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역전세난…세입자를 모셔라!

입력 2008.12.26 (08:44)

<앵커 멘트>

집 주인은 고개를 숙이고 세입자는 콧대를 높이고... 바로 요즘 전세 시장을 가리켜 나도는 말입니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 역 전세난으로 빚어지는 풍경을 돌아봤습니다. 정지주 기자! 집 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갑,을이 바뀌었다는 말이 나돌더군요.

<리포트>

세입자들 전세 만기 되면 집주인이 전셋값 올려달라고 할까봐 밤잠 못 이룬다, 이 말이 요즘은 옛말이 돼버렸습니다. 오히려 만기가 되면 세입자가 나갈까봐 집주인이 잠을 못 이루게 됐습니다. 강남 재건축단지와 뉴타운 또 수도권 외곽 신도시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전세물량이 넘쳐나게 됐죠.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세입자들, 같은 값이면 더 나은 집에 들어가려 하고 집주인은 세입자 붙잡으려 내부 인테리어에 떨어진 전셋값만큼 이자 주겠다고도 합니다. 그런데도 보증금 때문에 법적 분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역전세난 속에 입장 바뀐 집주인과 세입자들 그 진풍경을 함께 보시죠.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밀집 지역입니다. 최근 반포의 대규모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전세 물량이 늘자 이 주변 아파트 전셋값은 더 떨어졌습니다.

지난 23일 잠원동으로 이사를 온 조 모 씨는 56㎡ 아파트를 전셋값 1억 원에 계약했습니다. 조 씨는 불과 몇 달 사이에 전셋집을 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인터뷰> 조00 (세입자) : “초여름부터 집을 구하다가 일이 생겨서 그만 두고 있다가 다시 이번 겨울에 했거든요. 그때랑 지금이랑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전혀 나올 수 없던 가격의 집들이 나오니까...”

떨어진 전셋값도 값이지만 내부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퇴짜를 놓았던 집이 금세 깨끗하게 수리가 된 것을 보고 조 씨는 마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인터뷰> 조00 (세입자) : “처음에는 집이 너무 지저분했어요. 아니다 하고 바로 나갔거든요. 다음에 같은 집인 줄 모르고 왔는데 그 때 그 집인 거예요. 그런데 장판이랑 도배를 새로 하니까 집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왔죠.”

전셋값으로 노후 생활을 하고 대출 이자도 갚아야 한다는 집 주인 안 모 씨.. 집을 내놓고 두 달이 지나도록 세입자를 구할 수 없었지만 전셋값을 내리고 130 만원을 들여 수리를 해, 겨우 세입자를 들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안00 (집 주인): “1억 2천이었다가 1억 1천으로 내렸는데 계약이 빨리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1억으로 했어요. 요즘 은행 이자가 높아졌고, 아프더라도 병원 갈 돈도 있어야 하고, 할아버지도 속상해하시죠..”

손님을 찾아보기가 힘든 부동산 시장이지만, 아파트 주변 인테리어 업체에는 요즘 오히려 문의가 늘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김은기 (인테리어 업체 대표): “요즘에는 아무래도 (전세가) 잘 안 나가니까 좀 수리를 해서 싱크대나 화장실 공사, 주방, 도배, 장판이라도 하는 경향이 있죠.”

집 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내주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세입자의 은행 이자를 부담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른바 ‘역월세’인데요, 김 모 씨가 바로 그런 경웁니다.

김 씨는 서울 송파에 62㎡ 짜리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습니다. 이 집에 살던 세입자는 계약이 끝난 지난 11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은행 대출을 받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인터뷰> 김00 (집 주인): “만기 때 맞춰서 나간다고 집을 벌써 비운 상태이고 집은 계속 안 나가고 있으니까 (세입자가) 융자를 내서 자기가 집을 얻었으니까 그 융자 부분에 대한 이자를 부담해라,..”

이사 간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을 때까지 대출금 이자를 매 달 절반씩 부담하라고 김 씨에게 요구했습니다. 김 씨 집의 전셋값은 8천 만 원에서 6천 만 원으로 떨어졌지만 집은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인터뷰> 김00 (집 주인): "8천 만 원에 대한 융자니까 20~30만 원 정도(주고 있죠). 아무래도 주인이 세입자하고 입장이 바뀌는 것 같아요. 더 억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집 주인과 세입자의 처지가 뒤바뀐 요즘, 집 주인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세입자를 달래고 있습니다. 전셋값이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하는 세입자들의 요구에 1년만 계약을 하기도 하고, 당장 돈을 마련하지 못해 보증금 차액을 나중에 주겠다고 각서를 쓰는 집 주인도 있습니다.

<인터뷰> 이순자 (공인중개사): “주인은 전세가 안 나가니까 내가 대출 받아서 1억을 먼저 주고 나머지 3천 만 원은 빠지는 대로 주겠다, 나중에 빠지는 대로 돈을 주겠다는 각서를 써 주겠다..”

하지만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사정을 내세워 그 마저도 원활하게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순자 (공인중개사): “그런데 세입자는 양쪽으로 관리비가 나가니까 나는 그렇게 못한다, 돈을 다 줘라 그래서 지금 서로 굉장히 안 좋은 관계에 있거든요.”

이렇다보니 세입자에게 내 줄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찾는 집 주인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습니다.

<인터뷰> 김유진 (은행 직원): “전세자금 대출보다는 그 반대인 임대인 분들이 전세자금을 다시 돌려 드리려고 하는 역전세난 때문에 이런 대출 상담이 늘어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앞서 보신 사례처럼 집 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아가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수원의 112㎡ 아파트에 사는 박 모 씨는 계약이 끝났지만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해 집 주인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00 (세입자): “날짜 기한이 다 됐으니까 계약금을 서서히 준비해주시라고 그랬더니, 내가 이걸 놔뒀다 팔든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까 25일에 돈은 분명히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지난 11월 25일 전세 계약이 끝난 박 씨는 집 주인에게 이사를 가겠으니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억 3천 만 원이던 전셋값은 2천 만 원 정도 떨어졌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 주인은 현재 연락을 끊다시피 한 상황입니다.

<휴대전화 통화음>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인터뷰> 박00 (세입자): “이거 전세금 반환 소송밖에 없네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고 소송에서 승소하게 되면 (집주인의) 이의 신청이 없을 때 저희가 임의 경매를 할 수 있다는 것...”

박 씨의 어머니는 보증금 문제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 이제는 약 없이 버티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주변 전셋값이 떨어져 조건이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계획을 세웠던 박 씨 가족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세입자: “이 돈이 저희 재산인데 이 돈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하나, 저희는 없는 거잖아요 아무 것도...”

최근 한 소비자 단체에는 세입자들의 전세금 반환 소송 문의가 하루에도 수 십 건씩 빗발치고 있습니다. 전세금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진풍경들..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요, 꽁꽁 얼어붙은 2008년 경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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