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부산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철제 갑옷과 유골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안종홍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임진왜란 발발 직후 3천 명도 채 안되던 동래성의 군사와 백성들은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가 이끄는 만 5천 명과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당시 치열했던 동래성 전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유물이 부산의 한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굴됐습니다.
4백여 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비늘 모양의 철제 갑옷 상의는 보존 상태가 원형에 가깝습니다.
'찰갑'이라고 불리는 이 갑옷은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기록엔 등장하지만 실물이 출토되기는 처음입니다.
<인터뷰> 김문철(경남문화재연구원 지표조사과장) : "초급장교 이상의 무인들이 입었습니다."
동래성 방어를 위해 성 주변에 길게 둘러 판 못인 '해자'입니다.
이 해자 바닥에는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은 '목익'도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이기윤(육사 박물관장) : "나무를 세워 못넘게하는 일종의 장애물입니다."
이번에 유물이 발굴된 곳은 지하 2미터의 뻘층이어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골도 다섯 구가 발견됐는데 칼자국으로 보이는 상흔이 깊게 남은 두개골도 있어 치열했던 당시의 전투 상황을 짐작케하고 있습니다.
또 화살촉 20여 점과 칼 등 전쟁 유물도 4백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다 이번에 함께 햇빛을 보게 됐습니다.
KBS 뉴스 안종홍입니다.
부산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철제 갑옷과 유골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안종홍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임진왜란 발발 직후 3천 명도 채 안되던 동래성의 군사와 백성들은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가 이끄는 만 5천 명과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당시 치열했던 동래성 전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유물이 부산의 한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굴됐습니다.
4백여 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비늘 모양의 철제 갑옷 상의는 보존 상태가 원형에 가깝습니다.
'찰갑'이라고 불리는 이 갑옷은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기록엔 등장하지만 실물이 출토되기는 처음입니다.
<인터뷰> 김문철(경남문화재연구원 지표조사과장) : "초급장교 이상의 무인들이 입었습니다."
동래성 방어를 위해 성 주변에 길게 둘러 판 못인 '해자'입니다.
이 해자 바닥에는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은 '목익'도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이기윤(육사 박물관장) : "나무를 세워 못넘게하는 일종의 장애물입니다."
이번에 유물이 발굴된 곳은 지하 2미터의 뻘층이어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골도 다섯 구가 발견됐는데 칼자국으로 보이는 상흔이 깊게 남은 두개골도 있어 치열했던 당시의 전투 상황을 짐작케하고 있습니다.
또 화살촉 20여 점과 칼 등 전쟁 유물도 4백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다 이번에 함께 햇빛을 보게 됐습니다.
KBS 뉴스 안종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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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철제 갑옷’ 첫 발굴
-
- 입력 2007-06-07 21:28:19
![](/newsimage2/200706/20070607/1369004.jpg)
<앵커 멘트>
부산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철제 갑옷과 유골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안종홍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임진왜란 발발 직후 3천 명도 채 안되던 동래성의 군사와 백성들은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가 이끄는 만 5천 명과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당시 치열했던 동래성 전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유물이 부산의 한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굴됐습니다.
4백여 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비늘 모양의 철제 갑옷 상의는 보존 상태가 원형에 가깝습니다.
'찰갑'이라고 불리는 이 갑옷은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기록엔 등장하지만 실물이 출토되기는 처음입니다.
<인터뷰> 김문철(경남문화재연구원 지표조사과장) : "초급장교 이상의 무인들이 입었습니다."
동래성 방어를 위해 성 주변에 길게 둘러 판 못인 '해자'입니다.
이 해자 바닥에는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은 '목익'도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이기윤(육사 박물관장) : "나무를 세워 못넘게하는 일종의 장애물입니다."
이번에 유물이 발굴된 곳은 지하 2미터의 뻘층이어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골도 다섯 구가 발견됐는데 칼자국으로 보이는 상흔이 깊게 남은 두개골도 있어 치열했던 당시의 전투 상황을 짐작케하고 있습니다.
또 화살촉 20여 점과 칼 등 전쟁 유물도 4백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다 이번에 함께 햇빛을 보게 됐습니다.
KBS 뉴스 안종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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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홍 기자 ahnca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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