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죄 저질렀다” 작정하고 사과한 김종인…관건은 실천

입력 2020.12.1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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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오늘(15일)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국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지 4년 만이었습니다.

당내 반발을 고려해 사과 수위를 낮출 거라는 일각의 관측은 빗나갔습니다. 구속된 두 전직 대통령과 당의 잘못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라는 그늘이 드리워진 채로는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 극약 처방을 한 거로 보입니다.

■김종인 "이명박·박근혜 정경유착…당이 국민에 큰 죄 저질렀다"

김 위원장은 오늘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통치 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었고, 오히려 자리에 연연하며 야합했다. 무엇보다 위기 앞에 분열했다"면서 "'공구수성(恐懼修省·어려운 때에 자신을 수양하고 반성함)'의 자세로 국민을 두려워하며 자숙해야 마땅했으나, 반성과 성찰 또한 부족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에 대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이 연루돼 있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거론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는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면서, "특정 기업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경영승계과정에 편의를 봐 준 혐의가 있다. 또 공적인 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자가 무엄하게 권력을 농단한 죄상도 있다"면서 사과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이 준엄한 심판의 회초리를 들었다면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반성하는 자세로 임하겠다. '국민의 힘'으로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탄핵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더욱 성숙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는데, 민주와 법치가 오히려 퇴행한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며 깊이 사과한다"는 문장이 전부였습니다.

사과문을 읽는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여러 차례 흔들렸습니다. 대국민 사과를 둘러싼 당 내외 논란을 의식한 듯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습니다.


■김종인의 전략, 연막과 기습

김 위원장은 오늘 사과에 앞서 여러 겹 연막을 쳤습니다.

먼저 당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사과 수위를 낮추겠다고 의원들을 달랬습니다. 지난 8일 3선 의원 10여 명과 면담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대신 사과하는 게 아니라, 당 혁신 부족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했습니다. 집단행동까지 검토했던 의원들의 반발이 누그러졌지만, 김 위원장은 보란 듯이 예상보다 더 강도 높은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과 일정도 회견 2시간 전에야 공지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어젯밤 직원들에게 회견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도 오늘 새벽에야 정확한 일정을 통보받은 거로 전해졌습니다. 발언 내용 역시 발표 직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한 비상대책위원은 "어젯밤에 연락을 받았는데, 사과문에 뭐가 쓰여 있는지는 발표 전까지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당내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한 재선 의원은 "당내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는 게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김 위원장이 그렇게 했으면 오늘 같은 사과문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 돼야 진정한 사과" vs "안 하느니만 못해"

취재 결과 김 위원장의 사과에 우호적 반응을 보이는 의원 수가 우세했습니다.

먼저 중진의원들이 앞장서 긍정적인 반응을 냈습니다. 김기현 의원(4선, 울산 남구을)은 오늘(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우리 국민의힘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습니다.

당내 최다선 의원 중 한 명인 정진석 의원(5선,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은 "진솔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국민에게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드린 것"이라고 진단했고, 박진(4선, 서울 강남을)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초·재선 의원들 다수도 김 위원장에게 힘을 보탰습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첫 민정수석이자 친박계 핵심으로 불렸던 곽상도(재선, 대구 중·남구) 의원은 KBS에 "잘못한 것은 잘못한 거라고 말해야 한다. (당의 잘못은) 우리가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오늘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었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기자회견장에 오지 않으려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꾼 거로 알려졌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사과문에 동의하니까 내가 온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즉각 반발하는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3선 박대출 의원은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다.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가 됐다"면서, "전직 대통령의 수감에는 당의 배신이나 가짜뉴스, 마녀사냥식 법 적용 등 복잡한 면이 있는데 이런 면을 간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재선 의원 역시 KBS에 "아직 박 전 대통령의 대법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죄상' 운운한 것은 너무 나간 것 아닌가"하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표성도 없고 뜬금없다"면서 "사과를 하려면, 지난 6개월 동안 야당을 여당 2중대로 만든 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관건은 실천…민주당 "행동으로 보여라"

이제 관건은 사과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느냐입니다. 앞서 2017년 2월 정우택 원내대표와, 탄핵이 확정된 2017년 3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도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당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계속된 당내 계파싸움과 극우화의 결과는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올해 총선 대패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과문 말미에, 당을 뿌리까지 개조하고 인적 쇄신을 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대국민 사과 발표로 과거와의 단절을 공식 선언한 김종인 위원장은, 연말까지 극우 성향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쳐내는 등 조직 정비에 속도를 낼 예정입니다.

김 위원장의 사과에 대해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김종인 위원장의 사과는 잘한 일"이라고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오늘의 사과와 쇄신에 대한 각오가 실천으로 이어질 것을 기다리겠다"며 "사과와 반성이 진심이라면 이제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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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죄 저질렀다” 작정하고 사과한 김종인…관건은 실천
    • 입력 2020-12-15 16:58:20
    취재K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오늘(15일)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국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지 4년 만이었습니다.

당내 반발을 고려해 사과 수위를 낮출 거라는 일각의 관측은 빗나갔습니다. 구속된 두 전직 대통령과 당의 잘못에 대해, 김 위원장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라는 그늘이 드리워진 채로는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 극약 처방을 한 거로 보입니다.

■김종인 "이명박·박근혜 정경유착…당이 국민에 큰 죄 저질렀다"

김 위원장은 오늘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통치 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었고, 오히려 자리에 연연하며 야합했다. 무엇보다 위기 앞에 분열했다"면서 "'공구수성(恐懼修省·어려운 때에 자신을 수양하고 반성함)'의 자세로 국민을 두려워하며 자숙해야 마땅했으나, 반성과 성찰 또한 부족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에 대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이 연루돼 있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거론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는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면서, "특정 기업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경영승계과정에 편의를 봐 준 혐의가 있다. 또 공적인 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자가 무엄하게 권력을 농단한 죄상도 있다"면서 사과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이 준엄한 심판의 회초리를 들었다면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반성하는 자세로 임하겠다. '국민의 힘'으로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탄핵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더욱 성숙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는데, 민주와 법치가 오히려 퇴행한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며 깊이 사과한다"는 문장이 전부였습니다.

사과문을 읽는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여러 차례 흔들렸습니다. 대국민 사과를 둘러싼 당 내외 논란을 의식한 듯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습니다.


■김종인의 전략, 연막과 기습

김 위원장은 오늘 사과에 앞서 여러 겹 연막을 쳤습니다.

먼저 당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사과 수위를 낮추겠다고 의원들을 달랬습니다. 지난 8일 3선 의원 10여 명과 면담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대신 사과하는 게 아니라, 당 혁신 부족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했습니다. 집단행동까지 검토했던 의원들의 반발이 누그러졌지만, 김 위원장은 보란 듯이 예상보다 더 강도 높은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과 일정도 회견 2시간 전에야 공지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어젯밤 직원들에게 회견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도 오늘 새벽에야 정확한 일정을 통보받은 거로 전해졌습니다. 발언 내용 역시 발표 직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한 비상대책위원은 "어젯밤에 연락을 받았는데, 사과문에 뭐가 쓰여 있는지는 발표 전까지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당내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한 재선 의원은 "당내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는 게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김 위원장이 그렇게 했으면 오늘 같은 사과문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 돼야 진정한 사과" vs "안 하느니만 못해"

취재 결과 김 위원장의 사과에 우호적 반응을 보이는 의원 수가 우세했습니다.

먼저 중진의원들이 앞장서 긍정적인 반응을 냈습니다. 김기현 의원(4선, 울산 남구을)은 오늘(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우리 국민의힘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습니다.

당내 최다선 의원 중 한 명인 정진석 의원(5선,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은 "진솔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국민에게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드린 것"이라고 진단했고, 박진(4선, 서울 강남을)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초·재선 의원들 다수도 김 위원장에게 힘을 보탰습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첫 민정수석이자 친박계 핵심으로 불렸던 곽상도(재선, 대구 중·남구) 의원은 KBS에 "잘못한 것은 잘못한 거라고 말해야 한다. (당의 잘못은) 우리가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오늘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었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기자회견장에 오지 않으려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꾼 거로 알려졌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사과문에 동의하니까 내가 온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즉각 반발하는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3선 박대출 의원은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다.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가 됐다"면서, "전직 대통령의 수감에는 당의 배신이나 가짜뉴스, 마녀사냥식 법 적용 등 복잡한 면이 있는데 이런 면을 간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재선 의원 역시 KBS에 "아직 박 전 대통령의 대법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죄상' 운운한 것은 너무 나간 것 아닌가"하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표성도 없고 뜬금없다"면서 "사과를 하려면, 지난 6개월 동안 야당을 여당 2중대로 만든 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관건은 실천…민주당 "행동으로 보여라"

이제 관건은 사과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느냐입니다. 앞서 2017년 2월 정우택 원내대표와, 탄핵이 확정된 2017년 3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도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당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계속된 당내 계파싸움과 극우화의 결과는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올해 총선 대패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과문 말미에, 당을 뿌리까지 개조하고 인적 쇄신을 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대국민 사과 발표로 과거와의 단절을 공식 선언한 김종인 위원장은, 연말까지 극우 성향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쳐내는 등 조직 정비에 속도를 낼 예정입니다.

김 위원장의 사과에 대해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김종인 위원장의 사과는 잘한 일"이라고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오늘의 사과와 쇄신에 대한 각오가 실천으로 이어질 것을 기다리겠다"며 "사과와 반성이 진심이라면 이제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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