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가짜 명품 시계’ 왜 통했나?

입력 2006.08.10 (09:23)

<앵커 멘트>

오늘 뉴스 따라잡기는 최근 일어난 희대의 사기사건을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있지도 않은 이름을 붙인 뒤 명품시계라며 팔아온 사람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 사람에게 속아 유명 연예인과 재벌, 정치인의 부인들이 수천만원의 돈을 주고 이 시계를 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을만큼 사기 수법은 혀를 내두를만큼 치밀했는데요.. 여기에 명품이라면 무조건 사고보자는 비뚤어진 소비 행태도 한몫했습니다.

정창화 기자.. 어떻게 피해자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죠?

<리포트>

네. 한마디로 치밀한 홍보전략에 속아넘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시계 유통업체 대표 이 모씨는 부유층 고객들만을 초청해 화려한 런칭쇼와 전시회를 열었고 일부 연예인들에게는 협찬으로 선심을 쓰며 입 소문을 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서류까지 완벽하게 갖췄는데요. 어처구니없는 가짜 명품 시계. 그 사기수법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서울 청담동의 한 시계 매장.

'빈센트 앤 코' 라는 브랜드로 고급스럽게 꾸민 이 매장에는 웬만한 이들은 사지도 못할 고가의 시계들만 전시돼 있는데요.1950만원, 5천8백만 원, 9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그동안 드나든 고객들도 보통사람은 아니었다는데요.

<인터뷰>주변 상인 : "고급차 타고 와서 사가고 다 그런 거죠. 일반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간 사람은 없고요.“

스위스제로 다이애너비와 그레이스 켈리가 애용하는 등 유럽 왕실에만 100년 간 납품해온 수제 명품시계. 세계의 1% 명품이라고 광고해온 이 시계들은 실제로는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경기도 시흥의 작은 공장에서 조립한 것들이었습니다.

<인터뷰>박성진 경사 (서울지방경찰청) : "아마존 강에 있는 아나콘다 뱀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인조가죽인데요. 이게 원가가 만원인데 소비자들한테 매장에서 200만원에 판매했던 제품입니다."

사실 시계감정전문가의 눈에는 척 봐도 진짜 명품들과는 다른 점이 눈에 띈다는데요.

<인터뷰>장성원 교수 (동서울대 시계주얼리과) : "진짜 명품 브랜드에 비해서 케이스라든가 밴드, 문자판, 바늘 여러 가지를 봤는데 완성도가 많이 격이 떨어지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에 가공 상태가 스위스에서 가공된 정밀한 상태가 아니고 좀 조악한 수준이고요."

그동안 이 시계를 산 고객은 대부분 강남 일대의 부유층 고객과 연예인들.

심지어 재벌 2세와 정치인 아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재진은 시계를 산 이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피해를 입고도 알려지는 것이 싫다며 거절했는데요.

<인터뷰>장성원 교수 (동서울대 시계주얼리과) : "자기도 창피하고 이름 대면 알만 한 사람 시계인데...... 자기도 창피하고 그러니까 나서지 않겠죠. 가격 얘기도 안 해요. 꽤 줬다고 하니까...... 억울해하고 창피해 하고 그래서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왜 그렇게 감쪽같이 속았던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마케팅 수법에 있었습니다.

지난 6월 열린 이 시계 브랜드의 런칭쇼는 행사비용만 무려 1억 3천여 만원이 들어갔는데요.연예인과 저명인사 등 단 4백 여명 만에게만 초대장이 보내졌습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판촉행사도 열었는데요. 참가했던 고객은 물론 이벤트 관계자들까지 그 큰 규모에 가짜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호텔 판촉행사 참가 고객 : "피해자야 많죠. 그럼요. 주변에도 많이 샀어요. 주변에 굉장히 많이 샀어요. 싼 거 말고 제일 비싼 것만...... 그거 어디 가서 보상받지도 못하잖아요."

<인터뷰> 런칭쇼 열렸던 바 관계자 :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죠. 솔직히 (장소 대관료만) 2천만 원 이상 주고 하는 곳인데...... 전 너무 의외예요. 스위스 시계라고 들었는데 아니에요?"

한 유명 백화점에서까지 특별 전시회가 열렸는데요.백화점에서 가짜를 전시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고객들.

그러나 정작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것은 명품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백화점 측이었습니다.

<인터뷰>백화점 관계자 : "수입면장도 복사본 아니고 원본을 달라고 했고 상품 리스트도 받아보고 입고된 상품까지 미리 체크를 했는데 저희도 언론보도 보고 황당했죠. 서류 상으로는 완벽했어요."

그렇다면 그런 서류는 어떻게 만든 것일까요?

간 큰 사기극을 벌인 이 모씨는 이미 6년 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빈센트 앤 코라는 회사의 실체를 가장하기 위해 지난 2000년 스위스와 우리나라에 상표와 법인을 등록하고 스위스에는 유령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여기에 위조한 품질보증서까지 갖췄는데요.

<인터뷰>박성진 경사 (서울지방경찰청) : "원래 품질보증서는 본사에서 발행하는 것이 품질보증서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품질보증서를 발급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을지로에서 만들어버렸습니다.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값비싼 제품에 끼워서 마치 이 제품이 정품제품인양 소비자들에게 제공을 했던 것이죠."

정말 스위스 직수입 제품인지를 확인할 것에 대비해 일부 제품은 스위스로 가져간 뒤 현지에서 다시 조립해 들여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상적인 통관절차를 거쳐 수입신고필증을 받아낸 것입니다.

<인터뷰>박성진 경사 (서울지방경찰청) : "스위스에 가져가서 간단한 조립, 시계 줄을 연결한다든가 뒤에 나사못을 박는다든가 돌려서 조인다든가 이런 방법으로 해서 이 시계를 마치 한국에서 정식으로 수입하는 것처럼 수입을 하게 됩니다. 그럼 수입면장에는 이게 정식으로 수입한 것처럼 됩니다."

대중에게 알리는 방법은 잡지나 유명 연예인을 이용했습니다. 명품을 주로 다루는 잡지에는 이 시계가 다이아몬드에 자개다이얼, 새끼악어의 가죽줄을 사용했다며 극찬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에겐 선심을 쓰듯 협찬을 해주거나 파격가로 판매해 입 소문을 냈고 연예인들 사이에서 행운의 시계로 불렸다고 합니다.

<인터뷰>이모씨 (피의자) : "특별한 것은 없고 관심 있는 연예인들한테 저희가 증정이나 협찬...... 촬영 나갈 때 협찬 해주고 그랬습니다. (연예인에게 협찬하는 것이) 아무래도 (언론매체에) 노출이 많죠."

거기에 고객들에게는 구매 대기자 명단을 보여주면서 수제시계이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한데 사게됐다며 선택받은 고객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까지 덧붙였다고 합니다.

사소한 관리도 잊지 않았는데요.

인터넷에는 일본에서 이 시계를 봤는데 국내에서는 살 수 없냐는 질문을 올리고 그 밑에는 청담동 매장에서 봤다는 답 글까지 아이디만 바꿔서 올렸습니다.

<인터뷰>이모씨 (피의자) : "아무래도 생소한 브랜드니까 광범위하게 알리기 위해 올렸습니다. 새 브랜드들이 나오면 인터넷에 올리고 그러기 때문에 올렸습니다."

이렇게 치밀한 전략에 속은 피해자는 시계를 구입한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매장 대리점을 내면 판매액의 45%는 이익으로 남길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이까지 있었는데요.

드러난 피해자만 4명, 피해액은 16억 원에 이릅니다.

<인터뷰> 피해자 : "(손해 본 금액이) 10억 원이요. 실제 (시계를) 구매해서 차고 있었던 사람들 옆에서 같이 동조를 해주고 그러니까 (진짜인) 줄 알았죠. 힘들죠.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고 그래요."

이처럼 철저하게 사기행각을 벌인 피의자 이모씨는 청담동 일대에서는 일명 필립이라는 교포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그는 특히 인맥관리에 탁월했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발이 넓은 이들과의 친분 역시 100% 활용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호텔 판촉행사 참가 고객 : "홍보하는 분들이나 이런 분들도 꽤 지명도 있는 분들이 나서서 하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의심을 안 했죠. 그리고 그 쪽에 발도 넓고 한 분이 홍보실장 같은 것 팀장을 맡아서 하셨어요."

<인터뷰>런칭쇼 참가 고객 : "청담동에 000 매장이 있는데 거기서도 (시계를) 팔고 그러더라고요. (그 매장 사장님이) 사람들한테 많이 시계를 런칭 한다고 그래서 주변 분들한테 보러오라고 (말씀하시고) 저한테도 그러셨어요."

6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이씨의 사기극은 남이 갖지 못한 명품이라면 가격도 상관하지 않는 일부 그릇된 소비 행태와 만나 희대의 사기 사건으로 남게 됐는데요. 우리 사회의 명품 열풍.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뉴스 이미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