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여름의 경고]① “선대부터 200년을 살았는데, 이런 비는 처음”

입력 2020.10.05 (21:24) 수정 2020.10.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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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3년 동안 여러가지 자연 재난이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2018년엔 강원도 홍천 기온이 41도까지 올라가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왔었고요.

2019년엔 태풍이 7개나 들이닥쳐 1950년 관측 이후 역대 최다 태풍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54일 동안 역대 최장 기간 장마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죠.

KBS는 '지난 3년, 여름의 경고' 연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5일) 첫 번째 순서로 집중호우에 산사태 피해를 입고도 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지역 취재했습니다.

김용준 기잡니다.

[리포트]

["집 두 채가 순식간에, 몇 초 사이에 싹 쓸려 내려갔어요!"]

["무슨 흙탕물 내려오는 것처럼 그러더니, 그게 아니라 나무가 내려오고 있었어요, 빼곡하게."]

["이게 인재입니까, 천재(天災)입니까?"]

벌써 두 달이 됐지만, 정국희 씨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8월 2일 하루에만 충주시 엄정면에 344mm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감전이 걱정돼 전신주 스위치를 내리려 잠시 집 밖으로 나온 사이, 바위가 집을 덮쳤습니다.

[정국희/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 "집채만 한 돌이 무너지면서 집이 그대로 순식간에 몇 초 사이에 저 밑으로 처박혀 버린 거예요. (두 채가 다요?) 예, 두 채가 다요."]

아내는 이미, 집과 함께 휩쓸린 상황.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정국희/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 "진흙 속에 절반이, 사람이 묻혀서 팔하고 다리만 겨우 보이는 거예요. 그 생각하면 아휴, 정말... 사람이 막 죽을 것 같아요."]

["거의 정상부에서 (산사태가) 시작된 거로 보이네요."]

충주시는 산사태 조사단을 만들어 원인을 분석했고, 이곳에 흙막이를 설치해 산사태에 대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정 씨는 왜 지자체가 재난에 대비하지 못했는지,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정국희/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 "배수로를 면과 시청에 민원을 넣어서 이것 좀 어떻게 확장해서 제대로 축대를 쌓아달라고 했는데, 몇 번 얘기해도 예산이 없니…."]

완만한 곳 없는 급경사지, 뿌리가 얕은 소나무 위주 산림에, 부서지기 쉬운 토양 재질. 여기에 집 근처엔 옹벽이나 축대도 없이 변변찮은 물길만 있었습니다.

매년 가뭄을 걱정하는 충주에, 시간당 70mm가 넘는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진 거지만, 이런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산사태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한 사람의 목숨과 삶의 터전까지 휩쓸어버렸습니다.

건넛마을 천등산 자락의 한 주택입니다.

마당으로 나가는 입구 같지만, 사실 벽이 뚫린 겁니다.

구순을 앞둔 김영훈 할아버지는 8월 초, 토사에 파묻힌 아내와 자식들을 홀로 구했습니다.

도로가 끊겨 119조차 못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영훈/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 "아이고! 사람을 살려야지 어떡해! 자식하고 할머니를 살려야지,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아들은 갈비뼈 부러지고, 할머니는 여기 (골반이 부러졌어요)."]

못쓰게 된 세간살이는 두 달 넘도록 치울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김 할아버지에게도 올해 내린 집중호우는 생전 처음 보는 비였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뒷산이 휑하게 벌목이 되고, 길이 닦인 게 화근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김영훈/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 "사람들이 작년 겨울에 간벌한다고 잣나무가 꽉 들어찬 걸 베어버렸어요. 그랬으면 이걸 복구해서 사태가 안 나게끔 해야 하는 게 원린데, 이 사람들이 그냥 내버려 두고 간 거야.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서 이 터에서 200년을 넘게 살았지. (이런 적이 있었나요?) 아뇨, 없었죠."]

이 과수원도 한 해 농사가 완전히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포장지 속엔, 익다가 만 복숭아 몇 개만 남아 있습니다.

수백 미터 산 정상부터 까맣게 쏟아지던 나무와 바위, 토사는 주민들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청할지 안내받지도 못했습니다.

[박칠성/충주시 산척면 석천리 : "그때 놀란 게 지금까지도 우울해서 약을 먹어도 안 되고, 어떻게 해 준다는 말도 없고, 우리는 늙었다 보니까 어디 가서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그것도 모르고."]

산림청은 전국의 산사태 취약 지역을 선정해 지자체와 공유하면서 장마를 앞둔 지난 5월부터 이 지역들에 대한 집중 점검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목숨을 잃거나 심하게 다치는 피해를 입은 정국희 씨와 김영훈 할아버지의 거주지는 이런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송영석/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센터장 : "산사태 조기경보시스템이 구축돼있긴 하지만, 광역적인 규모로밖에 산사태 조기경보 발령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특정 지역이나 소규모 지역을 대상으로 조기경보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지원이 필요할 것 같고요."]

역대 최장 기간 장마에 갈수록 예측이 어려운 집중호우가 남긴 경고.

산사태 등 위험에 노출된 주민들이 사전에 대피할 수 있도록 조기에 알리는, 보다 정교하고 신속한 경보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겁니다.

KBS 뉴스 김용준입니다.

촬영기자·영상편집:류재현/그래픽: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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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년 여름의 경고]① “선대부터 200년을 살았는데, 이런 비는 처음”
    • 입력 2020-10-05 21:24:49
    • 수정2020-10-08 16: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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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3년 동안 여러가지 자연 재난이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2018년엔 강원도 홍천 기온이 41도까지 올라가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왔었고요.

2019년엔 태풍이 7개나 들이닥쳐 1950년 관측 이후 역대 최다 태풍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54일 동안 역대 최장 기간 장마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죠.

KBS는 '지난 3년, 여름의 경고' 연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5일) 첫 번째 순서로 집중호우에 산사태 피해를 입고도 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지역 취재했습니다.

김용준 기잡니다.

[리포트]

["집 두 채가 순식간에, 몇 초 사이에 싹 쓸려 내려갔어요!"]

["무슨 흙탕물 내려오는 것처럼 그러더니, 그게 아니라 나무가 내려오고 있었어요, 빼곡하게."]

["이게 인재입니까, 천재(天災)입니까?"]

벌써 두 달이 됐지만, 정국희 씨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8월 2일 하루에만 충주시 엄정면에 344mm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감전이 걱정돼 전신주 스위치를 내리려 잠시 집 밖으로 나온 사이, 바위가 집을 덮쳤습니다.

[정국희/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 "집채만 한 돌이 무너지면서 집이 그대로 순식간에 몇 초 사이에 저 밑으로 처박혀 버린 거예요. (두 채가 다요?) 예, 두 채가 다요."]

아내는 이미, 집과 함께 휩쓸린 상황.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정국희/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 "진흙 속에 절반이, 사람이 묻혀서 팔하고 다리만 겨우 보이는 거예요. 그 생각하면 아휴, 정말... 사람이 막 죽을 것 같아요."]

["거의 정상부에서 (산사태가) 시작된 거로 보이네요."]

충주시는 산사태 조사단을 만들어 원인을 분석했고, 이곳에 흙막이를 설치해 산사태에 대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정 씨는 왜 지자체가 재난에 대비하지 못했는지,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정국희/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 "배수로를 면과 시청에 민원을 넣어서 이것 좀 어떻게 확장해서 제대로 축대를 쌓아달라고 했는데, 몇 번 얘기해도 예산이 없니…."]

완만한 곳 없는 급경사지, 뿌리가 얕은 소나무 위주 산림에, 부서지기 쉬운 토양 재질. 여기에 집 근처엔 옹벽이나 축대도 없이 변변찮은 물길만 있었습니다.

매년 가뭄을 걱정하는 충주에, 시간당 70mm가 넘는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진 거지만, 이런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산사태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한 사람의 목숨과 삶의 터전까지 휩쓸어버렸습니다.

건넛마을 천등산 자락의 한 주택입니다.

마당으로 나가는 입구 같지만, 사실 벽이 뚫린 겁니다.

구순을 앞둔 김영훈 할아버지는 8월 초, 토사에 파묻힌 아내와 자식들을 홀로 구했습니다.

도로가 끊겨 119조차 못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영훈/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 "아이고! 사람을 살려야지 어떡해! 자식하고 할머니를 살려야지,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아들은 갈비뼈 부러지고, 할머니는 여기 (골반이 부러졌어요)."]

못쓰게 된 세간살이는 두 달 넘도록 치울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김 할아버지에게도 올해 내린 집중호우는 생전 처음 보는 비였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뒷산이 휑하게 벌목이 되고, 길이 닦인 게 화근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김영훈/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 "사람들이 작년 겨울에 간벌한다고 잣나무가 꽉 들어찬 걸 베어버렸어요. 그랬으면 이걸 복구해서 사태가 안 나게끔 해야 하는 게 원린데, 이 사람들이 그냥 내버려 두고 간 거야.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서 이 터에서 200년을 넘게 살았지. (이런 적이 있었나요?) 아뇨, 없었죠."]

이 과수원도 한 해 농사가 완전히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포장지 속엔, 익다가 만 복숭아 몇 개만 남아 있습니다.

수백 미터 산 정상부터 까맣게 쏟아지던 나무와 바위, 토사는 주민들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청할지 안내받지도 못했습니다.

[박칠성/충주시 산척면 석천리 : "그때 놀란 게 지금까지도 우울해서 약을 먹어도 안 되고, 어떻게 해 준다는 말도 없고, 우리는 늙었다 보니까 어디 가서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그것도 모르고."]

산림청은 전국의 산사태 취약 지역을 선정해 지자체와 공유하면서 장마를 앞둔 지난 5월부터 이 지역들에 대한 집중 점검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목숨을 잃거나 심하게 다치는 피해를 입은 정국희 씨와 김영훈 할아버지의 거주지는 이런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송영석/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센터장 : "산사태 조기경보시스템이 구축돼있긴 하지만, 광역적인 규모로밖에 산사태 조기경보 발령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특정 지역이나 소규모 지역을 대상으로 조기경보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지원이 필요할 것 같고요."]

역대 최장 기간 장마에 갈수록 예측이 어려운 집중호우가 남긴 경고.

산사태 등 위험에 노출된 주민들이 사전에 대피할 수 있도록 조기에 알리는, 보다 정교하고 신속한 경보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겁니다.

KBS 뉴스 김용준입니다.

촬영기자·영상편집:류재현/그래픽: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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