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하와이 “주권을 되찾아라!”

입력 2011.09.1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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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알려져 있는 하와이, 그런데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 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이 주권회복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은 19세기 말 하와이 왕조가 무너진 이후 계속돼왔는데요, 박영환 특파원이 자세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하와이. 120여년 전 그들만의 삶의 터전이었던 와이키키 해변. 은빛 물결 출렁이는 바다는 이제 이방인들의 놀이터일 뿐입니다. 뿌리째 절단당한 원주민들의 슬픈 역사도 파도가 삼켜버렸습니다.

<인터뷰> 사라:"많은 미국인들이 차례로 하와이에 유입됐다.하지만 군사력에 의한 강제병합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국제서핑의 아버지로 이름을 날린 원주민 출신 듀크의 동상도 사진 찍는 배경일뿐입니다. 박제화된 하와이 원주민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891년 권좌에 오른 하와이 마지막 여왕 릴리우호칼라니. 침탈을 노골화하는 외세에 맞서 다 해병대를 등에 엎은 미국계 기업가들의 쿠테타로 쫓겨납니다. 미국 정부도 처음에는 쿠데타를 불법이라고 결론지었지만 5년 뒤 하와이를 강제로 병합합니다.

<인터뷰> 슐츠 (하와이대 교수):"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고 갑자기 필리핀으로 들어가면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데는 확고한 요충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왕당파인 로버트 윌콕스가 백인 임시정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습니다. 사면권을 얻기위해 여왕은 퇴위서에 서명할수 밖에 없었고 왕궁에 갇힙니다.

호놀눌루에서 동북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와이마날로. 하와이 원주민들이 성지로 여기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입구에 '주권 독립'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건물 마다 하와이 주기가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아간 미국 정부를 향해 저항의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카나힐리 (원주민 독립마을 대표):"뒤집힌 깃발은 억압받는 원주민들을 상징한다.우리는 여러분들에게 하와이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호소한다."

독립마을을 탄생시킨 카나힐리는 왕족의 후손. 원주민들이 백인과 동양계에 내몰리는 비참한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언제부터) 급진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합니다. 마카추 비치에 임시가옥을 짓고 원주민 자치국가 수립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1년 3개월... 기나긴 고난의 투쟁에 원주민 390명이 가세했습니다. 경찰은 거칠게 진압을 했고 카나힐리와 많은 원주민들이 붙들려갔습니다.

<인터뷰> 하와이 원주민의 딸:"우리는 길거리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여기는 우리 집입니다."

여섯달 넘게 옥살이를 하던 그에게 하와이 정부는 원주민들에게 45에이커의 땅을 떼어주겠다는 타협책을 내놨습니다. 마을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에 대해 자치를 허락했습니다. 모기와 싸우며 도로를 내고 집을 짓고... 원시림에 덮였던 땅은 7년 만에 주권을 가진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을 위한 원주민의 나라(자치령으로?)로 거듭났습니다.

<인터뷰> 알카레 (독립마을 주민):"이곳은 오로지 황무지였습니다.모든 가족이 힘을 합쳐 칼과 톱으로 나무를 잘라내고 이 모든 것을 건설했습니다."

카이노아는 세살때 이곳에 와서 17년을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결혼을 했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습니다.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바깥 세상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인터뷰> 카이노아 (독립 마을 주민):"이곳이 고향이고 진정으로 사랑합니다.정말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곳이죠.다른 어느 곳에서도 살고 싶지 않아요."

100여명의 하와이 원주민들이 살고있는 이 공동체는 주권운동을 펴는 사람들의 영적센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권독립 마을의 살림을 총괄하는 존 커클리. 그는 원주민은 아니지만 카나힐리의 원주민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동지가 됐습니다. 부동산 중개사로 원주민 땅의 소유권을 조사하다가 부당한 점을 발견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 커클리 (독립마을 재정담당자):"부당하게 대우받는 소유권에 항의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법원은 부당한 세부조항을 앞세워 무시해버렸다."

카나힐리는 이곳에서 싹을 틔운 원주민 독립마을을 하와이섬 곳곳으로 확대시키겠다는 꿈을
품고 있습니다. 이 마을부터 친환경, 생태, 재생에너지사업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갖춰나간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인터뷰> 카나힐리 (독립 마을 대표):"이 독립 마을은 체계적으로 운영된다.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코코넛과 커피 농장을 운영해 더 많은 사업체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서양의 발달된 과학을 재빨리 흡수해 하와이 섬의 패권을 장악하고 최초로 통일 왕국을 수립한 카메하메하 대왕. 원주민들에게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는 그도 이제는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만 남았습니다. 12년전 카메하메하를 뿌리로 한 하와이 왕정 복원 위원회가 탄생했습니다.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의 골격을 갖췄고 선거를 거쳐 의원을 뽑았습니다. 하와이 왕국 헌법을 개정한 뒤 수상도 선출했습니다.

<인터뷰> 헨리노아 (복원 하와이왕정 수상):"우리는 입헌군주제에 기반해 정부를 복원했다.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정부 관료도 뽑았다."

미국 정부는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국제법상 주권을 완벽하게 갖췄다고 주장합니다. 독립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각료들을 각종 국제회의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헨리 노아 (하와이 왕정 수상):"우리는 근본적으로 왕정에 기반해 정부를 복원했다.입헌군주제지만 민주적 기능을 그 안에 담았다."

미국은 강제로 하와이를 병합한 직후 훌라춤이 음란하다며 금지시켰습니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고유의 말과 문화를 말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미국에 순화되는 쉬운 길을 따라갔습니다. 점차 말이 사라졌고 일부 남아있는 원주민 문화도 대부분 영어로 표현되고 그 외형만 연명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인터뷰> 하와이 원주민:"저는 이제 지쳤어요.거기 누구 휘발유 가진 분 없나요."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던 1993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순응했던 원주민들이 주권의 가치를 깨닫고 독립 시위에 대거 가담했습니다. 30여개가 넘는 독립운동 단체들이 처음으로 한몸이 됐습니다. 원주민 출신 주지사는 성조기를 내리고 하와이 왕국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투쟁 목표도 분명했습니다.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주권회복을 통한 '땅되찾기'가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인터뷰> 헨리 노아 (하와이 왕정 수상):"하와이 땅 가운데 절반인 3백만 에이커가 과거 하와이 왕국 소유이거나 원주민들의 땅이다."

조상의 땅을 되찾자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의회는 왕국 해체를 사과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서명했습니다.

다급해진 미국은 유일하게 인정해 온 원주민 단체 하와이언 사무처와 자치권 협상을 서둘렀고 통과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립운동 세력들이 불신하는 단체가 협상을 주도하게 되면서 원하는 만큼의 땅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인터뷰> 카이쿠에 (하와이언 사무처 정책국장):"아카카 빌 즉,자치법안에는 땅 문제는 포함돼 있지 않다.우리는 원주민들에게 금융적 지원을 해왔다."

미국인들 역시 원주민에게 땅을 되돌려 주는 일에는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인터뷰> 마이클 (미국인):"하와이에 맨 처음 온 사람만 땅에 대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두번째,세번째 온 사람도 모두 동등하게 자격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쎈 나라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여온 하와이 원주민들. 이들이 언제쯤 '알로하 정신'에 부합하는 관용과 여유,평화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지, 하와이언의 투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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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하와이 “주권을 되찾아라!”
    • 입력 2011-09-18 08:57:4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알려져 있는 하와이, 그런데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 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이 주권회복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은 19세기 말 하와이 왕조가 무너진 이후 계속돼왔는데요, 박영환 특파원이 자세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하와이. 120여년 전 그들만의 삶의 터전이었던 와이키키 해변. 은빛 물결 출렁이는 바다는 이제 이방인들의 놀이터일 뿐입니다. 뿌리째 절단당한 원주민들의 슬픈 역사도 파도가 삼켜버렸습니다. <인터뷰> 사라:"많은 미국인들이 차례로 하와이에 유입됐다.하지만 군사력에 의한 강제병합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국제서핑의 아버지로 이름을 날린 원주민 출신 듀크의 동상도 사진 찍는 배경일뿐입니다. 박제화된 하와이 원주민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891년 권좌에 오른 하와이 마지막 여왕 릴리우호칼라니. 침탈을 노골화하는 외세에 맞서 다 해병대를 등에 엎은 미국계 기업가들의 쿠테타로 쫓겨납니다. 미국 정부도 처음에는 쿠데타를 불법이라고 결론지었지만 5년 뒤 하와이를 강제로 병합합니다. <인터뷰> 슐츠 (하와이대 교수):"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고 갑자기 필리핀으로 들어가면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데는 확고한 요충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왕당파인 로버트 윌콕스가 백인 임시정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습니다. 사면권을 얻기위해 여왕은 퇴위서에 서명할수 밖에 없었고 왕궁에 갇힙니다. 호놀눌루에서 동북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와이마날로. 하와이 원주민들이 성지로 여기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입구에 '주권 독립'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건물 마다 하와이 주기가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아간 미국 정부를 향해 저항의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카나힐리 (원주민 독립마을 대표):"뒤집힌 깃발은 억압받는 원주민들을 상징한다.우리는 여러분들에게 하와이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호소한다." 독립마을을 탄생시킨 카나힐리는 왕족의 후손. 원주민들이 백인과 동양계에 내몰리는 비참한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언제부터) 급진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합니다. 마카추 비치에 임시가옥을 짓고 원주민 자치국가 수립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1년 3개월... 기나긴 고난의 투쟁에 원주민 390명이 가세했습니다. 경찰은 거칠게 진압을 했고 카나힐리와 많은 원주민들이 붙들려갔습니다. <인터뷰> 하와이 원주민의 딸:"우리는 길거리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여기는 우리 집입니다." 여섯달 넘게 옥살이를 하던 그에게 하와이 정부는 원주민들에게 45에이커의 땅을 떼어주겠다는 타협책을 내놨습니다. 마을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에 대해 자치를 허락했습니다. 모기와 싸우며 도로를 내고 집을 짓고... 원시림에 덮였던 땅은 7년 만에 주권을 가진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을 위한 원주민의 나라(자치령으로?)로 거듭났습니다. <인터뷰> 알카레 (독립마을 주민):"이곳은 오로지 황무지였습니다.모든 가족이 힘을 합쳐 칼과 톱으로 나무를 잘라내고 이 모든 것을 건설했습니다." 카이노아는 세살때 이곳에 와서 17년을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결혼을 했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습니다.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바깥 세상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인터뷰> 카이노아 (독립 마을 주민):"이곳이 고향이고 진정으로 사랑합니다.정말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곳이죠.다른 어느 곳에서도 살고 싶지 않아요." 100여명의 하와이 원주민들이 살고있는 이 공동체는 주권운동을 펴는 사람들의 영적센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권독립 마을의 살림을 총괄하는 존 커클리. 그는 원주민은 아니지만 카나힐리의 원주민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동지가 됐습니다. 부동산 중개사로 원주민 땅의 소유권을 조사하다가 부당한 점을 발견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 커클리 (독립마을 재정담당자):"부당하게 대우받는 소유권에 항의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법원은 부당한 세부조항을 앞세워 무시해버렸다." 카나힐리는 이곳에서 싹을 틔운 원주민 독립마을을 하와이섬 곳곳으로 확대시키겠다는 꿈을 품고 있습니다. 이 마을부터 친환경, 생태, 재생에너지사업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갖춰나간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인터뷰> 카나힐리 (독립 마을 대표):"이 독립 마을은 체계적으로 운영된다.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코코넛과 커피 농장을 운영해 더 많은 사업체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서양의 발달된 과학을 재빨리 흡수해 하와이 섬의 패권을 장악하고 최초로 통일 왕국을 수립한 카메하메하 대왕. 원주민들에게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는 그도 이제는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만 남았습니다. 12년전 카메하메하를 뿌리로 한 하와이 왕정 복원 위원회가 탄생했습니다.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의 골격을 갖췄고 선거를 거쳐 의원을 뽑았습니다. 하와이 왕국 헌법을 개정한 뒤 수상도 선출했습니다. <인터뷰> 헨리노아 (복원 하와이왕정 수상):"우리는 입헌군주제에 기반해 정부를 복원했다.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정부 관료도 뽑았다." 미국 정부는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국제법상 주권을 완벽하게 갖췄다고 주장합니다. 독립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각료들을 각종 국제회의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헨리 노아 (하와이 왕정 수상):"우리는 근본적으로 왕정에 기반해 정부를 복원했다.입헌군주제지만 민주적 기능을 그 안에 담았다." 미국은 강제로 하와이를 병합한 직후 훌라춤이 음란하다며 금지시켰습니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고유의 말과 문화를 말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미국에 순화되는 쉬운 길을 따라갔습니다. 점차 말이 사라졌고 일부 남아있는 원주민 문화도 대부분 영어로 표현되고 그 외형만 연명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인터뷰> 하와이 원주민:"저는 이제 지쳤어요.거기 누구 휘발유 가진 분 없나요."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던 1993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순응했던 원주민들이 주권의 가치를 깨닫고 독립 시위에 대거 가담했습니다. 30여개가 넘는 독립운동 단체들이 처음으로 한몸이 됐습니다. 원주민 출신 주지사는 성조기를 내리고 하와이 왕국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투쟁 목표도 분명했습니다.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주권회복을 통한 '땅되찾기'가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인터뷰> 헨리 노아 (하와이 왕정 수상):"하와이 땅 가운데 절반인 3백만 에이커가 과거 하와이 왕국 소유이거나 원주민들의 땅이다." 조상의 땅을 되찾자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의회는 왕국 해체를 사과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서명했습니다. 다급해진 미국은 유일하게 인정해 온 원주민 단체 하와이언 사무처와 자치권 협상을 서둘렀고 통과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립운동 세력들이 불신하는 단체가 협상을 주도하게 되면서 원하는 만큼의 땅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인터뷰> 카이쿠에 (하와이언 사무처 정책국장):"아카카 빌 즉,자치법안에는 땅 문제는 포함돼 있지 않다.우리는 원주민들에게 금융적 지원을 해왔다." 미국인들 역시 원주민에게 땅을 되돌려 주는 일에는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인터뷰> 마이클 (미국인):"하와이에 맨 처음 온 사람만 땅에 대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두번째,세번째 온 사람도 모두 동등하게 자격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쎈 나라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여온 하와이 원주민들. 이들이 언제쯤 '알로하 정신'에 부합하는 관용과 여유,평화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지, 하와이언의 투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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