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후 오늘] 전통 맥 잇는 ‘엿장수 3대’

입력 2008.02.04 (20:46)

수정 2008.02.04 (22:22)

<앵커 멘트>

혹시 엿장수가 1분에 가위질을 몇 번이나 하는 줄 아세요? 글쎄요.. 한 백 번쯤?

아닙니다. 엿장수 마음대로죠. 뉴스후 오늘 이 시간엔 60년 경력 엿장수 아버지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던 양복쟁이 아들, 여기에 중학생 손자까지 더한 엿장수 3부자의 얘기입니다.

임세흠 기자입니다.

<리포트>

올해 나이 82살...

그래도 가위만 쥐었다, 하면 노랫소리에, 춤사위 한판..

50대 청춘이 부럽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들에, 손자까지 삼부자의 엿 가위 소리가, 온 장터를 흔듭니다.

엿장수 윤팔도 씨는 열 넷에, 엿판의 가위를 잡았습니다.
60년 넘게 절겅대는 가윗소리로 전국을 누볐습니다.

<녹취>윤팔도(82세/본명 윤석준):"옛다 엿 먹어라, 애들이 엿가위 소리가 나면, 대문 문턱에 나자빠져서 무릎 깨져서 환장하고..."

엿 타령으로 노래자랑에 나오고, TV 광고에도 등장하면서, 그는 보통 엿장수와는 다른 길을 걷게됩니다.

엿 행상도 모자라 밤무대까지 오르냐며 '딴따라'라고 손가락질도 받았습니다.

<녹취>김종숙(윤팔도 씨의 아내):"누가 엿장수하고 살라고 했냐고. 친정도 못갔어."

그런 아버지를 창피해 했던 양복쟁이 아들이, 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엿장사를 이어받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젠 가족들까지 유명세를 탔습니다.

올해부턴, 중학생 손자까지 가업을 돕고 있습니다. 윤 씨가 처음 엿 가위를 잡았던, 꼭 그 나이의 손자입니다.

<녹취>아들:"이렇게 만들면 누가 먹겠어?"

보다 못한 윤 씨가 팔을 걷어부칩니다.

<녹취>윤팔도:"엿이 벌벌 떨었는데. 나만 보면...손을 이렇게 던지면 안돼..."

아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긴 했지만, 처음부터 미더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녹취>윤팔도:"엿에다 대고 커피를 넣네 쑥을 넣네, 송화가루를 넣네. 쟤가 뭐 미친놈이지 어린애 소꿉장난도 아니고..."

전통을 고집하는 윤 씨와, 이제 똑같은 엿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는 아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도 있었습니다.

<녹취>윤일권 (윤팔도 씨의 아들):"이제 먹거리가 고급스럽고 다양한데 엿도 좀 그런 변신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윤 씨네 엿은 다양하게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방식만큼은 전통의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녹취>아들:"아버지가 해온게 맞다는 생각이 들고, 좀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 전통의 엿맛을 지켜가려면 수작업을 하는게 당연하다고 봐요."

윤 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부자는 음반을 냈습니다.

윤 씨의 구전 민요를 기록으로 남겨 놓기 위해섭니다.

한 해 수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사업을 키웠지만, 엿장수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삐딱합니다.

엿장수 시아버지는 참아도 엿장수 남편은 못 보겠다던 며느리는 결국 떠났고.

<녹취>아들:"반대도 심했고... 많이 했죠. 그걸로 인해서 안 좋은 결과... 허허 그런 얘기는 (손사래)"

돕는다고 나선 손자도 아직 썩 내켜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녹취> 윤경식 (윤팔도 씨의 손자):"제가 좀 싫어했죠. 창피하니까. 처음에는 아빠하는 일을 저도 좀 싫어했고..."

그럴 때마다, 초심을 다잡는다며 삼부자는 시장통으로 나갑니다.

소규모 유랑극단같은 모습. 소풍 나온 이들처럼 신이 납니다.

<녹취>아들:"경식이가 하든 안 하든 떠나서 언젠가 이일을 선택했을때, 정말 값진 보석이 될만큼의 경험을 쌓아주고 싶어요."

<녹취>윤팔도:"(아버지가 뽑은 엿가락 줄만 해도 얼마나 뽑았을까?) 내가 서울서 부산을 12번도 더 왔다갔다 했다. 안녕하십니까? 윤팔돕니다. 땡큐베리마치."

KBS 뉴스 임세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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