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마취 뒤 하반신 마비…승소 이끈 ‘어머니의 병상일지’

입력 2019.11.23 (21:16) 수정 2019.11.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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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울의 한 유명 종합병원에서 척추 마취로 수술을 받던 20대 청년이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이처럼 병원의 과실로 피해를 입더라도 소송에서 이를 환자가 입증하긴 참 어려운데요.

최근 1심 법원이 사고를 일으킨 이 병원에 과실이 있다고 보고, 환자에게 15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가 썼던 287일 간의 병상 일지가 결정적 증거가 됐다고 합니다.

김진호, 이정은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리포트]

26살 김 모 씨의 2년 전 모습입니다.

수술 전날까지 뚜벅뚜벅 걷는 모습이 또렷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발목 철심 제거 수술을 받은 뒤 하반신 마비가 와 2년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수술 직전 마취가 문제였습니다.

의료진이 김 씨 척추에 마취제를 주사한 뒤, 마취제가 몸에서 얼마나 확산됐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수술에 들어간 겁니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척추 신경에 손상을 입었습니다.

병원치료 도중 김 씨는 뇌 안에 물이 차는 뇌수두증까지 겪게 돼 생각지도 못했던 뇌 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가 된 김 씨는 손해 배상 소송을 냈고 법원은 병원에 80%의 과실책임을 물었습니다.

배상액은 15억 5천만 원입니다.

과학도를 꿈꾸던 김 씨가 평생 노동 능력을 모두 잃어버린 데 따른 법원의 결정입니다.

명백한 의료사고라고 봤지만 대형병원을 상대로 한 김 씨 가족의 싸움은 힘에 겨웠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승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2년 반이 넘게 걸렸습니다.

[신현호/변호사 : "(병원 측이)기록 자체를 안 했거나, 아니면 다른 기록을 했거나 이럴 경우엔 환자가 이를 입증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상당히 전향적으로 환자 보호적인 측면에서 판결 선고를 한 걸로 보여져요."]

강남 세브란스 병원 측은 의료진의 과실 여부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항소심에서 더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김진호입니다.

▼ 287일 기록…재판 증거 인정

[리포트]

다시 서지 못하게 된 아들을 위해 방에는 휠체어가 보조기구는 거실로 들어왔습니다.

집안 풍경도 어머니의 일상도 변했습니다.

[김 씨 어머니 : "우리 애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기가 힘드니까 지금 상황이…."]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하나는 엄마의 메모 습관입니다.

김 씨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매일 기록을 합니다.

수술 직후부터 아들이 고통을 호소하자, 어머니는 우선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기록이 287일 동안 쌓였습니다.

병원 기록지에는 없었지만 아들의 증상을 적은 어머니의 상세한 일지는 소송에 보탬이 됐습니다.

강남세브란스 병원은 '척추 마취 과정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어머니 일지에는 '마취가 제대로 안 돼 아팠다'는 아들의 증언이 적혀 있었습니다.

[김 씨 어머니 : "우리가 계속 '척추 마취' 과정에서 잘못이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떤 나름대로 근거가 된 거예요, 이게."]

소송에서 병원 측은 마취제 '마케인 헤비'에 대한 김 씨의 특이 반응 때문에 척수 경색 등이 생겼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과거에도 김 씨가 이 병원에서 동일한 마취제로 수술받았고, 당시엔 이상이 없었다는 의무 기록을 찾아 반박했습니다.

병원의 마취 기록과 어머니의 병상 기록을 토대로 법원은 결국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김 씨 어머니 : "마취 차단 레벨이라든지 그런 데에 뭔가 오류를 우리가 찾아낸 거예요."]

그렇게 승소한 1심, 어머니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 씨 어머니 : "(병상 일지에) 처치나 치료에 있어 의료 행위에 대해서 더 일관되게 구체적으로 적었을 건데 그러지 못한 점은 아쉬워요."]

어머니는 이제 법정 일지를 써가며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정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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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추마취 뒤 하반신 마비…승소 이끈 ‘어머니의 병상일지’
    • 입력 2019-11-23 21:22:19
    • 수정2019-11-23 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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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유명 종합병원에서 척추 마취로 수술을 받던 20대 청년이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이처럼 병원의 과실로 피해를 입더라도 소송에서 이를 환자가 입증하긴 참 어려운데요.

최근 1심 법원이 사고를 일으킨 이 병원에 과실이 있다고 보고, 환자에게 15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가 썼던 287일 간의 병상 일지가 결정적 증거가 됐다고 합니다.

김진호, 이정은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리포트]

26살 김 모 씨의 2년 전 모습입니다.

수술 전날까지 뚜벅뚜벅 걷는 모습이 또렷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발목 철심 제거 수술을 받은 뒤 하반신 마비가 와 2년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수술 직전 마취가 문제였습니다.

의료진이 김 씨 척추에 마취제를 주사한 뒤, 마취제가 몸에서 얼마나 확산됐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수술에 들어간 겁니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척추 신경에 손상을 입었습니다.

병원치료 도중 김 씨는 뇌 안에 물이 차는 뇌수두증까지 겪게 돼 생각지도 못했던 뇌 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가 된 김 씨는 손해 배상 소송을 냈고 법원은 병원에 80%의 과실책임을 물었습니다.

배상액은 15억 5천만 원입니다.

과학도를 꿈꾸던 김 씨가 평생 노동 능력을 모두 잃어버린 데 따른 법원의 결정입니다.

명백한 의료사고라고 봤지만 대형병원을 상대로 한 김 씨 가족의 싸움은 힘에 겨웠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승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2년 반이 넘게 걸렸습니다.

[신현호/변호사 : "(병원 측이)기록 자체를 안 했거나, 아니면 다른 기록을 했거나 이럴 경우엔 환자가 이를 입증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상당히 전향적으로 환자 보호적인 측면에서 판결 선고를 한 걸로 보여져요."]

강남 세브란스 병원 측은 의료진의 과실 여부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항소심에서 더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김진호입니다.

▼ 287일 기록…재판 증거 인정

[리포트]

다시 서지 못하게 된 아들을 위해 방에는 휠체어가 보조기구는 거실로 들어왔습니다.

집안 풍경도 어머니의 일상도 변했습니다.

[김 씨 어머니 : "우리 애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기가 힘드니까 지금 상황이…."]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하나는 엄마의 메모 습관입니다.

김 씨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매일 기록을 합니다.

수술 직후부터 아들이 고통을 호소하자, 어머니는 우선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기록이 287일 동안 쌓였습니다.

병원 기록지에는 없었지만 아들의 증상을 적은 어머니의 상세한 일지는 소송에 보탬이 됐습니다.

강남세브란스 병원은 '척추 마취 과정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어머니 일지에는 '마취가 제대로 안 돼 아팠다'는 아들의 증언이 적혀 있었습니다.

[김 씨 어머니 : "우리가 계속 '척추 마취' 과정에서 잘못이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떤 나름대로 근거가 된 거예요, 이게."]

소송에서 병원 측은 마취제 '마케인 헤비'에 대한 김 씨의 특이 반응 때문에 척수 경색 등이 생겼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과거에도 김 씨가 이 병원에서 동일한 마취제로 수술받았고, 당시엔 이상이 없었다는 의무 기록을 찾아 반박했습니다.

병원의 마취 기록과 어머니의 병상 기록을 토대로 법원은 결국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김 씨 어머니 : "마취 차단 레벨이라든지 그런 데에 뭔가 오류를 우리가 찾아낸 거예요."]

그렇게 승소한 1심, 어머니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 씨 어머니 : "(병상 일지에) 처치나 치료에 있어 의료 행위에 대해서 더 일관되게 구체적으로 적었을 건데 그러지 못한 점은 아쉬워요."]

어머니는 이제 법정 일지를 써가며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정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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