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고개 살인사건’ 닮은 ‘인천 모자 살인사건’

입력 2013.09.24 (13:58)

수정 2013.09.24 (14:05)

지난 4월 중순 경기도 파주시 여우고개라 불리는 한 도로 인근 야산에서 7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땅속에 파묻혔던 시신의 왼쪽 다리뼈가 산짐승에 의해 우연히 드러난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시신 발견 지점을 파보니 170㎝ 키의 남성 시신이 나왔다. 이 남성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실종된 안모(70)씨였다.

경찰 조사결과 안씨는 장남(33)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가 집에서 마약을 제조해 복용하던 장남을 경찰에 신고했고,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된 장남이 앙심을 품은 것이다. 이른바 '여우고개 살인사건'이다.

24일 실종자들이 모두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둘째 아들에 의한 패륜 범죄로 밝혀진 인천 모자(母子) 살인사건은 여우고개 살인사건과 닮은 구석이 많다.

두 사건 모두 부친과 모친·형 등 친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패륜 범죄다.

안씨의 장남은 증거를 없애려고 부친의 시신에 불을 지르고 암매장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모친과 형을 살해한 정씨도 형의 시신을 3등분으로 토막냈다.

범행을 저지른 장소와 시신 유기 지점에도 공통점이 있다. 각각 부친과 모친 집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시신을 가방에 담아 차량에 실어 옮겼다. 또 평소 자신들이 지리를 잘 알던 지역의 야산에 시신을 유기했다.

안씨의 장남은 처가가 있는 파주의 한 야산에, 정씨는 평소 강원랜드를 오가며 지리에 익숙한 정선 국도변과 외가가 있는 경북 울진의 야산에 각각 시신을 버렸다.

두 사건은 정황 증거만 있고 존속살해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를 찾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안씨의 장남은 부친이 실종된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5시 52분께 검은색 여행용 가방을 끌고 부친이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부친의 집 바로 아래층에 내린 장남은 20여 분 후인 오후 6시 15분께 끙끙대며 가방을 끌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린 뒤 사라졌다.

당시 실종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토대로 안씨의 장남이 부친을 살해한 후 시신을 가방에 담아 옮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는 장남의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되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안씨 장남의 존속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입건조차 할 수 없었다.

인천 모자살해 사건의 차남 정씨도 경찰 조사에서 거짓말 탐지기 음성 반응과 일부 알리바이가 모순된 정황이 드러났다.

정씨가 실종된 형의 차량을 타고 동해IC를 통과해 경북 울진과 강원도 정선 등에 다녀온 사실이 확인됐다. 정씨는 당시 모친 집에 있었다며 혐의를 극구 부인했고, 긴급체포됐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결국 시신이 발견되면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졌다.

두 사건의 피의자들은 각기 살인이나 실종과 관련된 영화, 책, 방송 프로그램을 범행 전에 봤다.

안씨의 장남은 범행 전 영화 '나는 살인범이다'를 봤고, 정씨는 살인과 실종 사건을 다룬 방송사 시사고발 프로그램 29편을 시청했다.

정씨가 지난 5∼7월 사이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영상 가운데 여우고개 살인사건을 다룬 모 방송사 시사고발 프로그램도 있었다. 두 사건이 닮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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