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독수리 아빠’

입력 2010.04.05 (07:31) 수정 2010.04.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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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경남 고성에 5백 마리가 넘는 독수리가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독수리가 많이 찾아 온데는 한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별명이 독수리 아빠인 이 선생님의 독수리 사랑을 취재했습니다.



아침 10시, 한 사람이 논 위에 무언가를 흩어 던지고 있습니다. 날로 된 고깃덩어리입니다. 고깃덩어리를 놓기가 무섭게 냄새를 맡은 새떼가 하늘 위에 몰려듭니다. 한참 동안 맴돌더니 한두 마리씩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천연기념물 243호, 독수리입니다.



<인터뷰> 김덕성(철성고등학교 교사) : "아무래도 야생성이 있으니까 좀 멀리에서 주고 그랬죠. 그런데 똑같은 장소에서, 시간 때도 같고 그러다 보니까 좀 친숙해졌죠."



김 선생님은 이곳 고등학교 미술 교사입니다. 10년 전부터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독수리는 여름철 몽골 지역에서 번식하다가 겨울이면 한반도에 찾아옵니다. 주로 강원도 철원이나 경기도 장단반도 등에서 집중적으로 월동했습니다. 그러다 최근들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독수리도 발견됐습니다. 이번 겨울 고성에는 철원과 비슷한 5백여 마리가 찾아왔습니다.



<인터뷰> 김성만(한국조류보호협회장) : "11월부터 독수리가 오기 시작하는데 11월, 12월부터 독수리 먹이 줘야 되는데 안 주다 보니까 독수리들이 서울 근교에 있다가 자꾸 지방으로 내려가서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그 다음에 달성, 거기 내려가서 저기 경남 고성까지 내려갈지 생각도 못했어요."



10년 전 수십 마리가 내려왔다가 지난 2009년에는 4백여 마리로 크게 늘었고 올해는 5백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독수리가 늘어난 데에는 바로 김선생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김 선생님은 일주일에 세 번씩 정해진 시간에 독수리 먹이를 줍니다.



<녹취> "수리야 이리로 와라, 이 녀석 어린 놈이네. 잘 먹네."



원래 예민한 동물이지만 코 앞에서 먹이를 던져 줘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벌써 10년 동안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독수리들도 이제는 김 선생님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덕성(철성고등학교 교사) : "10여 년 전에 애들하고 겨울방학 때 새 조사를 갔었어요. 그 현장에서 독수리가 먹이가 부족해서 탈진된 녀석들하고 고압선에 걸려서 날개를 다친 애들을 보고, 먹이가 부족하구나, 그렇게 돼서 애들하고 같이 먹이를 줬죠."



독수리들은 먹성이 좋습니다. 50킬로그램짜리 먹이 자루 열 개가 1주일이면 동이 납니다. 교사 봉급을 쪼개 먹이를 마련하는 일도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심지어 간혹 독수리가 사고라도 치게 되면 김 선생님이 수습하곤 합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가까이 인근 나이 좀 드신 분들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독수리가) 이런 큰 거 물고 가다 마늘 밭에 떨어뜨려서 마늘이 피해를 보면, 농사짓는 일도 이해를 하니까, 그래서 보상도 해드리고 했죠."



독수리의 엄격한 서열 관계는 먹이 앞에서 뚜렷해집니다. 서열이 높은 순서대로 내려와 먹이를 차지합니다. 먹이를 두고선 곳곳에서 서열 다툼도 벌어집니다. 이러다 보니 먹이를 넉넉히 마련한다고 했는데도 어리고 힘없는 독수리는 먹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때 먹이를 먹지 못하고 뒤처진 독수리들은 탈진하기 쉽습니다.



<녹취> "이 녀석은 지금 털이 가운데 많이 빠져 가지고... 좀 털이 많이 없죠? 이 녀석은 몸이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김 선생님이 가까운 곳까지 다가가 일일이 먹이를 던져주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들판에서도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 무리가 착지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먼저 자리를 잡은 까마귀들의 텃세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들은 독수리의 등 위에 올라타 부리로 쪼아대며 집요하게 착지를 방해합니다.



<인터뷰> 김성만(한국조류보호협회장) : "항상 덩치는 제일 큽니다. 날개 펴면 2미터 정도 되는 큰 새인데, 덩치도 크고. 그러나 까치 까마귀한테 맥을 못 춰요."



독수리는 검독수리나 참수리와 달리 사냥을 할 줄 모릅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죽은 동물의 사체만을 먹이로 삼는 ‘자연의 청소부’입니다. 김덕성 선생님은 이런 독수리들의 생태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와 조사를 해 왔습니다. 지금껏 찍은 독수리 사진만 수천 장에 이릅니다. 날개에 번호표를 달고 오는 독수리를 중심으로 어떤 독수리가 얼마나 자주 오는지, 어떤 습성을 보이는지 확인하고 일일이 기록으로 남깁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기록은, 2004년부터 기록이 됐죠. 그 땐 사진만 했는데, 이제는 기록을 남기고, 그 다음에 이것을 보관을 좀 해야 다음 사람도 필요할 때 쓰는..."



김 선생님은 언젠가 독수리의 서식지인 몽골에 가 본격적으로 독수리를 연구해볼 꿈을 갖고 있습니다. 관찰일기를 마친 김선생님이 학교 안 창고로 갑니다. 창고 구석에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며칠 전 농수로에서 발견한 다친 독수립니다. 날개가 커 농수로에 빠진 뒤 빠져나오지 못한 겁니다. 독수리는 학교 창고로 옮겨져 김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회복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기력은 회복했는데, 아무래도 조금 무리가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기력이 좀 약한 거 같고 그리고 굉장히 저항도 많이 없고. 얘는 아마 무리에 같이 이동하기 어렵지 않나..."



지난 겨울동안 이렇게 김 선생님의 손길로 독수리 12마리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독수리는 이제 여기 마을의 명물이 됐습니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독수리를 구경합니다. 멀리서 일부러 보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귀한 구경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정종관(대전시 둔산동) :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죠. 그래서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가까이서 보시니까 어떤 느낌이세요?) 독수리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볼 때에는 생명력이나 날개짓이 엄청난 감동을 주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동안 독수리를 보려 경남 고성을 다녀간 사람들도 600명이 넘습니다.



김덕성 선생님은 미술뿐만 아니라 이제는 독수리를 비롯해 자연에 대한 생태도 가르칩니다.



<녹취> "새들이 보면 작은 씨앗 같은 것을 먹고 배설하고 그것이 생태가 자연으로 돌아가서 다시 또 자연이 튼튼해지는 이런 관계들이죠."



학생들에게 김 선생님의 독수리 사랑은 유난스럽습니다.



<인터뷰> 이도길(철성고 3학년 ) : "독수리 아버지거든요. 독수리한테 집착을 너무 많이 하세요."



학생들이 독수리에게 직접 먹이도 줘보고, 생태 수업을 통해 관심도 갖다 보니 이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이도길(철성고 3학년) : "왜 저렇게 하시지? 저렇게까지 하실 필요가...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대단하시죠."



<인터뷰> 박혜은(철성고 3학년) : "먹이 못 먹으면 굶어서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먹이 주고, 또 저 독수리 어디 빠지면 선생님이 직접 가서 구하거든요. 그런거 보면 대단하신 거 같아요."



김 선생님의 독수리 사랑은 다른 주민들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느새 지역의 명물이 되면서 주민들도 반기기 시작한 겁니다. 한때 닭이나 오리에 AI를 옮긴다며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고, 가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오해도 있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상봉(경남 고성군 이당리 주민) : "농사에만 신경 쓰고 관심 갖고 생활하다 보니까 우리 시골에 특히 천연기념물인 거 몰랐어요. 몰랐는데, 어느 날 독수리 이게 천연기념물이라는 걸 알게 돼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수시로 밥을, 독수리 밥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또 다른 독수리가 수로에 빠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수로 주변을 헤매며 다니기를 30여 분. 수로 한 켠에서 독수리 한 마리를 겨우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때가 너무 늦은 모양입니다.



<녹취> "아이고, 이렇게, 녀석이 멀리까지 와서 빠져가지고...아휴..."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녹취> "멀리까지 와서 임마, 이게 뭐냐. 쯧..."



지난 겨울동안 이곳에서 죽은 채 발견된 독수리만 다섯 마리 째입니다.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 모여들기는 했지만, 독수리의 월동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농수로나 고압선과 같은 인공 구조물이나 빠르게 달리는 차량은 독수리의 안전을 언제나 위협합니다. 먹이를 주는 사람의 손길이 많아진 점 역시 또 다른 근심을 낳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체까지도 독수리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먹잇감은 자칫 독성 때문에 독수리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이렇게 함부로 막 던져 놔 버리면, 출처도 모르겠고, 그래서 좀 걱정이 되는 부분들이거든요. 먹이 주시는 건 좋은데, 서로 좀 이야기들이 됐으면 좋을 거 같아요."



실제로 약을 먹은 동물 사체를 먹고 독수리들이 집단 폐사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엔 독수리들이 집단으로 모여 쉬었다 간다는 철마산 앞에 건축 폐기물 중간 처리장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 이당리 주민들은 독수리 월동지 파괴를 우려해 다섯 달째 공사 진행을 막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환구(이당리 이장) : "이 위치에 현재, 건설 폐기물 갖고 와서 파쇄를 하고 분진이 나고 소음이 난다고 봤을 때, 독수리가 쉬고 안정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입장 바꾸면, 아무리 동물이라도,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거 아닙니까?"



주민들은 이 일대를 야생동물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주민들이 월동을 마친 독수리들과의 송별식을 마련했습니다. 작은 제사를 올리며 독수리들의 무사했던 월동을 기념하고 또 안전한 귀향을 빕니다.



<녹취> 김환구(이당리 이장) : "하늘의 제왕을 부르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몽골까지 먼 길을 떠나기 전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넉넉한 먹이도 준비했습니다.



<녹취> "자 많이 먹고 힘 보태서 잘 갔다가 다시 만나자.."



다음 겨울엔 더 많은 독수리가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군청 직원들이 김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창고에서 돌보던 독수리를 수의사에 맡기기 위해섭니다. 치료하러 보내는 길이지만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멀리 와서 잘 월동을 하고 돌아가야 되는데 낙오가 됐잖아요. 실컷 먹고 잘 견뎌왔는데, 추운데도. 이제 결국 돌아갈 때, 애들하고 같이 못 가는게, 겨울을 같이 있었던 마음으론 안타깝죠."



유난히 많은 독수리가 찾아왔던 겨울이 끝났습니다. 돌이켜보니, 10년 동안 꾸준한 애정이 맺은 결실이었습니다. 힘들게 사람 곁에 다가온 자연,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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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은 ‘독수리 아빠’
    • 입력 2010-04-05 07:31:16
    • 수정2010-04-05 08:00:44
    취재파일K
지난겨울 경남 고성에 5백 마리가 넘는 독수리가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독수리가 많이 찾아 온데는 한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별명이 독수리 아빠인 이 선생님의 독수리 사랑을 취재했습니다.

아침 10시, 한 사람이 논 위에 무언가를 흩어 던지고 있습니다. 날로 된 고깃덩어리입니다. 고깃덩어리를 놓기가 무섭게 냄새를 맡은 새떼가 하늘 위에 몰려듭니다. 한참 동안 맴돌더니 한두 마리씩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천연기념물 243호, 독수리입니다.

<인터뷰> 김덕성(철성고등학교 교사) : "아무래도 야생성이 있으니까 좀 멀리에서 주고 그랬죠. 그런데 똑같은 장소에서, 시간 때도 같고 그러다 보니까 좀 친숙해졌죠."

김 선생님은 이곳 고등학교 미술 교사입니다. 10년 전부터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독수리는 여름철 몽골 지역에서 번식하다가 겨울이면 한반도에 찾아옵니다. 주로 강원도 철원이나 경기도 장단반도 등에서 집중적으로 월동했습니다. 그러다 최근들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독수리도 발견됐습니다. 이번 겨울 고성에는 철원과 비슷한 5백여 마리가 찾아왔습니다.

<인터뷰> 김성만(한국조류보호협회장) : "11월부터 독수리가 오기 시작하는데 11월, 12월부터 독수리 먹이 줘야 되는데 안 주다 보니까 독수리들이 서울 근교에 있다가 자꾸 지방으로 내려가서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그 다음에 달성, 거기 내려가서 저기 경남 고성까지 내려갈지 생각도 못했어요."

10년 전 수십 마리가 내려왔다가 지난 2009년에는 4백여 마리로 크게 늘었고 올해는 5백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독수리가 늘어난 데에는 바로 김선생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김 선생님은 일주일에 세 번씩 정해진 시간에 독수리 먹이를 줍니다.

<녹취> "수리야 이리로 와라, 이 녀석 어린 놈이네. 잘 먹네."

원래 예민한 동물이지만 코 앞에서 먹이를 던져 줘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벌써 10년 동안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독수리들도 이제는 김 선생님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덕성(철성고등학교 교사) : "10여 년 전에 애들하고 겨울방학 때 새 조사를 갔었어요. 그 현장에서 독수리가 먹이가 부족해서 탈진된 녀석들하고 고압선에 걸려서 날개를 다친 애들을 보고, 먹이가 부족하구나, 그렇게 돼서 애들하고 같이 먹이를 줬죠."

독수리들은 먹성이 좋습니다. 50킬로그램짜리 먹이 자루 열 개가 1주일이면 동이 납니다. 교사 봉급을 쪼개 먹이를 마련하는 일도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심지어 간혹 독수리가 사고라도 치게 되면 김 선생님이 수습하곤 합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가까이 인근 나이 좀 드신 분들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독수리가) 이런 큰 거 물고 가다 마늘 밭에 떨어뜨려서 마늘이 피해를 보면, 농사짓는 일도 이해를 하니까, 그래서 보상도 해드리고 했죠."

독수리의 엄격한 서열 관계는 먹이 앞에서 뚜렷해집니다. 서열이 높은 순서대로 내려와 먹이를 차지합니다. 먹이를 두고선 곳곳에서 서열 다툼도 벌어집니다. 이러다 보니 먹이를 넉넉히 마련한다고 했는데도 어리고 힘없는 독수리는 먹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때 먹이를 먹지 못하고 뒤처진 독수리들은 탈진하기 쉽습니다.

<녹취> "이 녀석은 지금 털이 가운데 많이 빠져 가지고... 좀 털이 많이 없죠? 이 녀석은 몸이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김 선생님이 가까운 곳까지 다가가 일일이 먹이를 던져주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들판에서도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 무리가 착지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먼저 자리를 잡은 까마귀들의 텃세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들은 독수리의 등 위에 올라타 부리로 쪼아대며 집요하게 착지를 방해합니다.

<인터뷰> 김성만(한국조류보호협회장) : "항상 덩치는 제일 큽니다. 날개 펴면 2미터 정도 되는 큰 새인데, 덩치도 크고. 그러나 까치 까마귀한테 맥을 못 춰요."

독수리는 검독수리나 참수리와 달리 사냥을 할 줄 모릅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죽은 동물의 사체만을 먹이로 삼는 ‘자연의 청소부’입니다. 김덕성 선생님은 이런 독수리들의 생태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와 조사를 해 왔습니다. 지금껏 찍은 독수리 사진만 수천 장에 이릅니다. 날개에 번호표를 달고 오는 독수리를 중심으로 어떤 독수리가 얼마나 자주 오는지, 어떤 습성을 보이는지 확인하고 일일이 기록으로 남깁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기록은, 2004년부터 기록이 됐죠. 그 땐 사진만 했는데, 이제는 기록을 남기고, 그 다음에 이것을 보관을 좀 해야 다음 사람도 필요할 때 쓰는..."

김 선생님은 언젠가 독수리의 서식지인 몽골에 가 본격적으로 독수리를 연구해볼 꿈을 갖고 있습니다. 관찰일기를 마친 김선생님이 학교 안 창고로 갑니다. 창고 구석에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며칠 전 농수로에서 발견한 다친 독수립니다. 날개가 커 농수로에 빠진 뒤 빠져나오지 못한 겁니다. 독수리는 학교 창고로 옮겨져 김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회복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기력은 회복했는데, 아무래도 조금 무리가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기력이 좀 약한 거 같고 그리고 굉장히 저항도 많이 없고. 얘는 아마 무리에 같이 이동하기 어렵지 않나..."

지난 겨울동안 이렇게 김 선생님의 손길로 독수리 12마리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독수리는 이제 여기 마을의 명물이 됐습니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독수리를 구경합니다. 멀리서 일부러 보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귀한 구경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정종관(대전시 둔산동) :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죠. 그래서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가까이서 보시니까 어떤 느낌이세요?) 독수리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볼 때에는 생명력이나 날개짓이 엄청난 감동을 주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동안 독수리를 보려 경남 고성을 다녀간 사람들도 600명이 넘습니다.

김덕성 선생님은 미술뿐만 아니라 이제는 독수리를 비롯해 자연에 대한 생태도 가르칩니다.

<녹취> "새들이 보면 작은 씨앗 같은 것을 먹고 배설하고 그것이 생태가 자연으로 돌아가서 다시 또 자연이 튼튼해지는 이런 관계들이죠."

학생들에게 김 선생님의 독수리 사랑은 유난스럽습니다.

<인터뷰> 이도길(철성고 3학년 ) : "독수리 아버지거든요. 독수리한테 집착을 너무 많이 하세요."

학생들이 독수리에게 직접 먹이도 줘보고, 생태 수업을 통해 관심도 갖다 보니 이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이도길(철성고 3학년) : "왜 저렇게 하시지? 저렇게까지 하실 필요가...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대단하시죠."

<인터뷰> 박혜은(철성고 3학년) : "먹이 못 먹으면 굶어서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먹이 주고, 또 저 독수리 어디 빠지면 선생님이 직접 가서 구하거든요. 그런거 보면 대단하신 거 같아요."

김 선생님의 독수리 사랑은 다른 주민들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느새 지역의 명물이 되면서 주민들도 반기기 시작한 겁니다. 한때 닭이나 오리에 AI를 옮긴다며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고, 가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오해도 있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상봉(경남 고성군 이당리 주민) : "농사에만 신경 쓰고 관심 갖고 생활하다 보니까 우리 시골에 특히 천연기념물인 거 몰랐어요. 몰랐는데, 어느 날 독수리 이게 천연기념물이라는 걸 알게 돼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수시로 밥을, 독수리 밥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또 다른 독수리가 수로에 빠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수로 주변을 헤매며 다니기를 30여 분. 수로 한 켠에서 독수리 한 마리를 겨우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때가 너무 늦은 모양입니다.

<녹취> "아이고, 이렇게, 녀석이 멀리까지 와서 빠져가지고...아휴..."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녹취> "멀리까지 와서 임마, 이게 뭐냐. 쯧..."

지난 겨울동안 이곳에서 죽은 채 발견된 독수리만 다섯 마리 째입니다.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 모여들기는 했지만, 독수리의 월동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농수로나 고압선과 같은 인공 구조물이나 빠르게 달리는 차량은 독수리의 안전을 언제나 위협합니다. 먹이를 주는 사람의 손길이 많아진 점 역시 또 다른 근심을 낳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체까지도 독수리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먹잇감은 자칫 독성 때문에 독수리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이렇게 함부로 막 던져 놔 버리면, 출처도 모르겠고, 그래서 좀 걱정이 되는 부분들이거든요. 먹이 주시는 건 좋은데, 서로 좀 이야기들이 됐으면 좋을 거 같아요."

실제로 약을 먹은 동물 사체를 먹고 독수리들이 집단 폐사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엔 독수리들이 집단으로 모여 쉬었다 간다는 철마산 앞에 건축 폐기물 중간 처리장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 이당리 주민들은 독수리 월동지 파괴를 우려해 다섯 달째 공사 진행을 막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환구(이당리 이장) : "이 위치에 현재, 건설 폐기물 갖고 와서 파쇄를 하고 분진이 나고 소음이 난다고 봤을 때, 독수리가 쉬고 안정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입장 바꾸면, 아무리 동물이라도, 그건 도저히 불가능한 거 아닙니까?"

주민들은 이 일대를 야생동물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주민들이 월동을 마친 독수리들과의 송별식을 마련했습니다. 작은 제사를 올리며 독수리들의 무사했던 월동을 기념하고 또 안전한 귀향을 빕니다.

<녹취> 김환구(이당리 이장) : "하늘의 제왕을 부르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몽골까지 먼 길을 떠나기 전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넉넉한 먹이도 준비했습니다.

<녹취> "자 많이 먹고 힘 보태서 잘 갔다가 다시 만나자.."

다음 겨울엔 더 많은 독수리가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군청 직원들이 김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창고에서 돌보던 독수리를 수의사에 맡기기 위해섭니다. 치료하러 보내는 길이지만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인터뷰> 김덕성(칠성고등학교 교사) : "멀리 와서 잘 월동을 하고 돌아가야 되는데 낙오가 됐잖아요. 실컷 먹고 잘 견뎌왔는데, 추운데도. 이제 결국 돌아갈 때, 애들하고 같이 못 가는게, 겨울을 같이 있었던 마음으론 안타깝죠."

유난히 많은 독수리가 찾아왔던 겨울이 끝났습니다. 돌이켜보니, 10년 동안 꾸준한 애정이 맺은 결실이었습니다. 힘들게 사람 곁에 다가온 자연,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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