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프랑스 포도주의 변신 몸부림

입력 2010.06.1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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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포도주의 종주국 프랑스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호주,칠레 등 이른바 신대륙 포도주의 공격적인 마케팅 탓에 세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 포도주가 마케팅 전선에 나서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등 변신의 몸부림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충형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마치 초록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집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구슬같은 포도 알맹이가 영글어 갑니다. 술이 익는 저장고마다 참나무통의 싱그러운 향기가 넘쳐납니다.

프랑스 남서부, 세계 최고의 포도주 산지로 불리는 보르도. 흔히 샤토로 불리며, 포도주를 생산하는 고색창연한 성이 3천 개에 이릅니다.

포도주의 명가, 페삭 레오냥에서 오늘은 예사롭지 않은 시음회가 열렸습니다.

보르도 지역의 내로라하는 유명 요리사들이 총출동, 100여 명의 포도주 판매업자와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인터뷰>노비 베르나르(요리사)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식당 홍보도 할 수 있습니다.경제위기 시대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보르도 포도주가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겁니다.

한쪽에서는 타르타르로 불리는 프랑스 전통 음식을 만들고, 한쪽에서는 이 음식에 어울리는 포도주를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인터뷰>디디에 콜라로(타르타르 아카데미 대표) : “포도주 업자들은 포도주를 소개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포도주와 다양한 요리사의 음식을 맛볼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이득입니다.”

콧대높기로 유명한 보르도 포도주가 요즘 이렇게 마케팅 전선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무얼까?

포도주 명가, 프랑스는 최근 세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포도주 수출량이 20% 가까이 줄면서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세계 3위로 주저앉았습니다.

미국과 호주, 칠레 등 이른바 신대륙 포도주에게 중저가 시장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롤랑 페렌즈(보르도 포도주협회장) : “보르도 포도주도 다른 경제분야와 같이 세계 경제위기에 타격을 입었습니다.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수출이 감소했습니다.”

여기다 불황에 따른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프랑스 포도주 생산업자들의 농가 소득은 24%나 감소했습니다. 위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술병을 두드리는 건 노래 장단을 맞추자는 게 아닙니다. 천여 명의 포도주 제조업자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북방 한계선이 지난 1세기 동안 천 킬로미터나 올라갔습니다.

<인터뷰>미셀 이살리(프랑스 독립 포도주협회장) : “기후변화의 결과는 분명합니다.기온이 올라가서 포도나무가 북쪽 잉글랜드에서도 자라고 있습니다.”

때문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보르도 사람들은 과거, 포도주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는 바로 하늘과 자연이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포도주는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만든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대륙 포도주에 맞서 새로운 양조기법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양조장은 포도주를 최상의 조건으로 숙성시키기 위해 온도를 자동 조절할수 있는 스테인레스 양조 탱크를 도입했습니다.

<인터뷰>폴 갹상(포도주 생산업자) : “탱크 겉부분에 특수액체가 들어가 순환하고 있습니다.영하 3도까지 내려갑니다.초기 숙성을 찬 온도에서 가능하게 해 줍니다.”

유기 농법으로 차별화를 선언한 곳도 있습니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친환경,고급화 전략. 퇴비와 쇠똥으로 비료를 만들고 나무통에는 천연 약초를 넣은 물을 휘저어 활성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이 물을 밭에 뿌리면 농약 없이도 병충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포도주 가격을 높게 받아 그만큼 수익도 좋아졌습니다.

<인터뷰> 뒤브레 부부:“우리 아이들이 포도밭에서 달팽이,지렁이를 찾으며 노는 걸 봤습니다.이것이 계기가 돼 좀 더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모든 작업은 기계를 쓰지 않고 농부의 손으로만 이뤄집니다.

세계 상품의 경연장, 파리 박람회. 프랑스 포도주 산업의 새로운 경향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올해 전시된 포도주들의 특징은 바로, 뭔가 다른 모양입니다.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모양의 병을 만들고 상표 색깔도 형형색색, 다채롭습니다.

<인터뷰>세실 사탕(포도주 생산업자) :“요즘 소비자들은 저와 같은 세대여서 뭔가 다른 면을 보려고 하고 전통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합니다.”

포도주 상표 이름도 다릅니다. 산지를 표시하는 딱딱한 성 이름이 아니라, 포도 재배에 일손을 보탠 생산업자의 자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인터뷰>포도주 생산업자:“이건 제 맏딸 이름의 포도주이고, 이건 막내딸 이름의 포도주입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인터넷 마케팅은 더욱 뜨겁습니다. 보르도 포도주 협회는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한국어 인터넷 사이트도 열었습니다.

<인터뷰>로낭 트레믈로(한국시장 담당) : “한국 시장은 소비 측면과 포도주에 대한 이해면에서 크게 성장했고 발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략적으로 우선시되는 시장입니다.”


올 하반기 한국과 유럽연합 사이에 자유무역 협정,FTA가 발효되면 관세 인하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를 활용해, 남미 등 신대륙에 빼앗긴 한국 시장을 되찾겠다는 겁니다.

보르도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도 세계 시장을 누볐던 프랑스 포도주.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장인 정신, 천혜의 자연환경만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위기에 맞서기 위한 마케팅 전략과 과학적 양조 기술 개발, 모두다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기 위한 변신의 몸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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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프랑스 포도주의 변신 몸부림
    • 입력 2010-06-13 09:36:12
    특파원 현장보고
요즘 포도주의 종주국 프랑스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호주,칠레 등 이른바 신대륙 포도주의 공격적인 마케팅 탓에 세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 포도주가 마케팅 전선에 나서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등 변신의 몸부림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충형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마치 초록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집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구슬같은 포도 알맹이가 영글어 갑니다. 술이 익는 저장고마다 참나무통의 싱그러운 향기가 넘쳐납니다. 프랑스 남서부, 세계 최고의 포도주 산지로 불리는 보르도. 흔히 샤토로 불리며, 포도주를 생산하는 고색창연한 성이 3천 개에 이릅니다. 포도주의 명가, 페삭 레오냥에서 오늘은 예사롭지 않은 시음회가 열렸습니다. 보르도 지역의 내로라하는 유명 요리사들이 총출동, 100여 명의 포도주 판매업자와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인터뷰>노비 베르나르(요리사)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식당 홍보도 할 수 있습니다.경제위기 시대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보르도 포도주가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겁니다. 한쪽에서는 타르타르로 불리는 프랑스 전통 음식을 만들고, 한쪽에서는 이 음식에 어울리는 포도주를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인터뷰>디디에 콜라로(타르타르 아카데미 대표) : “포도주 업자들은 포도주를 소개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포도주와 다양한 요리사의 음식을 맛볼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이득입니다.” 콧대높기로 유명한 보르도 포도주가 요즘 이렇게 마케팅 전선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무얼까? 포도주 명가, 프랑스는 최근 세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포도주 수출량이 20% 가까이 줄면서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세계 3위로 주저앉았습니다. 미국과 호주, 칠레 등 이른바 신대륙 포도주에게 중저가 시장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롤랑 페렌즈(보르도 포도주협회장) : “보르도 포도주도 다른 경제분야와 같이 세계 경제위기에 타격을 입었습니다.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수출이 감소했습니다.” 여기다 불황에 따른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프랑스 포도주 생산업자들의 농가 소득은 24%나 감소했습니다. 위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술병을 두드리는 건 노래 장단을 맞추자는 게 아닙니다. 천여 명의 포도주 제조업자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북방 한계선이 지난 1세기 동안 천 킬로미터나 올라갔습니다. <인터뷰>미셀 이살리(프랑스 독립 포도주협회장) : “기후변화의 결과는 분명합니다.기온이 올라가서 포도나무가 북쪽 잉글랜드에서도 자라고 있습니다.” 때문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보르도 사람들은 과거, 포도주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는 바로 하늘과 자연이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포도주는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만든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대륙 포도주에 맞서 새로운 양조기법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양조장은 포도주를 최상의 조건으로 숙성시키기 위해 온도를 자동 조절할수 있는 스테인레스 양조 탱크를 도입했습니다. <인터뷰>폴 갹상(포도주 생산업자) : “탱크 겉부분에 특수액체가 들어가 순환하고 있습니다.영하 3도까지 내려갑니다.초기 숙성을 찬 온도에서 가능하게 해 줍니다.” 유기 농법으로 차별화를 선언한 곳도 있습니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친환경,고급화 전략. 퇴비와 쇠똥으로 비료를 만들고 나무통에는 천연 약초를 넣은 물을 휘저어 활성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이 물을 밭에 뿌리면 농약 없이도 병충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포도주 가격을 높게 받아 그만큼 수익도 좋아졌습니다. <인터뷰> 뒤브레 부부:“우리 아이들이 포도밭에서 달팽이,지렁이를 찾으며 노는 걸 봤습니다.이것이 계기가 돼 좀 더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모든 작업은 기계를 쓰지 않고 농부의 손으로만 이뤄집니다. 세계 상품의 경연장, 파리 박람회. 프랑스 포도주 산업의 새로운 경향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올해 전시된 포도주들의 특징은 바로, 뭔가 다른 모양입니다.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모양의 병을 만들고 상표 색깔도 형형색색, 다채롭습니다. <인터뷰>세실 사탕(포도주 생산업자) :“요즘 소비자들은 저와 같은 세대여서 뭔가 다른 면을 보려고 하고 전통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합니다.” 포도주 상표 이름도 다릅니다. 산지를 표시하는 딱딱한 성 이름이 아니라, 포도 재배에 일손을 보탠 생산업자의 자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인터뷰>포도주 생산업자:“이건 제 맏딸 이름의 포도주이고, 이건 막내딸 이름의 포도주입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인터넷 마케팅은 더욱 뜨겁습니다. 보르도 포도주 협회는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한국어 인터넷 사이트도 열었습니다. <인터뷰>로낭 트레믈로(한국시장 담당) : “한국 시장은 소비 측면과 포도주에 대한 이해면에서 크게 성장했고 발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략적으로 우선시되는 시장입니다.” 올 하반기 한국과 유럽연합 사이에 자유무역 협정,FTA가 발효되면 관세 인하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를 활용해, 남미 등 신대륙에 빼앗긴 한국 시장을 되찾겠다는 겁니다. 보르도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도 세계 시장을 누볐던 프랑스 포도주.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장인 정신, 천혜의 자연환경만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위기에 맞서기 위한 마케팅 전략과 과학적 양조 기술 개발, 모두다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기 위한 변신의 몸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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