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잔혹사]③ 직무 탈진 ‘번아웃 증후군’ 5점 만점에 4.1

입력 2020.04.29 (09:02) 수정 2020.05.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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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무중 다친) 증거 없다'...우울증에 극단적 선택까지


집배원 과로사 취재가 한창이던 지난 겨울. 취재진에게 한 통의 제보가 도착했다. 40대 초반의 집배원 조준모(가명) 씨였다.

조 씨는 처음 인터뷰를 거절했다. 우체국에 신분이 노출될 것이 두렵다고 했다. 대신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우체국에서의 경험을 A4 용지에 빼곡히 적어 취재진에게 전달했다. 내용 중 취재진을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우울증'이었다. 긴 시간 취재진과의 만남을 고민하던 조 씨는 두 달 만에 직접 KBS로 찾아왔다.

조 씨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산업단지가 들어선 신도시를 담당했다. 신도시 개발로 우편물이 급증하면서 그의 노동강도는 '밥을 먹기 힘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근무 중 두 차례나 사고를 당했다.

"(노동강도 수치가) 저는 1.4, 1.5, 1.6 나왔을 때인데, 1.3 정도 되면 밥을 못 먹어요. 저는 대한민국 노동착취 1번지가 '우체국'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조준모(가명)/집배원


하지만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체국의 태도였다. 근무 중 교통사고에 이어,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을 때 우체국 관리자들은 '(근무 중 다쳤다는) 증거가 없다.', '정말 아픈 것 맞냐?'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 조 씨 설명이다.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고통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라고 했다.

다리 치료를 받던 중 의사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됐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조 씨는 극심한 우울감에 극단적인 선택마저 시도했다. 우울증 치료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보면)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있는데 왜 인생을 포기할까라는 그런 사상을 갖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내가 아프다고 얘기할 때 들어주지 않고 또 내가 이렇게 몇 번씩 다치고, 다치고 하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내가 어느 순간은 극단적이 선택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나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나갔는데 아내가 신고를 했어요." - 조준모(가명)/집배원

취재진은 조 씨의 동의를 받아 '직무 탈진감(Burn Out) 테스트'를 진행했다. 조 씨의 직무탈진 결과는 심각했다. 5점 만점에 4.3점. 일 할 의욕도, 일에 대한 성취감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왜 인터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조 씨는 울며 이렇게 답했다.

"그냥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뭐냐면... 나 같은 사람 또 생기지 말라고. 좀 알아달라고. 나 같은 사람 더 나타나지 말라고요. 그게 가슴 제일 아파요. 죄송합니다." - 조준모(가명)/집배원

■ 집배원이 위험하다…직무탈진감 5점 만점에 4.1점

KBS 탐사보도부는 전국의 집배원 16,488명을 대상으로 직무탈진감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은 전국우정노조와 전국집배노조 소속 집배원으로, 조사는 2020년 1월 6일 부터 70일 동안 모바일 설문 방식으로 이뤄졌다. 응답률은 11.4%였다.

<직무탈진감>은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극심한 피로감', '무력감', '의욕상실'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용어다. 흔히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있다. 직무탈진 수준이 높아지면 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이 약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 증후군'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분류했다.

이 조사는 크게 세가지 항목으로 분류된다. 업무피로도(정서적 고갈)과 직무 자부심 저하(냉소주의), 성취감 감소(직업 효능감 감소)등 세 가지다.

조사 결과는 심각했다. 집배원들의 직무 자부심 저하와 성취감 감소는 5점 만점에 각각 3점과 2.3점으로 보통 수준으로 확인됐다. 반면 업무 피로도 측정에서는 5점 만점에 평균 4.1점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업무 피로도의 경우 5개 문항 중 4개 문항이 4점 대를 기록했고, 한 개문항은 3.8점으로 나타났다.


업무피로도에 대한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가 맡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정서적으로 지쳐있음을 느낀다."라는 질문에 응답자의79.1%가 그렇다와 매우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업무 중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묻는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나를 긴장시킨다."는 질문에는 79.5%가 그렇다와 매우그렇다고 응답했다. 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생각만 하면 피곤함을 느낀다"와 "퇴근 시에 완전히 지쳐있음을 느낀다"는 각각 79.8%와 82.9%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직무탈진감의 경우, 주로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과중한 업무부담', '관리자의 비전 제시 부족'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직무탈진감은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점수가 높을 경우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집배원의 경우 역시, 만성적 인력난과 그로 인한 높은 업무 부담은 이미 여러차례 지적됐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떨까? 여러분의 '직무탈진' 수준은 아래 체크 리스트를 통해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




KBS 탐사보도부는 5월2일(토) 밤 8시 5분 KBS 1TV <시사기획 창> '살인노동2부-죽음의 숫자' 편을 통해 집배원 과로사를 둘러싼 은폐된 진실을 폭로한다.

[연관 기사]
[집배원 잔혹사]① 年 693시간 더 노동…과로사·식물인간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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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배원 잔혹사]③ 직무 탈진 ‘번아웃 증후군’ 5점 만점에 4.1
    • 입력 2020-04-29 09:02:33
    • 수정2020-05-02 09:05:00
    탐사K

■ '(근무중 다친) 증거 없다'...우울증에 극단적 선택까지


집배원 과로사 취재가 한창이던 지난 겨울. 취재진에게 한 통의 제보가 도착했다. 40대 초반의 집배원 조준모(가명) 씨였다.

조 씨는 처음 인터뷰를 거절했다. 우체국에 신분이 노출될 것이 두렵다고 했다. 대신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우체국에서의 경험을 A4 용지에 빼곡히 적어 취재진에게 전달했다. 내용 중 취재진을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우울증'이었다. 긴 시간 취재진과의 만남을 고민하던 조 씨는 두 달 만에 직접 KBS로 찾아왔다.

조 씨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산업단지가 들어선 신도시를 담당했다. 신도시 개발로 우편물이 급증하면서 그의 노동강도는 '밥을 먹기 힘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근무 중 두 차례나 사고를 당했다.

"(노동강도 수치가) 저는 1.4, 1.5, 1.6 나왔을 때인데, 1.3 정도 되면 밥을 못 먹어요. 저는 대한민국 노동착취 1번지가 '우체국'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조준모(가명)/집배원


하지만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체국의 태도였다. 근무 중 교통사고에 이어,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을 때 우체국 관리자들은 '(근무 중 다쳤다는) 증거가 없다.', '정말 아픈 것 맞냐?'는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 조 씨 설명이다.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고통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라고 했다.

다리 치료를 받던 중 의사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됐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조 씨는 극심한 우울감에 극단적인 선택마저 시도했다. 우울증 치료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보면)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있는데 왜 인생을 포기할까라는 그런 사상을 갖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내가 아프다고 얘기할 때 들어주지 않고 또 내가 이렇게 몇 번씩 다치고, 다치고 하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내가 어느 순간은 극단적이 선택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나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나갔는데 아내가 신고를 했어요." - 조준모(가명)/집배원

취재진은 조 씨의 동의를 받아 '직무 탈진감(Burn Out) 테스트'를 진행했다. 조 씨의 직무탈진 결과는 심각했다. 5점 만점에 4.3점. 일 할 의욕도, 일에 대한 성취감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왜 인터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조 씨는 울며 이렇게 답했다.

"그냥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뭐냐면... 나 같은 사람 또 생기지 말라고. 좀 알아달라고. 나 같은 사람 더 나타나지 말라고요. 그게 가슴 제일 아파요. 죄송합니다." - 조준모(가명)/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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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탈진감>은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극심한 피로감', '무력감', '의욕상실'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용어다. 흔히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있다. 직무탈진 수준이 높아지면 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이 약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 증후군'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분류했다.

이 조사는 크게 세가지 항목으로 분류된다. 업무피로도(정서적 고갈)과 직무 자부심 저하(냉소주의), 성취감 감소(직업 효능감 감소)등 세 가지다.

조사 결과는 심각했다. 집배원들의 직무 자부심 저하와 성취감 감소는 5점 만점에 각각 3점과 2.3점으로 보통 수준으로 확인됐다. 반면 업무 피로도 측정에서는 5점 만점에 평균 4.1점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업무 피로도의 경우 5개 문항 중 4개 문항이 4점 대를 기록했고, 한 개문항은 3.8점으로 나타났다.


업무피로도에 대한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가 맡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정서적으로 지쳐있음을 느낀다."라는 질문에 응답자의79.1%가 그렇다와 매우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업무 중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묻는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나를 긴장시킨다."는 질문에는 79.5%가 그렇다와 매우그렇다고 응답했다. 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생각만 하면 피곤함을 느낀다"와 "퇴근 시에 완전히 지쳐있음을 느낀다"는 각각 79.8%와 82.9%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직무탈진감의 경우, 주로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과중한 업무부담', '관리자의 비전 제시 부족'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직무탈진감은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점수가 높을 경우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집배원의 경우 역시, 만성적 인력난과 그로 인한 높은 업무 부담은 이미 여러차례 지적됐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떨까? 여러분의 '직무탈진' 수준은 아래 체크 리스트를 통해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




KBS 탐사보도부는 5월2일(토) 밤 8시 5분 KBS 1TV <시사기획 창> '살인노동2부-죽음의 숫자' 편을 통해 집배원 과로사를 둘러싼 은폐된 진실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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