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이 바라본 ‘국민 마라토너’

입력 2009.10.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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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9.삼성전자육상단)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 21일 전국체전 마라톤 경기에는 친지들과 은사 등 그동안 이봉주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여럿 찾아와 격려를 보냈다.
이들은 이봉주가 그동안 지내온 긴 선수생활을 돌아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 성실했던 사람"이라 입을 모았다.

◇가족들 '조용했지만 마음 통했던 막내'

이날 이봉주의 마지막 경기에는 어머니 공옥희(75) 씨와 큰형 이성주(51) 씨가 출발선까지 찾아와 응원을 보냈다.
공씨는 "마지막 경기라니 서운하면서도 시원하다. 잘 뛸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한데, 그동안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해 잘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출발선에 선 이봉주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다.
이봉주가 출발선을 달려나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공씨는 "중학교 때까지 운동을 잘 하지도 못하던 막내 이봉주가 갑자기 달리기를 하겠다고 하더라.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많이 반대했다"고 입을 열었다.
옆에서 함께 이봉주를 지켜보던 큰형 이성주 씨도 "나도 학생 시절 레슬링을 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간에 그만뒀다. 그 어려움을 아는데 어떻게 허락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거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마라톤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다, 스스로 워낙 성실하게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공씨는 "어릴 때에는 막내라서 집에서 재롱도 부리곤 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집에서 떨어져 살다 보니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다"며 서운했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형 이씨도 "봉주가 하루도 훈련을 거른 날이 없다. 그러다 보니 명절에도 거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가끔 집에 오더라도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많은 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공씨는 "그냥 몸은 괜찮은지만 물어보고 만다. 몸만 건강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미소지었다.
그럼에도 가족들과 이봉주는 말 없이도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다.
이성주 씨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꼭 전화를 한다. '컨디션이 좋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대강 알 수 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결과가 좋으면 목소리가 밝다"고 말했다.
어머니 공씨는 경기가 있을 때면 늘 절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공씨는 "불안해서 차마 경기를 보지는 못하겠더라. 직접 경기를 본 적이 몇 번 없다"면서 "오늘은 마지막이라 특별히 보러 왔다"고 웃었다.
형 이성주 씨도 "봉주의 누나들과 어머니 등은 가슴 떨려서 경기를 보지 못한다. 대신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곤 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나도 봉주가 경기할 때 면도를 하면 꼭 넘어지거나 부딪치곤 해서 수염을 깎지 않는 징크스가 있다"며 웃었다.
이봉주 역시 워낙 말수가 적은 성격인지라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해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씨는 "오늘은 마지막 경기라서 마음 편하게 나왔다"고 웃으며 말끔하게 면도한 턱을 쓸어올렸다.

◇지도자들 "성실함으로 기억될 큰 선수"

젊은 선수 시절 이봉주를 가르쳤던 지도자들 역시 "성실함이 지금의 이봉주를 만들었다"며 마지막 무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봉주가 아직 무명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충청남도 대표로 발탁했던 문흥건(49) 충남육상연맹 전무는 "5등까지만 대표로 뽑는 선발전에 봉주가 6등을 했다. 하지만 지도자들 사이에서 다들 '저런 성실한 선수는 언젠가 잘 될 것'이라고 의견이 모아져 한 명을 트랙 대표로 돌리고 대신 이봉주를 대표로 선발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지도자들도 '국내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 정도로 생각했다.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워낙 성실했기에 이렇게까지 큰 선수가 된 것 같다"고 이봉주를 칭찬했다.
광천고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무명이었던 이봉주를 서울시청에 입단시켰던 오재도(52) 감독 역시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성실함만큼은 유명했던 선수"라고 기억했다.
오 감독은 "우스갯소리로 '이봉주는 비가 내려도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며 "소문을 듣고 광천고에 내려가서 보니 '앞만 보고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라 앞으로 잘 되겠다'싶어 뽑았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이봉주가 서울시청에 입단한 이후에도 시키는 훈련을 모두 소화하고 혼자 나머지 훈련까지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회상했다.
오 감독은 "이봉주는 5시30분이면 일어나 매일같이 혼자 달렸다. 겨울에 그 시간이면 아직 깜깜하다. 발이라도 헛디뎌 다칠까 봐 내가 적당히 하라고 말릴 정도로 쉬지 않고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늘 고된 훈련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이봉주도 운동을 그만두려 한 적이 있었다.
오 감독은 "이봉주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몸이 좋지 않아 기권하더니 실망해서 도망친 적이 있다. 내가 직접 어머니와 이봉주를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며 "힘들어서가 아니라 대회에서 탈락한 것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 자체가 이봉주가 얼마나 승부욕 강한 선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오 감독은 또 "워낙 평소 착실하고 성실하던 선수였다. 원래 이봉주는 이도 좋지 않았고 눈썹도 자꾸 처지곤 하는 등 몸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친지의 소개로 불법 쌍꺼풀 시술을 받고 왔더라"며 마라톤을 향한 이봉주의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문 전무와 오 감독은 "동년배인 황영조에 비해 스피드가 부족해 무명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오랫동안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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