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지난 2006년 직업소개소에 찾아온 사람들을 염전에 팔아넘기고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시켜온 사실이 밝혀져 큰 사회 문제화됐던 것 기억하십니까?
당시 15년 만에 극적으로 풀려난 한 청년의 귀향 이후 삶을 뉴스 후 오늘 윤 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5년 만에 나타난 아들, 상처투성이에, 손발은 굳은살이 박이다 못해 갈라져 피까지 납니다.
<녹취> 임양순(권형수 씨 어머니) : "이게 세상에 사람 발이에요 이게? 악어 가죽이지..."
정신도 온전치 않았습니다.
도대체 지난 15년 동안 권형수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권 씨는 19살 때 가출해 서울의 한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가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인터뷰> 권형수(취재파일 2006.12.24) : "그때 거기서 무지하게 맞았죠. 그래서 내 이름을 가명으로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뭘로 바꾸라고 했어요?) 권태종이라고요."
권 씨가 팔려간 곳은 전남 신안의 한 섬에 있는 염전.
탈출은 불가능했습니다.
<인터뷰> 권형수(취재파일 2006.12.24) : "산에 가 있었지요. (왜 산에 가 있었어요?) 안 보면 배 타보려고요. (그런데 왜 못탔어요?) 안 되겠더라고요. 경찰도 지키 고 있고 주인 친구들이 다 지키고 있고 해 서 안되겠더라고요."
권 씨는 지난 2006년 말 한 경찰관의 도움으로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녹취> 권형수 : "뭐 드실래요?"
풀려난 뒤 1년 남짓.
권 씨는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도우면서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임환택(이웃 주민) : "수고 많네. 열심히 하대 요즘 보니까는."
법정 소송 끝에 염전 고용주로부터 10년치 임금으로 5600만원을 받아, 지난 여름엔 결혼도 했습니다.
<인터뷰> 권형수 : "눈빛에 반해서요."
어엿한 가장이 된 권 씨, 지난달 아내의 임신을 알고 난 뒤 폐지를 줍는 부업까지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권형수 : "(이거 뭐하시게요?) 팔아야죠. (팔아서 뭐하시게요?) 각시 용돈 주고 그러니까요."
15년간 일이 몸에 밴 탓일까, 권 씨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14시간을 꼬박 일하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권형수 : (신안에서 일하던 거랑 여기 와서 일하는 거랑 비교하면?) "거기가 더 힘들죠. 잠을 못자니까. 쉽죠, 이거는.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지난 1년 동안, 손발 굳은살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몸에 살도 제법 올랐지만, 요즘도 불안증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 상처는 육신의 상처만큼 빠르게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권형수 : "여기도 위험해요. 차가 다니니까. 언제 잡아갈지 모르니까."
권 씨가 갇혀 있었던 섬을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이곳의 인권 유린 문제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서 지적됐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습니다.
인력소개소에서 일꾼을 조달하는 방법도 여전히 수상쩍습니다.
<녹취> 김 모 씨(염전 일꾼) : "저기 과판에 있는 사람도 온 지가 한 4년 되고. (어디서 왔는데요?) 육지에서 왔어요. (어떻게 왔어요 육지에서?) 소개 소에서 팔려 왔어요."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작업 환경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일꾼들은 귀뜸합니다.
<녹취> 김 모 씨(염전 일꾼) : "일 잘 못하면 주먹으로 때릴 때도 있고, 연장을 던져버릴 때도 있고..."
권 씨가 10년간 일했던 집도 염전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음> 계세요~?
고용주 가족들은 몽둥이로 자주 맞았다는 권 씨의 주장을 거듭 부인했습니다.
권 씨가 나간 뒤로는 상주 일꾼을 아예 두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신 모 씨 : "그때는 뭐 소개소에서 데려오면 10만원도 주고 인부를 데려와. 한 달에 일 잘하면 밥 먹여주고 20~30만원씩...요 근래에는 돈 100만원씩 줘야 돼요."
의심스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관할 지자체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습니다.
<녹취> 신안군청 관계자 : "우리 과에서는 인권이란 업무 자체를 서 로 업무가 분산돼 있다 보니까."
<인터뷰> 허주현(목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 : "상담할 수 있는, 그것도 제3의 지역 사람 들이 상담할 수 있는 민관 합동 구조가 만 들어 져야 합니다."
관계 기관과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인권 유린은 더욱 교묘한 형태로 언제든 재연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윤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