 가운데 한 명이었던 하승균 씨는 "당시에 증거물에서 혈흔을 추출해서 검사했을 때 A형도 있고 O형도 있었지만, B형이 좀 더 많다, 이런 측면에서 B형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며 "(용의자가) B형이라고 발표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좌수 손목 '하트' 문신"

1994년 국정감사 자료에는 7차 사건 목격자가 용의자 모습을 진술한 내용이 나온다. 7차 사건 목격자는 범행 이후 수원으로 가는 범인을 태운 버스의 운전사 강 모 씨와 버스 안내원 엄 모 씨이다. 당시 이들은 비가 오지 않은 날인데도 옷이 젖어있는 사람을 태웠다는 진술을 했다.

자료에 나온 진술은 운전사 강 씨의 한 증언이다. 이를 그대로 옮겨보면 '좌수 손목 '하트' 문신, 27세 전후, 신장 175cm 가량, 몸집이 크고 미남형, 더벅머리, 잠바 차림의 일견 공원풍, 표준어 사용'이다. 일견 공원풍이라는 말은 한 눈에 봤을 때 공장 노동자처럼 보였다는 뜻이다.

7차 사건의 목격자들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목격한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몽타주와 국감 자료의 진술 내용을 비교해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몽타주 속 용의자는 나이는 24~27세 가량이고, 키는 165~170cm 정도다. 머리는 스포츠형에 얼굴은 갸름하고 보통 체격이라고 돼 있다. 왼손에 검은색 전자손목시계를 차고 있고, 시계 밑에 문신이 있으며,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는 내용도 있다.

문신이 있다는 사실은 강 씨 증언과 몽타주가 똑같고 연령대도 비슷하다. 그러나 머리 스타일은 더벅머리와 스포츠형으로 차이가 있고 키도 다르다. 강 씨는 몸집이 크다고 했는데 몽타주에는 보통체격이라고 돼 있는 것도 차이점이다.


기록 맞추고 기억 되살리고…험난한 진실 규명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화성 사건 수사의 의미를 '실체적 진실 규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씨를 범인이라고 확정 짓더라도 처벌은 못 하지만,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남김없이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남아있는 기록을 샅샅이 뒤지고,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만나야 한다. 문제는 몽타주와 목격자 진술처럼 당시 기록이 서로 다른 부분도 있다는 점이다. 기억은 흐릿할 수 있어도 기록은 정확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기록도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목격자 진술과 몽타주에 나와 있는 용의자 문신만 봐도 현재 이 씨에게는 문신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지운 건지 원래 없었던 건지 확인해봐야 할 부분이다.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또 다른 과제다. 30여 년 전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이 씨를 3번이나 조사했고, 첫 조사 때는 유력한 용의자로 봤었다는 기록이 나왔지만, 당시 수사팀 핵심 관계자는 줄곧 이 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거 수사팀에서 이 씨를 기억하는 사람을 경찰이 찾았다지만,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 못 하는 사람의 말을 맞춰보는 건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경찰은 법 최면 전문가 2명을 투입해 본격적으로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화성연쇄살인은 미제로 남아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이나 진실 규명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현태·김지숙·이정은 기자 highf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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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6 16:12:02
    • 수정2019-09-27 19:51:10
    취재K
[끝나지 않은 화성①] <br />화성연쇄살인 관련 국정감사 자료 입수 <br />10차 사건에 용의자 혈액형 ‘B형 또는 O형’ 기록<br />목격자 “용의자 왼손 하트 문신”<br />기록·기억 대조 쉽지 않을 듯
'B형인가, O형인가.'
화성연쇄살인의 유력 용의자가 이 모 씨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가장 논란이 됐던 건 혈액형이다.

30여 년 동안 용의자의 혈액형은 B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씨의 '처제 살인사건' 판결문에 나온 이 씨 혈액형은 O형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연쇄살인 증거물에서 최근 나온 DNA의 혈액형은 O형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경찰이 B형 남성을 중심으로 수사하면서 O형인 이 씨를 놓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15만 장에 달한다는 당시 수사기록을 찾아봐야 한다. 이 자료는 경찰만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KBS는 국회에 남아있는 당시 국정감사 제출 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들은 당시 수사팀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라 공식 문서라고 볼 수 있다. 국정감사가 부활한 1988년부터 화성연쇄살인과 관련해 남아 있는 자료를 찾았다.


"범인의 정액(B 또는 O형)"

용의자 혈액형 언급은 1993년 국정감사 제출자료에 남아 있었다. 경찰은 검거대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혈액형을 거론했다.

기록을 그대로 옮겨보면 '나머지 사건(9건)을 검거하기 위해 91.4.3 발생한 10차 권OO(69) 여인 사건 현장에서 수거한 모발, 족적, 범인의 정액(B 또는 O형) 등 유류물에 대한 감식수사와…(중략) 9차, 10차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정액과 발굴된 용의자 DNA 감정을 적극 실시해 사건 해결토록 하겠음'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10차례 사건 가운데 모방 범죄로 드러난 8차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차례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정액 등 용의자의 흔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9차와 10차 사건 수사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10차 사건 범인의 혈액형이 B형 또는 O형일 거라는 사실이 언급된 것이다. 경찰이 O형도 용의 선상에 올렸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수사팀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특정 혈액형을 정해놓고 수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수사팀장 가운데 한 명이었던 하승균 씨는 "당시에 증거물에서 혈흔을 추출해서 검사했을 때 A형도 있고 O형도 있었지만, B형이 좀 더 많다, 이런 측면에서 B형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며 "(용의자가) B형이라고 발표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좌수 손목 '하트' 문신"

1994년 국정감사 자료에는 7차 사건 목격자가 용의자 모습을 진술한 내용이 나온다. 7차 사건 목격자는 범행 이후 수원으로 가는 범인을 태운 버스의 운전사 강 모 씨와 버스 안내원 엄 모 씨이다. 당시 이들은 비가 오지 않은 날인데도 옷이 젖어있는 사람을 태웠다는 진술을 했다.

자료에 나온 진술은 운전사 강 씨의 한 증언이다. 이를 그대로 옮겨보면 '좌수 손목 '하트' 문신, 27세 전후, 신장 175cm 가량, 몸집이 크고 미남형, 더벅머리, 잠바 차림의 일견 공원풍, 표준어 사용'이다. 일견 공원풍이라는 말은 한 눈에 봤을 때 공장 노동자처럼 보였다는 뜻이다.

7차 사건의 목격자들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목격한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몽타주와 국감 자료의 진술 내용을 비교해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몽타주 속 용의자는 나이는 24~27세 가량이고, 키는 165~170cm 정도다. 머리는 스포츠형에 얼굴은 갸름하고 보통 체격이라고 돼 있다. 왼손에 검은색 전자손목시계를 차고 있고, 시계 밑에 문신이 있으며,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는 내용도 있다.

문신이 있다는 사실은 강 씨 증언과 몽타주가 똑같고 연령대도 비슷하다. 그러나 머리 스타일은 더벅머리와 스포츠형으로 차이가 있고 키도 다르다. 강 씨는 몸집이 크다고 했는데 몽타주에는 보통체격이라고 돼 있는 것도 차이점이다.


기록 맞추고 기억 되살리고…험난한 진실 규명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화성 사건 수사의 의미를 '실체적 진실 규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씨를 범인이라고 확정 짓더라도 처벌은 못 하지만,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남김없이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남아있는 기록을 샅샅이 뒤지고,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만나야 한다. 문제는 몽타주와 목격자 진술처럼 당시 기록이 서로 다른 부분도 있다는 점이다. 기억은 흐릿할 수 있어도 기록은 정확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기록도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목격자 진술과 몽타주에 나와 있는 용의자 문신만 봐도 현재 이 씨에게는 문신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지운 건지 원래 없었던 건지 확인해봐야 할 부분이다.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또 다른 과제다. 30여 년 전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이 씨를 3번이나 조사했고, 첫 조사 때는 유력한 용의자로 봤었다는 기록이 나왔지만, 당시 수사팀 핵심 관계자는 줄곧 이 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거 수사팀에서 이 씨를 기억하는 사람을 경찰이 찾았다지만,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 못 하는 사람의 말을 맞춰보는 건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경찰은 법 최면 전문가 2명을 투입해 본격적으로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화성연쇄살인은 미제로 남아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이나 진실 규명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현태·김지숙·이정은 기자 highf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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