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이번 대선은 12월 19일 치러집니다.
오늘로 6달, 183일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누가 후보될 지는 오리무중입니다.
누가 나온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은 손에 꼽습니다.
이렇게 후보 선출이 늦어지고 있는 각 당의 속사정을 윤지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완전국민경선제를 요구하는 비박계 주자- 현 당헌당규로 하자는 친박근혜계-
대선주자 경선 룰을 놓고 새누리당의 기싸움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는 경선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최고위 산하에 논의기구를 두자는 입장,
<인터뷰> 황우여(새누리당 대표/17일) : "늦어도 120일 전에는 등록하라고 당헌으로 정했다. 당헌대로 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반면 비박계 주자들은 모든 대선주자가 참여하는 원탁 회동을 제안하며 지도부를 압박했습니다.
일부 주자는 경선 불참까지 시사하고 있어 여당 대선후보가 언제 확정될지는 오리무중입니다.
민주통합당도 유력 주자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지만 역시 경선룰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보 자격과 모바일 투표 방식 등의 쟁점은 정파별로 이해가 엇갈려 해법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당밖의 안철수 교수까지 아우르려면 11월에나 야권 후보가 확정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옵니다.
<인터뷰> 이해찬(민주통합당 대표/15일) : "적어도 11월 초까지는 아무리 늦어도 확정해야...단일화 상대가 있냐 없냐 따라 나머진 달라지는 거니까"
여기에 여야 모두 런던 올림픽 기간에는 대선 일정을 피할 움직임이어서 후보 선출 절차는 더욱 늦어질 것이란 관측입니다.
<앵커 멘트>
하지만 지난 2002년과 2007년 두차례 대선은 지금처럼 이렇게 늦지는 않았는데요,
지난 두차례 대선 당시 이맘 때쯤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홍성철 기자가 설명합니다.
<기자 멘트>
지난 2002년 대선 상황부터 보시겠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4월 27일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확정했습니다.
후보 확정에 앞서 49일간의 경선도 치렀습니다.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은 2002년 5월 9일 이회창 후보를 대선 후보로 확정했습니다.
두달 전부터 전국을 돌며 경선을 치렀습니다.
2007년 대선은 좀 늦어졌는데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8월 20일 정해졌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10월 15일 결정됐습니다.
후보들의 지지율은 2002년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가 선거 막판까지 엎치락 뒤치락을 거듭했습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선 이명박 후보가 줄곧 앞서나간 뒤 결국 최종 결선 때까지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후보 결정이 늦어지면 현실적으로 후보와 정책에 대한 검증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는데요.
유권자들이 묻지마 투표를 해야 한다는 우려까지 제기됩니다.
곽희섭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꼭 10년 전, 이미 후보로 확정된 여야 대선 주자들이 첫 연설 대결을 펼쳤습니다.
<녹취> 노무현(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 "시장주의자 아닌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은 상식 바깥의 일"
<녹취> 이회창(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 "자유시장경제의 초석을 놓는데 전력을 다할 생각"
5년 전에도 후보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책, 인물 대결이 치열했습니다.
한나라당에선 여러 차례 정책 토론회가 열렸고,
<녹취> 박근혜(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 "왜 180도 입장을 바꾸셨습니까?"
<녹취> 이명박(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 "점잖게 말해서 오해입니다"
당시 여권에선 유력 주자 간 세 대결이 본격화됐습니다.
<녹취> 손학규(당시 범 여권 대선 주자) : "저에게 정치적 유불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녹취> 정동영(당시 범 여권 대선 주자) : "축제 같은 경선이 국민에게 감동 줄 수 있어..."
그러나 지금은 일부 유력주자들은 출마선언조차 하지않아 제대로 된 인물, 정책 검증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녹취> 정진민(명지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 "검증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게 돼서 결국 그 피해는 나중에 국민들에게 직접 돌아가게 된다"
철저한 검증을 위해 경선 시한을 당에 맡길 것이 아니라 아예 법제화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그럼 대통령제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어떨까요.
후보들이 대선일 1년 6개월전쯤 출마 선언을 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국민과 언론의 혹독한 검증을 통과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습니다.
워싱턴 이춘호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녹취> "나 롬니는 미국 대통령 출마를 선언합니다."
지난해 여름 공화당 주자들은 일제히 경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대선을 무려 1년 6개월이나 남긴 시점이었습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대선 1년 반 전에 출마를 선언하고 연초 당내 경선을 거쳐 적어도 6개월전에는 후보가 결정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4년전 오바마 대통령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습니다.
자금 모금도 이유지만 무엇보다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살펴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인터뷰> 윌킨(시민) : "후보에 대해 더 파고 들어가 과거에 뭘 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뷰> 리핀스키(시민) : "모든 후보의 정책과 이슈를 속속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혹독한 검증은 필수 의례입니다.
올 공화당 경선에서도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페리,케인,깅리치 후보가 검증 칼날에 차례로 사라졌습니다.
<녹취> 허먼 케인 포기 선언(2011년 12월 3일) : "오늘자로 선거 운동을 포기하겠습니다"
기나긴 미국 대선판에서 반짝 인기와 그럴듯한 포장으로는 완주 자체가 어렵습니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단련되고 살아남은 후보만이 유권자들의 최종 선택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춘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