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까지 번진 허위 학력 파문

입력 2007.08.18 (22:16)

불교계에서 '도시 포교'의 신화를 일궈낸 서울 능인선원(강남구 포이동)의 원장 지광((智光)스님이 18일 "서울대에 입학한 적이 없다"고 밝힌 것은 문화예술계와 연예계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허위 학력 문제에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지광스님은 서울대 공대를 중퇴한 해직 언론인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 같은 경력은 1984년 서울 강남에서 신도 7명으로 출발한 능인선원을 신도 25만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도심사찰로 성장시킨 배경이 됐다
그는 전날 중앙일보에 인터뷰를 자청해 자신의 허위학력을 고백했다. 이어 18일 오후 능인선원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괴롭혔던 학력 문제를 밝히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면서 "최근 허위학력이 사회문제로 불거진 것을 보면서 이번에야 말로 이 문제를 털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1969년 서울고를 졸업했으나 건강이 나빠 대학진학을 포기했으며, 1976년 "장난삼아" 한국일보 기자 시험에 응시했다가 합격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당시 학력제한을 두지 않아 그가 입사 시험을 치르는데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후 이력서를 제출할 때 고교선배의 '조언'에 따라 서울대 공대를 중퇴한 것으로 기재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어린 시절 서울 미아리 미군부대 근처에서 자란 것을 계기로 일찌감치 영어에 눈떠 한국일보 계열사인 영자지에 근무하며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그가 능인선원에서 영어로 경전을 가르친다는 소문은 중산층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강남지역의 포교에 적잖은 힘을 발휘한 것으로 불교계는 보고 있다.
지광스님은 기자회견에서 "입산 출가할 때 포교를 할 생각이 없었고 학력을 포교에 이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능인선원 개원 이후 그의 이름 앞에 '명문대를 다닌 해직 언론인 출신 스님'이라는 수식이 붙어다녔다는 점에서 이러한 배경이 포교와 무관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능인선원의 한 신도는 "우리는 지광스님의 학력이 아니라 법력을 믿는다"고 했고, 또다른 이는 "명문대를 나왔다고 모두 훌륭한 포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법문집 '정진'을 펴냈던 지광스님은 "불교는 수행을 통해 마음의 가면을 계속 벗겨나가 궁극에서 진여(眞如)와 공(空)을 만난다는 점에서 서구사상이 제시하지 못한 해답을 준다"면서 "분별없는 욕망에 끌려다니는 나, 마음 속에서 번뇌를 일으키는 '가짜 나'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할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고 역설했다.
신도들에게 '가짜 나'를 없애라고 수없이 설법했을 성직자가 정작 자기 자신은 30여 년간 가짜 학력에 포박돼 있었던 셈이다. 그의 법문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소리였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25만여 명의 신도를 거느린 지광스님이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자신의 허위학력을 고백한 것은 매우 용기있는 행동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직자로서 오랜 세월 '진실'과 '가짜'사이에서 번민했을 그의 참담한 고백은 학벌문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생생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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