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한미 FTA와는 너무도 다른 한중 FTA

입력 2014.11.11 (11:47)

수정 2014.11.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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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31일자 조선일보의 대형 오보를 아세요. 그날 신문 1면에는 ‘한미 FTA 협상 최종 타결’이라는 굵은 글씨의 제목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답니다.

이 기사는 완전히 오보였지요. 그날 한미 FTA 협상은 타결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취재 현장을 지켜본 기자는 오보의 경위를 알고 있습니다. 당초 3월 31일을 협상 타결 시한으로 설정한 양국 대표단은 서울 한남동 하이얏트 호텔에서 30일 심야와 31일 새벽 치열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습니다.

신문 기자들의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30일에서 31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이 마감시간인 조간 신문 기자들은 다음날 신문 제목을 어떻게 가져갈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고민의 종류는 두 가지였습니다. “협상 타결이 임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앞서 갔다가 오보라도 나면....” 또는 “협상이 진통중이라고 제목을 달았다가 내일 새벽에 타결이라도 되면 우리만 뒤쳐지는데.....” 두 고민은 순서만 바꿔었지 결국 같은 얘기입니다. 치열한 협상의 전쟁통 속에 기자들은 안테나를 총 동원해 협상을 지켜봤습니다.

조선일보가 '협상 타진' 이란 제목을 달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미 FTA 협상이 시한을 정한데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행정부가 의회의 승인없이 무역협상 권한을 부여받아 협상에 나서는 것을 TPA(Trade Promotion Authority)라고 부릅니다. 이 권한에 따라 미 행정부는 TPA 만료 90일전, 즉 4월 1일 오후 6시(미국 시각)까지 협정 체결의사를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양국은 FTA 협상을 3월 31일 오전 7시에 최종 타결하기로 정했습니다. 조선일보가 30~31일 심야에 용기를 낼 수 있던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미국 국내법 때문에 무조건 타결될 것으로 봤던 것이지요.


<사진4. 2007년 3월 31일 새벽 3시께 최종연장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남산 하얏트호텔의 심야 한국측 FTA 협상 대표단(오른쪽)>

하지만 이날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는 밀고 땡기기를 이틀 이상 더 했습니다. 결국 한미 FTA가 최종 타결된 것은 4월 2일 오후 1시에서였습니다.

나중에 우리측 수석대표(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에게 최종 타결이 늦어진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답은 이랬죠. “협상이란게 그런거다. 쇠고기, 자동차니 뭐 그런 핵심 쟁점 때문은 아니었다. 양허 예외 품목이나 관세율 정하면서 작은 거 하나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서로 끝까지, 막판 초치기 벼락치기 시험준비하는 것처럼 매달렸었다...”당시의 궁금증은 이렇게 풀렸습니다.

한미 FTA얘기를 장황하게 한 건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에 전격 타결된 한중 FTA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협상을 보면서 너무 급하게 협상이 타결된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FTA의 전문가인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얘기를 들어보죠.

“한중 FTA 협상이 정치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급하게 타결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며칠 전까지 협정문에 들어갈 22개 장 가운데 16개 장에 대해서는 타결 또는 의견 접근을 봤지만, 나머지 6개 장에 대해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었다. 원래 협상은 끝으로 갈수록 어려운 법인데 마무리를 너무 쉽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식으로 협상을 마무리하면 한중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 등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고 국회 비준을 받는 과정이 힘들 수 있다. ”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이 비단 정 교수만은 아닙니다. 한중 두 정상의 만남을 앞두고 ‘실질적 타결’이란 표현까지 쓰면 서둘러 양국이 협상 타결을 선언하면서 부실협상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협상 막판 쟁점이 됐던 '품목별 원산지 기준(PSR)'이나 '투자자 국가소송(ISD)'의 경우 정확한 합의 내용에 대해 정부 조차 말을 흐릴 정도입니다.



더 우려스러운 건 협상 내용이 베일에 가려졌다는 점이죠. 매번 협상 때마다 협상 내용과 합의 내용이 공개됐던 한미 FTA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도 부족했다는 느낌입니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FTA는 한미FTA 못지않게 그 파급력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입니다.

전문가들이 더 아쉬워하는 건 협상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타결됐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가와 FTA를 체결하면서 자동차를 대표적인 FTA의 수혜 분야로 설명했습니다. 'FTA=자동차'로 인식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번 한중 FTA에는 자동차가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우리의 대표적인 수출품목인 LCD(액정표시장치)의 경우 10년 철폐로 미뤄졌습니다. 농수산물 양허 예외 대상을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덕에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수축산물 가운데 수입액 기준 60%를 일정기간 후 무관세화하는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했죠. 두 나라가 서로 민감한 품목을 양허 대상에서 대폭 제외하면서 협상은 쉽게 타결됐답니다.

자,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농산물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 빼고 LCD 빼면 FTA는 왜 할까요 하는 회의론입니다. 전문가들은 개방도가 이 정도로 낮은 수준의 FTA라면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 지방정부의 월권행위에 대한 적절한 견제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한중 FTA는 분명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쾌거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 제목처럼 한중 FTA가 '한국경제 용의 등에 올라타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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