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하늘에는 ‘번개’, 땅에는 ‘볼트’

입력 2013.08.12 (07:57)

수정 2013.08.12 (07:57)

KBS 뉴스 이미지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27·자메이카)가 또 전설을 쓰자 그 무대인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땅에도 번개가 쳤다.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전이 열린 1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

따가운 햇볕을 내리쬐던 모스크바 하늘은 결전의 시간이 한 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불현듯 경기장을 먹구름으로 뒤덮고는 빗줄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저 비만 내린 것이 아니다. 짙은 구름 사이로는 수시로 번개가 번쩍였다.

검은 밤하늘을 가르는 여러 줄기 섬광은 100m 결승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굵어졌고, 빗줄기도 거세졌다.

굵게 퍼붓는 빗줄기 한가운데에서, 이제 '인간 번개'가 칠 차례였다.

배낭을 메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스타디움에 들어서는 볼트의 얼굴이 전광판을 메우자,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다시 함성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준비에 나서면서 경기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지만, 볼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자신의 얼굴이 전광판에 뜨자 머리를 감는 시늉을 하고 등 뒤의 '자메이카'라는 글씨를 양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볼트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자신을 소개할 때는 우산을 펴서 머리 위에 씌우는 동작을 취해 보이며 재치 있게 궂은 날씨를 표현하기도 했다.

총성이 울릴 시점이 다가오자 스타디움의 트랙 위에는 곳곳에 물이 고인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흔들릴 법한 악조건이었지만, 볼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중반 이후 폭발적인 가속도를 내는 레이스를 운영해 저스틴 게이틀린(미국)을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었다.

볼트가 자메이카 국기를 두르고 스타디움을 돌며 특유의 '번개 세리머니'를 펼치자, 모스크바 하늘의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졌다.

퍼붓는 빗줄기를 대신해 볼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쫓는 관중의 함성과 카메라들의 시선이 긴장감 풀린 스타디움의 공기를 채웠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비는 계속 내렸지만, 어느새 밤하늘의 번개는 멈췄다.

대신에 우승의 감격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일거수일투족을 향한 카메라 플래시들이 '땅 위의 번개' 볼트를 향해 끝없이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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