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 입니다

입력 2010.02.2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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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의 발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까?

온몸의 체중을 평생 좁은 신발 안에서 견뎌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소홀히 여기기 쉬운데요.

묵묵히 궂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발'을 통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사람들을 웃기고, 또 울리며...바로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발’입니다.

특히, 요즘 동계올림픽에선 우리 대표 선수들의 발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입니다.

태어난 지 4일째를 맞은 '동완'이를 찾은 엄마.

아이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은 열 달을 사랑으로 품어 온 엄마에게도 경이로움에 가깝습니다.

몸무게 4,030그램의 이 작은 천사에게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

처음으로 세상에 족적, 즉 '발 도장'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길이 7cm의 앙증맞은 발이 수첩에 흔적을 남깁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완'이의 '발 도장'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인터뷰> 박지현(서울 상계동) : "공부도 잘하고 뭐든 다 잘하는 아이였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많이 따르는 인복이 많은 아이였으면 좋겠고요.아빠가 손발이 예뻐요. 그걸 닮아서 너무 좋아요."

나는 '발'입니다.

나는 매일 혹사당합니다.

늘 그렇듯, 나의 주인 발레리나 김주원 씨는 오늘도 동료들과 함께 연습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16일, 노란 드레스를 입고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선 주원 씨.

그녀는 공연 도중 왼쪽 허벅지 근육을 크게 다쳤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무대에 설 수도, '토슈즈'를 신을 수도 없었습니다.

부상은 내게 숙명입니다.

5년 전엔 왼쪽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 발레를 다신 할 수 없다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주원(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 "제가 아팠던 데가 여기에요. 여기에 족저근 이라는 데가 있는데, 이 근육이 저는 항상 부어 있어요. 이쪽도 약간..."

주원씨는 그때도 수술 대신 1년여의 불가능할 것 같은 재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발레를 하기에 좋은 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지발가락보다 다른 발가락이 길어 늘 눈물의 연속입니다.

그 덕에 여기저기에 훈장처럼 '굳은살'과 멍을 달고 다닙니다.

<인터뷰> 김주원(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 "발가락이 너무 길고 그래서 여기 멍도 들어요. 멍도 들고 발레 할 때에는 여기 아치가 높아야 되는데, 보시다시피 저는 족저근막염도 갖고 있고 그렇게 발이 토슈즈 신기에 조건이 좋은 발은 아니어서 저도 고생 많이 하고, 모양도 많이 변했어요."

사람들은 내게 중력을 거부한다고들 말합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몸짓 때문이겠지만, 사실 나는 '백조'에 가깝습니다.

끊임없이 종종거리며, 무대 뒤에서 혹독하게 담금질을 합니다.

발가락 사이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느낄 수 있어야만,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주원(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 "발끝으로 백조가 흘리는 눈물을 표현하는 것도 있고. 제가 가진 언어 중 가장 섬세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제 발은...그래서 제 몸 전체로 관객들에게 이야기 전달하는 예술가이니까발은 제가 가진 언어인 것 같아요."

나는 때로는 누군가의 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20년째 한 복지시설에 살고 있습니다.

좁다란 방이 나의 주 활동무대.

가만히 있어도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지닌 나의 주인 유순 씨의 몸은 뒤틀리고 떨리기 일쑤지만, 나는 틈나는 대로 자수를 합니다.

비교적 떨림이 적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 땀 한 땀 자수를 할 때면, 온 신경을 발가락에 집중합니다.

이젠 작은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쯤은 거뜬히 해냅니다.

걷는 것 말고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빨래나 요리 등 유순 씨의 일상은 모두 내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인터뷰> 김명숙(신망애복지재단 사회복지사) : "어느 어떤 땐 제 자신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도 있어요. 저런 중증 장애인 상태에서도 누구한테 의지하기보단 자기 스스로하고, 자기 것만 챙기기보단 누구한테 베풀 줄 알고, 이런 부분에서, 아 우리도 삶을 한 번 다시 바꿔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들 때도 있죠."

<녹취> "언니야. 나는 다방 커피.유순 언니, 나 저기 율무차 없어요?"

종종 갖는 '티-타임'입니다. 물론 모든 준비는 나의 몫입니다.

잔을 준비하고, 물을 끓이고, 커피와 설탕을 조절하고...

유순씨가 15살이 되던 해 손보다 나를 더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한층 더 바빠졌습니다.

그 후 불편한 손 대신 누군가를 위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유일한 낙이 됐습니다.

유순 씨는 사람들의 편견이 불편할 뿐, 오히려 내가 있어 아무 불편이 없다며 나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인터뷰> 한유순(지체장애인) : "(저한테는 발이) 발이 아니라 저는 손이죠. 남들이 손으로 하는 거 일상생활을 발이 다 하기 때문에..."

나는 매일 걷습니다.

걷고 또 걷는 게 나의 일상입니다.

하지만, 1km를 걸을 때 내게 실리는 무게가 16톤에 이른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예순 살까지 걷는 거리는 16만 km.

지구를 네 바퀴 도는 것과 맞먹습니다.

인류가 진화해 네 발에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겪게 된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직립보행은 '손'이라는 획기적인 도구를 얻게 했지만, 디스크와 같은 수많은 질병을 낳았습니다.

몸 전체 뼈의 4분의 1이 모여 있는 나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육중한 몸의 하중을 견디다 보면 이곳저곳이 상처투성이입니다.

게다가 가죽이나 합성수지로 만든 신발의 등장은 나를 더욱 옥죄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능보단 맵시를 강조한 하이힐이나 앞이 뾰족한 신발은 소리 없이 나를 공격합니다.

엄지발가락이 비틀어지는 '무지외반증' 이나, 발 근육과 관절 등에 무리가 가는 질병은 이제 흔해졌습니다.

<인터뷰> 이경태(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교수) : "여러 가지 뼈가 많은 것 때문에 생기는 정교함.그리고 또 하나가 잘못되면 도미노처럼 하나 잘못된 게 그걸로 끝나지 않고 계속 맞물려서 일이 나타나기 때문에..."

마치 이빨이 하나 상하면 계속 잇몸 다치고 다는 것처럼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좀 더 조심하셔야 됩니다.

<녹취> "히터 쓰실 때 조심해 주세요...배선은 잘 돼 갑니까? (네)"

나는 오늘도 공사현장에 머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수천 미터를 누비며 거미줄처럼 얽힌 전기시설을 매만지는 나의 주인 종석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한 지 벌써 40년.

남들은 정년이다 뭐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70kg이 넘는 주인의 체중을거뜬하게 견뎌냅니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두 딸과 아내가 반겨줄 퇴근길을 생각하면 즐거움이 더 앞섭니다.

나는 이 땅 아버지의 '발'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신종석(건설현장 전기반장) : "떠돌이 생활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참 가족들하고 같이 있는 생활하는 시간보다 나가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은 아쉽지만, 그래도 내 가족을 위해서 또 내가 책임져야 될 부분이 있으니까 감수해야 되지 않겠어요?"

나와 일상을 함께하는 작업화.

곳곳이 해지고 낡았지만, 웬만한 못이나 철판은 뚫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합니다.

전압을 점검하고, 조명 기구를 손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식사 때를 빼곤 항상 위험에 노출된 내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입니다.

<인터뷰> 신종석(건설현장 전기반장) : "(사람은) 하부가 튼튼해야 됩니다. 발이 기본이 되어야 되요. 그 자체가...발 자체가 부실하면 움직일 수 없지 않습니까. 지탱도 안 돼요.건물도 마찬가집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제대로 올라서고 하자도 없고..."

3년 동안의 고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자리.

부모님을 위한 조그마한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엄마와 아빠의 발.

투박하고 딱딱해진 나를 아들, 딸들이 처음으로 매만지고 씻기는 '세족식'입니다.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들도, 곁에서 속 앓이를 했던 부모들도 만감이 교차합니다.

<인터뷰> 노홍래(경기 대명고 3년) : "엄마의 발이요? 절 업고 계속 키워주셨던 그 발. 그것밖에 생각 안 나요. 저를 위해 계속 걷고 걷고 걸으셨으니까..."

<인터뷰> 서희정(경기 대명고 3년) : "처음으로 엄마 발 씻겨 드렸는데, 그동안 저희 때문에 고생하신 것 같고..."

<인터뷰> 전금옥(학부모) : "엄마 발 닦아주면서 엄마 그동안 고생한 마음 알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대학 가서도 잘하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몸 제일 낮은 곳에서 가장 많이 움직입니다.

거칠고 딱딱한 땅을 밟으며 묵묵히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내 몸에는 혈관과 자율신경이 그 어느 부위보다 많이 분포돼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거나 못생기고 볼품없다고 해서, 이런 나를 소홀히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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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발’ 입니다
    • 입력 2010-02-22 07:58:49
    취재파일K
여러분은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의 발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까? 온몸의 체중을 평생 좁은 신발 안에서 견뎌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소홀히 여기기 쉬운데요. 묵묵히 궂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발'을 통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사람들을 웃기고, 또 울리며...바로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발’입니다. 특히, 요즘 동계올림픽에선 우리 대표 선수들의 발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입니다. 태어난 지 4일째를 맞은 '동완'이를 찾은 엄마. 아이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은 열 달을 사랑으로 품어 온 엄마에게도 경이로움에 가깝습니다. 몸무게 4,030그램의 이 작은 천사에게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 처음으로 세상에 족적, 즉 '발 도장'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길이 7cm의 앙증맞은 발이 수첩에 흔적을 남깁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완'이의 '발 도장'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인터뷰> 박지현(서울 상계동) : "공부도 잘하고 뭐든 다 잘하는 아이였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많이 따르는 인복이 많은 아이였으면 좋겠고요.아빠가 손발이 예뻐요. 그걸 닮아서 너무 좋아요." 나는 '발'입니다. 나는 매일 혹사당합니다. 늘 그렇듯, 나의 주인 발레리나 김주원 씨는 오늘도 동료들과 함께 연습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16일, 노란 드레스를 입고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선 주원 씨. 그녀는 공연 도중 왼쪽 허벅지 근육을 크게 다쳤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무대에 설 수도, '토슈즈'를 신을 수도 없었습니다. 부상은 내게 숙명입니다. 5년 전엔 왼쪽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 발레를 다신 할 수 없다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주원(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 "제가 아팠던 데가 여기에요. 여기에 족저근 이라는 데가 있는데, 이 근육이 저는 항상 부어 있어요. 이쪽도 약간..." 주원씨는 그때도 수술 대신 1년여의 불가능할 것 같은 재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발레를 하기에 좋은 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지발가락보다 다른 발가락이 길어 늘 눈물의 연속입니다. 그 덕에 여기저기에 훈장처럼 '굳은살'과 멍을 달고 다닙니다. <인터뷰> 김주원(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 "발가락이 너무 길고 그래서 여기 멍도 들어요. 멍도 들고 발레 할 때에는 여기 아치가 높아야 되는데, 보시다시피 저는 족저근막염도 갖고 있고 그렇게 발이 토슈즈 신기에 조건이 좋은 발은 아니어서 저도 고생 많이 하고, 모양도 많이 변했어요." 사람들은 내게 중력을 거부한다고들 말합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몸짓 때문이겠지만, 사실 나는 '백조'에 가깝습니다. 끊임없이 종종거리며, 무대 뒤에서 혹독하게 담금질을 합니다. 발가락 사이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느낄 수 있어야만,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주원(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 "발끝으로 백조가 흘리는 눈물을 표현하는 것도 있고. 제가 가진 언어 중 가장 섬세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제 발은...그래서 제 몸 전체로 관객들에게 이야기 전달하는 예술가이니까발은 제가 가진 언어인 것 같아요." 나는 때로는 누군가의 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20년째 한 복지시설에 살고 있습니다. 좁다란 방이 나의 주 활동무대. 가만히 있어도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지닌 나의 주인 유순 씨의 몸은 뒤틀리고 떨리기 일쑤지만, 나는 틈나는 대로 자수를 합니다. 비교적 떨림이 적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 땀 한 땀 자수를 할 때면, 온 신경을 발가락에 집중합니다. 이젠 작은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쯤은 거뜬히 해냅니다. 걷는 것 말고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빨래나 요리 등 유순 씨의 일상은 모두 내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인터뷰> 김명숙(신망애복지재단 사회복지사) : "어느 어떤 땐 제 자신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도 있어요. 저런 중증 장애인 상태에서도 누구한테 의지하기보단 자기 스스로하고, 자기 것만 챙기기보단 누구한테 베풀 줄 알고, 이런 부분에서, 아 우리도 삶을 한 번 다시 바꿔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들 때도 있죠." <녹취> "언니야. 나는 다방 커피.유순 언니, 나 저기 율무차 없어요?" 종종 갖는 '티-타임'입니다. 물론 모든 준비는 나의 몫입니다. 잔을 준비하고, 물을 끓이고, 커피와 설탕을 조절하고... 유순씨가 15살이 되던 해 손보다 나를 더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한층 더 바빠졌습니다. 그 후 불편한 손 대신 누군가를 위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유일한 낙이 됐습니다. 유순 씨는 사람들의 편견이 불편할 뿐, 오히려 내가 있어 아무 불편이 없다며 나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인터뷰> 한유순(지체장애인) : "(저한테는 발이) 발이 아니라 저는 손이죠. 남들이 손으로 하는 거 일상생활을 발이 다 하기 때문에..." 나는 매일 걷습니다. 걷고 또 걷는 게 나의 일상입니다. 하지만, 1km를 걸을 때 내게 실리는 무게가 16톤에 이른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예순 살까지 걷는 거리는 16만 km. 지구를 네 바퀴 도는 것과 맞먹습니다. 인류가 진화해 네 발에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겪게 된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직립보행은 '손'이라는 획기적인 도구를 얻게 했지만, 디스크와 같은 수많은 질병을 낳았습니다. 몸 전체 뼈의 4분의 1이 모여 있는 나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육중한 몸의 하중을 견디다 보면 이곳저곳이 상처투성이입니다. 게다가 가죽이나 합성수지로 만든 신발의 등장은 나를 더욱 옥죄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능보단 맵시를 강조한 하이힐이나 앞이 뾰족한 신발은 소리 없이 나를 공격합니다. 엄지발가락이 비틀어지는 '무지외반증' 이나, 발 근육과 관절 등에 무리가 가는 질병은 이제 흔해졌습니다. <인터뷰> 이경태(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교수) : "여러 가지 뼈가 많은 것 때문에 생기는 정교함.그리고 또 하나가 잘못되면 도미노처럼 하나 잘못된 게 그걸로 끝나지 않고 계속 맞물려서 일이 나타나기 때문에..." 마치 이빨이 하나 상하면 계속 잇몸 다치고 다는 것처럼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좀 더 조심하셔야 됩니다. <녹취> "히터 쓰실 때 조심해 주세요...배선은 잘 돼 갑니까? (네)" 나는 오늘도 공사현장에 머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수천 미터를 누비며 거미줄처럼 얽힌 전기시설을 매만지는 나의 주인 종석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한 지 벌써 40년. 남들은 정년이다 뭐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70kg이 넘는 주인의 체중을거뜬하게 견뎌냅니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두 딸과 아내가 반겨줄 퇴근길을 생각하면 즐거움이 더 앞섭니다. 나는 이 땅 아버지의 '발'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신종석(건설현장 전기반장) : "떠돌이 생활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참 가족들하고 같이 있는 생활하는 시간보다 나가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은 아쉽지만, 그래도 내 가족을 위해서 또 내가 책임져야 될 부분이 있으니까 감수해야 되지 않겠어요?" 나와 일상을 함께하는 작업화. 곳곳이 해지고 낡았지만, 웬만한 못이나 철판은 뚫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합니다. 전압을 점검하고, 조명 기구를 손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식사 때를 빼곤 항상 위험에 노출된 내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입니다. <인터뷰> 신종석(건설현장 전기반장) : "(사람은) 하부가 튼튼해야 됩니다. 발이 기본이 되어야 되요. 그 자체가...발 자체가 부실하면 움직일 수 없지 않습니까. 지탱도 안 돼요.건물도 마찬가집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제대로 올라서고 하자도 없고..." 3년 동안의 고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자리. 부모님을 위한 조그마한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엄마와 아빠의 발. 투박하고 딱딱해진 나를 아들, 딸들이 처음으로 매만지고 씻기는 '세족식'입니다.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들도, 곁에서 속 앓이를 했던 부모들도 만감이 교차합니다. <인터뷰> 노홍래(경기 대명고 3년) : "엄마의 발이요? 절 업고 계속 키워주셨던 그 발. 그것밖에 생각 안 나요. 저를 위해 계속 걷고 걷고 걸으셨으니까..." <인터뷰> 서희정(경기 대명고 3년) : "처음으로 엄마 발 씻겨 드렸는데, 그동안 저희 때문에 고생하신 것 같고..." <인터뷰> 전금옥(학부모) : "엄마 발 닦아주면서 엄마 그동안 고생한 마음 알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대학 가서도 잘하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몸 제일 낮은 곳에서 가장 많이 움직입니다. 거칠고 딱딱한 땅을 밟으며 묵묵히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내 몸에는 혈관과 자율신경이 그 어느 부위보다 많이 분포돼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거나 못생기고 볼품없다고 해서, 이런 나를 소홀히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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