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의 굴곡 많은 ‘18년 야구 역사’

입력 2010.07.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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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 대구상고-영남대를 졸업한 거구(188㎝.95㎏)의 한 선수가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동기생 투수 김태한에게 밀려 1년을 상무에서 뛴 뒤 1993년 1차 지명을 받고 원했던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 대뜸 주전을 꿰차더니 타율 0.341을 치면서 타격왕과 신인왕을 독차지하면서 홈런 23개에 90타점을 쏟아냈다. 이후에도 꾸준히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한국 프로야구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까지 씽씽 방망이를 휘두른 그는 올해로 어느덧 데뷔한 지 18년째가 됐고 그가 걸어가는 길은 그대로 프로야구 역사의 새로운 기록이 됐다.

26일 은퇴를 선언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대형 외야수 양준혁(41)의 이야기다.

계약금 1억원을 받고 삼성에 입단한 양준혁은 소속 팀에 쟁쟁한 선배가 즐비했지만 곧바로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만세를 부르면서 방망이를 내던지듯 휘두르는 등 타격 자세는 엉성한 듯했지만 때리는 족족 안타를 빚어냈다. 신인임에도 거침없는 타격 솜씨를 과시하며 타격왕에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타격의 달인'인 양준혁의 거침없는 행보는 '2년차 징크스'도 막지 못했다. 2년차인 1994년에도 타율 0.300에 홈런 19개와 타점 87개를 쓸어 담았다.

1996년에도 두 번째 타격왕(0.346)에 오르는 등 최고의 활약을 이어갔다. 1997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30홈런 고지에 올랐고 1998년에는 다시 3할4푼대(0.342)의 높은 타율을 작성하면서 또 타격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프랜차이즈 스타로 뿌리를 내리면서 라이온즈에 뼈를 묻겠다며 승승장구하던 양준혁이었지만 1998시즌 뒤 갑작스런 시련을 겪었다. 삼성이 해태의 특급 마무리 임창용을 영입하자 심한 충격을 받았다.

양준혁은 트레이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일본 진출까지 요구하면서 반발했다. 하지만 결국 두 손을 들고 원치 않던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됐다.

양준혁은 해태에 합류하고 나서도 자신의 의사를 무시한 트레이드에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와중에 1999년 시즌을 마치고 선수협의회 창립총회를 주도하는 등 국내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큰 변혁을 이끌기도 했다.

양준혁은 투쟁을 이끈 끝에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선수협의 실체를 인정받고 제도개선위원회 설립을 약속받은 뒤 해태로 복귀했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과 감정 마찰로 생긴 앙금을 씻어내지 못했고 구단과 불화설도 이어지는 등 마음고생을 겪었다.

그러다가 2000시즌 개막 직전 다시 LG로 트레이드 됐다.

이처럼 그라운드 밖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타율은 1999년 0.323을 필두로 2000년과 2001년에도 각각 0.313, 0.355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2001년에는 생애 네 번째 타격왕에 올랐다.

고향팀을 떠나 3년 동안 떠돌던 양준혁은 2001시즌 후 삼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양준혁은 4년간 계약금 10억원, 연봉 3억3천만원 등 총 23억2천만원의 거액을 받고 사자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삼성 복귀 후 양준혁은 이승엽, 임창용, 마해영 등 당대 최고 스타와 절묘한 호흡을 맞추며 2002년 시즌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주역이 된다.

양준혁은 은퇴를 선언하면서 올해 마지막으로 출전한 올스타전과 함께 2002년 삼성의 우승을 선수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당시 타율 0.276에 그쳐 9년 연속으로 이어오던 3할 타율 행진이 깨지는 등 성적이 저조해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부담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기일전한 양준혁은 2003년 타율 0.329에 개인 최다인 33개의 홈런을 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5년 또 3할 아래로 타율(0.261)이 떨어지면서 주춤했다. 2006~2007시즌 3할 이상을 쳤지만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 2008시즌에서 타율 0.278에 그치면서 은퇴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주전 경쟁에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후배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올해는 처음으로 배팅볼 투수를 자청해 후배의 타격 훈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올해는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는 신세가 되면서 홈런 1개에 타율 0.252(135타수 34안타), 20타점, 10득점으로 부진했다.

이처럼 체력은 떨어지고 방망이 솜씨도 조금씩 줄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기록 부문에서는 갈수록 빛이 났다. 워낙 쌓아 놓은 안타와 홈런이 많은 탓에 최근에는 출장할 때마다 타자 부문 기록을 새롭게 썼다.

개인통산 최다인 2천131경기에 출장한 양준혁은 최다타수(7천325타수)와 홈런(351개), 안타(2천318개), 루타(3천879개), 2루타(458개), 타점(1천389개), 득점(1천299개), 사사구(1천380개)에서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양준혁은 또 올스타 부문에서도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3년 연속 '별들의 무대'에 초청받는 등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올해는 팬 투표에 뒤져 베스트 10에 뽑히지 못했지만 부상으로 빠진 박정권(SK) 대신 극적으로 올스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4일 대구구장에서 홈 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7회 3점 홈런을 날려 올스타 통산 홈런 공동 1위(4개)에 올랐다. 또 41세1개월28일로 김재박 전 LG 감독이 1991년 세운 역대 최고령(37세1개월) 홈런 기록을 19년 만에 갈아치웠다.

양준혁은 "부상 없이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해서 행복했다"라면서 "앞으로도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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