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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확인
[끝나지 않은 화성]④ ‘화성 용의자’ 혈액형 논란, 당시 기록 확인해보니…
입력 2019.09.29 (08:00) 수정 2019.09.29 (15:28) 취재K
[끝나지 않은 화성]④
2차 사건부터 현장 증거물 발견
혈액형 나왔지만 피해자 것과 같아
9차 사건 B형·10차 사건 B형 또는 O형
당시 과학수사 한계로 미제 남아
[끝나지 않은 화성]④ ‘화성 용의자’ 혈액형 논란, 당시 기록 확인해보니…
"범인의 혈액형은 B형, 1971년 이전 생일 것으로 보인다."
화성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이 16년 전 영화 개봉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관련 자료와 사람을 샅샅이 뒤졌을 봉 감독이 자신의 추정을 내놓은 것이다.

범인이 B형이라는 추정은 봉 감독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 사건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30여 년 만에 잡힌 유력 용의자 56살 이 모 씨의 혈액형이 O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혈액형 논란'이 시작됐다.

이 논란을 확인해보기 위해 현재 국회에 남아있는 당시 국정감사 자료를 살펴봤다. 당시 수사력으로 현장에 남아있는 혈액형은 무슨 형인지 파악할 수 있었지만, 범인의 혈액형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유류물 없었던 1차 사건

화성연쇄살인의 1차 사건은 1986년 9월 15일 일어났다. 71살 이 모 씨가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목초밭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국감 기록에 '감정채취물 없었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혈액형이나 지문을 확인해볼만한 현장 증거물이 없었다는 의미다.

감정채취물이 처음 나온 건 2차 사건이다. 1986년 10월 20일 발생했는데, 25살 박 모 씨가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 현장에서는 체모 2점과 담배꽁초 1개가 발견됐다. 체모의 형태는 피해자의 것과 비슷하고 혈액형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담배꽁초에서는 B형이 나왔는데, 피해자 혈액형이 B형이었다.

담배꽁초가 용의자의 것이라면 용의자가 B형이라는 추정이 가능한데, 용의자가 피우고 버린 것인지, 사건 전후 사건 현장을 지나던 누군가가 피우고 버린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혈액형 나왔지만 피해자와 동일

3차 사건은 1986년 12월 12일 벌어졌다. 피해자는 24살 권 모 씨, 태안읍 안녕리 축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의 피해자 속옷에서는 범인의 체액이 나왔지만, 혈액형은 검출되지 않았다. 수건에서는 A형이 나왔다. 피해자도 A형이었다. 역시 범인이 A형이라고 추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범인이 쓴 것으로 보이는 장갑도 한 켤레 나왔는데 '직업 추정 불능'이라고 돼 있다.

1986년 12월 14일 23살 이 모 씨가 정남면 관항리에서 숨진 채 발견된 4차 사건에서는 체모와 손수건에서 모두 B형이 나왔지만, 피해자가 B형이었다. 피해자 속옷에서 남성의 체액이 검출됐지만, 범인을 특정할만한 단서는 아니었다.

5차 사건은 1987년 1월 10일 발생했고, 피해자는 18살 홍 모 양이었다.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체모에선 B형이 나왔으나, 피해자가 B형이었고 목 가리개에 묻은 반점에서도 B형이 검출됐다. 피해자의 체액에서는 용의자의 흔적이 발견됐지만, 혈액형을 파악해볼 수는 없었다.


7차 사건까지 용의자 혈액형 오리무중

1987년 5월 2일에는 6차 사건이 벌어졌다. 30살 박 모 씨가 태안읍 진안리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현장 증거물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피해자 속옷과 체액에서 용의자의 체액이 나왔지만, 혈액형은 알 수 없었다.

체모 5점과 머리카락 16점도 나왔는데 모두 AB형이 검출됐다. 피해자의 혈액형이 AB형이었다. 무늬 없는 구두 발자국도 발견됐고, 피해자가 가지고 있었던 트레이닝복 상의에서 A형이 검출됐다. 피해자의 혈액형과 다른 것이었지만, 피해자의 남편이 A형이었다. 피해자와 남편이 옷을 공유해서 입었기 때문에 범인이 A형이라고 추정하긴 어려웠다.

7차 사건은 1988년 9월 7일 있었다. 52살 안 모 씨가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 현장에서는 비닐 가방이 발견됐지만, 지문을 채취할 수 없었고, 피해자 신발도 있었지만 혈액형이 나오지 않았다. 체모 15점과 머리카락 2점에서는 AB형이 검출됐는데, 피해자가 AB형이었다.

이렇게 7차 사건까지는 범인의 혈액형을 추정해 볼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기록에 의하면 1차부터 7차 사건은 현장에 용의자의 흔적이 없어 용의자의 혈액형 관련 수사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9차 사건서 '용의자 B형' 추정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로 범인이 잡힌 사건이었다.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13살 김 모 양 사건이 연쇄살인 범인이 7차에 이어 벌인 9차 사건이다.

9차 사건에서는 범인 체액에서 DNA가 나왔다. 혈액형은 B형이었다. 이때부터 경찰은 용의자가 B형이라는 심증을 갖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9차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체액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는 피해자 옷을 수거해 감정한 결과 B형으로 판명됐다"며 "당시 수사팀 형사들 사이에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상황에서 수사가 진행됐고,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들 진술로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10차 사건은 1991년 4월 3일, 69살 권 모 씨가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 현장에서도 용의자의 체액이 나왔는데 혈액형은 B형 또는 O형이라는 게 국감 자료에 기록돼 있다.


DNA 감정도 무위…당시 과학수사 한계
당시 수사팀은 목격자가 있는 7차 사건과 용의자 DNA가 나온 9·10차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목격자 진술로 몽타주를 만들었고 DNA로는 감정수사를 벌였다. 9차 사건은 67명, 10차 사건은 121명을 대상으로 DNA 대조를 했다. 이 가운데 12명은 일본과학경찰연구소에 감정을 맡겼다. 그러나 현장 발견 DNA와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사실상 전례가 없는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도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이는 수사팀의 무능이라기보다는 당시 과학수사의 한계로 보는 게 좀 더 명확하다. 지금이라면 거리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어 범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을테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DNA 감정 기술도 지금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때는 걸음마 단계였다. 화성연쇄살인이 DNA 감정 기술 발전의 계기가 됐지만, 화성 사건 수사가 DNA 감정 덕을 본 건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다.

오현태·김지숙·이정은 기자
  • [끝나지 않은 화성]④ ‘화성 용의자’ 혈액형 논란, 당시 기록 확인해보니…
    • 입력 2019.09.29 (08:00)
    • 수정 2019.09.29 (15:28)
    취재K
[끝나지 않은 화성]④
2차 사건부터 현장 증거물 발견
혈액형 나왔지만 피해자 것과 같아
9차 사건 B형·10차 사건 B형 또는 O형
당시 과학수사 한계로 미제 남아
[끝나지 않은 화성]④ ‘화성 용의자’ 혈액형 논란, 당시 기록 확인해보니…
"범인의 혈액형은 B형, 1971년 이전 생일 것으로 보인다."
화성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이 16년 전 영화 개봉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관련 자료와 사람을 샅샅이 뒤졌을 봉 감독이 자신의 추정을 내놓은 것이다.

범인이 B형이라는 추정은 봉 감독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 사건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30여 년 만에 잡힌 유력 용의자 56살 이 모 씨의 혈액형이 O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혈액형 논란'이 시작됐다.

이 논란을 확인해보기 위해 현재 국회에 남아있는 당시 국정감사 자료를 살펴봤다. 당시 수사력으로 현장에 남아있는 혈액형은 무슨 형인지 파악할 수 있었지만, 범인의 혈액형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유류물 없었던 1차 사건

화성연쇄살인의 1차 사건은 1986년 9월 15일 일어났다. 71살 이 모 씨가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목초밭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국감 기록에 '감정채취물 없었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혈액형이나 지문을 확인해볼만한 현장 증거물이 없었다는 의미다.

감정채취물이 처음 나온 건 2차 사건이다. 1986년 10월 20일 발생했는데, 25살 박 모 씨가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 현장에서는 체모 2점과 담배꽁초 1개가 발견됐다. 체모의 형태는 피해자의 것과 비슷하고 혈액형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담배꽁초에서는 B형이 나왔는데, 피해자 혈액형이 B형이었다.

담배꽁초가 용의자의 것이라면 용의자가 B형이라는 추정이 가능한데, 용의자가 피우고 버린 것인지, 사건 전후 사건 현장을 지나던 누군가가 피우고 버린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혈액형 나왔지만 피해자와 동일

3차 사건은 1986년 12월 12일 벌어졌다. 피해자는 24살 권 모 씨, 태안읍 안녕리 축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의 피해자 속옷에서는 범인의 체액이 나왔지만, 혈액형은 검출되지 않았다. 수건에서는 A형이 나왔다. 피해자도 A형이었다. 역시 범인이 A형이라고 추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범인이 쓴 것으로 보이는 장갑도 한 켤레 나왔는데 '직업 추정 불능'이라고 돼 있다.

1986년 12월 14일 23살 이 모 씨가 정남면 관항리에서 숨진 채 발견된 4차 사건에서는 체모와 손수건에서 모두 B형이 나왔지만, 피해자가 B형이었다. 피해자 속옷에서 남성의 체액이 검출됐지만, 범인을 특정할만한 단서는 아니었다.

5차 사건은 1987년 1월 10일 발생했고, 피해자는 18살 홍 모 양이었다.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체모에선 B형이 나왔으나, 피해자가 B형이었고 목 가리개에 묻은 반점에서도 B형이 검출됐다. 피해자의 체액에서는 용의자의 흔적이 발견됐지만, 혈액형을 파악해볼 수는 없었다.


7차 사건까지 용의자 혈액형 오리무중

1987년 5월 2일에는 6차 사건이 벌어졌다. 30살 박 모 씨가 태안읍 진안리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현장 증거물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피해자 속옷과 체액에서 용의자의 체액이 나왔지만, 혈액형은 알 수 없었다.

체모 5점과 머리카락 16점도 나왔는데 모두 AB형이 검출됐다. 피해자의 혈액형이 AB형이었다. 무늬 없는 구두 발자국도 발견됐고, 피해자가 가지고 있었던 트레이닝복 상의에서 A형이 검출됐다. 피해자의 혈액형과 다른 것이었지만, 피해자의 남편이 A형이었다. 피해자와 남편이 옷을 공유해서 입었기 때문에 범인이 A형이라고 추정하긴 어려웠다.

7차 사건은 1988년 9월 7일 있었다. 52살 안 모 씨가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 현장에서는 비닐 가방이 발견됐지만, 지문을 채취할 수 없었고, 피해자 신발도 있었지만 혈액형이 나오지 않았다. 체모 15점과 머리카락 2점에서는 AB형이 검출됐는데, 피해자가 AB형이었다.

이렇게 7차 사건까지는 범인의 혈액형을 추정해 볼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기록에 의하면 1차부터 7차 사건은 현장에 용의자의 흔적이 없어 용의자의 혈액형 관련 수사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9차 사건서 '용의자 B형' 추정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로 범인이 잡힌 사건이었다.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13살 김 모 양 사건이 연쇄살인 범인이 7차에 이어 벌인 9차 사건이다.

9차 사건에서는 범인 체액에서 DNA가 나왔다. 혈액형은 B형이었다. 이때부터 경찰은 용의자가 B형이라는 심증을 갖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9차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체액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는 피해자 옷을 수거해 감정한 결과 B형으로 판명됐다"며 "당시 수사팀 형사들 사이에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상황에서 수사가 진행됐고,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들 진술로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10차 사건은 1991년 4월 3일, 69살 권 모 씨가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 현장에서도 용의자의 체액이 나왔는데 혈액형은 B형 또는 O형이라는 게 국감 자료에 기록돼 있다.


DNA 감정도 무위…당시 과학수사 한계
당시 수사팀은 목격자가 있는 7차 사건과 용의자 DNA가 나온 9·10차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목격자 진술로 몽타주를 만들었고 DNA로는 감정수사를 벌였다. 9차 사건은 67명, 10차 사건은 121명을 대상으로 DNA 대조를 했다. 이 가운데 12명은 일본과학경찰연구소에 감정을 맡겼다. 그러나 현장 발견 DNA와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사실상 전례가 없는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도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이는 수사팀의 무능이라기보다는 당시 과학수사의 한계로 보는 게 좀 더 명확하다. 지금이라면 거리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어 범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을테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DNA 감정 기술도 지금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때는 걸음마 단계였다. 화성연쇄살인이 DNA 감정 기술 발전의 계기가 됐지만, 화성 사건 수사가 DNA 감정 덕을 본 건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다.

오현태·김지숙·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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