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실천적 지식인, 사상의 은사로 불렸던 리영희 교수가 오늘 별세했습니다.
되풀이된 옥고와 해직에도 꺾이지 않았던 그의 삶을 돌아봅니다.
변진석 기자입니다.
<리포트>
분단과 냉전, 독재 등 한국 근현대를 부러지지 않는 펜 하나로 헤쳐나갔던 리영희 전 교수.
지난 1957년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며 냉전 시대의 이념에 맞서는 '전환시대의 논리' 등 다양한 저서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역설했습니다.
7~80년대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로 불리었지만, 3번의 구속과 4번의 해직, 1012일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고달픈 삶의 연속에 지난 2000년 뇌출혈로 쓰려졌습니다.
<녹취>故 리영희 전 교수(지난 2006년): "사회 변혁의 목적, 한 50%는 이제 지난 몇 해 동안 달성되지 않았는가..."
10년간의 투병 생활 중에도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열정을 간직했던 리 교수는 오늘 새벽 결국 간경화로 81년간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터뷰>유홍준(전 문화재청장): "많은 젊은이들이 선생님의 글을 읽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고, 저도 또 그런 학생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녹취> '우상과 이성' 서문 내레이션: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었던 리영희 교수는 광주 5.18 민주묘역에서 영면하게 됩니다.
KBS 뉴스 변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