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네. 바다 생명체를 하나라도 더 살리려는 노력이 있어야겠군요. 다음 소식입니다. 국적도 없고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깊은 산 속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국 국경 지역의 고산족들이라구요?
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국경지대..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로 불리는 산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인데요..수 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극도의 궁핍 상태에서 희망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숲 속의 이방인 고산족을 한재호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험준한 산속에 울퉁불퉁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간 지 2시간 여. 듬성듬성 모여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 깊은 산중에 있는 라후족 마을입니다.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갈대로 지붕을 얹어 모양만 갖춘 집이 27가구. 이 곳에 70여명이 모여삽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어느것 하나 풍족한 게 없는 원시 생활 모습 그대롭니다. 마을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아윈씨 부부는 갈대 지붕을 엮어 생계를 꾸립니다. 온종일 손이 저리도록 일을 해도 재료값을 빼고 나면 다섯 식구가 겨우 끼니를 이을 정돕니다.
<인터뷰>일루(라후족 여성):"이거 하나 팔면 10바트(400원) 받아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요즘엔 만들어 팔기도 힘들어요."
집안은 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아 늘 어둠침침합니다. 나서씨는 오늘도 바닥에 장작불을 피우고 솥을 걸어 먹을 거리를 장만합니다. 밥이라고 해야 산에서 구해온 죽순에 쌀을 조금 넣어 끓인 죽 한 가지가 전부. 공간이 좁다보니 조리를 할 때마다 연기가 눈을 파고 듭니다.
<인터뷰>나서(라후족 여성):“음식 만드는 게 가장 불편해요. 아이도 있고..남편은 집에 없어서 못 도와 줘요..일거리를 찾기 힘들죠.”
마을 사람들을 궁핍하게 하는건 국적도 뿌리도 없는 신분입니다. 태국 국적의 신분증은 하늘색. 라후족은 분홍색입니다. 차별 증서와 같은 서로 다른 색깔의 증명서. 이 신분증으로는 산 아래 도시 치앙라이까지만 갈 수 있고 더 이상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터뷰>까네(라후족 청년):“산 아래 치앙라이를 벗어나려면 사전에 반드시 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내일 가고 싶다면 오늘 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거죠.”
신분증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 치앙라이에 가면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길을 더듬어 2시간을 더 올가가 닿은 또 다른 고산족 마을. 해발 천 300미터에 둥지를 튼 이 마을에는 신분증 자체가 없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평생 산속에 갇혀 살아야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마을 청년과 결혼한 18살의 ’나누’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나누(라후족 여성):"도회지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요. 그래야 아이에게 더 잘 해줄 수 있잖아요. 여기선 늘 우울해요."
’나누’의 하루 일과 역시 여느 집과 다를 게 없습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쫓으며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만듭니다. 백일이 막 지난 아기와 시어머니를 돌보며 소일하는 것 말고는 마을에선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어렸을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농사라고 해야 화전에 부친 밭벼와 옥수수가 전부. 부근 산속에 흩어져 사는 고산족 마을 주민 대부분이 화전에 의지해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땅심이 다하면 고산족들은 또 다른 산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나마 주인없는 험한 산중이라 아무데고 정착해 살 아 갈 수 있지만 어떤 곳에선 정부나 땅 주인이 나타나 나가라고 하면 꼼짝 없이 쫒겨납니다.
<인터뷰>에카차이(라후족 청년):"태국 정부에서 학교를 세우고 길도 닦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농사 지을 땅도 필요하고요."
태국과 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 국경지대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은 대략 수 십만 명 정도. 이들 대부분이 국적도,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허공에 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경과 나라의 개념 없이 그저 산과 강을 따라 떠돌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의 국적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소속이나 신분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 각 정부도 이들에게 무턱대고 국적을 내주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현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돈 뿐..
그래서 남자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가정을 뒤로하고 도회지로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치앙라이의 한 신축건물 공사장. 고산족들이 뙤약볕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마을에서 온 라후족과 버마족 사람들입니다.
<인터뷰>나이츠(버마족 노동자):"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함께 미얀마 접경에서 왔어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받는 일당이 남자는 200바트, 여자는 150바트. 우리돈 6천원에서 8천원 정도지만 산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품삯입니다.
<인터뷰>마뉴(버마족 여성):“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돈을 보내려고 왔어요. 남편과 함께 일하는 데 어떤 때는 한 달에 만 바트(약 38만 원)벌어요.”
이들은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숙소에서 몇 달씩 살아갑니다. 한낮엔 숨도 못쉴 정도로 덥고 악취와 해충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기가 힘든데도 50명 가까운 고산족들이 모여 삽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어린 자녀까지 데리고와 살고 있는 집도 여럿 있습니다.
<인터뷰>산다(버마족):"너무 덥고 모기도 많지만 여기서는 그냥 참고 살 수 밖에 없어요."
이 곳에선 빨래며 목욕, 이발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합니다. 빨래 방망이질은 옛 적 우리네 아낙들의 모습을 빼닮았습니다. 어쩌다 노는 날이 생겨도 잔뜩 밀린 집안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제대로 쉴 틈도 없습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한 데 어울려 고단함을 나누고 고향얘기를 하면 마음이 좀 풀립니다. 도시에선 일거리가 있고 얼마간 돈도 벌어 돌아 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을 붙드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고산족들은 이 열악한 임시 숙소에서 몇달간 함께 살다가 일거리가 떨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유랑에 익숙해진 이들이지만 자녀들 만큼은 부모의 처지를 닮지 말았으면 하는 한결 같은 바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산족들은 더욱 자녀 교육에 집착합니다. 지식이 있어야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유일한 배움터인 학교. 하루 1시간씩 익히는 태국어시간 만큼은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납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소망은 똑같습니다.
<인터뷰>니라판(마을학교 교사):"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해요. 의사나 교사, 경찰, 군인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은 거죠."
<인터뷰>모리(고산족 어린이):"권투 선수가 돼서 TV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게 꿈이에요."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버린 국적없는 고산족들의 고달픈 운명. 과연 이 어린이들이 길고도 험한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 고산족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첩첩 산중을 훌훌 벗어나 희망을 찾아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네. 바다 생명체를 하나라도 더 살리려는 노력이 있어야겠군요. 다음 소식입니다. 국적도 없고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깊은 산 속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국 국경 지역의 고산족들이라구요?
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국경지대..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로 불리는 산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인데요..수 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극도의 궁핍 상태에서 희망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숲 속의 이방인 고산족을 한재호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험준한 산속에 울퉁불퉁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간 지 2시간 여. 듬성듬성 모여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 깊은 산중에 있는 라후족 마을입니다.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갈대로 지붕을 얹어 모양만 갖춘 집이 27가구. 이 곳에 70여명이 모여삽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어느것 하나 풍족한 게 없는 원시 생활 모습 그대롭니다. 마을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아윈씨 부부는 갈대 지붕을 엮어 생계를 꾸립니다. 온종일 손이 저리도록 일을 해도 재료값을 빼고 나면 다섯 식구가 겨우 끼니를 이을 정돕니다.
<인터뷰>일루(라후족 여성):"이거 하나 팔면 10바트(400원) 받아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요즘엔 만들어 팔기도 힘들어요."
집안은 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아 늘 어둠침침합니다. 나서씨는 오늘도 바닥에 장작불을 피우고 솥을 걸어 먹을 거리를 장만합니다. 밥이라고 해야 산에서 구해온 죽순에 쌀을 조금 넣어 끓인 죽 한 가지가 전부. 공간이 좁다보니 조리를 할 때마다 연기가 눈을 파고 듭니다.
<인터뷰>나서(라후족 여성):“음식 만드는 게 가장 불편해요. 아이도 있고..남편은 집에 없어서 못 도와 줘요..일거리를 찾기 힘들죠.”
마을 사람들을 궁핍하게 하는건 국적도 뿌리도 없는 신분입니다. 태국 국적의 신분증은 하늘색. 라후족은 분홍색입니다. 차별 증서와 같은 서로 다른 색깔의 증명서. 이 신분증으로는 산 아래 도시 치앙라이까지만 갈 수 있고 더 이상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터뷰>까네(라후족 청년):“산 아래 치앙라이를 벗어나려면 사전에 반드시 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내일 가고 싶다면 오늘 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거죠.”
신분증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 치앙라이에 가면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길을 더듬어 2시간을 더 올가가 닿은 또 다른 고산족 마을. 해발 천 300미터에 둥지를 튼 이 마을에는 신분증 자체가 없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평생 산속에 갇혀 살아야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마을 청년과 결혼한 18살의 ’나누’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나누(라후족 여성):"도회지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요. 그래야 아이에게 더 잘 해줄 수 있잖아요. 여기선 늘 우울해요."
’나누’의 하루 일과 역시 여느 집과 다를 게 없습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쫓으며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만듭니다. 백일이 막 지난 아기와 시어머니를 돌보며 소일하는 것 말고는 마을에선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어렸을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농사라고 해야 화전에 부친 밭벼와 옥수수가 전부. 부근 산속에 흩어져 사는 고산족 마을 주민 대부분이 화전에 의지해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땅심이 다하면 고산족들은 또 다른 산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나마 주인없는 험한 산중이라 아무데고 정착해 살 아 갈 수 있지만 어떤 곳에선 정부나 땅 주인이 나타나 나가라고 하면 꼼짝 없이 쫒겨납니다.
<인터뷰>에카차이(라후족 청년):"태국 정부에서 학교를 세우고 길도 닦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농사 지을 땅도 필요하고요."
태국과 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 국경지대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은 대략 수 십만 명 정도. 이들 대부분이 국적도,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허공에 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경과 나라의 개념 없이 그저 산과 강을 따라 떠돌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의 국적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소속이나 신분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 각 정부도 이들에게 무턱대고 국적을 내주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현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돈 뿐..
그래서 남자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가정을 뒤로하고 도회지로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치앙라이의 한 신축건물 공사장. 고산족들이 뙤약볕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마을에서 온 라후족과 버마족 사람들입니다.
<인터뷰>나이츠(버마족 노동자):"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함께 미얀마 접경에서 왔어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받는 일당이 남자는 200바트, 여자는 150바트. 우리돈 6천원에서 8천원 정도지만 산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품삯입니다.
<인터뷰>마뉴(버마족 여성):“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돈을 보내려고 왔어요. 남편과 함께 일하는 데 어떤 때는 한 달에 만 바트(약 38만 원)벌어요.”
이들은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숙소에서 몇 달씩 살아갑니다. 한낮엔 숨도 못쉴 정도로 덥고 악취와 해충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기가 힘든데도 50명 가까운 고산족들이 모여 삽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어린 자녀까지 데리고와 살고 있는 집도 여럿 있습니다.
<인터뷰>산다(버마족):"너무 덥고 모기도 많지만 여기서는 그냥 참고 살 수 밖에 없어요."
이 곳에선 빨래며 목욕, 이발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합니다. 빨래 방망이질은 옛 적 우리네 아낙들의 모습을 빼닮았습니다. 어쩌다 노는 날이 생겨도 잔뜩 밀린 집안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제대로 쉴 틈도 없습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한 데 어울려 고단함을 나누고 고향얘기를 하면 마음이 좀 풀립니다. 도시에선 일거리가 있고 얼마간 돈도 벌어 돌아 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을 붙드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고산족들은 이 열악한 임시 숙소에서 몇달간 함께 살다가 일거리가 떨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유랑에 익숙해진 이들이지만 자녀들 만큼은 부모의 처지를 닮지 말았으면 하는 한결 같은 바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산족들은 더욱 자녀 교육에 집착합니다. 지식이 있어야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유일한 배움터인 학교. 하루 1시간씩 익히는 태국어시간 만큼은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납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소망은 똑같습니다.
<인터뷰>니라판(마을학교 교사):"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해요. 의사나 교사, 경찰, 군인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은 거죠."
<인터뷰>모리(고산족 어린이):"권투 선수가 돼서 TV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게 꿈이에요."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버린 국적없는 고산족들의 고달픈 운명. 과연 이 어린이들이 길고도 험한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 고산족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첩첩 산중을 훌훌 벗어나 희망을 찾아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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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숲 속의 이방인 ‘고산족’
-
- 입력 2010-08-01 09:55:56
<앵커 멘트>
네. 바다 생명체를 하나라도 더 살리려는 노력이 있어야겠군요. 다음 소식입니다. 국적도 없고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깊은 산 속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국 국경 지역의 고산족들이라구요?
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국경지대..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로 불리는 산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인데요..수 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극도의 궁핍 상태에서 희망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숲 속의 이방인 고산족을 한재호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험준한 산속에 울퉁불퉁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간 지 2시간 여. 듬성듬성 모여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 깊은 산중에 있는 라후족 마을입니다.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갈대로 지붕을 얹어 모양만 갖춘 집이 27가구. 이 곳에 70여명이 모여삽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어느것 하나 풍족한 게 없는 원시 생활 모습 그대롭니다. 마을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아윈씨 부부는 갈대 지붕을 엮어 생계를 꾸립니다. 온종일 손이 저리도록 일을 해도 재료값을 빼고 나면 다섯 식구가 겨우 끼니를 이을 정돕니다.
<인터뷰>일루(라후족 여성):"이거 하나 팔면 10바트(400원) 받아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요즘엔 만들어 팔기도 힘들어요."
집안은 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아 늘 어둠침침합니다. 나서씨는 오늘도 바닥에 장작불을 피우고 솥을 걸어 먹을 거리를 장만합니다. 밥이라고 해야 산에서 구해온 죽순에 쌀을 조금 넣어 끓인 죽 한 가지가 전부. 공간이 좁다보니 조리를 할 때마다 연기가 눈을 파고 듭니다.
<인터뷰>나서(라후족 여성):“음식 만드는 게 가장 불편해요. 아이도 있고..남편은 집에 없어서 못 도와 줘요..일거리를 찾기 힘들죠.”
마을 사람들을 궁핍하게 하는건 국적도 뿌리도 없는 신분입니다. 태국 국적의 신분증은 하늘색. 라후족은 분홍색입니다. 차별 증서와 같은 서로 다른 색깔의 증명서. 이 신분증으로는 산 아래 도시 치앙라이까지만 갈 수 있고 더 이상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터뷰>까네(라후족 청년):“산 아래 치앙라이를 벗어나려면 사전에 반드시 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내일 가고 싶다면 오늘 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거죠.”
신분증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 치앙라이에 가면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길을 더듬어 2시간을 더 올가가 닿은 또 다른 고산족 마을. 해발 천 300미터에 둥지를 튼 이 마을에는 신분증 자체가 없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평생 산속에 갇혀 살아야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마을 청년과 결혼한 18살의 ’나누’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나누(라후족 여성):"도회지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요. 그래야 아이에게 더 잘 해줄 수 있잖아요. 여기선 늘 우울해요."
’나누’의 하루 일과 역시 여느 집과 다를 게 없습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쫓으며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만듭니다. 백일이 막 지난 아기와 시어머니를 돌보며 소일하는 것 말고는 마을에선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어렸을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농사라고 해야 화전에 부친 밭벼와 옥수수가 전부. 부근 산속에 흩어져 사는 고산족 마을 주민 대부분이 화전에 의지해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땅심이 다하면 고산족들은 또 다른 산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나마 주인없는 험한 산중이라 아무데고 정착해 살 아 갈 수 있지만 어떤 곳에선 정부나 땅 주인이 나타나 나가라고 하면 꼼짝 없이 쫒겨납니다.
<인터뷰>에카차이(라후족 청년):"태국 정부에서 학교를 세우고 길도 닦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농사 지을 땅도 필요하고요."
태국과 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 국경지대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은 대략 수 십만 명 정도. 이들 대부분이 국적도,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허공에 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경과 나라의 개념 없이 그저 산과 강을 따라 떠돌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의 국적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소속이나 신분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 각 정부도 이들에게 무턱대고 국적을 내주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현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돈 뿐..
그래서 남자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가정을 뒤로하고 도회지로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치앙라이의 한 신축건물 공사장. 고산족들이 뙤약볕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마을에서 온 라후족과 버마족 사람들입니다.
<인터뷰>나이츠(버마족 노동자):"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함께 미얀마 접경에서 왔어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받는 일당이 남자는 200바트, 여자는 150바트. 우리돈 6천원에서 8천원 정도지만 산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품삯입니다.
<인터뷰>마뉴(버마족 여성):“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돈을 보내려고 왔어요. 남편과 함께 일하는 데 어떤 때는 한 달에 만 바트(약 38만 원)벌어요.”
이들은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숙소에서 몇 달씩 살아갑니다. 한낮엔 숨도 못쉴 정도로 덥고 악취와 해충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기가 힘든데도 50명 가까운 고산족들이 모여 삽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어린 자녀까지 데리고와 살고 있는 집도 여럿 있습니다.
<인터뷰>산다(버마족):"너무 덥고 모기도 많지만 여기서는 그냥 참고 살 수 밖에 없어요."
이 곳에선 빨래며 목욕, 이발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합니다. 빨래 방망이질은 옛 적 우리네 아낙들의 모습을 빼닮았습니다. 어쩌다 노는 날이 생겨도 잔뜩 밀린 집안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제대로 쉴 틈도 없습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한 데 어울려 고단함을 나누고 고향얘기를 하면 마음이 좀 풀립니다. 도시에선 일거리가 있고 얼마간 돈도 벌어 돌아 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을 붙드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고산족들은 이 열악한 임시 숙소에서 몇달간 함께 살다가 일거리가 떨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유랑에 익숙해진 이들이지만 자녀들 만큼은 부모의 처지를 닮지 말았으면 하는 한결 같은 바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산족들은 더욱 자녀 교육에 집착합니다. 지식이 있어야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유일한 배움터인 학교. 하루 1시간씩 익히는 태국어시간 만큼은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납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소망은 똑같습니다.
<인터뷰>니라판(마을학교 교사):"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해요. 의사나 교사, 경찰, 군인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은 거죠."
<인터뷰>모리(고산족 어린이):"권투 선수가 돼서 TV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게 꿈이에요."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버린 국적없는 고산족들의 고달픈 운명. 과연 이 어린이들이 길고도 험한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 고산족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첩첩 산중을 훌훌 벗어나 희망을 찾아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네. 바다 생명체를 하나라도 더 살리려는 노력이 있어야겠군요. 다음 소식입니다. 국적도 없고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깊은 산 속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국 국경 지역의 고산족들이라구요?
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국경지대..이른바 황금의 삼각지로 불리는 산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인데요..수 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극도의 궁핍 상태에서 희망 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숲 속의 이방인 고산족을 한재호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험준한 산속에 울퉁불퉁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간 지 2시간 여. 듬성듬성 모여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 깊은 산중에 있는 라후족 마을입니다.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갈대로 지붕을 얹어 모양만 갖춘 집이 27가구. 이 곳에 70여명이 모여삽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어느것 하나 풍족한 게 없는 원시 생활 모습 그대롭니다. 마을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아윈씨 부부는 갈대 지붕을 엮어 생계를 꾸립니다. 온종일 손이 저리도록 일을 해도 재료값을 빼고 나면 다섯 식구가 겨우 끼니를 이을 정돕니다.
<인터뷰>일루(라후족 여성):"이거 하나 팔면 10바트(400원) 받아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요즘엔 만들어 팔기도 힘들어요."
집안은 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아 늘 어둠침침합니다. 나서씨는 오늘도 바닥에 장작불을 피우고 솥을 걸어 먹을 거리를 장만합니다. 밥이라고 해야 산에서 구해온 죽순에 쌀을 조금 넣어 끓인 죽 한 가지가 전부. 공간이 좁다보니 조리를 할 때마다 연기가 눈을 파고 듭니다.
<인터뷰>나서(라후족 여성):“음식 만드는 게 가장 불편해요. 아이도 있고..남편은 집에 없어서 못 도와 줘요..일거리를 찾기 힘들죠.”
마을 사람들을 궁핍하게 하는건 국적도 뿌리도 없는 신분입니다. 태국 국적의 신분증은 하늘색. 라후족은 분홍색입니다. 차별 증서와 같은 서로 다른 색깔의 증명서. 이 신분증으로는 산 아래 도시 치앙라이까지만 갈 수 있고 더 이상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터뷰>까네(라후족 청년):“산 아래 치앙라이를 벗어나려면 사전에 반드시 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내일 가고 싶다면 오늘 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거죠.”
신분증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 치앙라이에 가면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길을 더듬어 2시간을 더 올가가 닿은 또 다른 고산족 마을. 해발 천 300미터에 둥지를 튼 이 마을에는 신분증 자체가 없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평생 산속에 갇혀 살아야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마을 청년과 결혼한 18살의 ’나누’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나누(라후족 여성):"도회지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요. 그래야 아이에게 더 잘 해줄 수 있잖아요. 여기선 늘 우울해요."
’나누’의 하루 일과 역시 여느 집과 다를 게 없습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쫓으며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만듭니다. 백일이 막 지난 아기와 시어머니를 돌보며 소일하는 것 말고는 마을에선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어렸을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농사라고 해야 화전에 부친 밭벼와 옥수수가 전부. 부근 산속에 흩어져 사는 고산족 마을 주민 대부분이 화전에 의지해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땅심이 다하면 고산족들은 또 다른 산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나마 주인없는 험한 산중이라 아무데고 정착해 살 아 갈 수 있지만 어떤 곳에선 정부나 땅 주인이 나타나 나가라고 하면 꼼짝 없이 쫒겨납니다.
<인터뷰>에카차이(라후족 청년):"태국 정부에서 학교를 세우고 길도 닦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농사 지을 땅도 필요하고요."
태국과 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 국경지대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은 대략 수 십만 명 정도. 이들 대부분이 국적도,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허공에 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경과 나라의 개념 없이 그저 산과 강을 따라 떠돌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의 국적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소속이나 신분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 각 정부도 이들에게 무턱대고 국적을 내주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현실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돈 뿐..
그래서 남자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가정을 뒤로하고 도회지로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치앙라이의 한 신축건물 공사장. 고산족들이 뙤약볕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마을에서 온 라후족과 버마족 사람들입니다.
<인터뷰>나이츠(버마족 노동자):"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함께 미얀마 접경에서 왔어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받는 일당이 남자는 200바트, 여자는 150바트. 우리돈 6천원에서 8천원 정도지만 산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품삯입니다.
<인터뷰>마뉴(버마족 여성):“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돈을 보내려고 왔어요. 남편과 함께 일하는 데 어떤 때는 한 달에 만 바트(약 38만 원)벌어요.”
이들은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숙소에서 몇 달씩 살아갑니다. 한낮엔 숨도 못쉴 정도로 덥고 악취와 해충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기가 힘든데도 50명 가까운 고산족들이 모여 삽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곳에 어린 자녀까지 데리고와 살고 있는 집도 여럿 있습니다.
<인터뷰>산다(버마족):"너무 덥고 모기도 많지만 여기서는 그냥 참고 살 수 밖에 없어요."
이 곳에선 빨래며 목욕, 이발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합니다. 빨래 방망이질은 옛 적 우리네 아낙들의 모습을 빼닮았습니다. 어쩌다 노는 날이 생겨도 잔뜩 밀린 집안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제대로 쉴 틈도 없습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한 데 어울려 고단함을 나누고 고향얘기를 하면 마음이 좀 풀립니다. 도시에선 일거리가 있고 얼마간 돈도 벌어 돌아 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을 붙드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고산족들은 이 열악한 임시 숙소에서 몇달간 함께 살다가 일거리가 떨어지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유랑에 익숙해진 이들이지만 자녀들 만큼은 부모의 처지를 닮지 말았으면 하는 한결 같은 바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산족들은 더욱 자녀 교육에 집착합니다. 지식이 있어야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유일한 배움터인 학교. 하루 1시간씩 익히는 태국어시간 만큼은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납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소망은 똑같습니다.
<인터뷰>니라판(마을학교 교사):"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해요. 의사나 교사, 경찰, 군인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은 거죠."
<인터뷰>모리(고산족 어린이):"권투 선수가 돼서 TV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게 꿈이에요."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버린 국적없는 고산족들의 고달픈 운명. 과연 이 어린이들이 길고도 험한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 고산족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첩첩 산중을 훌훌 벗어나 희망을 찾아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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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호 기자 khan007@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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