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경술국치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항거한 자정순국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일제 식민통치에 경종을 울리고 향후 30여 년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는데,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안다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조선 말기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향산 이만도 선생.
1910년, 일제 강점에 항거해 24일간 단식투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제자 이강호가 향산의 순국 과정을 기록한 청구일기에는 선생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녹취> 청구일기 中 : "구차하게 목숨을 연장한 것은 혹 쓰임이 있을까 해서였다. 이제 그럴 수 있으리란 희망이 없으니 죽지 않고 무엇을 바라겠는가..."
1905년부터 10년에 걸쳐 전국에서 70명에 가까운 인사들이 단식이나 음독 등의 방법으로 자정순국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강지영(안동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 : "이분들의 죽음은 그 제자와 가족 등의 자결로 이었졌고, 독립 운동을 불태우게 돼 그 의미와 파장이 컸습니다."
자정순국은 항일투쟁의 기폭제가 돼 민족사적 의의가 크지만 지금껏 관련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0명이 자결한 안동 지역에서 추진하는 자정순국 100주기 추모전은 재조명 운동의 시작이 될 전망입니다.
<인터뷰> 권오인(기획실장) : "독립운동 포상자 중심 연구가 진행돼왔는데 자정순국자들에 초점 맞춰 연구 진행 생각. 관련 책자를 편찬하고, 학술대회를 열 계획..."
현재 자정순국자 가운데 십여 명 정도는 객관적 자료가 없어 정부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안다영입니다.
경술국치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항거한 자정순국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일제 식민통치에 경종을 울리고 향후 30여 년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는데,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안다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조선 말기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향산 이만도 선생.
1910년, 일제 강점에 항거해 24일간 단식투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제자 이강호가 향산의 순국 과정을 기록한 청구일기에는 선생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녹취> 청구일기 中 : "구차하게 목숨을 연장한 것은 혹 쓰임이 있을까 해서였다. 이제 그럴 수 있으리란 희망이 없으니 죽지 않고 무엇을 바라겠는가..."
1905년부터 10년에 걸쳐 전국에서 70명에 가까운 인사들이 단식이나 음독 등의 방법으로 자정순국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강지영(안동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 : "이분들의 죽음은 그 제자와 가족 등의 자결로 이었졌고, 독립 운동을 불태우게 돼 그 의미와 파장이 컸습니다."
자정순국은 항일투쟁의 기폭제가 돼 민족사적 의의가 크지만 지금껏 관련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0명이 자결한 안동 지역에서 추진하는 자정순국 100주기 추모전은 재조명 운동의 시작이 될 전망입니다.
<인터뷰> 권오인(기획실장) : "독립운동 포상자 중심 연구가 진행돼왔는데 자정순국자들에 초점 맞춰 연구 진행 생각. 관련 책자를 편찬하고, 학술대회를 열 계획..."
현재 자정순국자 가운데 십여 명 정도는 객관적 자료가 없어 정부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안다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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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 기폭제’ 자정순국, 100주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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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3-01 10:54:58

<앵커 멘트>
경술국치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항거한 자정순국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일제 식민통치에 경종을 울리고 향후 30여 년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는데,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안다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조선 말기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향산 이만도 선생.
1910년, 일제 강점에 항거해 24일간 단식투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제자 이강호가 향산의 순국 과정을 기록한 청구일기에는 선생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녹취> 청구일기 中 : "구차하게 목숨을 연장한 것은 혹 쓰임이 있을까 해서였다. 이제 그럴 수 있으리란 희망이 없으니 죽지 않고 무엇을 바라겠는가..."
1905년부터 10년에 걸쳐 전국에서 70명에 가까운 인사들이 단식이나 음독 등의 방법으로 자정순국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강지영(안동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 : "이분들의 죽음은 그 제자와 가족 등의 자결로 이었졌고, 독립 운동을 불태우게 돼 그 의미와 파장이 컸습니다."
자정순국은 항일투쟁의 기폭제가 돼 민족사적 의의가 크지만 지금껏 관련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0명이 자결한 안동 지역에서 추진하는 자정순국 100주기 추모전은 재조명 운동의 시작이 될 전망입니다.
<인터뷰> 권오인(기획실장) : "독립운동 포상자 중심 연구가 진행돼왔는데 자정순국자들에 초점 맞춰 연구 진행 생각. 관련 책자를 편찬하고, 학술대회를 열 계획..."
현재 자정순국자 가운데 십여 명 정도는 객관적 자료가 없어 정부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안다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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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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