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마스크도 못 쓰고 닭장 같은 곳에서”…콜센터 ‘집단감염’ 왜?

입력 2020.03.15 (08:01) 수정 2020.03.1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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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관련 확진자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수도권 내 최대 규모의 집단 감염 사례, 왜 하필 콜센터에서 발생했을까요?

KBS는 지난해 말, 콜센터 상담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 연속 보도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마음대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눈물젖은 콜센터]① “자식한테도 무시당할걸”…전화기 뒤의 위태로운 하루
[눈물젖은 콜센터]② “화장실도 못 가”…반복되는 ‘콜센터 괴롭힘’ 왜?
[눈물젖은 콜센터]③ ‘마구잡이 서랍 검사’에 고객 상담 엿듣기…인권사각지대 ‘콜센터’
[눈물젖은 콜센터]④ “나는 감정 앵무새인가요?”…콜센터 매뉴얼 잔혹사

당시 취재에 응했던 콜센터 상담원들을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 이후 다시 만났습니다. 이들은 그 당시에 보도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이어졌다고 호소했습니다.

"'닭장' 같은 업무 환경…마스크 끼고 일 못 해"

콜센터 상담원들은 빼곡히 들어선 책상에 앉아 근무합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이 공간을 '닭장' 같다고 표현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상담 업무를 위해 말을 하다 보니, 비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간적으로 감염병에 매우 취약한 환경인 겁니다.

상담원들도 마스크를 쓰면 되지 않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상담하면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고객의 불만이 들어오고, 이는 실적으로 연결돼 상담원의 수입이 깎입니다.

그리고 방역 마스크를 쓰고 쉴새 없이 전화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원들 스스로도 숨쉬기가 어렵고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빠른 응대를 해야 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할 때는 답답하고 숨이 차거나 목소리가 울리고 응대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실적이 떨어질 수가 있잖아요." (황수진/금속노조 서울지부 미조직사업부장)

콜센터 사무실은 제대로 환기조차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전화 통화에 방해되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아예 사무실에 창문을 없앤 업체들도 있고, 창문이 있어도 열지 못하게 하는 사업장도 많습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콜센터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다수가 말을 하면서 장시간 접촉하다가 다수의 환자가 집단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택근무·사회적 거리두기'는 다른 세상 얘기"

콜센터 같은 밀집 사업장의 집단 감염 위험이 제기되자, 정부는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사업장 관리지침을 내놨습니다.

또 금융당국도 13일 대책회의를 열고 사업장 내 밀집도를 기존의 절반으로 낮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사업장 내 여유 공간이 부족한 경우 분산근무, 재택근무 등을 통해 공간을 확보하라는 지침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콜센터 상담원들은 재택근무가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콜센터에는 모든 통화 내역을 기록하고, 콜을 배정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이런 시스템을 상담원 각 가정에 설치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대기업·공공기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콜센터가 아닌 위탁 형태로 운영하는 외주 업체들은 재택근무 인프라 마련을 위한 비용이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대 근무 등을 통해 사업장의 밀집도를 줄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역시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이 콜센터 상담원들의 생각입니다.

근무 인원을 나눠 콜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상담 업무 처리 건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콜센터는 최대한 많은 전화를 받기 위해 그동안 상담원들이 화장실을 가는 시간까지 통제해왔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관리자에게 대기 순번을 정해서 보고하고, 차례로 가야 하는 것이 상담원들이 말하는 '이석 관리'입니다. 상담원들은 콜센터가 이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야 사업장 내 충분한 공간 확보와 방역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파도 당일 연차 어려워"…실적 위한 소모품 취급

콜센터 노동자들이 지적하는 집단 감염 원인은 또 있습니다. 상담원들을 콜센터의 실적을 위한 소모품처럼 취급해 온 콜센터 업체의 행태입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아파도 당일 연차나 조퇴를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콜센터가 가용 인력의 극히 일부만 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당일 연차를 내면 인센티브 점수를 깎거나 '결근'으로 처리하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권리인 연차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발열과 기침 등의 의심 증상이 나타나도 쉴 수 없고 결국 감염을 키웠다는 것이 상담원들의 주장입니다.

"병가라는 게 유급이라는 상상을 못 합니다. 자기가 쉬었던 시간을 그대로 다시 또 실적으로 복귀를 시켜야 되는 그런 압박이 굉장히 있었을 겁니다." (심명숙/ 서비스노조 다산콜센터지부장)


"불구덩이에 뛰어든다는 느낌으로 … 오늘도 출근"

한 콜센터 상담원은 "요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열악한 근무환경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감염병의 '위험지대'가 되니 출근하는 것조차 두렵다는 겁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정부와 기업 등이 나서 '재택근무', '띄어 앉기' 등의 대책을 내놓고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언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지 모르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근무 환경.

상담원들은 이참에 열악한 근무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윤선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장은 "계속 콜센터가 열악하다는 것을 외쳐왔다. 노동환경 개선을 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재난들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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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마스크도 못 쓰고 닭장 같은 곳에서”…콜센터 ‘집단감염’ 왜?
    • 입력 2020-03-15 08:01:05
    • 수정2020-03-15 08:02:00
    취재후·사건후
서울 구로구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관련 확진자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수도권 내 최대 규모의 집단 감염 사례, 왜 하필 콜센터에서 발생했을까요?

KBS는 지난해 말, 콜센터 상담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 연속 보도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마음대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눈물젖은 콜센터]① “자식한테도 무시당할걸”…전화기 뒤의 위태로운 하루
[눈물젖은 콜센터]② “화장실도 못 가”…반복되는 ‘콜센터 괴롭힘’ 왜?
[눈물젖은 콜센터]③ ‘마구잡이 서랍 검사’에 고객 상담 엿듣기…인권사각지대 ‘콜센터’
[눈물젖은 콜센터]④ “나는 감정 앵무새인가요?”…콜센터 매뉴얼 잔혹사

당시 취재에 응했던 콜센터 상담원들을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 이후 다시 만났습니다. 이들은 그 당시에 보도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이어졌다고 호소했습니다.

"'닭장' 같은 업무 환경…마스크 끼고 일 못 해"

콜센터 상담원들은 빼곡히 들어선 책상에 앉아 근무합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이 공간을 '닭장' 같다고 표현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상담 업무를 위해 말을 하다 보니, 비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간적으로 감염병에 매우 취약한 환경인 겁니다.

상담원들도 마스크를 쓰면 되지 않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상담하면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고객의 불만이 들어오고, 이는 실적으로 연결돼 상담원의 수입이 깎입니다.

그리고 방역 마스크를 쓰고 쉴새 없이 전화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원들 스스로도 숨쉬기가 어렵고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빠른 응대를 해야 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할 때는 답답하고 숨이 차거나 목소리가 울리고 응대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실적이 떨어질 수가 있잖아요." (황수진/금속노조 서울지부 미조직사업부장)

콜센터 사무실은 제대로 환기조차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전화 통화에 방해되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아예 사무실에 창문을 없앤 업체들도 있고, 창문이 있어도 열지 못하게 하는 사업장도 많습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콜센터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다수가 말을 하면서 장시간 접촉하다가 다수의 환자가 집단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택근무·사회적 거리두기'는 다른 세상 얘기"

콜센터 같은 밀집 사업장의 집단 감염 위험이 제기되자, 정부는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사업장 관리지침을 내놨습니다.

또 금융당국도 13일 대책회의를 열고 사업장 내 밀집도를 기존의 절반으로 낮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사업장 내 여유 공간이 부족한 경우 분산근무, 재택근무 등을 통해 공간을 확보하라는 지침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콜센터 상담원들은 재택근무가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콜센터에는 모든 통화 내역을 기록하고, 콜을 배정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이런 시스템을 상담원 각 가정에 설치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대기업·공공기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콜센터가 아닌 위탁 형태로 운영하는 외주 업체들은 재택근무 인프라 마련을 위한 비용이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대 근무 등을 통해 사업장의 밀집도를 줄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역시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이 콜센터 상담원들의 생각입니다.

근무 인원을 나눠 콜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상담 업무 처리 건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콜센터는 최대한 많은 전화를 받기 위해 그동안 상담원들이 화장실을 가는 시간까지 통제해왔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관리자에게 대기 순번을 정해서 보고하고, 차례로 가야 하는 것이 상담원들이 말하는 '이석 관리'입니다. 상담원들은 콜센터가 이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야 사업장 내 충분한 공간 확보와 방역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파도 당일 연차 어려워"…실적 위한 소모품 취급

콜센터 노동자들이 지적하는 집단 감염 원인은 또 있습니다. 상담원들을 콜센터의 실적을 위한 소모품처럼 취급해 온 콜센터 업체의 행태입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아파도 당일 연차나 조퇴를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콜센터가 가용 인력의 극히 일부만 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당일 연차를 내면 인센티브 점수를 깎거나 '결근'으로 처리하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권리인 연차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발열과 기침 등의 의심 증상이 나타나도 쉴 수 없고 결국 감염을 키웠다는 것이 상담원들의 주장입니다.

"병가라는 게 유급이라는 상상을 못 합니다. 자기가 쉬었던 시간을 그대로 다시 또 실적으로 복귀를 시켜야 되는 그런 압박이 굉장히 있었을 겁니다." (심명숙/ 서비스노조 다산콜센터지부장)


"불구덩이에 뛰어든다는 느낌으로 … 오늘도 출근"

한 콜센터 상담원은 "요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열악한 근무환경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감염병의 '위험지대'가 되니 출근하는 것조차 두렵다는 겁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정부와 기업 등이 나서 '재택근무', '띄어 앉기' 등의 대책을 내놓고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언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지 모르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근무 환경.

상담원들은 이참에 열악한 근무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윤선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콜센터지부장은 "계속 콜센터가 열악하다는 것을 외쳐왔다. 노동환경 개선을 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재난들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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