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사연많은 역사 탓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가 한 둘이 아니죠.
일본인은 감상했으나 우리는 볼 수 없었던 조선 회화 작품들이 500년만에 고국땅을 밟았습니다.
모은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담 관청까지 둘 만큼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였던 매 사냥.
자세히 살펴 보면 여진족 사냥꾼이 동원된 것을 알 수 있어 이채롭습니다.
서울 중랑천 일대 살곶이 목장 풍경을 담은 작품은 조선 시대 말 그림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에 건너간 조선 시대 회화는 중국의 옛 이야기들을 소재로, 중국식 화풍을 살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태호(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 "일본 사람들이 중국을 선망했던 의식을 조선을 통해서 채우지 않았나..."
용맹성과 해학성이 뒤섞인 초기 형태의 까치 호랑이 그림.
복을 기원하는 동물화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작품들은 작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7세기까지 도화서 화원들은 낙관을 찍지 않은 데다가, 일본에서 활동한 화원들도 대부분 호만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임진왜란 등을 통해 건너간 작품들은 10여 년간 고서화를 수집해 온 한 화랑의 노력으로 500년 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우찬규('학고재' 대표) : "한 군데 컬렉션에 몇 백점씩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야~ 정말 많은 양이 유출됐구나."
이들 작품들은 조선 초ㆍ중기 회화사를 정리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사연많은 역사 탓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가 한 둘이 아니죠.
일본인은 감상했으나 우리는 볼 수 없었던 조선 회화 작품들이 500년만에 고국땅을 밟았습니다.
모은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담 관청까지 둘 만큼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였던 매 사냥.
자세히 살펴 보면 여진족 사냥꾼이 동원된 것을 알 수 있어 이채롭습니다.
서울 중랑천 일대 살곶이 목장 풍경을 담은 작품은 조선 시대 말 그림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에 건너간 조선 시대 회화는 중국의 옛 이야기들을 소재로, 중국식 화풍을 살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태호(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 "일본 사람들이 중국을 선망했던 의식을 조선을 통해서 채우지 않았나..."
용맹성과 해학성이 뒤섞인 초기 형태의 까치 호랑이 그림.
복을 기원하는 동물화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작품들은 작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7세기까지 도화서 화원들은 낙관을 찍지 않은 데다가, 일본에서 활동한 화원들도 대부분 호만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임진왜란 등을 통해 건너간 작품들은 10여 년간 고서화를 수집해 온 한 화랑의 노력으로 500년 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우찬규('학고재' 대표) : "한 군데 컬렉션에 몇 백점씩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야~ 정말 많은 양이 유출됐구나."
이들 작품들은 조선 초ㆍ중기 회화사를 정리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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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서화 500년 만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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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3-04 21:57:08
<앵커 멘트>
사연많은 역사 탓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가 한 둘이 아니죠.
일본인은 감상했으나 우리는 볼 수 없었던 조선 회화 작품들이 500년만에 고국땅을 밟았습니다.
모은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담 관청까지 둘 만큼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였던 매 사냥.
자세히 살펴 보면 여진족 사냥꾼이 동원된 것을 알 수 있어 이채롭습니다.
서울 중랑천 일대 살곶이 목장 풍경을 담은 작품은 조선 시대 말 그림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에 건너간 조선 시대 회화는 중국의 옛 이야기들을 소재로, 중국식 화풍을 살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뷰> 이태호(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 "일본 사람들이 중국을 선망했던 의식을 조선을 통해서 채우지 않았나..."
용맹성과 해학성이 뒤섞인 초기 형태의 까치 호랑이 그림.
복을 기원하는 동물화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작품들은 작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7세기까지 도화서 화원들은 낙관을 찍지 않은 데다가, 일본에서 활동한 화원들도 대부분 호만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임진왜란 등을 통해 건너간 작품들은 10여 년간 고서화를 수집해 온 한 화랑의 노력으로 500년 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우찬규('학고재' 대표) : "한 군데 컬렉션에 몇 백점씩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야~ 정말 많은 양이 유출됐구나."
이들 작품들은 조선 초ㆍ중기 회화사를 정리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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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희 기자 monni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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