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 일본에 자존심 살린 쾌승 역사

입력 2010.05.24 (22:04)

수정 2010.05.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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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24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2-0 낙승을 거둔 장면은 한일 축구 대결 역사에서 또 하나의 명승부로 기록될 전망이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한일전이 어떤 효용이 있을지 고민하는 축구팬들이 적지 않지만 한국에는 기분이 좋은 한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숙적 한국을 꺾어 침체일로를 걷는 대표팀의 사기를 고양하고 월드컵 열기를 띄울 명분이 있었지만 한국은 부여할 의미가 없어 애초부터 밑지는 장사로 평가됐다.

일본은 힘과 스피드가 좋은 한국을 월드컵 본선의 같은 조에 있는 카메룬으로 삼고, 한국은 미드필드의 정교함이 두드러지는 일본을 같은 조의 아르헨티나로 삼으면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은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카리스마와 부동의 골잡이 박주영(AS모나코)의 건재를 재확인하는 수단이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지성은 전반 초반에 스스로 골문을 열어젖히면서 승기를 잡았고 박주영은 후반 막판에 문전쇄도로 얻은 페널티킥을 스스로 해결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음을 알렸다.

일본은 사령탑들이 궁지에 몰려 `단두대 매치'라고 불렸던 지난 2월 동아시아선수권대회 한일전에 이어 이번에도 완패하면서 상당한 굴욕감을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냉랭한 시선을 극복할 기회로 삼았던 출정식 빅매치에서 지면서 풀이 죽은 채 출국해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됐다.

예전부터 한일전은 대회 비중이나 타이틀과 상관없이 코치진이나 선수에게 항상 `이기면 본전, 지면 역적'이 되는 부담스러웠던 경기였다.

개별 상황이 뒤얽힌 가운데 그런 묘한 부담감 때문에 한국의 쾌승은 예나 지금이나 국민을 즐겁게 했다.

한국과 일본은 1954년 3월 7일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스위스월드컵 예선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태극전사들은 당시 "패배하면 대한해협에 빠져 죽겠다"고 선언하고 출국해 5-1 대승을 거두고 개선했다.

이후 56년 동안 이어진 72차례 맞대결 가운데 최고 명승부로 꼽히는 경기는 1997년 9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이다.

한국은 일본에 후반 22분 선제골을 내줘 패색이 짙었지만 조커로 투입된 서정원이 경기 종료 7분 전에 최용수의 헤딩 패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해 동점골을 뿜었다.

이민성은 3분 뒤 물 제비를 뜨는 것처럼 그라운드를 한번 튀어서 골키퍼의 손을 피해가는 중거리포로 역전골을 터뜨렸다.

요요기 국립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여 관중은 얼어붙으면서 "후지산이 무너진다"는 해설이 유행하기도 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도 짜릿한 역전극이 연출됐다.

한국은 0-1로 전반을 마치고 후반 8분 유상철이 동점골을 터뜨렸고 후반 33분 황선홍이 역전 골까지 뿜어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마지막 5분 동안 드라마가 연출됐다.

한국은 후반 41분에 동점골을 얻어맞았지만 인저리타임에 황선홍이 역습 공격에서 당황한 상대 수비의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넣어 울다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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