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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젖은 콜센터]① “자식한테도 무시당할걸”…전화기 뒤의 위태로운 하루
입력 2019.12.23 (16:36) 수정 2019.12.27 (15:28) 취재K
1년여 전, 고객의 욕설·성희롱에서 콜센터 상담원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습니다. 그 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마련됐습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면 콜센터 상담원들은 고통 없이 즐겁게 일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국 4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여전히 삶이 팍팍하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콜센터 상담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머리가 달리는 건지...자식들도 당신을 무시할 거다"

상담원 A 씨는 3년 차 콜센터 상담원입니다. LG전자 고객서비스 부문 자회사인 하이텔레서비스의 직원입니다. LG전자 가전제품이 고장 나서 콜센터로 전화하신 적이 있다면 A씨와 통화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 시간보다 일찍 회사에 와서, 최선을 다해 상담전화를 받고, 갑작스레 주말근무나 연장근무 지시를 받아도 별 말하지 않았던, 나름 일하는 재미도 느꼈던 평범한 직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올해 10월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취재진과 만난 A씨는 감정이 격해진 듯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습니다.취재진과 만난 A씨는 감정이 격해진 듯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습니다.

좀 유별나다고 회사에 소문난 B파트장 밑으로 옮긴 게 올해 초. 그동안 몇 가지 지적을 받아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라며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던 10월 중순, A씨의 부서장은 본사회의에서 질책을 당했습니다. A씨의 고객 응대가 미흡한데 뭐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부서장의 불벼락은 B파트장에게로, B파트장에서 A씨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머리가 달리는 건지 이해도 못 하는 것 같고, 상담 일을 하지 말고 몸으로 하는 일을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회사에서 이렇게 인정도 못 받는데 집에 가면 자식들도 당신을 무시할 거다."
"휴가 갔다 오면 각오해라. 그때부터 동석(통화내용 실시간 모니터링) 할 거다."


같은 팀 상담원 10여 명이 다 같이 모인 종례 자리에서도 질책은 이어졌습니다. 팀원들이 VOE(Voice Of Employees. 현장직원 의견 전달 제도)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나 참 환장하겠네 XX"...사무실에서도 욕설

휴가를 다녀오자 A씨의 회사생활은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B파트장은 A씨의 통화내용을 함께 들으며 일일이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A씨가 취재진에 건넨 녹음파일엔 당시 사무실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업무상 용인되는 범위의 질책이라 보기 힘든 폭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 참 환장하겠네 XX...XX...한달 된 애보다 더 못하고 있어. 이거를 갖다가 도대체 몇 년 차인지 얘기하기도 부끄러워 뒈지겠네."
"내가 X 심장 부정맥이 있어가지고, 부정맥이 와서 쓰러지면 당신이 나 책임져요. 아우 진짜 환장하겠네."
"환장하겠네. 미쳤다고 지금 (제품이) 3년이 넘은 거 교환환불 얘기를 하는데 (A씨는) 헛소리를 하고 있어요."


4시간 30분가량 되는 녹음파일 내내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중간중간 A씨가 흐느끼기도 했지만 B파트장의 고성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A씨는 울다가도 전화가 걸려오면 "안녕하세요 상담원 OOO입니다"라며 상냥하게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신경안정제 먹어도 손 떨려...회사는 "해줄 것 없다"

괴롭힘은 계속됐습니다. 퇴사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승진에서 누락시키겠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집단 따돌림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A씨에게 결국 마음의 병이 찾아왔습니다. 우울증 초기. 신경안정제를 먹고 겨우 사무실에서 버팁니다.

A씨가 가방에 늘 넣어놓는 신경안정제.A씨가 가방에 늘 넣어놓는 신경안정제.

약을 먹어도 B파트장만 마주치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막혀옵니다. 감시받는 것 같아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됐습니다. 손가방 안에는 비상용 안정제가 들어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구나...A씨는 자신이 직접 겪고 나니 이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회사에 고충을 호소했습니다. 당신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A씨는 결국 노조의 힘을 빌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하이텔레서비스측은 신고 접수 이후에야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취재진에게는 "여성 직원들 사이에 감정이 살짝 올라가는 정도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상담원 직장 내 괴롭힘 피해율 46.4%, 국제평균의 4배

A씨는 단순히 상사를 잘못 만난 운 없는 직장인인 걸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올해 9월 콜센터 상담원 1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습니다. 노르웨이 버겐대학교 세계따돌림연구소가 개발한 지표를 이용했습니다. 22개 항목 중 1개라도 주 1회 이상 빈도로 6개월 이상 경험하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상담원의 46.4%는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0% 초반인 유럽 다른 나라들 평균 피해율보다 4배가량 높습니다.

콜센터 업계의 어떤 특징이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실적압박에 시달리며 '을'일 수밖에 없는 상담원들. 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내일 [눈물 젖은 콜센터 2편]에서 더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KBS 뉴스9는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서 콜센터 상담원들의 직장내 괴롭힘 피해에 대한 연속 기획 보도를 전해드립니다.
  • [눈물젖은 콜센터]① “자식한테도 무시당할걸”…전화기 뒤의 위태로운 하루
    • 입력 2019-12-23 16:36:36
    • 수정2019-12-27 15:28:21
    취재K
1년여 전, 고객의 욕설·성희롱에서 콜센터 상담원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습니다. 그 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마련됐습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면 콜센터 상담원들은 고통 없이 즐겁게 일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국 4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여전히 삶이 팍팍하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콜센터 상담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머리가 달리는 건지...자식들도 당신을 무시할 거다"

상담원 A 씨는 3년 차 콜센터 상담원입니다. LG전자 고객서비스 부문 자회사인 하이텔레서비스의 직원입니다. LG전자 가전제품이 고장 나서 콜센터로 전화하신 적이 있다면 A씨와 통화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 시간보다 일찍 회사에 와서, 최선을 다해 상담전화를 받고, 갑작스레 주말근무나 연장근무 지시를 받아도 별 말하지 않았던, 나름 일하는 재미도 느꼈던 평범한 직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올해 10월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취재진과 만난 A씨는 감정이 격해진 듯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습니다.취재진과 만난 A씨는 감정이 격해진 듯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습니다.

좀 유별나다고 회사에 소문난 B파트장 밑으로 옮긴 게 올해 초. 그동안 몇 가지 지적을 받아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라며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던 10월 중순, A씨의 부서장은 본사회의에서 질책을 당했습니다. A씨의 고객 응대가 미흡한데 뭐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부서장의 불벼락은 B파트장에게로, B파트장에서 A씨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머리가 달리는 건지 이해도 못 하는 것 같고, 상담 일을 하지 말고 몸으로 하는 일을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회사에서 이렇게 인정도 못 받는데 집에 가면 자식들도 당신을 무시할 거다."
"휴가 갔다 오면 각오해라. 그때부터 동석(통화내용 실시간 모니터링) 할 거다."


같은 팀 상담원 10여 명이 다 같이 모인 종례 자리에서도 질책은 이어졌습니다. 팀원들이 VOE(Voice Of Employees. 현장직원 의견 전달 제도)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나 참 환장하겠네 XX"...사무실에서도 욕설

휴가를 다녀오자 A씨의 회사생활은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B파트장은 A씨의 통화내용을 함께 들으며 일일이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A씨가 취재진에 건넨 녹음파일엔 당시 사무실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업무상 용인되는 범위의 질책이라 보기 힘든 폭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 참 환장하겠네 XX...XX...한달 된 애보다 더 못하고 있어. 이거를 갖다가 도대체 몇 년 차인지 얘기하기도 부끄러워 뒈지겠네."
"내가 X 심장 부정맥이 있어가지고, 부정맥이 와서 쓰러지면 당신이 나 책임져요. 아우 진짜 환장하겠네."
"환장하겠네. 미쳤다고 지금 (제품이) 3년이 넘은 거 교환환불 얘기를 하는데 (A씨는) 헛소리를 하고 있어요."


4시간 30분가량 되는 녹음파일 내내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중간중간 A씨가 흐느끼기도 했지만 B파트장의 고성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A씨는 울다가도 전화가 걸려오면 "안녕하세요 상담원 OOO입니다"라며 상냥하게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신경안정제 먹어도 손 떨려...회사는 "해줄 것 없다"

괴롭힘은 계속됐습니다. 퇴사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승진에서 누락시키겠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집단 따돌림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A씨에게 결국 마음의 병이 찾아왔습니다. 우울증 초기. 신경안정제를 먹고 겨우 사무실에서 버팁니다.

A씨가 가방에 늘 넣어놓는 신경안정제.A씨가 가방에 늘 넣어놓는 신경안정제.

약을 먹어도 B파트장만 마주치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막혀옵니다. 감시받는 것 같아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됐습니다. 손가방 안에는 비상용 안정제가 들어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구나...A씨는 자신이 직접 겪고 나니 이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회사에 고충을 호소했습니다. 당신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A씨는 결국 노조의 힘을 빌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하이텔레서비스측은 신고 접수 이후에야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취재진에게는 "여성 직원들 사이에 감정이 살짝 올라가는 정도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상담원 직장 내 괴롭힘 피해율 46.4%, 국제평균의 4배

A씨는 단순히 상사를 잘못 만난 운 없는 직장인인 걸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올해 9월 콜센터 상담원 1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습니다. 노르웨이 버겐대학교 세계따돌림연구소가 개발한 지표를 이용했습니다. 22개 항목 중 1개라도 주 1회 이상 빈도로 6개월 이상 경험하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상담원의 46.4%는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0% 초반인 유럽 다른 나라들 평균 피해율보다 4배가량 높습니다.

콜센터 업계의 어떤 특징이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실적압박에 시달리며 '을'일 수밖에 없는 상담원들. 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내일 [눈물 젖은 콜센터 2편]에서 더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KBS 뉴스9는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서 콜센터 상담원들의 직장내 괴롭힘 피해에 대한 연속 기획 보도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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