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부모 잃은 ‘삼남매의 겨울나기’

입력 2009.12.21 (08:58) 수정 2009.12.22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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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한주 정말 추웠는데요, 이런 겨울 보내기가 정말 힘겨운 이웃이 적지 않습니다.



최광호 기자, 난방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렵다는 어느 삼남매를 만나봤죠?



<리포트>



네, 오늘 소개해드릴 가족은 지혜네 삼남매입니다.



이 남매는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아직 어린 아이들인데요, 부모님이 안 계셔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유일한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뿐, 그래도 밝은 웃음만은 잃지 않고 있는지혜네 삼남매의 겨울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늦잠꾸러기 셋째 병진이, 오늘은 웬일인지 제일먼저 일어났습니다.



<인터뷰> 민병진(11세/셋째) : "(안 씻어?) 씻으러 가고 있잖아요 지금 영하의 날씨에 얼어버린 물, 온수가 나오지 않아..."



이 차가운 물로 씻을 수밖에 없습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병진이는 결국 오늘도 세수는 생략하는데요.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불편하지 않아?) 네. 익숙해서 (감기 들면 어떡해?) 저는 워낙 회복력이 빨라서 그런 거 안 걸려요."



아침식사를 해 본지가 언제인지, 삼남매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애들 밥을 안 먹고 가면 내가 마음이 안 좋지. 라면이라도 끼니라도 먹고 가면 좋은데..."



중학교 1학년 지혜의 보물 1호는 할머니를 졸라 산 중고 자전거, 단순히 통학목적만은 아니라는데요.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버스비가 750원이에요. 항상 타다보면 돈이 꽤나 많이 돼요. 차라리 그 돈을 통장에 넣고 자전거 타고 운동 겸..."



초등학교 5학년 병권이와 4학년 병진이가 다니는 학교는 걸어서 30분. 다행히 학교버스가 마을까지 와 등굣길은 한시름 놓았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아침식사를 하는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미역국에 맨밥만 드시는 거예요?) 감기가 들고 나서는 그냥 입맛을 잃어 버려서 당최 밥맛이 없어. 억지로 넣어서 약 먹으려고."



할머니는 당뇨, 간질, 관절염에 최근 들어 감기까지 겹쳤습니다.



뜨뜻하게 방에 불이라도 때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전기세를 아끼려 군에서 설치해준 난방장치도 켜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외투만 입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많이 돌리니까 세상에 돈이 8만원이 나오는 거예요. 전기세가요. 어떻게 놀랐는지..."



지혜네 삼남매가 할머니와 함께 산지는 4년. IMF때 실직한 지혜 아버지는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4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혜 어머니는 집을 나가 소식이 없습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애비 죽고 나서 이렇게 심장병 얻었어요. 그 전에는 심장이 이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가장 힘들어하시는 것은 부엌일입니다. 요즘엔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재래식 부엌이라, 선반 높이도 맞지 않고 더욱이 집 밖에 있어 겨울이면 더 힘들다고 하십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여기가 이어져 있으면 좋은데. 이게 나왔다 자꾸 추운데 나갔다 들어갔다 하니까 불편하지."



같은 시각,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에 한창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급식시간. 아침을 굶은터라 밥맛이 꿀맛 같습니다.



<인터뷰> 민병권(12세/둘째) : "(아침 안 먹어서 두 배로 배고팠지?) 네. 미나리하고 고사리하고 볶음밥하고(좋아해요)"



동생과는 한 학년 차이지만 의젓한 형 노릇을 하고 있는 병권이. 동생 병진이가 말썽을 부려도 늘 병권이가 먼저 나서 해결하곤 했는데요.



<인터뷰> 손순자(병권이 담임 선생님) : "얘(동생 병진이)는 개구쟁이다 보니까 막 돌을 던지고 그랬나봐요. 가보니까 벌써 병권이가 친구를 데리고 가서 다 쓸고 할머니한테 죄송하다 그러고 그런 걸 다 했더라고요."



중학생 지혜는 집에 오자마자 늘 그렇듯 몸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부엌일을 도맡아하는데요.



언제나 할머니와 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속 깊은 지혜지만 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원망의 마음도 듭니다.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엄마가 원망스럽거나 아빠가 원망스럽거나 하지 않은지) 음 그냥 저희 버리고 간 게... 그냥 좀 제 동생이지만 좀 불쌍한 거 같아요."



저녁 식사 시간. 반찬은 김치 두 가지 뿐이지만 아이들 표정엔 싫은 내색이라곤 없습니다.



<인터뷰> 민병권(12세/둘째) : "(밥을 허겁지겁 먹네) 배가 고파서요. (상에 김치밖에 없는데 괜찮은지) 그래도 김치가 맛있어요."



늦은 밤, 지혜와 병권이는 숙제에 열중입니다.



특히 지혜는 요즘 시험기간이라 마음이 급한데요, 그런데 모습이 영 불편해보입니다.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공부는 이렇게 하면 불편하지 않은지) 조금 불편해요. 허리가 좀 아파서..."



이제 며칠 뒤면 지혜네 세 남매도 한 살씩 더 먹게 됩니다.



아이들의 새해소망은 무엇일까요.



<인터뷰> 민병권(12세/둘째) : "생일이 6월3일인데 여름에 태어났어요. 여름에 같이 바다도 가고 싶고 그런데요 부모님이 없으니까요. 못 가는 게 조금 그래요."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그냥요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조금 더 넉넉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올 겨울도 외풍이 심한 집에서 온종일 외투를 입고 지내야 하는 삼남매, 하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삼남매는 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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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부모 잃은 ‘삼남매의 겨울나기’
    • 입력 2009-12-21 08:58:19
    • 수정2009-12-22 07: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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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한주 정말 추웠는데요, 이런 겨울 보내기가 정말 힘겨운 이웃이 적지 않습니다.

최광호 기자, 난방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렵다는 어느 삼남매를 만나봤죠?

<리포트>

네, 오늘 소개해드릴 가족은 지혜네 삼남매입니다.

이 남매는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아직 어린 아이들인데요, 부모님이 안 계셔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유일한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뿐, 그래도 밝은 웃음만은 잃지 않고 있는지혜네 삼남매의 겨울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늦잠꾸러기 셋째 병진이, 오늘은 웬일인지 제일먼저 일어났습니다.

<인터뷰> 민병진(11세/셋째) : "(안 씻어?) 씻으러 가고 있잖아요 지금 영하의 날씨에 얼어버린 물, 온수가 나오지 않아..."

이 차가운 물로 씻을 수밖에 없습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병진이는 결국 오늘도 세수는 생략하는데요.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불편하지 않아?) 네. 익숙해서 (감기 들면 어떡해?) 저는 워낙 회복력이 빨라서 그런 거 안 걸려요."

아침식사를 해 본지가 언제인지, 삼남매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애들 밥을 안 먹고 가면 내가 마음이 안 좋지. 라면이라도 끼니라도 먹고 가면 좋은데..."

중학교 1학년 지혜의 보물 1호는 할머니를 졸라 산 중고 자전거, 단순히 통학목적만은 아니라는데요.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버스비가 750원이에요. 항상 타다보면 돈이 꽤나 많이 돼요. 차라리 그 돈을 통장에 넣고 자전거 타고 운동 겸..."

초등학교 5학년 병권이와 4학년 병진이가 다니는 학교는 걸어서 30분. 다행히 학교버스가 마을까지 와 등굣길은 한시름 놓았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아침식사를 하는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미역국에 맨밥만 드시는 거예요?) 감기가 들고 나서는 그냥 입맛을 잃어 버려서 당최 밥맛이 없어. 억지로 넣어서 약 먹으려고."

할머니는 당뇨, 간질, 관절염에 최근 들어 감기까지 겹쳤습니다.

뜨뜻하게 방에 불이라도 때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전기세를 아끼려 군에서 설치해준 난방장치도 켜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외투만 입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많이 돌리니까 세상에 돈이 8만원이 나오는 거예요. 전기세가요. 어떻게 놀랐는지..."

지혜네 삼남매가 할머니와 함께 산지는 4년. IMF때 실직한 지혜 아버지는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4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혜 어머니는 집을 나가 소식이 없습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애비 죽고 나서 이렇게 심장병 얻었어요. 그 전에는 심장이 이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가장 힘들어하시는 것은 부엌일입니다. 요즘엔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재래식 부엌이라, 선반 높이도 맞지 않고 더욱이 집 밖에 있어 겨울이면 더 힘들다고 하십니다.

<인터뷰> 박옥이(할머니/71세) : "여기가 이어져 있으면 좋은데. 이게 나왔다 자꾸 추운데 나갔다 들어갔다 하니까 불편하지."

같은 시각,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에 한창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급식시간. 아침을 굶은터라 밥맛이 꿀맛 같습니다.

<인터뷰> 민병권(12세/둘째) : "(아침 안 먹어서 두 배로 배고팠지?) 네. 미나리하고 고사리하고 볶음밥하고(좋아해요)"

동생과는 한 학년 차이지만 의젓한 형 노릇을 하고 있는 병권이. 동생 병진이가 말썽을 부려도 늘 병권이가 먼저 나서 해결하곤 했는데요.

<인터뷰> 손순자(병권이 담임 선생님) : "얘(동생 병진이)는 개구쟁이다 보니까 막 돌을 던지고 그랬나봐요. 가보니까 벌써 병권이가 친구를 데리고 가서 다 쓸고 할머니한테 죄송하다 그러고 그런 걸 다 했더라고요."

중학생 지혜는 집에 오자마자 늘 그렇듯 몸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부엌일을 도맡아하는데요.

언제나 할머니와 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속 깊은 지혜지만 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원망의 마음도 듭니다.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엄마가 원망스럽거나 아빠가 원망스럽거나 하지 않은지) 음 그냥 저희 버리고 간 게... 그냥 좀 제 동생이지만 좀 불쌍한 거 같아요."

저녁 식사 시간. 반찬은 김치 두 가지 뿐이지만 아이들 표정엔 싫은 내색이라곤 없습니다.

<인터뷰> 민병권(12세/둘째) : "(밥을 허겁지겁 먹네) 배가 고파서요. (상에 김치밖에 없는데 괜찮은지) 그래도 김치가 맛있어요."

늦은 밤, 지혜와 병권이는 숙제에 열중입니다.

특히 지혜는 요즘 시험기간이라 마음이 급한데요, 그런데 모습이 영 불편해보입니다.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공부는 이렇게 하면 불편하지 않은지) 조금 불편해요. 허리가 좀 아파서..."

이제 며칠 뒤면 지혜네 세 남매도 한 살씩 더 먹게 됩니다.

아이들의 새해소망은 무엇일까요.

<인터뷰> 민병권(12세/둘째) : "생일이 6월3일인데 여름에 태어났어요. 여름에 같이 바다도 가고 싶고 그런데요 부모님이 없으니까요. 못 가는 게 조금 그래요."

<인터뷰> 민지혜(14세/첫째) : "그냥요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조금 더 넉넉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올 겨울도 외풍이 심한 집에서 온종일 외투를 입고 지내야 하는 삼남매, 하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삼남매는 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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