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몰래 쓰는 ‘대포 3종 세트’

입력 2009.10.23 (22:05)

<앵커 멘트>
'대포'는 남의 이름을 빌려쓰는 물건을 이르는 속어입니다.
대포 차, 대포 폰, 대포 통장, 대포 카드까지...
이들 범죄자 전유물이 일반인에게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
정창화 기자의 심층취재입니다.


<리포트>

흰색 승용차 한 대를 경찰이 뒤쫓습니다.

요금소에 도착하자, 경찰이 승용차의 앞과 뒤를 막아 용의자 4명을 검거합니다.

이른바 '대포통장' 5천 개를 전화금융 사기조직에 판 유통 점조직입니다.

<녹취> 조○○씨(피의자) : "인터넷에 대포 통장 '팝니다. 삽니다.' 치니까, 거기에 (연락처) 올려놓은 사람과 통화가 됐어요."

이달 초 회삿돈 1,898억 원을 횡령한 前 건설회사 자금부장 박 모씨, 대포 폰 30여 개를 써 왔습니다.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녹취> 김재중(서울 광진경찰서 경제 2팀장) : "도피자금을 마련했구요. 가지고 있던 수표로요, 그리고 대포 폰을, 대포 폰을 준비했고..."

대포물건의 공급처는 인터넷입니다.

누구나 쉽게 팔거나 살 수 있습니다.

<녹취> 원OO(대포차 구입자) : "(불안하거나 이런건 없으셨어요?) 많았죠. 불법이고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는 거고. 차값도 싸고 그래서 산 거죠. 세금도 안 내고..."

대포 물건은 주로 점조직으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검거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임성재(경기 2청 광역수사대) : "밖에서 자기네들만 아는 음성적인 곳에서 전화만 받고 나가서 매매하니까 길바닥에서 만나서 매매를 하는 거에요. 그런게 어렵죠."

남의 이름으로 빌려쓰거나 몰래 쓰는 이른바 '대포' 물건들은 사회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습니다.

금융사기나 형사범죄에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대포 폰을 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녹취> 문OO(대포폰 판매상) : "정치인도 있고, 고위 공무원들도 있고, 경찰들도 있고, 오락실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포 물건이 널리 퍼지는 만큼 영문도 모른 채 이름을 도용당하는 피해자도 늘고 있습니다.

돈은 물론 신용까지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녹취> 서정욱(대포폰-대포통장 피해자) : "누군가 제 명의를 도용해 가지고 인감증명을 떼서 휴대폰 4개를 개통하고 은행을 통해서 통장 5개를 개통했습니다. 심각하게 돼서 회사도 못 다니게 됐습니다."

하지만 대포 물건이 뿌리 뽑히기는 커녕, 오히려 그 종류가 늘고 있습니다.

대포차, 대포폰, 대포통장, 이 세 가지를 합쳐 사건현장에서는 이른바 '대포 3종 세트'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최근엔 대포아이디와 대포카드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숨은 채 남의 물건으로 얘기하고, 움직이고, 돈을 주고받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깁니다.

<녹취> 이윤호(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이것이 범죄행위란 걸 느끼지도 못하고 죄의식을 아예 가지지도 않고 그래서 점점 더 이런 행위들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남기게 되죠."

경찰청은 지난 7월 말부터 9월까지 특별단속을 벌였습니다.

불과 2달여 동안 대포통장 9천백 개, 대포 차 2천2백 대, 대포 폰 122대가 적발됐습니다.

KBS 뉴스 정창화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뉴스 이미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