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들, 촛불로 밤 지새

입력 2002.09.04 (21:00)

수정 2018.08.29 (15:00)

⊙앵커: 이번 태풍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수재민들은 밤이 되면 더욱더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수재민들이 지금 얼마나 힘겹게 밤을 보내고 있는지 김기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임시로 복구된 좁은 길을 따라 수해지역을 찾아갔습니다.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곳이지만 불빛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곳 주민들은 촛불에 의지해 힘겨운 밤을 지새고 있습니다.
수돗물 공급이 안 돼 설거지는 엄두도 못 내고 있고, 냉장고 안의 음식은 상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칠흑 같은 어둠이 지긋지긋하다 못 해 무서울 정도입니다.
⊙김종성(김천시 구성면): 일을 하고 땀을 흘리고 다리에 피가 나고 해 가지고 밤만 되면 무섭고 짜증이 나고, 생활하기가 상당히 불편합니다.
⊙기자: 마을 이장인 김 씨는 자다가도 한두 번씩 마을을 휩쓸고 간 하천 주위를 살펴보는 버릇까지 생겼습니다.
겨우 전기가 들어온 마을도 밤이 되면 더욱 황량해집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포근한 보금자리였던 곳이 폐허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졸지에 보금자리를 빼앗긴 주민들은 면사무소에서 밤을 나고 있습니다.
편치 않은 잠자리지만 하루 종일 계속된 복구작업에 지쳐 대부분 곤이 잠듭니다.
⊙이돈응(김천시 구성면): 망연자실 그 자체죠.
다른 거 뭐 있겠습니까? 식사해 봐야 숟가락 들고 딴 데 먼 산이나 보고 밥도 다 먹지도 못하고 눈치나 보고 그런 지경이죠, 뭐.
⊙기자: 그나마 편하다는 면사무소 숙직실에는 마을 노인들이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유례 없는 물난리에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잃어버렸습니다.
⊙정계용(김천시 구성면): 몸 안 아픈 데가 없고 이제 나이 많으니까 세상이 귀찮아요.
죽고 싶은 마음밖에 안 들어요.
⊙기자: 낮 동안 복구작업에 지친 주민들은 이 곳에서 겨우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또다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수해지역 주민들에게 밤은 깊디 깊은 절망감을 주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기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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